제6회 <한국시문학상> 한광구 시인의 「산경(山經)」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창작』이 제정한 제6회 <한국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2006년도 수상자로 한광구 시인을 선정하였다. 수상작품은 「산경(山經)」 연작이다. 한국시문학상은 등단한 지 20~40년 사이의 시인들이 2005년~2006년 8월까지 발표한 시와 시집 중 <한국시문학상 예심위원회>가 추천한 10여명의 중견시인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은 강우식, 문효치, 박제천, 민용태 시인이 맡았다. 제6회 한국시문학상 수상자인 한광구 시인의 작품들은 30년이 넘는 창작기간동안 지상의 고뇌가 가지는 무거움에서 천상의 은총을 지향하는 가벼움으로, 실존의 상처에서 영원한 신성을 향한 열망으로 시세계를 옮겨왔다. 그것은 오랫동안 앓고 치유해왔던 세상과의 모순과 갈등을 넘어선, 보다 더 구체적인 사물 속에 깃들인 사랑과 평화의 언어적 형식이다. 이 시세계를 평가하여 한국시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한광구 시인에게는 2백만원의 상금과 크리스탈 상패가 수여되며, 계간 『문학과창작』 겨울호에 수상작과 함께 시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특집이 게재된다. 한국시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는 尹錫山, 민용태, 김용범, 신현정, 박상천 시인 등이다.
심사위원|강우식, 문효치, 민용태, 박제천
[수상시인 약력]
한광구(韓光九) 시인; 120-763 서대문구 북아현동 190-1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손)011-9054-9891 ―경기 안성에서 출생 ―연세대 국문과 및 한양대 대학원 졸. 문학박사. ―74년 『심상』 등단. ―시집 『상처를 위하여』 『꿈꾸는 물』 『서울 처용』 『깊고 푸른 중심』 등. 소설집 『물의 눈』이 있음.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www.hankwangkoo.pe.kr
사랑과 평화의 언어적 형식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창작』이 제정한 제6회 <한국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2006년도 수상작으로 한광구 시인의 「산경(山經)」 등을 선정하였다. 처음에 한국시문학상을 제정하면서, 우리는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하면서도 시류에 초연한 시인들이 이 상을 수상하기를 기대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5회에 걸쳐 윤석산, 민용태, 김용범, 신현정, 박상천과 같은 탁월한 시인들에게 이 상을 시상하였고, 이런 우리의 선정이 올바른 결정이라는 광범위한 지지 아래 한국시문학상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상을 거듭하면서 우리 시단에는 정신의 힘을 지켜나가는 시인, 정신의 위의를 당당하게 보여주는 시인들이 우리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많이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경박하고 감상적인 인기몰이, 엽기적이거나 애매모호한 가짜 실험, 패거리를 모아들이는 상업주의가 만연한 진창 속에서도 우리 문학의 내일은 연꽃처럼 얼마든지 피어나고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전망하게 된 것이다. 2006년, 우리에게 또한번 그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준 한광구 시인은 30년이 넘는 창작 기간 동안 지상의 고뇌가 가지는 무거움에서 천상의 은총을 지향하는 가벼움으로, 실존의 상처에서 영원한 신성을 향한 열망으로 시세계를 옮겨왔다. 그것은 오랫동안 앓고 치유해왔던 세상과의 모순과 갈등을 넘어선, 보다 더 구체적인 사물 속에 깃들인 사랑과 평화의 언어적 형식이다. 화해로 가득찬 한광구 시인의 시세계에 찬사와 경의를 보낸다. 심사위원|강우식, 문효치, 민용태, 박제천(글)
수상소감/생의 또 다른 전환점/한광구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를 안고 나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포복하듯 흘러왔습니다. 이제는 물살도 제법 깊어지고 물소리도 깊어진 듯합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한줄기 빛살은 놓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그 빛은 늘 가슴을 비쳐왔지만 미처 알지 못했죠. 대학 시절 범범하고 가난했던 나에게 그 빛의 존재를 일깨워 주신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박목월 선생입니다. 그분은 내게 그 빛의 존재를 알게 해주시고 내 가슴에 출렁이던 욕망을 언어로 일깨워 내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분 말씀대로 우수한 놈은 아닙니다. 그냥 잘된 놈입니다. 그냥 잘된 놈이 되기 위해 내게 주어진 길을 따라 열심히 살아왔고 가슴에 일렁이는 것들을 빛으로 비춰 시를 써 왔을 뿐입니다. 강의실 밖에서는 그분은 내게 시를 말씀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그분의 투명하고 그윽한 눈길을 느끼며 가슴에 시를 품고 살다가 그분에 의해 시인이 되었고, 이후도 그렇게 내 삶을 살아오고 그렇게 시를 써왔을 뿐입니다. 우리 문단에 많은 문학상이 있고 주변에 시인들이 상을 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은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처럼 잘된 놈이 되기 위해 시를 써 왔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내게 상이 주어집니다. 고맙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는 내 시에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는 살아온 내 삶의 됨됨이에 한줄기 위로를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내게 상을 주는 이 『문학과 창작』은 내 시를 산문으로 풀어쓴 나의 소설인 『물의 눈』이 연재 된 인연이 있어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앞으로 『문학과 창작』으로 모아지는 문학인들의 열성에 부끄럼이 없도록 겸허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경山經 외 9편
한광구
산에 와 보니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와서 박히는 것임을 알았네. 내가 와서 산속에 박히니 풀도 나무도 저마다 와서 파랗게 자리잡고 물도 와서 모여서 흐르네. 하늘도 이렇게 와서 산속에 뿌리를 박고 산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네. 울창한 수풀들이 푸른 잎으로 자라 검붉은 몸뚱이로 잎새들을 바꾸며 땅속에 뿌리를 박고 하늘의 말씀을 읽고 땀처럼 눈물처럼 흘리는 물을 모아 산 아랫마을로 보내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네.
자월도
우리 동네 요한씨는 평생을 바다 위로 떠다니면서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우리나라 서해에 뜬 한 섬의 봉오리 위에 걸린 붉은 달에 반하여 그 섬에 내려 하느님의 공소 앞에 터를 잡고 산 봉오리 위에 붉은 달 뜨는 날이면 출렁이는 감정을 무슨 낱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서 바다로 나아가 파도에 어리는 붉은 달빛에게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긴 낚시 드리우고 한없는 그리움을 풀어놓고 밤새 입질하는 놀레미, 우럭, 광어, 볼락 등을 건져 올리며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는데요, 오늘도 국사봉 산허리에 밤꽃이 바다안개처럼 피어올라서 수풀들이 짙게 뿜어대는 풋내를 주체할 수 없어서 그래, 그래, 파도가 물어뜯는 등대섬에 나와 그리움을 밝히고, 고향동네 함께 자라던 친구의 예쁜 여동생 얼굴을 떠올리며 검푸른 바다 밑에서 큼직한 광어와 우럭을 건지면서 기분 좋게 휘파람 노래를 불러대며 돌아오는 이 섬 자월도 촌장이 되었다오.
못자국 일기 ―최상철 화백에게
돌아보니 산다는 게 생나무에 못 자국 찍는 것이구나. 누가 삶을 그릴 수 있으랴 그저 하루 또 하루 생으로 점, 점을 찍는 일이 되풀이 되다 보니 못 자국만 가득한 생나무인 것을 누가 그 형상을 말하랴 다만 하늘 아래 걸린 생나무 결에 깊고 엷게 찍힌 못 자국들 가득 안고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소리의 흔적
소리들이 무슨 형상을 남기랴. 오늘도 바람이 불고 물상들 흔들리고 파도처럼 몰려왔다 몰려가는 이편 아니면 저편으로 쏠리는 살아가는 목소리들 바람에 불려 파도에 쓸려 우리들은 다만 몸 비비는 자갈돌인 걸 오늘 밤도 자갈돌 구르는 소리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서 몰려왔다 몰려가는 소리의 자국들이 울음처럼 웃음처럼 얼룩지는 생애生涯인 걸.
깊은 물
온 산이 물로 젖으며 흔들립니다. 바위가 나무에게 몸을 열어 뿌리를 내리게 하고 파란 입술을 엽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하늘을 보여줍니다. 바위 속에 나무와 풀이 모여 열매를 맺습니다. 맑은 만큼 투명하게 하늘과 땅이 깊이 젖어 있습니다.
아버지란 이름
이보시게, 모래알같이 수많은 인연 중에 자네가 한 남자로 태어난 건 하늘의 축복이지, 자네가 부모를 만나는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그동안 하늘을 섬기며 건강하게 살아왔고 또 유정有情한 인연으로 한 여자를 만나서 세상의 법대로 한 가정을 이루고 또한 인연으로 아이를 얻고 아버지란 이름을 얻었네. 이제부터는 사람의 법으로 살기보다 하늘의 법으로 살아야 하네. 생명은 하늘에서 내리시니 하늘의 숨결 받은 몸을 서로 나누고 서로 섬기는 것이 사랑의 근본이지만 핏줄로 맺어진 육정肉情을 넘어 하늘이 내려주신 바위를 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핏줄의 인연이 하늘로 오르고 땅으로 뿌리내려 세상을 구한다네. 이보시게, 자네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다시 태어난다네.
물소리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하늘을 안고 흥얼댑니다. 산이 들어와 속삭입니다. 바위가 나무에게 몸을 열고 뿌리를 안고 툭툭 초록 입술로 땅의 화두話頭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바늘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몸은 모두 내어주고 한줄기 힘줄만을 말리어 가늘고 단단하게 꼬고 또 꼬고 벼루고 또 벼루어 휘어지지 않는 신념으로 꼿꼿이 일어서 정수리에 청정하게 구멍을 뚫어 하늘과 통하는 길을 여는 나도 바늘이 되어야겠네.
향유香油
그녀의 사랑 뜨겁게 타올라 하늘나라에서 별로 세공된 유리병에 담겼다가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네. 머리칼을 적시고 얼굴을 덮었네. 몸 안으로 깊어지는 눈빛에 황홀하게 젖어들었네. 오감五感을 넘는 황홀한 죽음이었네. 죽음의 깊은 골짜기까지 가라앉은 향유는 죽음도 꽃잎처럼 피워내어 햇살처럼 별빛처럼 반짝이며 열매 맺는 경전經典이 되었네.
하늘처녀
어두운 하늘에서 별들이 내려와 속삭였네. 산 속 깊은 곳에 엎드린 하얀 바위 그 부드럽고 깨끗한 몸으로 내려와 입김처럼 속살거리고 키스처럼 젖어들었네. 산마을 사람들은 꿈꾸듯 들었네. 반짝이는 하늘의 말씀이 수풀 흔들며 땅으로 내려와 번져가는 소리 풋풋하게 감겨오는 푸른 힘줄에 반짝이며 깨어나 새 하늘을 여는 노래소리를.
한광구 연보
*1944년 음력 6월 19일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 능국리 67번지에서 부친 한용국(韓用國)씨와 모친 윤석임(尹錫姙)씨 사이에서 5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남. 유년시절 고향의 산골에서 근검절약으로 자수성가한 조부(韓基陽)의 엄한 유가적 가훈 아래 초등학교 입학 전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東蒙選習)을 배웠고 집에서 2km 떨어진 일죽초등학교에 입학, 졸업하다. 6·25 이후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비교적 부유하게 지내면서 초등학교 시절 걸어서 등교하던 그 들판과 먼지를 일으키던 신작로 길에서 유년시절의 꿈을 키웠다. *1957년 서울의 중동중학교에 입학하다. 당시 조부와 부친은 삼촌과 형제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 중구 황학동에 집을 마련하고 조모(李載三) 슬하에서 학교에 다니게 했다. 황학동은 청계천 판자촌 옆이라 주거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당시 동대문까지 전차가 다니고 뚝섬까지 전동차가 다니던 시절이지만 고향에서처럼 냄새나는 청계천을 지나 종로를 걸어서 수송동에 있는 학교까지 다녀야 했다. *1960년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다. 이 무렵 부친은 황학동 141번지에 새 집을 짓다. 부친은 고향의 농사로서는 삼촌 둘과 우리 형제들의 학비를 대기에는 경제적으로 몹시 벅찼으므로 서울로 상경하여 상업을 하려 했으나 조부의 반대로 고향에 머물며 농사로만 학비를 대야 함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게 학교를 다녀야 했다. 문예반으로 학보사 편집을 하며 박철규, 홍준수 선생의 지도를 받다. *1963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다. 박기동 유홍종 박동진 등과 함께 『습지대』 동인을 만들다. 박영준, 조병화 선생님을 만나다. *1965년 3학년 시론 강의를 하시던 박목월 선생님을 만나 그분의 열강에 빠져 들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다. ROTC 학훈단에 들다. *1967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학훈단 장교로서 광주 포병학교를 거처 보병 25사단 포대에 배속받았고 전방 GP에서도 근무하다. *1968년 김신조 사건이 발발하자 포대를 따라 작전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전방의 방커 공사 등 각종 훈련에 참여하며, 항공관측장교, 관측장교로서 GP의 총격전, 남하간첩작전, 북파공작원 안내 등을 체험하다. 『전우신문』에 시를 발표하고 목월 선생님께 편지를 드렸더니 엽서로 답장을 받다. *1969년 6월에 제대를 하고 박목월 선생님을 연세대학교에서 뵙다. 당시 박기동 유홍종 이활용 등과 교우했고, 그해 제주도 여행을 하다. *1970년 3월 박목월 선생님의 추천으로 주식회사 유한양행 광고부에 입사하다. 미술 고문 한홍택 선생님(홍익대학교 교수)과 극작가 박만규 씨(서울시립가무단장), 윤병규 씨(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등을 만나다. *1972년 겨울 조부 별세 *!973년 4월 박승희와 결혼하다. 아내 박승희는 당시 가톨릭의대 간호학과를 나와 목포 콜롬반간호대학교(3년제)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1974년 7월 박목월 박남수 김종길 선생님의 선으로 『심상』에 시 「혹」 「0.4」 「가는 길」로 시인으로 데뷔하다. 이활용의 소개로 정공채 시인과 만나다. 계장으로 승진하다. *1975년 전봉건 선생에게 『유한 50년 사사』 집필을 의뢰하다.(박목월, 박남수 선생님의 추천) 그해 12월 권달웅, 권명옥, 권택명, 김용범, 윤석산, 이명수, 이준관, 이진행, 조정권, 조우성, 한기팔 시인들과 <신감각> 동인을 결성하고 『신감각 1집』을 출판하다. 안성에서 만난 임홍재 시인 소개로 육성동인인 임영조, 이인해. 정대구 시인 등과 교우하다. 김유신, 정진규 시인도 이때 만나다. 소설가 박영한 씨와 같이 일하다. *1976년 3월 딸 수림, 여림 출생하다. 전봉건 선생과 『유한 50년사』 발간하고 표창을 받다. *1977년 본인이 편집하던 PR지 『건강의 벗』이 한국능률협회로부터 은상을 수상하다. *1978년 3월 박목월 선생님 영면하시다. *1979년 3월 과장으로 승진하다. 9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입학하다. 지도교수 조병화 선생님. 박동규 교수의 주선으로 첫시집 『이 땅에 비오는 날은』(심상사) 발간하다. 문화방송, 경향신문 주최 한국광고대상 라디오부문 은상, 신문부문 동상을 수상하다. *1980년 8월 아들 주훈 출생하다. *1981년 9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업하다. 논문 『한국현대시에서 6·25전쟁 체험의 수용』 조병화 선생님이 인하대학교 부총장으로 옮기신 관계로 황순원 선생님이 지도교수를 맡아주시었다. 제2시집 『찾아가는 자의 노래』 (한일기획) 발간하다. *1982년 KBS-TV 『고독한 횃불 유일한』 드라마에 자료 제공하다. 유한대학교에 강사로 출강을 시작하다. 여름 정부의 문인 해외 시찰단의 일원으로 소설가 박경석 평론가 윤병로 시인 정공채씨 등과 인도, 프랑스 파리, 그리스, 리비아 등지를 여행하다. *1983년 차장으로 승진하여 예산, 홍보 및 광고 전반을 기획 관리하다. 조모 별세. *1985년 3월 고뇌끝에 시인의 길을 가기 위하여 15년을 근무해온 유한양행을 퇴사하고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전임강사로 옮기다. 평론가 유시욱교수, 송복주 전 총장, 이듬해에 소설가 김국태 교수와 함께 근무하다, *1987년 3월 제3시집 『상처를 위하여』(고려원)를 상재하다. *1988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다 *1989년 9월 제4시집 『꿈꾸는 물』(오상사)을 출간하다. *1990년 3월 학과장 보직을 맡다. *1991년 2월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다. 논문 『박목월시에 나타난 시간과 공간 연구』 지도교수 이승훈 교수, 심사위원장 신동욱 교수. 이 무렵부터 심상치 않던 학생운동 움직임이 우리 대학까지 번져 학원자주화 투쟁 시위로 이어지게 되어 혹독한 고통을 겪게 되다. *1992년 4월 이기철, 권달웅, 이명수, 손종호, 강창민 시인과 함께 『수평』 동인을 결성, 동인지를 내다. *1993년 6월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하여 『목월시의 시간과 공간』을 시와 시학 학술총서로 발간하다. 8월 오랜 지우인 시인 이동진 대사의 초청으로 소설가 유홍종, 시인 김유신과 함께 벨지움, 네델란드, 서독, 그리고 당시 막 뚫리기 시작한 베르린 장벽을 넘어 동독과 폴란드, 체코, 스위스, 이태리, 남프랑스 등지를 그의 승용차로 2주간 여행하고 돌아오다. 9월, 제5시집 『서울 처용』(나남출판) 출간. 이후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다. 부친 별세. *1994년 2월 세례 받다.(이찬우 신부) *1995년 3월 제6시집 『깊고 푸른 중심』(책만드는집) 출간. *1996년 『문학과 창작』에 소설 『물의 눈』 연재 시작하다. 김시태 교수와 함께 한양대학교에서 장애인들에게 주 1회 6개월간 시문학 강좌로 봉사하다. *1998년 장편소설 『물의 눈』(모아드림) 출간하다. 제자이고 모아드림 출판사를 운영하는 손정순 시인의 도움으로 출판문화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게 되다. 『시 이론과 실제』를 시와 시학에서 출판하다. *2001년 제6시집 『산으로 가는 문』(모아드림) 출간하다. *2000년 문학부장. 『가톨릭다이제스트』 편집관여. 딸 여림 프랑스로 떠남 *2002년 영상문예대학원 원장 보임. 심상시인회 회원 주축으로 『시로 여는 세상』 창간 편집위원 *2003년 이동진 유홍종 김형영 김평일 등과 요셉의원을 돕는 『착한 이웃』 창간. 편집위원 *2004년 2월 딸 여림의 첫 서원에 큰딸 수림과 아내와 더불어 프랑스 파리, 느베르, 르루드, 이태리 로마 등지로 2주간 성지 순례를 하다. 7월 제7시집 『산마을』(모아드림) 출간하다. 8월에는 손정순 시인의 주최로 심상시인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출판기념회를 세종호텔에서 갖다. 현대시 10월호에 회갑기념 특집(유성호 교수 글) *2005년 5월 큰딸 수림 결혼하다. 사위 이성재는 홍콩에서 근무중이었음(일본 올림프스전자사) 가톨릭문우회 부회장. 시인협회 상임위원 *2006년 1월 아들 주훈 만도기계 입사. 3월 외손자(이종규) 태어남. 5월 여림 수녀 성북동공동체로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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