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5:11-32 아버지 마음을 아십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녹녹치 않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힘든 세상입니다. 아이들도 무거워진 책가방에 학원순례로 힘이 들고 청년들은 취업으로 힘이 들고 노인들도 노인일자리로 힘이 듭니다.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이 힘든 것을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힘이 드는 것은 힘든 것은 힘든 것을 몰라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은 일도 힘들지만 일이 끝나고 와도 나와 보지 않는 자식들과 무엇이 심통이 났는지 얼굴도 마주치지 않는 아내 때문에 힘이 듭니다.
어머니들도 육아가 힘들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케어하고 살림이 힘든 가운데 음식을 만들어 차려놓으면 맛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남편과 존중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힘이 듭니다. 우리는 환경의 어려움보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몰라주는 마음이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스트레스를 누구나 심하게 겪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신앙 안에서는 없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믿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몰라주고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탕자의 이야기나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얼마나 알지 못하고 있으며 오해하고 있는가를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본문의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먼저,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재산을 정리해달라고 하여 타국으로 떠나서 그 재산을 창녀와 함께 다 탕진해버립니다. 자식과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의 심정이라는 것을 돌아온 아들을 얼싸 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타국으로 떠나버립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자식이 인생을 헛된 일에 허비하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창녀와 탕진하고 맙니다.
돌아와서도 잃은 자식 찾아 너무 기쁜 아버지의 마음 아프게 자신은 품 군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물론 벼룩도 낯짝이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는 속상한 거죠!
큰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허랑 방탕한 동생을 꾸짖고 대가를 치르게 해도 시원치 않는데 왜 잔치를 하고 계시는 것이지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해 준적도 없는데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큰아들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무정하다고 오해하거나 우리의 삶에 희망이 없다고 자포자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 있는데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를 향하신 하늘아버지 마음은 풍족히 먹이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마찬가지 듯이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풍족히 먹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아버지 집에는 품 군조차 풍족합니다. 하나님은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의 순서를 보시면 모든 환경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창49:25]에 보면 하나님께 도우고 복을 주시되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아브라함으로 부터 요셉과 그 자손들에게 까지 흐르게 하십니다.
출애굽 때에 보면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면서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주십니다.
주님은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아버지 앞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십시다.
본문에 나타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서로를 포용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분쟁과 대립의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갈등과 대립이 일어납니다. 가정도 교회도 대립의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특별히 내부 균열을 우려됩니다. 분열과 갈등은 서로의 파멸을 가져올 뿐입니다.
[갈5:15]은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고구려를 통치했던 연개소문은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형제가 고기와 물같이 사이좋게 지내고 권력을 다투지 말라”고 유언했지만 큰 아들 연남생이 권력을 물려받았는데 남건 남산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면서 고구려는 멸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받아 주기를 바라십니다. 본문에 보면 형의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형의 이야기는 정당합니다. 그러나 함께 포용하면 살아가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포용하면 살아갈 수 있을 까요?
우리는 보통 나와 너를 비교합니다. 그리고 속상해 합니다. 그러나 [마18:]일만 달란트 빚진 자 이야기처럼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따라 상대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하늘 아버지의 영광의 상속자의 길에 서서 다듬어져 가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둘째아들에게 손에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그리고 큰아들에게 는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너희는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둘째아들처럼 품 군으로 생각하거나 큰아들처럼 아버지 아래 일하는 아들로만 생각하는데 [롬8:17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상속자의 길에 서서 다듬어져 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상속자의 길에 서있음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는 것을 이해하고 이곳에서 하나님의 경영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여야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듬으시는 것은 각자가 다른 여러 상황과 환경을 통하여 훈련됩니다. 그 길에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고 한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영광의 길에 세우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늘 영광을 사모하며 아버지 마음안에 깊어져 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