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물빛이 고운 심곡항은 얼핏 스쳐지나면 잘 몰랐을 아주 조그만 항구였다. 심곡에서 금진까지 이어진 길 신비의 바닷길이라 이름 붙인 해안도로를 달린다.
포구에서 마을 어귀를 돌아서자 헌화로가 이어졌다. 푸르다 못해 시퍼런 동해바다가 눈앞에 아득히 펼쳐진다. 아침햇살에 반사된 황금빛 윤슬을 바라보며 금진항에서 되돌아 심곡으로 온다.
작년 10월에 개방된 바다부채길을 걸었다.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에서 심곡까지 편도 4,5키로 왕복 9키로의 바다길 군사보호시설로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던 구간을 재정비하여 개방했다. 올 유월부터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란다. 하루 수천의 인파가 몰려들며 작은 심곡항은 이제 명소가 되었다.
물빛이 고운 항구로 입소문이 난 이 마을의 변신은 무한대로 열려있다. 벌써 여기저기에 식당과 카페가 생겨나 조용하던 동네가 어수선하게 변해간다. 낡은 폐가를 보수하는 곳도 보이고 반듯한 현대식 건물들이 좁은 길 옆에 듬성듬성 들어서기도 했다.
그런 심란한 풍경 속에 어느 누군가의 고향집 같은 편안함으로 미선이네가 있었다. 집앞 길가엔 바다부채길 부처바위의 설화가 담긴 서낭당도 있다. 미선이네는 강원도 토속음식점의 상호다. 감자옹심이, 메밀칼국수, 수수부꾸미, 감자부침이가 메뉴의 전부다. 안방 앞 대청마루를 식당으로 꾸며 바람 들지 않게 유리문을 달았다. 방안과 마루에 서너 줄 놓인 식탁들만 아니면 영락없이 친구네집에 온 것으로 여길만큼 푸근하다.
투박한 솜씨로 끓여 항아리에 담아낸 뜨끈한 옹심이를 덜어 먹는다. 그야말로 무덤덤한 맛 아무런 고명도 양념도 없는 맨 얼굴의 음식이다. 그래도 따뜻함이 한가득 묻어나는 건 뭔지. 몇 술 뜨는 동안 몸과 마음이 금세 두둑해지는 기분이 든다.
미선이는 이 댁 따님의 이름이다. 벌써 마흔여덟이 되었다며 식당을 연 지도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단다. 주인 아주머니는 밥집이 번성하게 된 후일담을 들려주셨다. 비슷한 시기에 두군데의 식당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외지인들이 밥 먹을만한 데가 있냐고 물으면 마을분들은 하나같이, 저 우에 미선이네로 가요, 하시더란다. 마을 어른들이 늘상 그집 딸네 이름을 불러왔던 습관 그대로. 쉼터라는 다른 식당의 상호는 도통 어르신들의 입에 붙질 않아 엉겹결에 미선이네란 이름 덕을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바다부채길로 심곡항이 널리 알려지며 이 집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쫄깃한 옹심이를 먹는 사이 연신 사람들이 들어온다. 겨울 한낮, 평일인데도 이 작은 식당을 찾아온 이들이 제법 많다. 그리 특별한 것도 맛깔스런 것도 아닌 이 음식을 사람들이 이토록 찾는 이유는 대체 무얼까. 그리움, 향수, 편안함의 이미지들 심심한 옹심이의 맛 속엔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맴돈다. 몸과 마음 헛헛한 어느 날이면 어렴풋이 미선이네 이 옹심이가 그리워질 것 같다.
첫댓글 2월에 강릉 가는 길에 다녀온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