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불상, 종이에 수묵, 21.5x15cm
운보 선생의 작품은 한국인의 정서에 딱 맞는 체질적 우리 예술품이다. 동양화인지 서양화인지 구별도 잘못하는 미술품 문외한(門外漢)에게도 보고만 있어도 몸 속에서 혈관들이 자극한다. 저절로 흥이 돋구어진다. 산수화 건 풍속화 건 오래전부터 우리 집 골방에서 함께 살아온 가구(家具)이자 가족 같다.
바보산수니 청록산수니 운보 선생 다운 화풍을 개척한 국보급 화가로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화가이다.
언젠가 여행 중 우연히 충청북도 청원군에 있는 ‘운보의 집’에 들렸다가 즉석에서 적지 않은 금액에 청록산수라고 일컫는 대작을 하나 구입했는데, 운보 작품에 혹(惑)하여 충동구매를 한 일화이다. 아쉽게도 그 작품이 수도 없이 많은 작품 중의 하나라는 것이 못내 아쉬운 점이다. 판화여서 그렇다. 선생님 생전에 제작된 것으로 싸인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작품이 주는 이미지는 원화(原畫)와 다를바 없다. 지금도 아파트 거실에 걸린 선생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 후 운보 선생의 작품에 대해서는 나만의 애착이 생겼다. 전라남도 보성 봇재의 골동품 고물상에서 운보 선생의 판화 작품을 몇 점 구입하였다. 진품 판화인지 복사품인지 구별할 능력도 없는 나로서는 비싸지 않은 가격(20~30만 원)에 몇 차례 방문하여 사재기 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운보 선생의 작품이 경매 사이트에서는 수도 없이 올라온다. 유행에 밀려 서양화 유화(油畫) 제품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 형성된다. 수집 전문가도 아닌 단순 애호가로서 몇 번인가 구매를 망설이다가 포기한다. 소장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번 경매(에이 옥션)에 소품이 올라왔다. 1~2호 크기이다. 액자도 없다. 대상이 불상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운보 선생의
작품집에서 초창기 예수의 생애를 연작으로 발표한 여러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불상은 흔치 않아서이다.
손바닥만 한 소품(小品)이고 무색(無色)의 수묵화라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시작한다. 너무 소품이라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부처님이 나를 지목했는지 운 좋게 낙찰을 받는다. 와~ 드디어 운보 선생의 원화를 소장한다. ^^
우편물 소포 포장은 우람하다. 비닐 주머니에 담아 두꺼운 종이상자에 넣고는 상자를 또 뽕뽕이 비닐로 몇 번을 더 칭칭 감았다. 포장을 벗기면서도 옥동자의 기대감이 커진다.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의젓하다. 부처님은 크기에 상관없이 작가의 마음과 같은 형상(形像)을 내 보이신다.
2020. 02. 20.
요산요수 이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