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평련 공개간담회 말씀자료
신자유주의를 넘어 “평등”시대를 만들자
[김두관, 민주평화국민연대 간담회 발표문]
[머릿말]
무엇보다도 먼저, 고 김근태 선배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깊은 추모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민평련의 여러 선배님과 동지들을 모시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에 대해서 감회가 남다르게 깊습니다. 여러분들을 대하니 제가 처음 민족민주운동에 첫발을 내딛던 그 때 그 심정이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전두환 군사독재로 엄혹했던 80년대, 저는 당시 재야운동의 중심이었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간사로 활동하였습니다.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셔서 민청련을 이끄셨던 고 김근태 선배님은 당시 청년 김두관에게는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1986년 4월에 청주로 파견되어 민주헌법쟁취 청주민중대회를 조직하였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짧지만 몇 개월 동안 징역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징역을 살면서 저는 그 이후 제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서울에는 운동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다. 나를 필요로 하는 현장으로 가자!”
그래서 저는 홀로 고향 남해로 내려가 지역농민들과 함께 농민회를 조직하여 사무국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25여년 동안 저는 항상 서민들 곁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였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민평련 동지들은 고 김근태 선배님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일생을 바치신 분들입니다. 이제 그분이 마지막을 남기신, ‘2012년을 점령하라’라는 말씀을 새삼 가슴에 새기면서 오늘 토론회를 시작할까 합니다.
[시대교체]
이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민주진보진영은 단순히 정권교체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시대교체’를 지향해야 할 때입니다.
한 시대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보통 4반세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산업화가 시작된지 25년만인 1987년 정도에 가서야 산업화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1987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주화는 2012년까지 25년 걸려서 우리 사회에 확고히 정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25년 민주화 시대의 후반기를 금융위기와 시장만능주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최장집 교수님이 지적하셨듯이, 정치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으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아직 이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정의는 ‘평등’]
이제 새로운 4반세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최근 대선주자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언급하는 과제가 복지, 정의, 공정, 공평, 경제민주화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어젠다들은 각론에 불과합니다. 이들 어젠다의 밑바닥을 관통하고 있는 근본적인 키워드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동안 시대정신으로 ‘정의’를 이야기해왔습니다. 정의란 옳은 뜻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무엇이 옳은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 정의의 핵심내용은 ‘평등’이어야 합니다. 2013년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25년의 체제는 ‘평등사회’의 체제입니다. 스웨덴도 1932년부터 1976년까지 44년 동안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연속 집권하면서 복지국가를 목표로 노력한 결과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선진복지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합심하여 평등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꾸준히 추구해 나간다면 25년 후 대한민국도 북유럽과 같은 선진국 수준의 평등사회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실 200년전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요구는 자유, 평등, 박애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자유와 평등입니다.
이 가운데 자유에 대해서는 피땀어린 민주화투쟁을 통해 세계가 경탄할만한 성과를 이룩했지만, 평등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토론도, 사회적 실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사회양극화와 극심한 빈부격차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감히 평등을 말해야 합니다.
[평등의 3요소 - 공평한 출발, 공정한 경쟁, 합리적 차등]
저는 기계적 무조건적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평등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소를 포함합니다.
우선, 경쟁을 하기도 전에 출발선이 서로 다르다면 이는 불공평한 것입니다. 따라서 출발선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공평한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이 장애인에게 길을 양보하듯,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혜택이 주어져야 공평합니다. 재벌로부터 골목상권을 우선 보호해야 하고, 국공립대학에서 학생선발시 중하위 소득가정에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과정에 있어서의 규칙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고 이를 어기면 누구든 처벌받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법 적용에 있어서 대통령 친인척이라고 봐주고 재벌총수라고 봐주면서도 힘없는 서민만 징역을 사는 불공정한 현실은 타파되어야 합니다.
유리지갑 같은 근로소득자들은 꼬박꼬박 소득세를 내는데 고액탈세자는 유유자적하게 넓은 대저택에서 사는 것 역시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국세청보다 막강하게 만들고,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사회공정기구’를 만들어 사회 각분야의 불공정한 현실을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쟁의 결과가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공평하게 출발해서 공정하게 경쟁하였다고 하더라도 결과에 있어서 차등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보상의 차이가 너무 커서 1등이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사회에서는 경쟁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공동체가 붕괴하게 됩니다.
SKY를 나오면 인생이 보장되고 지방대학을 나오면 하루하루를 걱정해야 하고, 공기업에 취직하면 ‘신의 자식’이 되고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어둠의 자식’이 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보상체계가 얼마나 일방적인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합리적 차등이야말로 누구나 자기 결과에 만족하고 더 큰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많드는 조화로운 발전의 동기가 됩니다.
평등이라고 하면 하향평준화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평등이 경쟁력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평등한 교육을 시키고 있는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가장 경쟁력있는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고 경제위기를 가장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평등이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며 사회통합과 지속가능 사회를 가능케 합니다.
[헌법과 좌우명]
이러한 평등사상은 엄연히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원리입니다.
헌법전문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한다고 하여 평등사상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의 본문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기본권 규정의 제일 앞부분에 두어 평등이 우리 헌법의 최고 지도원리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헌법원리를 우리는 그동안 너무 소홀하게 대접해 왔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결과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가 초래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불환빈, 환불균” 즉 “백성들은 가난을 걱정하기 보다 불평등에 분노한다”는 논어의 구절을 제 좌우명으로 삼아 왔습니다. 저는 평등의 망치로 우리 사회의 두터운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모든 민간시장 영역에서 손을 띠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지금의 시대에서 공공성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경험 - 마을어장의 공공이익]
제가 30을 갓 넘은 나이에 조그만 마을의 이장으로 있을 때 그 앞바다 공유수면에 공동어장이 있었는데, 이 마을 공동어장을 20명으로 구성된 이어리 어촌계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공동어장에서 조개를 키워서 나오는 수익을 마을 전체 150가구 중 20가구만 나눠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유수면에서 나온 이익은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저는 끈질긴 설득과 토론 끝에 어촌계로 하여금 마을어장의 수익금을 120가구 모두에게 배당하도록 결정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평등’은 저에게는 공공영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리더십]
저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조용하지만 뚝심있게 끝까지 추진하여 결과를 보아 왔습니다. 남해군수 시절의 군의회와 현재 경남 도의회는 모두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다수로 저는 한마디로 포위되었습니다.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칙을 버리지 않되 경청하며 끈질기게 협상하여 결국에는 기대하는 성과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게 제가 추구하는 리더십입니다.
제가 공직생활을 계속하는 한 이러한 저의 신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저의 공직생활에서 ‘평등’이라는 가치가 진정으로 우리 사회에 실현되도록 앞만 보고 나아갈 것입니다.
[민주통합당의 30년 플랜]
이제 우리 모두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평등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도전해야 합니다. 선진국일수록 더 평등하다는 의미에서는 한국사회의 선진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한 정권이나 하나의 정당을 넘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향후 30년의 목표이며 선거의 승패를 떠나 우리 민주통합당이 30년을 견지해야 할 가치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 또 우리 민주통합당과 여기에 계신 민평련 선배 동지들과 함께 담대한 발상의 전환과 도전에 나서고자 합니다.
[맺는 말]
평등은 우리 헌법의 핵심가치입니다.
평등이 없으면 자유도 없습니다.
평등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도 없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권자라면, 또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면,
우리 국민은 누구나 다 평등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80년대에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학가에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이름의 서점도 있었습니다.
‘그날’이 도대체 어떤 날이냐를 두고 밤새 소주잔 기울이면서 토론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는 ‘그날’이란 바로 우리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날’을 뜻한다고 말씀드리면서 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균등에 대해 잘 정리된 말씀, "아직 오지 않은 날 - 그 날이 오면" 모두 그 길로 가면 그 날을 만납니다.
넵...!!
"그날이 오면~" 우리 카페 배경 음악으로 깔아도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