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회사에 혼자 남아 일하다가 잠깐 TV를 켜보니 우리나라에서 공연했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방영하고 있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도 그렇지만... 스타디움을 개조하여 자금성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무대의 스케일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뿐만 아니라 출연진의 화려함 또한 대단하다. 오페라를 실내가 아닌 야외무대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오래도록 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리라. 그럼 <투란도트>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옮겨보기로 한다.
★ 증오와 사랑이 부딪히면...
투란도트 공주는 티무르 사람(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에게 침략당했던 지난 날의 뼈아픈 기억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자신에게 구혼하는 젊은이들에게 3가지 수수께끼를 낸 다음 그것을 풀지 못하면 인정사정없이 처형해 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티무르의 왕자인 칼라프가 신분을 숨긴채 궁궐에 들어와 당당하게 그녀에게 구혼을 청하는데... 투란도트 공주가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지난 날 티무르 사람들에게 당한 슬픈 역사를 증오에 찬 목소리로 '옛날, 이 궁궐에서"에 실어낸다.
옛날, 이 궁궐에서 (Signore ascolta)
먼 옛날, 궁궐에서 절망적인 소리가 들렸네.
그 소리는 세대를 넘어 이제 내게 와서 안식을 찾았소.
공주이신 루링... 고결하고 어여쁜 그녀는
기쁨으로 어둠의 침묵을 지배했고
모든 도전과 지배로부터 항상 승리했소.
그 정신 내게 모두 살아있소.
우린 모두 그 때를 기억하면
절망과 공포가 우릴 괴롭혔고 왕국은 결국 패배하고 말았소.
내 조모인 루링께선 너와 같은 낯선 자에게 납치당해 죽임을 당하셨소.
무서운 밤이 되면 지금도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소.
각지에서 대상을 이끌고 온 왕자들이여
당신들은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고 있구나
나는 그녀의 죽음과 절규를 떠올리며 복수를 하지.
어느 누구도 날 소유하지 못하리!
죽음의 공포들이 내 마음에 아직도 남아
아무도 나를 소유하지 못하리!
아~ 나는 그러한 순결의 긍지로 다시 태어났소.
낯선 자여 운명을 유혹마오!
수수께끼는 셋! 죽음은 한번!
투란도트 공주가 부르는 이 곡은 모짜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여왕이 부르는 '복수의 아리아'에 버금갈만큼 전율을 자아낸다. 여왕이 자라스트로에게 딸을 유괴당한데 대한 복수의 심정을 그려냈다면 투란도트는 지난 날 치욕의 역사를 안겨준 자들에 대한 증오심이 담겨있다. 이 노래를 부르고 난 뒤 투란도트 공주는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낯선 자여 들으라!'를 부르며 칼라프 왕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도의 수수께끼 문제를 내는데... 그녀가 낸 문제와 칼라프의 답은 이렇다.
낯선 자여 들으라! (Straniero, ascolta!)
첫번째 수수께끼
그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개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
모두가 갈망하는 환상.
그것은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다.
답 : 그것은 희망 (La Sprenza)
두번째 수수께끼
불꽃을 닮았으나 불꽃은 아니며,
생명을 잃으면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르고,
그 색은 석양처럼 빨갛다.
답 : 그것은 피 (Il Sangue)
세번째 수수께끼
그대에게 불을 주며 그 불을 얼게하는 얼음.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이것은 그대를 노예로 만들고,
이것이 그대를 노예로 인정하면 그대는 왕이 된다.
답 : 그것은 바로 당신, 투란도트! (Turandot!)
칼라프가 답을 맞추었는데도 투란도트는 자존심이 상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칼라프는 그녀에게 나의 정체를 오늘밤 안으로 밝혀내면 내가 죽을 것이며 밝히지 못하면 나의 부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칼라프의 아버지 치무르와 칼라프를 사모하는 노예의 딸 류가 체포되고 투란도트는 왕자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지만 류는 칼라프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칼라프의 열렬한 사랑에 감동한 투란도트는 결국 마음을 돌려 칼라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이 오페라에서 그려지는 칼라프 왕자의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지극한 사랑도 감동적이지만 3명의 신하 핑, 팡, 퐁이 이어가는 아리아는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극을 맛깔스럽게 만들고 있다. 특히 칼라프 왕자와 치무르, 류, 그리고 핑, 팡, 퐁... 여섯사람이 어우러져 부르는 6중창은 푸치니의 음악성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오케스트라 반주는 중국의 거대한 역사를 장중한 선율을 담아내고 있으며, 주역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 또한 철학적이고 진지하며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투란도트> 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칼라프가 수수께끼 문제를 풀고 난 뒤 밤을 지새우다가 부르는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 Nessun Dorma> 이리라. 오래 전, 오페라의 내용도 모른 채 노래의 제목이 맘에 들어 그냥 따라 부르곤 했는데... 그 때마다 공주가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곤 했다. 새벽이 밝아오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 칼라프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아름다운 선율에 실어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
어느 누구도 잠들 수 없네. 공주 그대 또한 그대의 방에서
사랑으로 희망으로 전율하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겠지.
하지만 내 이름은 나만이 알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내 이름을 알 수가 없네.
오! 나의 입술로 말하리라~ 여명이 트면
나의 키스가 그대를 나의 아내로 만들 것이요.
아무도 그 이름 몰라
우리는 죽게 되리라!
이 밤과 저 별이 자취를 감추고 동이 터오면
승리는 나의 것~ 승리는 나의 것!
여명은 밝아오고 두 사람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향해 자신의 열정을 이렇게 고백한다. "내 생명은 당신의 입맞춤~" 그의 열정을 읽어낸 투란도트는 이렇게 화답한다. "당신의 이름은 바로 사랑~" 이라고... 그들은 증오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사랑으로 새로운 역사를 다시 시작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것 같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며 얼마 남지않은 2003년 멋지게 마무리 하시길... and A Happy New Year !!! (fin) DEC.3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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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교향곡 4악장 - 환희의 송가 /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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