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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1번지 경남 진해(鎭海) 장복산(長卜山) 산행 ③
-진해 벚꽃의 향연 속으로 ①-
진해의 벚꽃은 크기가 커서 왕벚꽃이라 합니다. 벚꽃이라 하면 우리가 연상하기로 일본꽃 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벚꽃의 자생지는 우리나라입니다. 일본인 들이 벚꽃을 사랑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져가 심고서 '사꾸라'라 하며 일본인들이 완상하는 바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가 자생지인 것입니다.
작년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에 갔을 때 왕벚나무 자생지를 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왕벚나무 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의 교목(喬木)입니다. 일본에서는 벚꽃을 국화(國花)로 삼을 정도로 사랑하는 바이지만 일본에서는 벚꽃의 자생지가 지금까지 발견되지 못했다고 합니 다. 얼마나 혈안이 되어 찾았을까요?
처음 자생의 왕벚나무가 발견된 것은 1908년 4월 15일 서귀포 서흥동 소재 성당에 와 있던 프랑스인 따께신부에 의해서입니다. 그가 제주도에서 채집한 표본을 독일의 베르린 대학 코헤비 박사에게 보냄으로써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로 처음으로 밝혀졌던 것입니다. 왕벚나무 자생지는 한라산 일대를 중심으로 산북지역에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 다. 참고로 제주도 관음사에는 4 그루의 자생 벚나무가 있습니다.
이 제주도의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본인의 사랑을 받다 보니 국화로 간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황실에는 꽃 문양이 국화(菊花)로 되어 있어 이 국화가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한 벚나무도 국화(國花)로 간주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저들의 치밀한 홍보 전략으로 벚꽃이 일본을 상 징하는 것처럼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는 벚꽃심기에 주력했다고 합니다.
벚꽃터널 같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어디나 벚꽃은 지천입니다.
꽃의 향연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벚꽃
마음껏 감상해 보세요.
벚꽃의 열정
하산한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
원래는 2시에 버스가 와서 산행팀을 싣고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가 벚꽃의 명소여서 관 광을 하기로 했는데 군항제 마지막날이라 인파가 몰리고 차량이 많아서 관광팀을 실어 나르 고는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뿔사!
막간을 이용하여
산행을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해는 온통 벚꽃입니다.
개나리와 어울어진 벚꽃.
버스가 안 와서 내려갑니다.
버스가 여기로 온다고 해도 회차하기도 난감한 노릇입니다.
검문소까지 이동중입니다.
검문소 앞 도로 모습
49회 진해 군항제라는 현수막이 보입니다. 군항제는 4월 1일부터 10일동안 펼쳐졌다고 합 니다. 이 알이 마지막 날이었는데 벚꽃은 최절정인 듯 싶습니다. 전국의 상춘객들이 이때 를 놓치지 않고 찾아들어 북새통을 이룹니다. 저도 이 대열에 처음 동참해 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전국적 규모의 축제니 만큼 당연히 지역 행정기관이나 해당지역 군부 대 등에서도 군항제(軍港祭) 연관행사를 개최하느라 여념이 없었을 겁니다.
진해(鎭海)는 본래 지명이 웅천(熊川)이라 합니다. 웅천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 대륙진출과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랍니다. 이 곳에 벚나무가 많이 심어진 것은 이 일대가 벚나무가 자라기에 안성마춤의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차원을 넘어 엄청난 역사적 비밀 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임없이 과거에 우리나라를 지배했다는 허구적인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 4~5세기 그들의 야마또정권이 가야와 신라, 백제를 정복하고 200여 년간 지배했다는 허무맹랑한 역사를 가 르치며 한반도를 지배함에 당위성으로 삼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끊이없이 우리나라에 와서 분탕질을 했으며, 명나라를 정복한다는 구실로 길을 빌려 달라는 요구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자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삼키려 했던 것입니 다. 그리고 저들의 야욕은 잠시 주춤했다가 조선 말엽 세계의 제국주의가 발호할 때 다시 일어나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게 되었습니다.
제49회 진해 군항제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해군은 이 웅천을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오고 헤이하 찌로가 일본의 조선지배 여부를 판가름하는 이 전쟁에서 대마도와 웅천을 전략거점으로 삼 고 동해로 출병하여 세계 최강인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는 기적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 나 조선은 이 해전(海戰)으로 의기가 양양해진 일본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마침 내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시키는 등 조선을 압박하여 마침 내 1910년 강제 병탄이 되고 식민지로 신음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 웅천은 일본인들에게는 실로 중요한 성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제 웅천은 일 본해군의 중요한 기지로 대륙진출과 태평양 전쟁의 발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곳 전역에 벚꽃을 심어 일본의 혼을 심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여기에 주둔하 고 있는 일본 장병들에게 일본정신을 강화시키고, 조선인에게는 황국신민사상(皇國臣民思 想)을 주입시켜, 삼천리 무궁화 강토에 일본의 상징이된 벚꽃을 심어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 고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식민화를 시도했다 할 것입니다. 일본인 들이 벌이던 벚꽃 축제에는 이와 같은 뜻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 군항제(軍港祭)라는 이름으로 벚꽃축제를 벌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픈 과거의 역사가 깃들어 있음도 상기해 봐야 할 것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진해 확실한 증명사진
안 그렇습니까? ^^
저도 서 봤습니다.
이건 다른 분 찍어드리는 장면이네요. ^^
개나리와 벚꽃의 조화
개나리도 무척 반갑습니다.
☞ 다음은 벚꽃의 향연 2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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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과거의 아픔은 잊고 지금은 상춘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벚이군요.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입니다.
과거 일본군들은 저 벚을 바라보면서 화끈하게 피었다가 지는 잎처럼 散華할 것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벚을 바라볼 때 우리와는 리 벚의 붉은 기운은 그들의 피를 연상한다고 합니다. _()_
환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불러 모으는 모양입니다. _()_
진해 벚이 아름답기는 하죠.
진해의 벚, 서울 남산의 벚, 챵경궁의 벚 등이 심어진 배경에는 일본의 야욕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_()_
남의것은 절대로 넘보지 말아야 하거늘 독도도 지네 땅이라고 우기고....... 미친짜슥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_()_
남의 것 넘보는 자를 왈 도적이라 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