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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국정에 대한 여론을 자극할 수도 있고 진정시킬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때는 진실 그리고 또 어느 때는 거짓을 유포하여 설득하는가 하면 반대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민중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대응하는 것이며, 사실에 따라 말하는가 하면 또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민중들에게 어떤영향을 줄 것인가에 따라 조심스럽게 진행해야만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하면 우리는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적은 자기들의 근본적인 주장을 설명할 수 있는 신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들에게 굳이 반박할 필요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위장된 의혹이라 할지라도 명령 없이는 어떤 신문도 비밀을 누설하지 못한다. 이것을 위반하게 되면 아무리 훌륭한 기자라 할지라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으므로 그 비행을 폭로시켜 버린다. 그가 만약 가만히 있는다면 과거의 오점은 극히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으므로 그는 언론인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될 것이며, 민중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1991년 유고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세계언론은 유고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영국의 상업방송사인 ITN의 마샬기자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직접취재하게 된다. 당시 ITN의 취재사진과 영상은 전세계의 신문과 잡지에 빠짐없이 등장하게 되는데... 문제의 사진은 ITN의 마샬기자가 찍었다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철조망속에 갇힌 웃옷을 벗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들중에 앙상한 갈비뼈만 드러난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이 흑백사진은 유고에서 민족과 종족간에 벌어지는 인종청소를 아주 잘 나타내주는 중요한 증거들이다. 그러나 ITN은 수용소에서 취재한 장면을 전부 공개하지 않았다.
'판단'은 이러한 서방언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영국의 ITN이 수용소를 취재한날(1991년 8월) 공교롭게도 유고공영방송도 같은 장소에서 수용소의 모습을 촬영했다. 영국의 ITN은 죽음의 수용소를 촬영했고, 유고 공영방송은 난민수용소를 촬영한 것이다. 어떻게 두 방송사는 서로 다른 내용을 취재한 것인가?
영화의 처음 시작부분은 철조망속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보여진다. 그리고 마샬기자가 실제로 사진속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내용이 나온다. 마샬기자는 학대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지만 그런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마샬기자는 자신이 원하는 취재원을 발견하게 된다. 비쩍마른 체격에 앙상한 갈비뼈의 모습을 한 남자.... 8월의 유고는 여름날씨로 대다수의 남자들은 웃옷을 벗은 상태였다. 대화내용중에는 이 남자가 어렸을때 앓았던 질병때문이라고
나온다.
영국의 ITN이 촬영한 철조망속의 사람들은 과연 존재했는가? 이 부분도 유고공영방송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을 촬영했기 때문에 어떻게 조작됐는가 설명이 된다. 난민수용소를 촬영하게된 기자들은 수용소 건물안에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취재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던 결과물을 얻을수 없게 된다. 수용소 건물 밖을 취재하게 된 영국의 ITN은 철조망이 처진 곳으로 장소를 옮긴다. 그곳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아래부분은 철망이 돼있고 윗부분은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가시철조망으로 돼있다. 이곳은 변전소와 농기구가 있는 곳이다. 결국 사진속에 나타난 철조망속의 사람들은 영국의 ITN이 변전소안에서 밖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촬영한 것으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영국의 ITN이 변전소에 들어가서 취재할때 유고공영방송도 변전소 안에 들어가 바로 몇미터 옆에서 촬영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도중 옆에 촬영중인 ITN과 변전소안의 철망들이 보여진다. 영국의 ITN은 2차대전때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를 나타내기 위해 촬영한 사진을 칼라가 아닌 흑백으로 바꾸고 사람들의 다리 부분은 잘려진채 헐벗고 굶주린 죽음의 수용소 사진을 만들게 된다.
난민수용소는 어떻게 촬영하게 됐는가? 유고내전이 발생하자 유고정부는 자신들의 입장을 공정하게 알리기 위해 서방기자들에게 난민수용소의 취재를 허가하게 된다. 내전중이라 수용소로 가는 도중 전투중인 곳이 있기때문에 무장군인들의 보호속에 취재를 하게 된다. 이들이 방문한 수용소는 두곳이고 수용소에 도착한 후 수용소 소장과의 인터뷰를 하게 된다. 수용소 소장은 난민들을 세부류로 분류 수용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이들 난민들이 여기 남아서 자신들과 같이 평화롭게 살기 바란다는 이야기도 한다. 수용소 소장의 인터뷰 내용은 방송되지 않았다. 전범재판의 피고인비밀목록에 올라가고 1997년 나토의 유고공습때 이 수용소 소장은 폭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취재기자들은 수용소내부를 촬영하고 담당의사와 인터뷰도 하게 된다. 물론 수용소가 생긴이래 사망한 사람이 있는가라고 묻자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은 한명이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나이가 많은 노인이 수용소에 도착한 후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경우라고 말한다. 국제구호단체 직원과 인터뷰도 하지만 부족한 보급품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유고뿐만 아니라 세게곳곳에 있는 난민수용소의 공통적인 문제라고 설명해 준다. 이러한 인터뷰내용들은 영국의 ITN뿐만 아니라 서방언론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ITN은 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편집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고내전의 참상은 서방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 당시 유고에서는 세르비아 회교도들이 알바니아인들의 집과 땅을 빼앗은 후 죽음의 수용소에 수용한후 학대와 고문, 강간등을 하는 악마적 이미지를 창조하게 된다. 1992년 미국대선에서 클린턴과 부시는 유고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해 군대를 보내고 군사시설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방언론들의 이런 보도행위는 1998년 코소보내전때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그때 당시에도 코소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극에 대해 전하는 바에 의하면이나 코소보를 탈출한 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이라든지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지금 그곳에서는 학살이나 강간, 고문,살해등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그중 몇가지는 종군기자들의 취재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코소보 내전은 미국과 나토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대의 명분으로 무력개입을 하게 된다. 미국과 나토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1년후 밀로세비치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러한 서방의 무력개입은 많은 의문점을 보여준다. 인도주의를 이유로 한 무력공격의 정당성 여부, 강대국의 패권주의 의혹,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살해에 대한 책임규명과 비인도적 무기(파괴율을 높이기 위해 우라늄탄을 사용한 경우)나 환경파괴등은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1996년 유고정부는 이런 왜곡된 보도를 한 영국의 ITN을 상대로 유엔에 중재를 신청했지만 제대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제 20 조
1. 전쟁을 위한 어떠한 선전도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다.
2.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다.
유고의 역사적 배경
남슬라브족이 6세기경에 처음으로 유고지역에 건국했다. 1389년 오스만 터키가 코소보지역을 침공, 식민지가 됐다. 500년 가까이 식민생활을 하던 유고는 1878년 러시아_오스만 터키전쟁과 발칸전쟁에서 터키가 패배,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왕국으로 독립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중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지배하에 잠시 들어갔다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 개칭)’ 으로 다시 독립한다. 2차 세계대전때 나치 독일에 점령됐다가 종전후 티토의 공산당 주도로 1945년 11월 ‘유고슬라비아 연방인민공화국’ 으로 독립한다. 80년 건국의 아버지 티토 대통령이 사망하고 80년대 말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자 유고연방은 무너진다. 91년 6월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제일 먼저 분리독립을 선포하고 6월27일에는 유고연방군이 슬로베니아를 침공함으로써 유고내전이 발발한다. 유고내전은 250만명의 난민과 1만5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인류 최악의 민족분규라는 오명을 2년반 이상을 끈뒤 데이턴협정으로 휴전했다. 92년 4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유고연방을 계승한다는 신헌법을 채택하고 ‘신유고연방’ 으로 독립한다. 유고연방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신유고연방(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보이보디나자치주) 마케도니아로 분리됐다
p.s
미국의 아프간공격에 대한 세계각국의 뉴스보도를 보면서 대부분의 정보가 미국의 CNN,AP등 서방언론중심의 보도를 보면서 과연 지난 9월 11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있는 뉴스보도는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더군요.... 미국에서 테러공격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아프간에서 미국의 폭격으로 죽어간 부녀자와 아이들의 죽음이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방언론의 보도는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하지만 때로는 그들 입맛에 맞게 제한된 보도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적어도 희생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