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의 신 황제 다음으로 얘기해야 할 큰 신으로는 남방의 신 염제(炎 帝)가 있다.
염제는 신농(神 農)이라고 부른다. 염제는 어떠한 신이고 어떤 일들을 했을까?
신화에서 신의 이름은 그 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특징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황제가 누런 신이라면, 염제는 불꽃 炎 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불의 신이다.
한나라 때의 책인 (백호통) 에서 염제는 태양신으로 규정되기도 하고 (회남자)에서는 남방의 불의 작용을 지배하는 신으로 여겨진다.
염제는 아울러 신농(神農)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그가 불의 신임과 동시에 농업의 신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염제는 농업의 신인 만큼 그 생김새 또한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태양의 신, 염제 신농의 탄생
하늘은 높고 햇빛도 밝은 수천 년 전의 어느 맑은 날이었다. 지금처럼 대기가 오염되어 있지 않아 태초의 투명하고 맑은 기운이 감도는 그런 날씨 좋은 하루.
소전이라는 임금의 왕비 여등은 볕바라기를 하려고 나들이에 나섰다. 볕좋은 명당으로 이름나 지명조차 화려한 햇빛 인 화양 (華陽)이란 곳으로 간 것이다.
눈부신 햇볕 아래 마음껏 바람을 쐬고 있을 때, 왕비 여등은 문득 그곳에서 신비스럽게 생긴 용을 보았다. 순간 여등은 마치 온몸이 감전된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임신이 된것이었다. 여등은 열 달 후 아기를 낳았고 그 아이가 염제 신농이다.
인간 여인이 신령스러운 동물이나 거인 등을 만나 그 기운에 의해 임신을 하고 훌륭한 존재를 낳는다는 이야기는 동양신화에서 신이나 영웅의 탄생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신화학에서는 이를 감생신화라고 부른다. 감생신화는 아버지는 모르고 어머니만 알 수 있었던 모계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염제의 탄생신화는 또한 그가 태양신임을 암시하는데,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놀러 갔던 곳이 화려한 햇볕이라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염제 이전의 옛날 사람들은 아직 살아가기 위하여 들로 산으로 다니며 먹을것을 구해야 하는 원시수렵생활을 했다. 대개 사냥을 해서 짐승의 고기만을 먹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염제시대 무렵에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렵만으로 먹고살기가 어렵게되었다. 점차 날이갈수록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라고 할까. 염제는 백성들이 굶주리는것을 지켜보고는 대책을 마련하기에 골몰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식량을 생산해 내기위해 농업을 발명하게된다.
인류가 염제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농업의 단계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불은 농업과 어떤 관련이 있기에 염제는 두개의 신적인 속성을 함께 지니게 되었을까?
처음에 농업이 시작되었을 때는 경작지가 없었기 때문에 산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이 때문에 불의 신이 농업의 신과 동일시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염제는 태양의 신이기도 한데 태양이 작물의 생장을 주관한다는 사고가 염제로 하여금 농업의 신도 겸하게 하였을 것이다.
염제는 또한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한의학을 창시한 신인 셈이다. 염제는 어떤 풀이 인간에게 이롭고 해로운지를 감별하여 알려 주었는데, 동진시대에 지어진 소설집인 수신기에 의하면 염제에게는 자편이라는 신비한 붉은 채찍이 있어서 이 채찍으로 풀을 한번 후려치면 그 풀의 독성의 유뮤와 맛 특징 등을 다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한의학의 고전으로서 모든 한약재를 분류, 기록해놓은
(신농본초경)이라는 책은 염제의 이러한 신화적 행위를 기려 이름 붙여진 것이다.
고구려 월남에서 인기 있는신
염제는 한나라때에 만들어진 신들의 계보에서는 남방을 다스리는 지역신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중앙을 다스리는 황제보다도 일찍 등장하여 인류 문명의 초기에 많은 공적을 끼쳤던 위대한 신이었다.
그런데 그가 지역신으로 격하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가 후배 신인 황제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신들에대한 지배권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너그럽고 인자한 염제에 비하여 젊은 황제는 야심만만하고 권력 지향적이었다.
염제는 황제와의 두차례의 큰 전쟁을 벌였다. 한번은 본인이 직접 휘하의 신들을 거느리고, 또 한번은 그의 후계자인 치우가 대신하여 싸웠다. 지존의 자리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니 만큼 치열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두차례의 전쟁에서 패한 염제와 치우는 그들이 원래 거주했던 대륙의 동방에서 남방으로 이주 했다고 한다. 이것은 자유롭게 공존했던 신들의 세계가 강력한 신에 의한 지배의 시대, 중심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대륙에서 패배자인 염제는 주변 민족에게 인기가 높다.
그가 동방에서 남방으로 터전을 옮겼던 탓인지 동방과 남방의 민족들이 그를 시조신으로 섬기는 경우가 많다. 월남의 개국신화에서 염제는 민족의 시조신으로 등장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염제는 사람의 몸에 소머리를 하고 손에 벼이삭을 든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한다. 이것이야말로 염제의 신화적 형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중국에는 이러한 생동적인 염제의 그림이 없다. 염제는 인간화하여 의젓한 임금님이 되어 있을뿐이다.
인류를 위해 그토록 좋은 일을 많이 했던 염제, 자비롭고 베풀기 좋아했던 염제가 황제에게 축출된 것은 무언가 부당한 것 같고 억울한 느낌이 든다. 이 느낌 , 그것은 흔히 말하는 한(恨)과 같은 것은 아닐까?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가 동방의 신이었다가 남방으로 쫓겨간 염제의 억울한 심정에 멀리 뿌리를 대고 있다면 그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첫댓글 장만옥 주연의 화양연가' (영화제목)가 ... 동양신화에서 비롯 된거인가? 동서양 모든 신화에서의 탄생은 저절로 잉태를 하는데.......신과 인간의 차이는? 저절로 와 안저절로? 十理香님 댓글입니다. (잘못 올려서 옮겨왔습니다.)
비조님 수고가 넘 많으심당.. 그무언가를 위해서 정진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지요^^* 남이 알아주던 아니던간에요.....맹목적인 정진,우매한거 같지만.....세상에서의 풍요는 덤으로 얻어지는것을 아는사람만 알지요 >.<
비조님 수고 많으십니다~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