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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풍류당 사랑방 장롱귀신과 함께 살아보기.
보라돌이 추천 0 조회 101 11.08.04 14:13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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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8.04 15:32

    첫댓글 등골이 오싹한데요~
    전 어릴적 생시로 두번 꿈에 한번 이렇게 그림자형상의 사람이 저를 쫓아오고 창문을 넘어오는 무서운 경험이 있었어요
    지금은 꿈을 구면 초특급 sf 환타지를 자주 구지만요~^^

  • 작성자 11.08.05 08:35

    이 보라돌이는 어렸을 때 환청을 듣거나 불가사의한 형상을 보거나 한 적은 없었답니다.
    불가사의한 체험은 한 번 했었지만요.

  • 11.08.04 16:12

    청년시절 여름 수박밭에 가다가 혼불은 두번 보았습니다 만은 ...
    무서움증인지..초등때..여름 칡흑같은 밤 여고 운동장을지나 샛길로 집을 가는데 분명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할머니께서 밤에 누가 부르면 대답하지말고
    절대 돌아보면 안된다..곧동 묘지도 달이 밝으면은 지나갈 수 있는데 안개끼고 이슬비 오면은
    도저히 혼자는 못지나가겠데요..다만 남자 둘이라면은 문제없지만요..
    청년때..담력을 기른다고 요굴이라는 고향 공동묘지입구에서 혼자씩 같다오기 내기도 했지요..
    무서움은 마음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1.08.05 08:37

    개구쟁이 시절 공동묘지 근처에 갈 일이 있을 때는 꼭 무리지어 갔었죠.
    무섬증이 많아서요. 그것도 한 낮에.... 정말, 해골이 빛이 나는지 살펴보기도 했구요.
    물론 실제로 해골을 본적은 없지만요.

  • 11.08.05 04:42

    낮에 읽어서 그런가 안무섭네요.. 귀신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것 같습니다. 집에 기운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것같아요. 저도 어렸을 때는 몸이 약해서 어머니가 무당을 불러다가 굿도하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게 다 어머니의 사랑이였고 그래서인지 지금은 아주 튼튼히 자랐습니다. 보라돌이님 늘 건강 챙기세요.. ^^

  • 작성자 11.08.05 08:39

    울 엄마 말씀에 의하면 내가 아기 때도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아픈 적이 있다는군요.

  • 11.08.05 07:47

    납량특집입니다. 전 아직까지 그런 경험은 없습니다. 가끔은 누군가 나를 부른듯한 소리가 있었지만 잘못 들었으려니 생각할 뿐 깊게 상념에 빠져 본적도 없구요.울 어머니가 귀신은 없다고 하셨고 인간들이 만들어 내고 점쟁이가 돈 벌어 먹으려고 하는 짓이다 그래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의식에 얽메이지 않으셨지요.그렇지만 주위의 지인은 과거 레슬링 선수였는데 귀신에게 홀렸는데 마누라가 방망이로 때려도 의식이 없었고 아프지도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불가사이한 일이죠.

  • 작성자 11.08.05 08:41

    불가사의한 일을 몇 차례 겪어서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란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일정 부분 인간의 의식이 그런 불가사의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설에는 의견을 함께 합니다.

  • 11.08.05 19:53

    저도 어린시절 그랬답니다.. 황달로 죽어갈때 약으로 안되었는데 누가 개똥참외을 쓰라해서 낫았다더군요..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시름 시름 앓아서 한달간 학교을 못갔지요. 초등 친구들이 저을 얼굴이 하얗고 약한 친구로 알다가 커서는 못알아 보더라고요. 불가사의한 힘으로 낫기도하고 아프기도하죠.

  • 11.08.05 08:14

    죽은 사람의 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한 불쌍한 혼령들이었네요...

  • 작성자 11.08.05 08:42

    아무래도 화마가 인명을 상한 곳이니까 크게 천도재를 올렸어야 했지 않았나 합니다.

  • 11.08.05 16:03

    장모님이 그날 밤 후레쉬 들고 옥상 올라가셨단 소리에
    한번 더 놀랐었죠. 어떻게 옥상까지.... 월남치마 입은 아줌마 인상은
    지금도 선한데, 어쩜 그 집에서 그런 일들이 연속 일어났을까?
    부적도 참 신기했고. 새벽1시쯤 멀리서 들러오던 덩덩 덩덕궁 풍장 소리
    뻔히 들으면서 더나 무서워 할까 말도 못했던 시절.
    한 사람은 몸으로 모진 고생을 했고, 또 한사람은 다행히
    작은 집이라도 살 돈을 마련했던 집이라 돌아볼수록 아리송송.....
    그 월남치마 아줌마가 미안하단 표정으로 웃은거 같은데. 벌써 17년 전 일이네요.

  • 11.08.05 16:08

    개인사가 너무 드러나는 이야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서 겪은 일인지라
    지금도 생각하면 그 집에서 살았던 6년간은 참 죽을둥 살둥이었던거 같네요.
    2층집 아래 주인네는 잘 되던 식당집에 불이 나고,
    살림이 쫄딱 쭐어서 이사갔는데 우린 2년을 더 버텼고.
    마침내 글 쓰던 제일 밝은 서재방 바닥이 주저 앉기 시작해서
    떠나야 한다 결심했었고, 그 집은 우리가 나가자 마자
    곡괭이 들고 온 인부들이 꿍꿍 바닥을 파헤쳤고
    때때로 떠돌이 고양이들이 쥐를 잡아 현관문 앞에 두고 갔는데
    훗날에서야 그게 못된짓이 아니고 가끔 밥 챙겨주는
    사람에 대한 선물이었단걸 알기도 했구요

  • 11.08.05 20:02

    흉가가 있나 봅니다.. 저는 이곳에 집을 짓고 이사온지 십년째인데 제가 시름 시름 아팠답니다. 남편 사업도 점점 안되고 주변이 찾아와서 상식으로 이해 못할 짓을 하고도 갔죠. 영적으로 무얼 본다는 사람에게 이 같은 일을 알리고 길을 찾아봤지만 결국 제 자신이 주변을 정리하기에 이르렀고 집주변에 나무을 심어서 집을 안정 시켜주었지요.
    어느 시점에 도달으니 안정이되고 건강해지니 마음 만큼은 다시 편안해 지더군요. 집과 주인에 관계가 묘하게 작용되는 것 같아요.

  • 11.08.07 09:44

    총각 때 서양 것들이 좋아 보여서, 어슬프게 팝송도 부르고
    니체나 카프카 싸르트르 까뮈로 이어지는 정신사에 매료 되면서
    꽤 도전적으로 살았거든요. 일테면 자기 존재에 대해 자신이 책임진다.
    선택과 결정 행동화도 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실존의 권리를 주도한다.
    뭐 그런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살아서 귀신의 존재 같은 건 인정할 수 없었답니다.
    그 용맹스런 젊은 시절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30대 후반 등장한 건데, 그때는 이미
    동양학에 깊이 빠져 있었을 때였죠. 일테면 자연 앞에 경건해 진 시절이랄까요.
    자신의 생명체가 유일무이한 개체가 아니란걸 느낄 때였죠. 그래서 제사 자체를
    모시지 않던 장남이

  • 11.08.06 00:28

    조상님 굶은 넋신이 열 다섯이나 제 주변을 맴돌며 아우성 친다는 한 스님 말씀에
    속으로 웃었더랬죠. 그땐 또 많이 아팠답니다. 방송국 엔지니어 한분은 훗날 저에게
    '당신 3년 못 넘길 줄 알았어.' 초죽음 된 얼굴로 초인 처럼 KBS에서 수많은 일을 했더랬죠.
    그 스님네 말을 반신반의하며 도봉산 영월암에서 조상님 천도재 지내기로 하고
    밥을 열다섯 그릇 차리고 큰 바위 앞에서 밤새 경을 읽고 저도 함께 무르팍 꿇고
    조상님들 굶은 넋신과 이야기 해본다고 했었죠. 시간이 가면서 달도 숨어 버린
    그 도봉산 깊은 밤 촛불만 차가운 가을밤을 밝혀 줬는데, 사무치더군요. 제 목숨이
    내 젊은 날 만용 때문에

  • 11.08.06 00:33

    일테면 실존주의에 빠져 우리 전통 뿐 아니라 기존 가치관을 부정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겠노란 그 만용 때문에 제사를 버린 게
    죽은 조상넋신을 그리도 힘들게 했던가? 잠시 사무쳤답니다. 그런데
    한 순간 5미터 쯤 떨어져 있던 세개의 촛불 중에 하나가 제 뺨을 스친듯
    화끈하더군요. 뭘까? 순간 다시 찬 바람이 뺨을 식혔구요. 그날
    제 뺨을 스쳐간 촛불인지 뭔지가 그 이후 내내 화두였답니다.
    암튼 그때 이후로 제사는 챙겨 드리고 있구요. 돌아 온 탕아에 대한
    조상님의 입마춤 아니었을까? 이딴 개인사가 나올 일이 아닌데
    보라돌이님이 작은 판도라를 살짝 열은 모양입니다.

  • 11.08.06 08:45

    한번에 열다섯 그릇이나 되는 밥상을 올리셨군요.. 저도 젊은날에 만용이라 생각하면서 우리것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네요.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인생에 겸허을 먼저 배워야함을 느껴봅니다.. 글을보니 저도 어머니께 회개의 마음이드네요.

  • 11.08.07 12:11

    생사일여... 제가 들은바로는 사람이 죽은날이 저승에서는 이승과같이 생일날이라고 하더랍니다. 후손이 죽은 조상께 제사드리는건 저승간 조상 생일밥이 되는격이라고 들었습니다.4대까지 기 제사를 드리는건 조상이 4대가지후손 제사밥을 먹곤 4대가 지나면 각기 이승에서의 닦은 바에 따라 신의 세계로 들어간다 합니다. 그러니 4대까지는 제사를 꼭 지내야 조상이 굶지 않는다 합니다. 그리고 복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온다 합니다.

  • 11.08.08 08:01

    증조까지는 방안 제사로 모시고 고조 이전에 분들은 산에서 한식때..시제로 모시지요...

  • 작성자 11.08.08 08:56

    어렸을때 아버지를 따라 시제 모시러 모악산에 간 일이 있었네요.
    모악산 자락 깊은 곳에 여러 기의 조상묘가 들어앉아 있었는데 그곳을 관리하는 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우리 종씨의 여러 자손들과 서로 안면을 트면서 집안 간 결속도 다지고
    조상에 대한 자부심도 한층 드높였던 것 같습니다.

  • 11.08.09 10:26

    잘읽었습니다 잠 쫓을때 한번씩 읽으시면 잠이 확~~~~

  • 작성자 11.08.09 11:11

    고맙습니다 조은님.
    아직도 몇 꼭지의 얘기가 더 남아있습니다.
    차근 차근 마저 올릴 겁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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