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대
객석에서 보아 왼쪽 뒷편에 쇠창살로 된 격리수용실이 있고 오른쪽 구석에 조제실과 밖으로 통하
는 문이 있다. 뭐대 전면에 긴 벤취가 두개 있고, 그 옆에 면회실을 연상케 하는 간단한 소품과
소파가 놓여 있다.
배경막에는 해와 달을 상징한 동화(童畵)같은 그림이 보이며, 무대의 전채적인 분위기는 칙칙한
것이면 좋겠다.
幕이 오르면, 붉은 조명, 꼬마선생이 창살을 붙잡고 절규한다.
꼬마 선생 : 엄마 싸인 쎄타 이꼬르 토싸인 세타 플러스 탄젠트 쎄타, 탄젠트 쎄타 이꼬
르 코사인 쎄타 플러스 ……. 할렐루야, 할렐루야, (다른 목소리로)
「공부해야 돼, 다른 잡념 갖지 말어. 난 쓰레기 청소부가 아니야. 공부
해. 공부하라고, 졸리면 무릎팍을 삔으로 푹 질러. 널 위해 고생하는 이 부모를 생각해
봐. 알겠니? 알겠어?」(뒤로 물러서며) 그럼 그럼. 엄마. 난 잘 알아.
엄마 공부할께. 싸인 쎄타 이꼬르 코사인 쎄타 플러스 탄젠트 쎄타.
(반복한다.) 엄마 나 공부 잘 할께. 창살 좀 풀어줘. 여기서 좀 꺼내 줘. 엄마.
엄마. (맥이 풀리는 듯 창살에 기댄다. 책이 떨어진다.)
그때 객석에서 악! 하는 비명소리와 동시에 황급히 무대 위로 뛰쳐 나오는 간호원Ⅰ. 그 를 공처
가가 손에 밧줄을 들고 타잔처럼 야호야호 소리지르며 뒤 쫓아 온다. 이윽고 피할 곳이 없어진
간호원Ⅰ.
간 호 원 : 사람 살려. 거기 누구 없오요? ……공처가씨 왜 이래요?
(올가미를 던지며) 소리 질러도 소용 없어.
간 호 원 : ( 달래기 위해) 사랑해요 공처가씨.
공 처 가 : 그래?
간 호 원 : 그럼요.
공 처 가 : 히히히. 그럼 나랑 결혼할래?
간 호 원 : 못해요.
공 처 가 : 못해?(화가 나서 간오원의 목에 올가미를 강제로 씌운다)
그때 의사, 하품을 하며 등장하다가 공처가를 본다.
의 사 :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간 호 원 : 선생님. 어서 이걸 풀어 주세요. 빨리요.
의 사 : 아니 또 또, 이 양반이 ( 공처가에게 다가선다.)
공 처 가 : (의사를 밀치며) 저리 비켜요.
의 사 : 공처가씨.
공 처 가 : 왜 이러세요? 내가 내 것 가지고 놀고 있는데.(간호원을 보고)
어이 치타야 가자.
- 암 전 -
잠시 후 용명되면
꽈배기는 무대 앞에서 새끼줄을 꼰다. 이 자의 하루 일과는 새끼줄을 꼬았다가 풀르는게 고작
이다.
독방에 갇혀 있는 꼬마선생은 공부를 한다.
벤취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을 자고 있는 굼벵이,
꼽새 할멈, 창밖을 내다 본다. 환쟁이 영감, 화판에 그림을 그린다. 물리학 교수는 빠른 걸음으
로 서성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꼽 새 : 봄이 왔군. 봄이 왔어요.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했어요.
환장이 영감. 저 꽃 좀 보세요.
환쟁이 영감 : ( 캔버스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지금은 가을이예요.
꼽 새 : 벌써 가을이에요? 언제 봄이 갔지요?
환쟁이 영감 : 그랬나요? 그런데 왜 내 자식들은 봄에 면회를 안 왔을까요?
내가 보기 싫어 졌을까요? 봄이 오면 개나리 진달래를 꺾어 찾아 오마고 했었는데.
꽈 배기 : 면회만 오면 겉옷부터 속옷까지 싸악 뺏어 버리는데 뭐가 좋다고 찾아 오겠소. 자식
기다리기 전에 그 성질빼기부터 먼첨 고치시오.
꼽 새 : 꽈배기 양반. 그 입만 열면 비비 꼬는 그 입버릇부터 먼저 고치세요.
꽈 배 기 : 꼬는 성질이사 어디 가겠소?
꼽 새 : 새끼줄은 왼종일 꼬았다가 다시 풀을 줄 알면서 어째 그 입버릇은
꼴 줄만 알고 풀을 줄은 모르시우.
꽈 배 기 : 그게 다 쥐새끼처럼 생긴 할망구 때문에 생긴 버릇이외다.
환쟁이 영감 : 맞았어. 여기다가 쥐새끼를 그리는 거야.
꼽 새 : 아니 뭐가 어드래요? 이젠 환쟁이 영감까지…… 옳아, 그래요.
보아하니 이 금시계 차고 있는 것이 배아픈 모양인데……. 흥, 그러는 게 아녜요.
(금시계를 자랑스럽게 들여다 본다.)
공 처 가 : (벤취에서 벌떡 일어서며) 제발 그놈의 금시계 좀 쓰레기통에 콱 처박아 버리슈.
꼽 새 : 흥 그럼 쓰레기통을 뒤져 줏어 가려고?
공 처 가 : 할망구가 지금 소녀요 어린애요. 꼽새에 할망구에다, 틀니에, 다 찌그러진 팔목에다
휘황찬란한 금시계를 찬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소 ? (외면하며 혼잣말처럼)
모든 것은 어울릴 자리에 어울리게 있어야 되는 거외다.
꼽 새 : 아이구. 그렇게 똑똑한 공처가 양반은 어째서 이 정신병원에 들어왔수.
공 처 가 : 난 오히려 이곳이 편합디다. 이런저런 꼴 안 보니 이 얼마나 태평하오. 할망구만없
다면 더 더욱 좋을 텐데.
꼽 새 : ( 계속 얼쩡거리던 교수에게) 교수양반! 가만히 좀 있으세요.
정신이 산란해 죽겠어요.
교 수 : 아! 그래. 여러분, 드디어 첫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꼽 새 : 떠오르긴 뭐가 떠올랐단 말이유?
교 수 : 과학가 문학을 이을 과학詩의 첫 구절이 탄생했단 말입니다.
(큰소리로) 찬미하라. 이 과학시의 태동을.
굼 벵 이 : (잠에서 깬다.) 밥 먹을 시간이유?
교 수 : 아, 아 그대는 그냥 잠을 자시오.
굼 벵 이 : (다시 잔다)
환쟁이 영감 : (붓을 놓고 교수를 쳐다본다)
교 수 : 에치 투 오가 떨어지네. 이분지 일 지티 자승으로, 어떻습니까?
꼽 새 : 에이구 추워라니 그게 무슨 말이유?
교 수 : H₂O요? 물이라는 뜻입니다. H₂O가 떨어지네. 이분지 일 gt²으로,
하하하 드디어 해냈어. 난 드디어 해냈다고. (퇴장)
꼽 새 :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공처가 양반. 지금 몇 시인지 물어 보시겠수?
공 처 가 : 흥, 시간도 못 보는 주제에 금시계 차고 뭘 하겠다고.
그때 간호원 Ⅰ과 가발처녀 등장.
가발처녀는 립스틱을 입술 언저리에만 발랐다.
가발 처녀 : (간호원Ⅰ을 성가시게 쫓아다니며) 이리 와예. 내 예쁘게 빗어 준다. 안카나.
간 호 원 : 가발 아가씨, 전 빗지 않아도 돼요. 몇 번씩 말 해야 알아 듣겠어요.
가발 처녀 : 이쁘게 빗어 준다카는데 왜 비트능교.
간 호 원 : 싫다는데 왜 이래요. 아가씨도 자유를 존중하죠? 나에게도 자유가 있어요.
더 이상 괴롭히면 보조 아저씨를 부를 거예요. 알겠어요?
간호원Ⅰ, 퇴장한다.
가발처녀, 잠시 풀이 죽어 있다가 만만해 보이는 발발이에게로 가 머리를 빗겨준다.
발 발 이 : 아으-, 아으-, 아으-
가발 처녀 : 옳지 옳지, (머리를 박박 빗기며) 우리 아기 잠잘 적에 꼬꼬 새도 울
지 말고 멍멍개도 짓지 마라.
발 발 이 : 아으-, 아으-, 아으-,
그때 종소리와 함께 의사와 간호원Ⅱ 등장.
의 사 : 굿 모닝
꼽 새 : 굶었냐? 그래 내래 굶었수다.
꼬마 선생 : 노, 굿 에프터 눈
의 사 : 오 케이, 굿 에프터 눈
꼬마 선생 : 쌩큐 써.
의 사 : 하하, 오늘은 우리 꼬마선생께서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이군. 간호원
간 호 원Ⅱ : 예
의 사 : 오늘 점심은 꼬마선생도 나와서 하도록 하세요.
간 호 원Ⅱ : 알겠습니다.(꼬마 선생을 독방에서 나오게하여 벤취에 앉힌다.)
꼬마 선생 : 쌩큐 베리 머취.
꼽 새 : 오 예. (팔뚝에 있는 시계를 자랑한다.)
의 사 : (환쟁이 영감에게)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리셨나요?
환쟁이 영감 : 쥐를 노려 보는 구렝이를 그렸습지요.
의 사 : 거기서 쥐는 누구였지요?
환 쟁 이 : 꼽새 할멈
꼽 새 : 아니 저 영감탱이가
의 사 : 그럼 구렝이는요?
환쟁이 영감 : 그야 물론 의사 선생님입죠.
일 동 : (웃음)
의 사 : 이거 너무 하십니다. 주사 놓은 지 일주일이 넘어쓴데 아직까지도 날 원망하십니까?
공 처 가 : 의사 선생님. 저……부탁이 있습니다.
의 사 : 뭔데요?
공 처 가 : 저 꼽새 할망구의 금시계 좀 뺏아 주세요.
의 사 : 왜지요?
공 처 가 : 못 봐 주겠어요.
의 사 : 하하하 공처가씨. 보기 싫은 것도 봐 줄 수 있어야 된답니다.
하하하하-
꽈 배 기 : 나도 내친김에 부탁 하나 합시다. 그 웃음소리 좀 고쳐주세요.
하하하하-, 이게 뭡니까. 꼭 내시같이. 호호호호 이렇게 웃어야죠.
일 동 : (박수)
의 사 : 알았습니다. 고치도록 하지요. (교수쪽으로 시선을 돌려) 교수님은
어떠셨나요?
교 수 : 예. 전 드디어 과학시의 첫 구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의 사 : 뭔데요?
꼽 새 : 에이구 추워가 떨려오네. 이쁜이 가마를 타고.
교 수 : 저 저 망할 놈의 꼽새 할멈
의 사 : 하하하하, (꽈배기에게) 죄송합니다. 가발처녀께선 여전히 빗질에만 전념하셨을 테고.
가발쳐녀 이리 좀 와 보세요.
가발 처녀 : ( 쑥스러운 듯 나선다)
의 사 : 다른 사람보다 두껍게 칠했다고 생각지 않나요?
가발 처녀 : 그랬어예.
의 사 : 얇게 칠하지 그래요.
가발 처녀 : 우리 아긴 그걸 싫어해예.두꺼운 게 좋대예.
의 사 : 그래요? 굼벵이씨는 푹 주무셨겠죠?
굼 벵 이 : 예,히히히.
의 사 : 꼬마선생은 공부 많이 했나요?
꼬마 선생 : ................
의 사 : 또 그전처럼 로그 지수 미분 적분이 돈 세는데에 어떤 도움을 주고, 구개
음화 자음동화가 편지를 쓰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하면서 짜증내진
않았어요?
꼬마 선생 : 선생님,대학생은 왜 성직자처럼 대우받아야 하고 재수생은 왜 살인 미수
자들처 럼 외면당해야 하나요?
의 사 : 주관적인 생각이겠지요.
꼬마 선생 : (단호하게,허나 나직하게) 난 유채꽃 노랗게 물든 유채 들판을 거닐고 싶어요. 이슬
맺힌 초원을 지나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그런 곳에 살고 싶어요.그런데 왜 그러면 안
되죠?
의 사 : 하하하 차차 알게 되겠지요. (모두에게 시선을 주며) 얘기를 들어 보니
다들 자기 취미를 살려 오전 생활을 보냈군요.이제부터 줄을 서서 약을
배급받고,배급받을 사람은 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을 버려서도
안 되고 남에게 줘서도 안 되겠습니다. 굼벵이씨는 다른 사람이 약을
주더라도 절대로 먹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굼 벵 이 : 예, 히히히
의 사 : 그리고 어젯밤에 또 불미스런 사건이 있었는데 앞으로 또 다시
간호원을 괴롭히는 사람에게는 주사를 놓던가 아무튼 엄한 벌을 내리겠습니다.
꼽 새 : 오우-, 그런 말투는 아름답지 못해요.이렇게 하세요. (간드러진 목소리로)
엄한 벌을 내리겠어요 ~옹.
일 동 : (웃음)
의 사 : 흠-흠, 약 배급 실시
경쾌한 음향
환자들 조제실을 향하여 줄을 선다.맨 앞에 공처가가 서 있는데 뒤늦게
잠이 깬 굼벵이가 맨 앞으로 온다.공처가와 굼벵이,앞을 놓고 다투다가
밀리는 공처가.
굼벵이가 약을 받고 식판을 탄 다음
벤취에 가 먹기 시작한다.
공처가,간호원 1에게 게걸음으로 다가가 꽃을 건넨다.
꽃을 받아 떨어뜨리는 간호원 1.
공처가.화난 채 약과 식판을 배급받아 굼벵이에게 약을 주자 얼른 삼킨다.
각자 식사를 한다.
제각기 다른 모습.반찬만 먹는 환자,밥알을 세어먹는 환자.
경쾌한 음악 사라지면
의 사 : 꼽새 할머니는 왜 식사를 안하세요?
꼽 새 : 속이 거북해요
의 사 : 그래요? 그러시다면.
간 호원 1 : 아닙니다.저 할머니는 약을 안 먹으려고 연극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안 계시면
요핑계 조핑계로 약을 복용치 않으려고 해요.
의 사 : 할머니,그럼 안돼요.어서 식사를 하시고 약을 드세요.
꼽 새 : 속이 거북해요.전 거짓말 할 줄 몰라요.
의 사 : 그럼 약이라도 드세요.
꼽 새 : 아이고 배야. (웅크린다)
의 사 : 간호원,강제로라도 먹이도록 해요.
간호원 1,2, 꼽새 할멈에게 약을 먹이려고 하나 발버둥 치는 꼽새 할멈.의사가 꼽새 할멈을 제지
시키려 팔을 잡는다.
꼽 새 :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이 무슨 추태예요. 여자 몸에 남정네가 손을 대다
니.불결해요.어서 놓으세요.
의 사 : 그러니까 약은 꼭 스스로 드셔야 합니다.
간호원 1,2,의사가 약을 먹이려고 하는 사이 공처가가 꼽새의 금시계를
훔친다.
의 사 : 조사실로 끌고 갓.
간호원 1,2 : (꼽새의 양팔을 잡고 나가려 한다)
꼽 새 : (발버둥치며) 이거 놓으세요.스물 아홉에 남편과 사별하고도 지금 까지
정조를 지킨 몸이예요. 놔요. 어서 놔요. 불결해요.
꼽새와 간호원 1,2 퇴장.
아우성 소리에 점점 창백해지는 꼬마선생.
이윽고 식판을 던져 버린다.
이어 닥치는대로 창에 던진다.
쨍그랑 소리.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의사,꼬마선생을 제지한다.
꼬마 선생 : 다들 저리 가. 날 괴롭히지마. 다 가.꺼져.
의 사 : 간호원.간호원.
간 호 원 :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의 사 : 진정제를 준비해요,어서.
간 호 원2 : (의사에게 주사기를 준다)
의 사 : (주사를 놓는다)
꼬마 선생 : (곧 진정이 된다)
의 사 : 알코올, 머어큐로크롬, 붕대.
의사,난리 중에 다친 꼬마의 손에 붕대를 감아준다.
그 때 면회하러 온 꼬마선생의 어머니가 기웃거리다 꼬마 선생의 모습을 보고는 두어 걸음 물러
선다.의사 당황한다.
의 사 : 아, 오셨습니가?
어 머 니 : 또 무슨 일이죠?
의 사 : 네, 저..... 약간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어 머 니 : (고개를 흔들며)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지, 이건 원 날이 갈수록 병만 더 악화시키는
꼴이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의 사 : 정신질환이란 원래가 쉽게 회복되는 것이.....
어 머 니 : 그러니까 의사가 다로 있고,병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까?
의 사 :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정신질환이란..... 원래가 약간 악화되는 듯 하다가도 다시.
어 머 니 :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예요.내가 그 소리를 한 두 번 들었습니까. 새옹치만지 새옹
바진지 한 두 번 써먹었어야 속아드리죠. 저리 비켜요.
(꼬마선생에게) 오오 선영아. 밥은 많이 먹었어?
꼬마 선생 : 응.
어 머 니 : 암,그래야지.그래야 하구말구,아빠하고 같이 오려고 했는데 아빠는 오늘 중역회의가
있대.
꼬마 선생 : (고개를 끄덕이며) 영철이는 잘 있구?
어 머 니 : 그럼.그 녀석도 누나 언제 오냐고..... 보고 싶다고..... (눈물을 닦으며) 손은 도 왜 이
랬어?
꼬마 선생 : 이거? 괜찮아.영철인 요새 공부 잘해?
어 머 니 : 응,그럼.널 닮아 아주 잘 하지.
꼬마 선생 : 그래? (갑자기 활기를 띠며) 엄마 나도 공부 많이했어. 정말이야. (발발
이에게) 그치?
발 발 이 : 으-
꼬마 선생 : 그치?
발 발 이 : 으-으-.
꼬마 선생 : 그렇지? 정말이지?
발 발 이 : 으-으-으-.
꼬마 선생 : 어젯밤에도 두시간밖에 안 잤어.이것 볼래? (격리 수용실에서 책을 가져
온다) 여기서부터 이만큼이나 했어. (책을 읽는다) 호호호, 잘 하지?
영어 공부도 했어. (영어를 외운다)
어 머 니 : 그래 그래.공부를 많이 했구나.하지만 너무 심하게 하지 마.
꼬마 선생 : 왜? 엄만 내가 공부하는 걸 보면 제일 좋아했잖아.영철이처럼 열심히 하라고.그래서
일류대 들어가는 게 엄마 소원이라고. 그러기 위해선 화장실도 잠깐 다녀오고 머리
도 자주 감지 말라고. 난 코피를 자주 흘렸지. 하지만 난 겁나지 않았어.정말이야.코
피가 나는 건 아주 자랑스러웠거든.엄마,공부를 많이 하니까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은
모두 버러지처럼 보여. 엄마, 오늘도 나 공부할거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엄마 기쁘
지? 나 잘하는 거지?
어 머 니 : 그래 그래.하지만 잠을 많이 자야 돼.선영인 공부보다 잠이 더 중요한거야.
꼬마 선생 : 아냐 아냐.엄마가 몰라서 그래.공부를 많이 해야지.엄마가 또 다시 그렇게 화 내는 거
싫어.엄마를 기쁘게 해야 착한 딸이 되는 거야. 엄마, 어서 집에 가. 난 공부해야 돼.
엄마가 있으면 공부가 안 돼.
(독방으로 가 철창문을 닫고 책을 펼쳐본다)
어 머 니 : (꼬마선생에게 다가가) 선영아 선영아.넌 잠을 많이 자야 돼.이젠 공부하지 말어.부탁
이야.다음 일요일에 또 올께.그때는 아빠하고 같이 올께. 이젠 아빠도 화내시지 않아.
이젠 너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고. 넌 이제 몸만 튼튼히 하면 돼. 알겠니? 알
겠어? (철창문에서 몸을 떼며 서서히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실컷 먹고 잠
자라는데 왜 그걸 못하니, 선영아.선영아.
한 단계씩 조명이 어두워지다가
어머니 퇴장하고 나면
잠시 뒤 용명된다.
다들 조용,
침묵을 깨고
굼 벵 이 : 난 잠이나 자야겠구먼. (벌렁 눕는다)
그 때 꼽새할멈,대단히 화난 모습으로 씩씩거리며 등장.
꼽 새 : 누가 내 금시계 훔쳐갔어? 누구야? 말해. (모두를 훑어보며) 내 놔. 내놓으란 말야.
(꽈배기한테 가서) 흥, 내놓으시지.
꽈 배 기 : 잃어버렸소?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꼽 새 : 시치미 떼지마.어서.
꽈 배 기 : 다른 데 가서 알아보슈.
꼽 새 : (모두에게) 누구야? 누구냐고? 옳지.
(발발이에게) 아으 아으? 아으 이? 이?
고개를 끄덕이는 발발이.
안다는 시늉.
3한명,한명 돌아가면서 마임으로 지목하다가 공처가한테는 절대 아니라고 강조.
그때 낌새를 알아차린 꼽새 할멈이 공처가의 발목에서 금시계를 찾아낸다.
꼽 새 : (분에 떨며) 네 이놈. 이게 어떤 시계라고 네가 훔쳐?
(멱살을 잡으며) 너 죽고 나 죽고 한 번 해 볼테냐?
공 처 가 : 좋다. 너 죽고 나 살고 한 번 해 보자. 헤헤헤헤--.
꼽 새 : 아니, 이 자식이.
공 처 가 : (깡패 폼으로) 이러지 마슈. 누가 훔쳐 갔다고 그래. 이게 본래 누구
시곈데 그래.
꼽 새 : 아니 뭐야?
공 처 가 : 나 손 씻은 지 오래우다.
꼽 새 : (역시 같은 모습) 그래? 나도 조용히 살고 싶어.
서로 양팔과 한쪽 다리를 흔들며 이마를 맞대고 노려본다.
그때 의사와 간호원 등장.
꼽새, 의사를 보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한다.
꼽 새 : 아이구 의사 선생. 아무리 대낮에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나요. 약을
먹느니 안 먹느니 실랑이를 벌일 때 이눔이 내 금시계를 훔쳐 가 놓고선 아니라고
딱 잡아떼지 뭐예요.
의 사 : 사실입니까?
공 처 가 : 망령떠는 거예요.
꼽 새 : 아니 지 발목에 차 놓고서 아니래.
공 처 가 : (의사에게) 내가 내 것을 찾아간 것이 어떻게 훔쳐간 것입니까요, 선생님.
꼽 새 : 아이고 기가 막혀서. 이놈아 이것이 어째서 니것이냐?
공 처 가 : 누구보고 이놈 저놈 하는거야?
꼽 새 : 뭐야?
의 사 : 그만들 둬요.(생각에 잠긴다.잠시 후 좌중을 살피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공처
가씨가 훔친 것이라고 봅니까? 꽈배기씨부터 말씀하시지요.
꽈 배 기 : 글쎄요. (생각에 잠기다가) 훔친 것입니다.
꼽 새 : 아유 꽈배기양반, 사랑해요.
의 사 : 그럼 환쟁이 영감은요?
환 쟁 이 : 제 생각엔..... 모르겠어요.
의 사 : 가발 처녀는?
가발 처녀 : 전..... 몰라예, 헤헤헤-.
의 사 : 물리학 교수께선?
교 수 : 명백합니다. 훔친 게 아닙니다.
공 처 가 : 맞아요. 그래요.
의 사 : 좋습니다. 의견이 분분하니 가장 합벅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하겠습니다.
전례에 따라 재판에 회부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검사로는 평소 정의감이 넘치셨
던 꽈배기씨가 맡아 주시고, 변호사를 하실 분은 이론에 정연하신 물리학 교수님, 그
리고 재판장은 가장 연장자이신 환쟁이 영감님이 맡도록 하십시오. 나머지 여러분은
모두 배심원이 되는 겁니다. 그럼 오늘밤 이 자리에서 환쟁이 영감님 주재 아래 법
정요소를 갖춰 공판하기로 하겠습니다.
암전
용명되면,
객석에서 보아 무대 왼편 1인용 의자에 재판장인 환쟁이 영감이 냄비를 들고 앉아있고 무대 중앙
의 벤취에 검사인 꽈배기와 꼽새할멈,변호사인 물리학 교수와 공처가가 편을 갈라 앉아있다.
오른쪽 벤취에는 의사와 간호원이 다른 환자와 함께 방청석을 메우고 있다.꼬마선생도 의사 옆에
앉아있다. 팡파레가 울려 퍼진다.
검 사 : (뒷짐을 지고 어정쩡한 자세이나 음성은 날카롭다) 이번 사건은 XX년 X월 X일 오후
세시경 원고 꼽새할멈이 약을 먹느니 안 먹느니하면서 간호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적에 피고 공처가가 평소 탐내오던 금시계를 훔친....훔친..... 에, 에 그게 뭐더
라.....
꼽 새 : 파렴치예요.
검 사 : 아, 예 파렴치. 음, 파렴치한 행동인 바,이러한 절도범은 그대로 놔두게 되면 병원 내
의 질서와 에……. 또 제2, 제3의 절도범이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고 그리되면 우
리의 안전과……. 음 안전과.....
꼽 새 : 생명을....에 에,
검 사 : 아이고 참. 일벌백계. 네, 일벌백계 한다는 뜻에서 공처가씨를 석 달간 독방에 가두어
격리 치료할 것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앉으면서) 아이구 힘들어.
꼽 새 : (박수를 치며) 잘 했어요.
일 동 : (미리 준비한 냄비와 솥두껑을 두드리며 환호한다.)
검 사 : (일어나서 V자를 그린 뒤 앉는다)
재 판 장 : 조용히 하십시오. 조용히 하세요. 법정에서 떠드는 것은 문화인의 수치입니다.
발 발 이 : 아으 아으 아으
일 동 : (발발이를 제지하고 문화인처럼 의젓한 자세를 취한다)
재 판 장 : 변호사 말씀하십시오.
변 호 사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검사의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피고 공처가의 진술에 의하면
꼽새 할멈의
꼽 새 : 꼽새 여사예요. 재판장님 고치도록 해주세요.
재 판 장 : (고심하다가) 아, 아무래도 꼽새 할멈이 어울리겠습니다.
일 동 : (소리없는 환호)
변 호 사 : 꼽새 할멈의 금시계는 본래 공처가군의 시계였습니다, 공처가군이 결혼할 때 신부에
게 주었던 것을 이혼할 때 도로 받아 발목에 차고 다니다가 이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꼽새 할멈이 주워 가졌습니다.
일 동 : (어리둥절해 하다가 소란해진다)
재 판 장 : 조용히 하세요.
간 호 원 1 : (일어나서) 조용히 하세요.
일 동 : 우- 우-
간 호 원 2 : 여러분, 여러분들은 조용히 할 수 있죠?
일 동 : 예에, (조용)
재 판 장 : 공처가군에게 묻겠습니다. 변호사의 말대로 금시계가 당신 것인게 분명합니까?
공 처 가 : (씩씩하게) 예, 진짭니다. 마누라가 이혼할 때 안 준다는 걸 내가 팔목을 비틀어 뺏었
다구요. 정말이에요.
재 판 장 : 꼽새 할멈은 금시계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지요?
꼽 새 : 저는 말이에요, 스물 아홉에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도 정조를 지켜왔고요, 내 세 자식
이 판사 검사 군수를 지내고 있어도 그런 티를 전혀 안 냈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거
짓말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 금시계는 말이에요, 내 장남이 즉 판사를
하는 큰 아들이 환갑 때 선물한 거예요. 여러분도 다 아시잖아요?
일 동 : (야릇한 표정)
재 판 장 : 올해 나이가 몇이시죠?
꼽 새 : 예순 일곱이에요.
재 판 장 : 그럼 칠 년 전부터 차셨겠군요.
꼽 새 : 그건 그렇지 않아요. 여자들이란 금은 보석을 아끼는 일면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믿을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관객들을 가리키며) 다 도둑놈들 같잖아
요. 품 속에 넣고 다녔죠. 팔목에 내놓고 차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돼요.
재 판 장 : 그러니까 쓰레기통에서 주은 적은 결코 없다 이거군요.
꼽 새 : 호호호호-. 판사 검사 군수 아들을 둔 여자가 시계를 주워 찼다면 세상이 다 웃겠군
요. 전 아예 쓰레기통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어요.
발 발 이 : (일어나서 아니라는 듯) 아으 아으 아으.
가발 처녀 : 발발이 말이 맞심더. 지가 아가를 업고 복도에 댕길 적에 쓰레기통 뒤지는 걸 여러번
봤어예.
검 사 : 재판장님, 이의가 있습니다. 공처가군이 시계를 버렸다고 하는데 그 동기가 이상합니
다. 왜 버렸죠?
공 처 가 : 그건.....그건.....
변 호 사 : 아내에 대한 집착을 버린 거겠죠.
검 사 : 그런 걸 왜 또 훔쳐요.
변 호 사 : 그건 에...... 또
검 사 : 공처가군이 말해 보세요.
공 처 가 : 훔친 게 아니예요. 그건 원래 내 것이예요. 내가 내것 가지고 이래저래 한 것인데 괜
히 야단이야.
검 사 : 재판장님. 공처가가 꼽새 할멈의 시계를 가져간 것은 명백하고 공처가가 시계를 버렸
다는 것과 꼽새 할멈이 그것을 주웠다는 부분은 명백치 않으니 재판장님은 명백한
부분만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굼벵이씨?
굼 벵 이 : (졸다가) 아, 예.
변 호 사 : 이 사건은 금시계가 본래 누구 것이었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 점을 꼭
밝혀 내야 합니다.
검 사 : 아닙니다.
의 사 :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꽈배기씨 말이 옳은 것 같
습니다. 공처가군이 시계를 버리는 것을 본 사람은 이 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꼽새 할멈이 줍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없습니다. 설령 주은 것이 사실
이라 하더라도 공처가군이 버렸다면 소유를 포기한 것이요, 그것을 주운 꼽새
할멈이 원임자가 됩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공처가군이 꼽새할멈의 시계를 훔
쳐갔거나 가져간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디에 쓰려고 어떻게 가져 갔느
냐 하는 점이 문제의 핵심 같습니다. 이상 참고 발언이었습니다.
재 판 장 : 다음부터는 참고 발언을 할 적에 예의를 갖춰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 동 : (냄비로 의사의 머리를 때리며 환호성)
재 판 장 :그럼 이 사건을 압축하겠습니다. 공처가가 시계를 버린 것과 꼽새 할멈이 주웠다는 부
분은 이 사건에서 제외되겠습니다.
검 사 : 그렇다면 간단합니다. 꼽새 할멈의 팔목에 있던 시계가 공처가군의 발목에서 나왔으
니 이게 훔쳐간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변 호 사 : 아닙니다. 두 가지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벤취 뒤로 가서 바가지와 꼼장어를
꺼낸다. 공처가에게 바가지를 건네며) 공처가군을 이 바가지로 보고 꼽새 할멈을 (바
가지를 건넨며) 이 바가지로 보고 금시계를 꼼장어라고 한다면
굼 벵 이 : (꼼장어라는 말에 번쩍인다)
변 호 사 : 애초에 내 주장은 이 바가지에 있던 꼼장어가 이리로 갔다가 이리로 간 것이었습니
다. 헌데 애통하게도 이제는 이 부분이 사건에서 제외되어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
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무엇이냐? 이 바가지에 있던 꼼장어가 이리로 갔다가 다
시 이리로 원위치 되었습니다. 달라진게 뭐 있습니까?
일 동 : (마임식의 환호)
변 호 사 : 햇볕이 쏟아 지는데 나도 쬐고 너도 쬣기로 뭐가 죄가 된단 말이예요.
또 저 마음씨 고운 간호원의 얼굴을.
간 호 원Ⅰ : (좋아라 한다.)
변 호 사 : 아니 그쪽 말고 이쪽.
간 호 원 : (화를 내며 앉는다)
변 호 사 : 저 간호원의 얼굴을 너도 보고 나도 본들 뭐가 어쩌며 또 간호원이차고있던시계를
변호사도 한 번 차 봤기로 뭐 그리 큰 죄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일 동 : (소리 없는 아우성)
굼 벵 이 : 여기 발언 있어라우.
일 동 : ( 모두 놀란다)
굼 벵 이 : 교수님의 말이 몇 개는 맞고 하나는 틀리는대 그 하나는 뭔고 허면 아 어찌해서
금시계와 꼼장어가 같으냐 이 말이요. 전혀 다르지요 이. 금시계는 먹을 수 없고
꼼장어는 맛있게 먹을 수 있응께 천지 차이지요이.
재 판 장 : 좋습니다. 금시계와 꼼장어는 다른 고로 변호사의 비유는 무고 하겠습니다.
가발 처녀 : 지도 한 말씀 하겠는데예 굼벵이 아저씨 말은 틀려예. 아 꼼당어가 있다캐도 한 번
묵은 셈 치면 그만이고 금시계가 있어봐야 엇다 쓰겠나. 차라리 꼼장어 만도 못하재.
이게 이거고 저게 저긍께 마찬가지 아닙니꺼?
꼬마 선생 : 그래요. 가발처녀 말이 맞아구요. 도대체 금시계가 할머니꺼면 어떻고 아저씨 꺼면
또 어때요. 그리고 그 금시계가 진짜 금시계면 어떻고 쇳덩이면 또 어때요. 이런 걸
따져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참 한심하군요. 긇게도 할 일이 없으세요?
어른들은 왜 다 이렇죠? 우린 이런 거 외에도 할 일이 많잖아요. 하늘을 바라보며,
유채꽃 노랗게 물든 강가를 거닐면서, 하늘이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저 깊은 물은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당신의 파랑새는 뭐라고 당신에게 말하는지, 깨금발 딛고
손짓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무지개빛 꿈속을 거닐면서 파랗고 노랗게 살아가야 하잖아요. 맨날
욕발이 뚜쟁이처럼 「니가 가졌지? 가졌지? 가졌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
흥! 내 친구 영순이가 어땠는지 아세요? 영순이가 그러는데 어른을 만나면 어른이
자기한테 십 만원씩 줬대요. 그래서 영순이는 高1때 퇴학 당했어요. 어른이 내쫓은
거지요. 준 것은 누구고 또 내쫓는 건 누구예요. 그건 다 어른이예요.
어른들이에요. 바로 너희들이란 말이야.(고함을 지르면서)너희들! 니네들!. 알았어 이
날강도같은 작자들아!
의 사 : (조심스럽게) 꼬마 선생.
꼬마 선생 : (그대로 서 있다.)
의 사 : 옳지 옳지, 이리 와 앉아.
꼬마 선생 : ( 체념한 듯 자리에 와 앉으며)
잠시 숙연한 무대.
변 호 사 : 그래요. 꼬마 선생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사실 금시계란 우리에게 있어서 쇳덩어
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팔목에 차고 다니면서 자기가 마치 금시계라도 된양
착각한다면 이거야말로 격리 수용감이죠.
검 사 : 그건 그래요.
꼽 새 : ( 꼬배기의 발을 콱 밟는다.)
검 사 : 우욱
변 호 사 : 보십시오. 오죽하면 검사인 꽈배기씨도 시인 하겠습니까.
검 사 : 하지만 그 이전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금시계가 쇳덩어리라해도 좋고 생선 뼉다
귀라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쇳덩어리라 할지라도 꼽새 할멈에겐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쭈그러진 팔목에 금시계를 차고 나서는 자신의 팔목이 아주 자랑스러
워졌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꼽추나 쪼글쪼글한 얼굴을 잊고 소녀로 돌아갈 수 있었
습니다. 그런 소중한 소유물을 잃어버림으로써 꼽새 할멈이 상심해 있다면 그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변 호 사 : 제 예기는 금시계는 그렇게 소중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니 그 금시계가 없으면 꼽
새 할멈이 금방 죽기라도 한답니까? 죽긴 왜 죽어요. 똑 같잖아요.. 팔목에 찼든 쓰
레기통에 버렸든 강물에 던졌든 무슨 상관이예요. 그 쇳덩어리가 우리 동료들 보다
더 소중하기라도 하단 말입니까. 쇳동어리를 잃어버린 것이 요만하다면 그것을 훔친
죄는 (큰 원을 그리며)이만한 게 될테고 그 덕분에 오히려 우린 가까운 동료를 잃게
됩니다.
검 사 : 그러나 죄는 죕니다. 우린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죄라고 배
웠습니다.
변 호 사 : 허나 물상 시간에는 W=g, 즉 이족에서 저쪽으로 물건을 옮기는 것은 일이라고 배웠
습니다. 공처가는 훔친 것이 아니고 일을 한 것입니다.
검 사 : 그러나
변 호 사 : 그래서
재 판 장 : 아, 아, 아, 아, 이러다간 긑이 없겠습니다. 열기를 좀 식히는 뜻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마음 놓고 그 동안의 긴장을 풀며 실컷 웃으시기 바랍니다.
(관객에게 ) 여러분도 웃어도 좋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환자들.
그 중에 하나가 히익 웃으면
저쪽에서도 하나가 뒤따라 웃고
이러기를 여러 차례. 드디어 폭소가 터진다.
발발이, 전력을 다해 웃다가 점점 울음으로 변한다.
일동, 발발이의 울음을 말린다.
재 판 장 : 심문을 계속하겠습니다.
간 호 원Ⅱ : 참고 발언을 요청합니다.
재 판 장 : 하시지요.
간 호 원Ⅱ : 당돌하게도 제가 이 재판의 흐름을 정리한다면, 공처가씨가 꼽새 할멈의 시계를
훔쳐간 것은 사실인데, 훔친 물건이 별 게 아니며 따라서 훔쳤다는 단어 조차도
써서는 안된다는 공처가씨측 의견과 이유나 목적이야 어찌 됐든 훔쳤다는 사실만을
가지고도 죄가 된다는 꼽새할머니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왔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공처가씨 쪽에서는 쇳조각을 줏은 거 가지고 너무 떠든다는 셈이 되고,
꼽새할머니 쪽에서는 쇳조각이라 하더라도 할머니가 소중히 한 것이니 남의 물건을
탐낸 것이다 하는 주장이 됩니다. 따라서 제가 결론점을 요약한다면 쇳조각이
소중하냐, 동료애가 더 중요하냐 하는 문제로 압축될 수 있겠습니다. 이상 참고
발언이었습다.
재 판 장 : 변호사는 간호원의 제언에 동의합니까?
변 호 사 : 예
재 판 장 : 검사 생각은 어떻습니까?
검 사 : 동의합니다.
재 판 장 : 좋습니다. 그렇다면 사건을 더 압축하겠습니다. 꼽새 할멈이 잃어 버린 것은
지금부터 금시계가 아니라 쇳덩어리 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변 호 사 : 예.
검 사 : 알겠습니다.
재 판 장 : 꼽새 할멈에게 묻겠습니다. 아무 쓸모없는 쇳조각이 그토록 소중 했습니까?
꼽 새 : 헤헤헤, 아니예요.
재 판 장 : 친구집에 놀러 가서 떨어진 못 하나 줏어왔다 해서 그걸 훔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꼽 새 : 헤헤헤. 그걸 어떻게 훔쳤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당연히 그럴 수 없지요.
재 판 장 : 공처가씨는 쇳졲에 불과한 금시계를 왜 훔쳤습니까?
공 처 가 : 저 간호원 주려고요.
재 판 장 : 왜지요?
공 처 가 : 그냥 주고 싶었어요.
재 판 장 : 쇳조각을?
공 처 가 : 예.
재 판 장 : 이 사람 미친 사람이구만.
일 동 : (폭소)
재 판 장 : 여러분. 우린 지금까지 잃어벌니 금시계의 진범을 찾아 밤 늦도록 열변을
토했습니다. 헌데 그 금시계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쇳조각에 불가하다는 것을 이
재판을 통해 알았습니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판결에 앞서 본인은 비감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제언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비웃기 위해 우리
모두 실컷 웁시다.
일동, 울기 시작하는데 관객에게는 그것이 우습게 보인다.
재 판 장 : 자, 다들 조용히 해 주십시오. 꼽새 할멈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꼽 새 : (투덜대며) 맨날 나만 써 먹기예요. (머리를 재판장 눈 앞에 갖다 댄다.)
재 판 장 :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어설픈 허영의 쇳조각에 아름다움을 부여했던
우리의 꼬락서니를 개탄할 뿐입니다. 앞으로 자숙하길 바랍니다.
(꼽새 할멈의 머리를 세 번 친다.)
꼽 새 : 쾅! 쾅! 쾅!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모두 퇴장.
혼자 남은 의사가 무대 중앙으로 나오면 의사에게 한저오딘 톱 라이트.
의 사 : 우리는 오늘도 무옷인가를 소유하며 탑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지식과
권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고대의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높다란 탑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벨탑을 제 아무리 높이 쌓는다 해도 하늘 높이에 비한다면 너무도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하는 짓들이란 다 이와같은 정신병자와
같은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정신병자란 누구입니까? 나는……. 그리고
여러분은 정신병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난 오늘도 환자들에게 투여할 약과 주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일도 모래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의 병은
약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황량한 계절이 찾아든 이 도시의 귀퉁이, 소외된 한
병동에서 그들이 물리적인 치료를 받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혹시 쇳덩어리를 금시계로 알고 팔목과 귀와 목에 너덜너덜하게 달고
다니면서 자신이 마치 금시계라도 된 양 착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요? 빈곤한
영혼을 금시계로 채우려 한 사람은 없는지요? 우리의 슬픈 얘기를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