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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河)와 발해(渤海) : 질문에 대한 답변
○ 하수(河水)의 근원(根源)에 대한 옛 사람들의 인식은 『천하(天下)의 중심지인 곤륜산(崑崙山)의 동북(東北) 한 모퉁이에서 발원하여, 북쪽 여기저기로 흘러 가다가, 발해(渤海)로 들어와, 잠시이곳에서 쉬다가, 물길이 지하(地下)로 스며들어 흘러, 우(禹)가 뚫어 놓은 적석(積石)산에서 지상(地上)으로 다시 용출(湧出)한 후,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옛 중국(中國)인들은 적석(積石)산에서 하(河)가 나온다고 했으며, 이 하(河)는 “중국의 하천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禹)의 치산치수(治山治水) 업적에서 가장 중요한 홍수(洪水)대비책인 “적석(積石)산을 뚫어 하수(河水)의 물길을 돌려놓는 바람에 홍수(洪水)를 잡을 수 있었다.》 한 것은 다른 각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당시 현 포창해(蒲昌海)로부터 양관(陽關),옥문관(玉門關),돈 황(燉煌)의 남북(南北)지대 곧 현 신강남부와 청해 북부, 티베트 일부, 감숙(甘肅)성 서쪽일부의 사막지대와 청해(靑海)성의 서북지대는 수많은 호수와 습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곳은 아주 옛날 큰 호수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며, 이곳으로 들어오는 하(河)의 물줄기를 잡지 못하면, 그 동쪽지방은 쑥대밭이 될 것으로 여기고, 그 물줄기를 험한 산악지형인 계곡으로 물길을 뚫어 흐르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禹)가 무엇 때문에 이 험한 적석(積石)산에 물길을 뚫었을까(鑿)?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역사왜곡의 산 증거는 <현 대륙의 근세기 기록을 보면, 우(禹)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위해 하(河)의 물길을 돌리려고 뚫어 놓은 곳은, 영하(寧夏)성과 감숙(甘肅)성과 내몽고 지방의 접경지역을 흐르는 황하(黃河) 연변에 있는 적석(積石)산【일명 소적석산이며, ‘당술 산’이라고도 한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산해 경(山海經)의 곽박(郭璞)이나 또 다른 주해(註解)자들은 말하기를 강중(羌中)에 있다고 하였으며, 대적석산【토번 전에서는 자산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 산이 적석(積石)산이다.】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고의적으로 수천(數千)리를 동쪽으로 이동시켜, 역사를 해설하는 것은 “조선(朝鮮)의 영토(領土)”를 “동쪽으로 밀어내기 위한 수단(手段)”이란 것이다. 이러한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 반도사학(半島史學)은 “반도(半島)사학(死學)”이 될 뿐이다.
●<河水出昆侖東北陬,貫渤海,入禹所導積石山>로 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여? 【산해 경에 기록된 것을 인용한 문장인데, 왜 글자를 뺐는지에 대해서는 회남자(淮南子)전을 저술한 회남 왕 “유 안”만이 알고 있을 것이며, 아니면 후대의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뺏을 수도 있다.】본인은 ‘명문 당’에서 발행했다는 것은 들어보기 처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쉼표(,)표를 누가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원전에는 (,)표가 없다. 본인은 이러한 문제가 항상 생기기 때문에 원전(原典)을 볼 땐, 대륙 측의 것을 구입하거나, 인터넷에서 원문자체를 다운받아, 저장해 놓고 본다.
그러나 미묘한 문장에서는 의미전달이 다를 수 있겠으나, 지리, 지형적인 문제는 비슷하다.
○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본인(本人)은 대륙조선(大陸朝鮮)사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님이 보시고 계신 “명문 당”발행의 “회남자(淮南子)전”의 원전(原典)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없으나, 저는 현 중국의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河 水 出 崑 崙 東 北 陬, 貫 渤 海 入 禹 所 導 積 石 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河 水 出 崑 崙 東 北 陬, 貫 渤 海 入 禹 所 導 積 石 山:『하수(河水)는 곤륜산(崑崙山)의 동북(東北) 모퉁이에서 나와, 발해(渤海)를 관통(貫)하여 우(禹)가 통하게 한 적석(積石)산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하였습니다.
● 이와는 다르게, 《하수(河水)는 곤륜산(崑崙山)의 동북(東北) 모퉁이에서 나와, 우(禹)가 통하게 한 적석(積石)산으로 들어가, 발해(渤海)를 관통(貫)한다.》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럴 때는 “출(出)”자를 써, 적석(積石)산에서 나와, 발해를 관통한다고 해야 할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당시에 발해(渤海)라는 곳이 현 산동(山東)성 앞 바다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산동 성(山東省) 앞 바다를 “발해(渤海)”라 했다는 기록은 근세기의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근세기 부터 발해(渤海)”라 했다는 것입니다. 수천(數千)년전의 하수(河水)가 존재(存在)하지도 않은 “발해(渤海)”바다로 물이 어떻게 관통을 하겠습니까?
또 문제는 발해(渤海)로 물이 흘러 들어간다고 했을 때는 입(入)자, 또는 주(注)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며, 관(貫)이란 <무엇을 뚫고 지나간다. 관통하다. 경유하다. 통과하다>등 이런 뜻으로 많이 쓰이는 글지 임을 감안하면, <바다 속을 뚫고 지나간다? 바다 속을 경유(통과)한다? 그러면 그다음 하수(河水)는 어디로 갑니까?> 이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래의 몇 가지를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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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경 주(水經注) : 하수 편 / 禹 本 紀; 與此同.高誘稱河出崑山,伏流地中萬三千里,禹導而通之,出積石山. : 우 본기 : 이것은 모두 같다. 고유(高 誘)가 칭하기를 “하(河)는 곤륜(崑崙)에서 나와, 땅 밑 가운데로 흘러 만 삼천리를 흐르고, 우(禹)가 통하게 한 곳, 적 석산(積 石 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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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山海經曰:河水入渤海,又出海外,西北入禹所導積石山.山在隴西郡河關縣西南羌中.余考群書,咸言河出崑崙,重源潛發,淪于蒲昌,出于海水. : 산해 경에서 이르기를, 하수(河水)는 발해(渤海)로 들어간다. 또 해외에서 나와 서북(西北)의 우(禹)가 통하게 한 적석(積石)산으로 들어간다. 산은 롱서(隴 西)군 하관(河關)현 서남(西南)의 강중(羌中)에 있다. 여고군서에, 두루 말하기를, 하(河)는 곤륜에서 나와, 근원이 땅 밑으로 흘러가는데, 포창(蒲昌)으로 빠져들어, 해수(海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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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山 海 經 海 經 新 釋 卷 六 . 山 海 經 第 十 一 . 海 內 西 經 : <산해경의 본시 기록>
《河 水 出 東 北 隅, 以 行 其 北, 西 南 又 入 渤 海, 又 出 海 外, 即 西 而 北, 入 禹 所 導 積 石 山 1. : 하수(황하)가 동북 모퉁이에서 나와서, 북쪽으로 간다. 서남(西南)으로 흘러 다시 발해(渤海)로 들어간다. 또 해외에서 나와, 곧 서쪽, 북쪽으로 흘러, 우(禹)가 통하게 한 적석(積石)산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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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경 주 : 하수 편 : ➡《 即《經》所謂蒲昌海也.水積鄯善之東北,龍城之西南.龍城,故姜賴之虛,胡之大國也; 곧 경(山 海 經?)에서 말하는 소위 “포창해(蒲 昌 海)”이다. 물은 선선(鄯善)의 동북에 모인다. 이곳은 용성(龍城)의 서남(西南)이다. 『龍城』! 옛 강 뢰(姜 賴)의 터이다. 오랑캐의 대국이었다. 》
● 용성(龍城)! 이 정도 지방에 있다면 역사서에 기록된 “서방의 오랑캐(胡)”들이 『용신(龍神)과 천신(天神)』에 제사를 지낼만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이곳은 “현 신강 성 포창해” 의 동북(東北)지방으로 “합 밀(哈 密)과 옛 이오(伊 吾)”지방이다. 옛 ‘이오(伊 吾)’는 현 ‘합 밀’에서 가까운 서쪽지방에 있다.
●<참고용>:《龍城,故姜賴之虛,胡之大國也.蒲昌海溢,盪覆其國,城基尚存而至大,晨發西門,暮達東門.澮其崖岸,餘溜風吹,稍成龍形,西面向海,因名龍城.地廣千里,皆為鹽而剛堅也.行人所逕,畜產皆布氈臥之,掘發其下,有大鹽,方如巨枕,以次相累,類霧起雲浮,寡見星日,少禽,多鬼怪.西接鄯善,東連三沙,為海之北隘矣.故蒲昌亦有鹽澤之稱也. : 용성(龍城) : 옛 ‘강 뢰 (姜 賴)’의 터이다. 오랑캐의 큰 나라였다. 포창해가 넘쳐 그 나라를 씻어버리고(盪), 무너지게(覆)하였다. 그 나라의 성 기초가 대단히 커 상존하고 있는데, 새벽(晨)에 서문을 출발하여, 해질 무렵(暮)에 동문에 닿는다. 증(물 이름)이 그 언덕 가에, 바람이 불면 남아있는 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점점 용의 형상을 만든다. 서쪽 면이 바다를 향해 있다. 이로 인하여 용성(龍城)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땅은 넓어 천리다. 모든 땅의 소금은 굳어 단단하다. 행인이 이곳을 지나가려면 가축과 모두 양탄자(氈)로 온 몸을 싸고 잠을 자야하며, 땅을 움푹 파내면 그 아래에 큰 소금이 있다. 큰 베개와 같이 각을 내고 그 다음 서로 묶는다. 무리지어 안개가 일어나 구름처럼 떠오르며, 작은 해와 별을 보는 것과 같다. 날짐승은 작고, 많은 귀신과 도깨비가 있다. 서쪽으로 선선(鄯善)과 접하고, 동쪽으로 삼사 (三 沙 : 백 용 퇴를 칭?)가 연해 있고, 바다의 북쪽으로는 좁고 험하다. 옛 이름은 “포창(蒲 昌)이고, 또 염 택 (鹽 澤)” 이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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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海經曰:中略.即河水之所潛,而出于積石也.又東入塞,過敦煌酒泉,張掖郡南.中略 : 곧 하수가 땅 밑으로 들어가 흘러, 적석에서 나온다(나타난다). 또 동쪽의 새(塞)로 들어가, 돈 황(燉煌). 주천(酒泉)을 지나, 장액(張掖)군 남쪽으로........중략》
【위 내용으로 보면, 하(河)가 흐르는 ‘적 석산(積 石 山)’은 ‘청해(靑 海)성’에 있는 ‘대 적 석산(積 石 山)’이다. 왜냐하면 다음 문장에, 『又 東 入 塞, 過 敦 煌 酒 泉, 張 掖 郡 南 : 또 동쪽의 성채로 들어가, 돈 황(燉 煌), 주천(酒泉)을 지나 장액(張掖)군의 남쪽으로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山海經曰:積石之山,其下有石門,河水冒以西流,是山也,萬物無不有.禹貢:所謂導河自積石也.山在西羌之中,燒當所居也.延熹二年,西羌燒當犯塞,護羌挍尉段熲討之,追出塞,至積石山,斬首而還.司馬彪曰:西羌者,自析支以西,濱于河首左右居也,河水屈而東北流,逕析支之地,是為河曲矣. : 산해 경 : “적 석산(積 石 山)” 그 아래에 “석문(石門)”이 있다. 하수(河水)가 무릅쓰고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 산이다. 《우공(禹 貢)》 : 소위 하(河)를 통하게 한 ‘적 석산(積 石 山)’이다. 산은 서강(西 羌)의 가운데 있으며, 소당(燒 當)이 이곳에서 산다. 연희(延 熹) 2년, 서강(西 羌) “소당(燒 當)”이 성채를 범하자, 호강(護 羌) 교위(校尉) “단경 (段 熲)”이 쳐, 성채를 나가 추격하여, 적 석산(積 石 山)에 이르러 참수(斬首)하고, 돌아왔다. 사마 표(司 馬 彪)가 이르기를, 서강(西 羌)들은, 석지(析 支)의 서쪽에 있으며, 하수(河水)의 좌우(左右) 물가에 살며, 하수(河水)가 동북(東北)으로 굽어, 석지(析 支)의 땅으로 곧장 가는데, 하곡(河 曲)이라 한다.】
※ 이 내용대로 보면, 우(禹)임금이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할 때 하수(河水)를 통하게 했다는 적석(積石)산은 청해(靑海)성에 있는 ‘대적석산(大積石山)’임이 틀림없다. 대륙에서 설명하는 림 하(臨 河)현의 적석 산(積石山)은 이름만 같은 산일뿐이다. 이것 역시 역사의 왜곡(歪曲)이다.
● 應劭曰:禹貢,析支屬雍州,在河關之西,東去河關千餘里,羌人所居,謂之河曲羌也.東北歷敦煌,酒泉,張掖南. : 응소가 이르기를, 우공의 석지(析 支)는 옹주(雍 州)에 속했다. 하관(河 關)의 서쪽에 있고, 동쪽으로 하관(河 關)까지 천 여리 떨어져 있고, 강인(羌 人)들이 살고 있는데, 소위 하곡 강(河 曲 羌)이다. 동북(東北)으로 돈 황(燉 煌). 주천(酒泉), 장액의 남쪽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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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本人)은 본인(本人)이 주장하고, 설명하는 내용이 100 % 옳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선사(朝鮮史)”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별 볼일 없는 한 개인이 몸부림쳐봐야 돌아오는 건 허공속의 메아리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정치가, 권력을 가진 자, 재벌가, 명예를 가진 자도 아닌, 수천만 국민 중의 평범한 한 인간, 열심히 노력해서 먹고 살며, 자식들 교육시키며, 이런 평범한 인간이 노력해봐야 얼마나 진도가 있겠는가? 그러나 단 한 분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마음으로, 원전을 보고 조선사(朝鮮史)와 연계되는 것을 찾고 있다.
<대륙조선사연구회>의 회원이신 “질문자”의 의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좋은 뜻에서, 또는 나쁜 다른 뜻이 있든 관계치 않는다. 문제는 조선사(朝鮮史)를 알고자 하는 열의(熱意)이다. 그것이 반도사관(半島史觀), 또는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관이든, 개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조선사(朝鮮史)를 탐구(探究)하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며, 반도사학(半島史學)을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그 의문점들을 찾아 결국 대륙조선사로 귀의(歸意)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은 타 카페에 대해 뭐라 코멘트 할 자격이 없다. 그곳의 회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본인의 글을 퍼 갔고, 그 퍼 간 글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으므로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의문이 꼬리를 물고,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될 것을 우려해 답하는 것이다.
2011년 10월 25일 <글쓴이 : 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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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답변 고맙습니다...문무님.
그렇찮어도 어제 안돼는 한자 읽느라 눈알이 한 치는 나온 듯 합니다.
오늘은 또 시간이 남아 지도로 증거를 찾아보려 하는데...가욕관나 옥문관을 넘는 라인이 틀림없이 존재한 듯한 그림도 있고...현재의 청해성 동남을 거치는 그림도 있고...그때 사람들도 많이 헤깔렸나 봅니다.
이건 비밀인데...요즘 전 강화도를 찾고 있답니다.
거시기 조선 사이트에 어느 선생님이 질문을 했는데...묵묵부답들이시더군여...ㅡ. .ㅡ
저도 요즘 한참 강화도를 찾고 있었는데...마침, 그 분이 저와 비슷하게... 제대로(?) 짚으신 건데...
마치, 하와이를 부곡하와이에서 찾는 분들께...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게 화와이 같다 말씀하신 무안스러움이랄까... 그렇습니다.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문무님.
전 마우스로 훑기 밖엔 방법을 모르는데...딴 데선 다 통했던 원시적이나... 정겨운 펌 기법였는데...
저번에도 그렇고...또 문무님 글이 가장자리는 수줍게 숨어 버리십니다...?
본문 끝부분에서 시작하시면 됩니다.
위에서부터라면 제목 "하"자 왼쪽으로 바짝 붙여서,
아래에서 위로 올린다면 "문 무 >" 오른쪽에 바짝 붙여서 시작하시면 되죠..~
문무님의 훌륭하신 명문을 잘 읽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보시는 듯 합니다 ^ ^
하수(河水)가 일반 강(江)과는 다른 치수(治水)의 흔적이군요. 콸콸콸...왠지 거란이나 고려의 발음인 콰류(豁流,闊流)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민심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잘 드러내 것 같고요.
백마(白馬)니, 연진(延津)이니 관도(官渡)전투니 하는 삼국지 지명의 허구도 동북의 발해만으로 빠지는 물줄기의 신화를 기억시키는 환타지의 일종이겠군요. 저는 삼국지가 바이블과 비슷한 훌륭한 날조 왜곡 텍스트라고 봅니다.
마르세이유 턴(turn)이란 것도, 지네딘 지단의 독특한 드리볼로 불리기 전에,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치수관개하여 말산류(末散流)로 바꾸어 놓아서 생겨난 지명으로, 그러한 계곡물이 사방으로 흩어져 관개수로 쓰임을 마르세이유 턴이라고 불렸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