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외버스터미널을 나와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시간이 제법 촉박하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가야하는 길목에 있는 건물이고, 차로 가면 금방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다니면서 남원시내 곳곳을 구경했다. 낮고 낡은
건물들과 좁은 길목들을 벗어나 넓은 도로를 타고 대략 10분 정도 밟으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까는 시외버스를
구경했다면, 이번엔 고속버스를 구경할 차례다.
사실 전날 저녁에도
남원시내에 도착하면서 고속터미널을 얼핏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같이 갔던 일행은 카메라 성능이 좋아 은근한 조명이 비추는 밤중의
터미널을 촬영했지만, 피로가 누적된 필자는 그 시간에 잠깐 눈이나 붙이자 해서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다음 날이 되서야 비로소
사진을 찍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낮과 밤의 고속버스터미널은 제법 온도차가 있었다.
남원고속버스터미널은
시내 중심가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다. 연결되는 도로는 더 넓지만 다니는 차들은 더 적고, 사람 구경은 하기 힘들
정도로 적막한 분위기에 그가 서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남원의 관문 남원IC와 매우 가깝고, 맞은편에 롯데마트가 있으며, 중규모 아파트단지들이 이쪽 방향으로 계속 지어지며 확장된다는 점이다. 이 아파트 단지쪽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시외버스보다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인구가
9만명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하게 소외된 남원시라지만, 그나마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유망한 동네가 바로 여기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마을 중간중간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형국이어서 계획적으로 깔끔하게 개발된다는 느낌보다는 중구난방 난개발의 형태로 개발되어가는 느낌이 더 강하다. 실제로도 시내와 먼
외곽이라는게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남원고속터미널 건물은 정말로 아담하다. 사람 구경조차 힘든 외곽 지역에 있는데다 노선이 매우 한정적이어서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단층의 작은 건물에 면적은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유의 건물 구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굉장히 작다.
대개 오래된 중소도시의
고속터미널들은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겼다. 남원도 사실 다르지 않다. 그러나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실제 규모에 비해 건물이
상대적으로 커보인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웅장한 분위기로 압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 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이지만 깔끔한 구석도 있고. 개성은 없지만 이런 묘한 느낌이 고속터미널만의 멋이기도 하다.
맞이방 면적도 다 고만고만하다. 타지역의 고속터미널과 크게
다르지 않고 구조도 비슷하다. 행선지가 몇 개 되지 않는 것도 비슷하고 사람 구경하기 상대적으로 힘든 것도 비슷하다. 적막한
맞이방 안에선 시끄럽게 재잘대는 TV 소리로 꽉 차있고, 기다리는 승객들보다 휴식을 취하는 버스의 수가 더 많을 정도다.
때마침 운행을 마치고 들어오는 고속버스에서 손님이 내린다.
대여섯명 정도 되는 승객이 물건을 한가득 실은 무거운 짐을 이끌고 마지막 목적지로 가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개중에는
여기가 낯선지 직원 분께 무언가를 물어보는 분들도 계셨다. 복장을 보아하니 틀림없이 지리산을 등반하러 온 손님일 게다. 남원하면
지리산을 빼놓을 수 없고, 실제로 버스 이용객들 중 지리산으로 가는 수요를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비중이 있다.
여기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서울까지 가려면 선택지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남원역으로 가서 열차를 이용하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여기서 서울가는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동서울행 하루 3번이 전부이기 때문에, 환승도 되고 센트럴시티까지 곧바로 이어주는 서울 노선을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이쪽이다. 배차가 대략 1시간 정도로 그리 자주 있지는 않지만, 적은 배후인구를 감안하면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인구의 김제에서는 영업 부진으로 고속버스 운행이 극단적으로 감소하다 결국 폐쇠되는 운명을
맞았는데, 그만큼 적은 인구로 경쟁자를 뿌리치고 수요를 얻어오는 건 엄청난 부담이 되는 일이다. 더욱이 열차와 경쟁까지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남원역이 너무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상대적으로 덜 떨어져 있는 고속버스를 조금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방문할 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수서역으로 가는 KTX가 뚫려 조금의 타격이 있을까도 싶다. 서울행 말고는 덕과를 들렸다가 오산-서수원-인천으로 가는 '시외버스' 노선이 있지만 하루 세 번이 전부여서 수익에 큰 도움이 되는 노선은 아니다.
요금은
그렇게 비싸지도 저렴하지도 않은 2만 5천원대. 일반고속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하루 여섯 번 밖에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 인천까지 가는 시외노선은 국도를 타는 비중이 높아서인지 서수원까지의 요금이 서울보다 비싸다.
서울행이
사실상 전부인 조그마한 고속버스터미널은 휴가철, 명절 특정시간대를 제외하면 언제나 한산하다. 지금도 다시 손님들이 빠져나간
터미널은 매우 한산해졌다. 요새는 보기 힘들어진 삼화고속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공동배차지만 서울로 오가는 몇 안 되는 삼화
노선으로 알려져 있는데, 승차감은 어떨지 친절도는 어떨지 한 번 타보고 싶게 만드는 노선이다. 아쉽게도 자가용 여행 중이라 이용은
못하고 다음을 기약 해야겠다.
주차장의 넓이에 비해 굉장히 한산하고 조용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반대편으로 걸어오던 사이 어느덧 주차된 삼화고속 차량은 슥
빠지고 그 자리에 운행을 마치고 쉬러온 금호고속 차량 한 대가 주차를 하고 있었다. 버스가 움직이는 순간에만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귀에 박힐 뿐, 정말로 고요하다.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그런 애매한 분위기가 사람을 참 묘하게도 만든다.
'고속수퍼'라는 오래된 간판을 단 가게 하나가 주차장 옆에
있다. 20여년 전, 어릴적 어렴풋이 기억에 스며든 추억의 간판이 눈 앞에 다시 보이니 참으로 신기할 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제는 맞춤법에도 안맞는 저 '수퍼'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 자리에 고속터미널이 있었다는 이야기 아닌가?그만큼 오래 됐는데,
아직까지 시내 외곽의 한산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것도 신기했다. 그만큼 발전이 못 되고 사람들이 외지로 자꾸 빠져나가서
30여년 전 모습이 지금까지 크게 바뀌지 않고 유지된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과연 언제쯤 이 곳이 제대로
개발되어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 때까지 고속버스터미널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품은 채
복잡한 기분으로 자리를 뜬다.
첫댓글 어차피 수서발 SRT는 전라선을 운행하지 않죠
개인적으로 인구가 매우 적은 곳에 시외터미널 고속터미널로 그것도 그 두 개가 시내버스 몇 정거장 거리로 떨어져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 듭니다
수서에서는 전라선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군요... 그럼 별 영향이 없겠네요. 저도 굳이 인구가 적은 소도시에 시외버스/고속버스로 이원화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바로 옆에 붙어있으면 몰라도 멀리 떨어져 있기까지 하죠.
@Maximum 예. 수서발 SRT는 포항 마산진주 여수행 지선 SRT가 없죠.
김제 거주인으로써, 김제 고속터미널이 폐쇄된것은 아직도 많이 아쉽네요..^^;
어릴때 시내로 혼자 학습지공부하러 다닐때에 터미널을 지나가면 꼭 금호 구형 션샤인들을 보았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추억으로만 생각해야하니까 많이 아쉽습니다...
지금은 비록 시외노선 변경 후 하루 4회/주말7회지만, 승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거에 위안이 되네요 ㅎㅎ
[ 현재 김제 고속터미널부지에는 패션아울렛 건물이 들어와있습니다.
아x더, 블x야x같은 등산 브랜드.. ]
그리고 맥시멈님의 터미널 기행기 잘 보고 갑니다 ㅎㅎ 필력이 굉장히 좋으시네요..^^
전혀 연고도 없는 김제의 고속터미널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었던 저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모습이 지금은 없어졌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고 아쉽네요. 패션아울렛 건물이 들어왔다면 아예 건물이 싹 헐리고 다시 지어졌다는 이야기겠죠...
@Maximum 넵...완전히 허물어버리고 지금은 깨끗하게 아울렛건물이 들어와있습니다...정말 저도 마음 한켠이 씁쓸하더군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2.11 04:5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2.11 13:16
그나마 오산.서수원.인천 노선이 있긴 하네요..
금호고속.경기고속 공동 배차 입니다. 과거에는 삼화고속도 운행했었죠
하루에 몇 대 없는데도 공동배차로 다니는군요.
@Maximum 인천에서 보니까 금호고속이 남원 방향으로 가는거 봤습니다. 남원방향 인천~서수원.오산 구간승차는 안되고 반대로 인천 방향 오산에서는 구간승차 되는데 서수원은 모르겠네요..
맥시멈님~ 사실 말씀 안드려도 될 것 같지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
롯데마트가 남원 "유일"의 대형마트는 아니구요, 남원 서쪽 끝에 이마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금동주공아파트 인근).
이마트가 원래 남원 터줏대감이었다가, 지금은 롯데마트는 동쪽을, 이마트는 서쪽 상권을 먹고 있다고 보심 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잘못된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곧바로 수정 들어갈게요~
고속도로 IC에서 가까웠던 기억이 나는데 운행노선이 너무 작군요.
작은 도시의 고속터미널이 대부분 저러니까요 ㅎㅎ 그래도 남원 정도면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