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과학 어메니티 과학
김옥자(부산해사고등학교 교사)
Ⅰ.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은 비례하는가?
과학이 무엇일까? 흔히들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말한다. 물론 탐구자는 인간이다. 그럼 인간이 왜 자연을 탐구하려 하는가? 인간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생활이 보다 편리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이러한 과학의 발전이 오히려 환경문제 등을 낳아 인간생활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 주장에 동의할 것인가에 앞서 과학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과학’이라는 용어는 라틴어의‘~을 안다’는 의미인‘scientia’로부터 유래하였다. 여러 사전에서는 라틴어에서 파생된‘과학’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식의 소유”(Webster's, 1973), "체계적으로 배열되고 일반적인 법칙, 기능, 숙달의 작용을 보여주는 사실이나 진리의 집합체를 다루는 지식이나 연구의 한 분파“(Stein, 1967). 그리고 <모든 미국인을 위한 과학> (Science for All Americans:Rutherford & Ahlgren, 1990)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과학은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즉, 과학은 과정과 내용을 모두 내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과학의 주된 목적은 자연 세계에서 관찰된 현상들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과학에서 밝혀진 내용은 탐구방법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탐구(inquiry )라는 용어의 정의도 다양하다. Gallagher(1971)는 탐구란 환경으로부터 지식을 획득하고 조직하는 과정 이라고 하였으며, Wilson(1974)은 탐구란 문제를 유발하는 자극에 대하여 그 변인(variables)과 속성(attr ibutes)을 탐색하고 발견해 나가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 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탐구란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는 과정, 방법 혹은 활동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활동은 탐구자 자신과 탐구대상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며 끊임없이 반복되어지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과학이란 인간이 자연과의 상호작용으로 자연의 규칙성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생활을 더욱 행복하게 할 것이라 기대된다. 사귄 세월이 길수록 친구와의 우정이 짙어지듯이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고 더 이상의 과학의 발전을 거부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과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두고 하는 말이지 과학의 본성 그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늘날의 과학은 물질론적,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분석적이고 요소 환원주의적인 사고로 자연을 탐구해 온 근대과학자들이 일구어 놓은 산물들이다. 오스트리아의 산림지기 출신 과학자 빅터 샤우버거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근대 과학의 발전 방향을 우려하고‘인류가 파멸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지금의 과학의 발전 방향을 180도 회전하라.’고 충고하였다. 이렇듯 과학은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이기에 과학을 행하는 자나 그 무리들의 신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또한 이러한 게 자연의 본성이다. 동전을 엎어 놓고 보면 엎어 놓은 모습이, 바로 놓고 보면 바로 놓은 모습이 관찰된다. 즉 자연은 관찰자가 관찰하고 싶은 대로 관찰되어지는 것이다. 관찰자가 관찰 대상인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인 관찰은 결코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관찰자도 끈끈하게 연결된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을 보다 제대로 관찰하려면 이러한 관찰자와 관찰대상간의 역학관계를 인정하여야 하고 사람이 아닌 인간(人間)의 눈으로 자연을 탐구하여야 한다. 즉 관찰자의 신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싹 틔운 합의된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가능한지? 이것의 탄생으로 어디서 어떤 형태의 부작용을 낳을 것인지? 그래도 좋은 것인지? 유전자 조작식품은? 원자력 발전소는? 등의 사회적 논의가 있고 난 뒤에 그 합의된 눈으로 자연을 바라봐야 참다운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전문가라는 명분 또는 개인의 지적소유권이라는 이유 등으로 이러한 논의가 과학자 한 사람 또는 그들 무리에 한정되어서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가 없다. 연구 활동 또는 탐구활동은 그들만의 일로 맡기더라도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적어도 과학기술의 결과가 하나의 산물로 사회에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는 과학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분명 우리가 무엇을 어느 정도 잘 못하고 있는지를 똑똑히 알고 어떤 일이든 수행해야 한다. 자유와 불안은 동전의 양면이다. 안정과 억압도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유와 불안은 에너지가 높은 상태이고 안정과 억압은 에너지가 낮은 상태이다. 한마디로 자유와 안정은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얻으려면 안정을 포기해야 하고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진정한 과학의 발전 방향은 이러한 과학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둘 다를 인정하고 그 상황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방향이어야 한다. 오늘 날의 과학기술은 과학의 부정적인 면은 덮어 두고 과학의 긍정적인 면만 앞세우고 있어 자칫 시민들을 과학의 노예로 이끌 위험이 있다.
이렇듯 과학의 발전 방향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한 사람이 정하는 것 보다 여럿이 함께 논의하여 정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그래서 과학이 주도하는 사회를 살아갈 미래 시민들은 일정 수준의 과학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과학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고 과학의 발전 방향을 바로 인도할 수 있다. 특히 윤리․도덕을 논하는 사람들은 더욱 과학을 사회 윤리 도덕적 입장에서 언급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기초 상식을 가져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논리적 근거 위해 과학자들이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지를 깨우쳐 줄 수 있는 큰 틀에서의 자연의 규칙성을 이해하고 일정 수준의 과학적 소양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에 앞서가는 과학윤리와 과학철학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들이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제어하고 안내하여야 할 것이다. 과학교육 현장에서 과학적 소양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과 비례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이다.’라 할 수 있다.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인간의 행복으로 이끌면 그리될 것이고 그와 반대 방향으로 이끌면 또한 그리 될 것이다. 이 방향이든 저 방향이든 그 선택은 바로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과학의 본성 자체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으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위하는 것으로 인간 삶을 윤택하게 함에 틀림없다. 인간(人間)이 시간(時間), 공간(空間)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 내는 과학은 진정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의 욕심을 조금씩만 줄이고 자연의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인다면 자연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과학의 시작도 사람과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이루고 나아가 자연의 변화에 귀기우리는 과학이 될 것이다. 이들 상호작용의 최상은 사랑이다.
Ⅱ. 행복한 삶이란?
반갑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행복한 삶을 살아보려는 의지에서 일 것입니다. 그럼 행복한 삶 이전에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 즉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음을 뜻할 겁니다. 그리고 움직인다는 것은 움직여지는 몸체가 있다는 것이고, 몸체가 있다는 것은 곧 질량이 있음을 뜻하며, 질량이 있음은 그 상황 그대로 존재하고 싶은 관성이 있음입니다. 이렇듯 존재는 그 특성상 존재관성이 있고, 이러한 존재를 변화시키려면 이 존재 관성과 맞서는 뭔가가 작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변화의 원인이 되는 뭔가를 힘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힘은 작용력과 반작용력이 있으며 반드시 쌍으로 작용하는 상호 작용력입니다. 우리 몸에 힘이 작용하여 우리 몸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우리 몸은 쉽게 변화되려 하지 않고 저항하는 관성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센 힘이란 보다 큰 관성(질량)을 보다 많이 변화시킨(큰 가속도를 낸) 힘입니다. 이를 두고 ‘힘은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한다.’, ‘F=ma’라고 표현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만물은 관성이 있고, 힘의 크기는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하며(또는 가속도는 힘에는 비례하고 질량에는 반비례한다.), 힘에는 작용력과 반작용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운동의 제1, 제2, 제3 법칙이라 말하며 모두가 자연에서 발견한 규칙성이기에 이리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자연에 존재하는 힘에는 몇 종류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든 존재와 존재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이 있습니다. 만유인력은 작용 범위는 무한히 넓지만 힘의 세기는 무지 약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막아지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느낄 수 있는 만유인력은 지구와 지구 위에 있는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지구중력뿐입니다. 다음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힘은 전자기력입니다. 전자기력은 인력과 척력 두 종류가 있으며 그 세기는 만유인력보다 무지 세지만 작용 범위는 무지 좁으며 차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만약에 자연에 만유인력과 전자기력 이 두 종류의 힘뿐이라면 원자핵이 존재할 수가 없겠죠. 원자핵은 (+)전기를 띄는 양성자와 전기를 띄지 않은 중성자가 뭉쳐 이뤄졌는데, 이들 입자 간에는 질량과 질량 사이에 서로 끄는 만유인력과, +전기와 +전기 사이에 서로 미는 반발력이 함께 존재하며 만유인력보다 센 전기력에 의해 원자핵은 뭉칠 수가 없을 것이니까 말이에요. 그러나 만물을 이루는 원자는 분명 존재합니다. 여기서 인간이 발견한 또 하나의 힘이 원자핵을 이루는 핵자들(양성자, 중성자 등)을 떨어지지 못하게 꽉 붙들고 있는 핵력입니다. 이 힘은 원자핵이라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만 작용할 수 있는 매우 강한 힘입니다. 그래서 일명 강력이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힘에 의해 뭉친 원자핵도 긴 세월이 지나면 붕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원자핵의 붕괴에 관여하는 힘이 인간이 마지막으로 발견한 약력이라는 힘입니다. 자연은 이렇게 만유인력, 전자기력, 핵력, 약력 등의 상호작용력에 의해 요소요소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지탱케 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관찰할 때, 이러한 힘에다 주의를 모아주면 자연은 더욱 정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만유인력, 전자기력, 핵력, 약력 중에서 진정으로 센 것은 어느 것이며 時間, 空間, 人間에서 사이 간(間)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변화에서도 힘은 필요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밥을 먹어 몸속에서 태우는 화학반응을 이용해서 얻습니다. 사람은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반드시 두 가지를 입력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연료인 밥이고, 다른 하나는 이 밥을 태우는 데 필요한 산소입니다. 밥을 먹어 먼저 이 밥 덩어리를 작게 부숩니다. 이 과정을 소화라고 말하고, 큰 덩어리는 불이 잘 붙지 않기 때문에 작게 부수는 것이지요. 이렇게 부순 작은 알갱이를 들숨으로 받아들인 산소로 몸속에서 태웁니다. 우리가 먹는 유기물의 구성 원소는 대부분이 탄소(C), 수소(H), 산소(O)입니다. 그래서 이 유기물이 타면 탄소(C)는 이산화탄소(CO2)로 변하고, 수소(H)는 물(H2O)로 변합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만약 먹은 영양소 중에 단백질성분이 있다면, 단백질의 구성 원소는 탄소, 수소, 산소 외 질소(N)가 있어 이 질소 성분 땜에 암모니아(NH3)도 생깁니다. 아무튼 우리가 먹은 영양소가 몸속에서 타면, 이산화탄소, 물 그리고 암모니아 등과 함께 에너지가 생깁니다. 이 과정을 호흡이라 말하고 대표적인 발열반응입니다. 즉, 물질이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이 때 생긴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반응하지 못하고 남은 음식물의 찌꺼기 등은 날숨과 땀, 오줌, 똥 등으로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암모니아는 독성이 있어 몸속에서 요소로 바뀌어져서 배출된답니다. 우리는 호흡의 결과 얻은 에너지를 살아가는 데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두 가지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건강한 먹 거리와 맑은 공기를 원활하게 공급받는 것과 얻은 에너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의 균형을 이루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즉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밥 잘 먹고 숨 잘 쉬는’ 두 가지 입력과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두 가지의 출력을 균형 잡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이 밥만 잘 먹고 숨만 잘 쉬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만 한다면, 즉 이 두 가지의 입․출력의 균형만 잡는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먹는 밥은 어디서 오나요? 녹색식물이 뿌리에서 빨아올린 물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그리고 태양빛을 이용하여 만든 것 아닙니까? 이 과정이 광합성이며 대표적인 흡열반응이지요. 즉 에너지가 물질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녹색식물 없는 밥을 생각 할 수 없으며, 물 없는 녹색식물을, 땅 없는 물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어디서 오나요? 나무 없는 공기, 물 없는 나무, 땅 없는 물, 태양 없는 나무 등등을 생각할 수 없으며 뿐만 아니라 지구중력이 있기에 이 모든 것이 이 공간 안에 붙들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요. 이로서 우리는 중력장 속에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생명의 최소 단위를 무엇이라 할까요? 세포? 세포 하나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을까요? 금방 죽죠. 그럼 조직? 기관? 아니 가장 완벽하게 보이는 개체인 우리 사람을, 바로 나는 생명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을까요? 나를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나 하나만 똑 떼어 놓는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단 몇 분도 살수 없습니다. 아니 지구 중력이 없다면 몸뚱이조차 하늘로 치솟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우린 적어도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공기를 품고 다녀야하며, 이 공기를 제공해 주는 나무를, 나무를 지탱케 하는 땅과 물을 안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물론 나무에 영양을 주는 저 태양 빛을 쬐면서 말입니다. 즉 완전해 보이는 우리 사람도 결코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 몇 분의 사고 실험으로도 금방 생명의 최소 단위는 바로 이 지구라는 자연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구도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라 보기도 곤란하지만요. 태양 없이는, 주위의 항성이나 행성 없이는 지구가 지금의 이 모습을 영위할 수는 없는 것이니깐 말입니다. 이제 자연보호 환경보호가 구호에 그쳐서 되는 일이 아님을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은, 그건 바로 내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임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것은, 바로 내 생명을 지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내 생명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내 이웃, 내 이웃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자연을 건강하게 지탱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주춧돌일 것입니다. 변화의 원인인 상호작용력 중에서 사랑이 최상의 에너지임이 명확해 집니다. 모두를 사랑하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인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과학교사입니다. 과학이 무엇입니까? 자연, 즉 생명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정말 우리는 삶의 목표에 정합되는 즐거운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과학교사인 것이 항상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러한 저희들의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과학을 감히 ‘어메니티 과학’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웃사랑 자연 사랑을 배워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과학을 ‘어메니티 과학’이라 이름 붙여 본 것입니다.
그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은 어떻게 사는 삶일까요? 먼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꾸어야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자연을 좀 더 구체화 시켜 보았습니다. 컴퓨터가 하드웨어와 전기에너지 그리고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작동되고, 사람이 몸과 밥을 먹은 에너지와 마음에 의해 살아가듯이, 자연도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그 어떤 운용체계에 의해 변화되어 가리라 생각합니다. 물질은 에너지를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즉 물질과 에너지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지요. 이 관계를 아인슈타인은 E=mc2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물질과 에너지만 하나인 것만은 아닙니다. 컴퓨터가 소프트웨어 없이 작동될 수 없고, 사람이 아무리 밥을 먹어 에너지를 얻었다 하더라도, 사람 몸을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결정하듯이, 물질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자연도 그 어떤 운영체계 없이는 결코 변화할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사람의 마음, 자연의 운용체계도 결코 나머지 두 가지 요소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는 몰라도 사람의 마음에 해당하는 것이나, 자연의 운용체계는 그렇게 간단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에너지 보존의 법칙부터 성립되지 않습니다. 정보는 아무리 카피를 해도 그 양이 줄어들지 않으니깐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수많은 정보에 영혼까지 담아서 더욱 복잡합니다. 그러니 자연의 운용체계는 더 더욱 복잡하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생명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몸과 맘이 결코 둘이 될 수 없고 하나인 것을 들어 우리 선조들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말하였습니다. 어쨌든 저희들은 자연을 이렇게 분리될 수 없는 세 가지의 큰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비록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아니 영원히 말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연은 이러한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자연의 마음까지 총체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연을 탐구해 가자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론적, 분석적인, 요소환원주의적인 자연관에서 벗어나 에너지론적인 총체적인 자연관을 갖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자연의 운영체계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 자연을 관찰하는 과학을 ‘어메니티 과학’이라 이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메니티 과학교육은 자연을 총체적으로 바라본다는 관점에서는 홀리스틱교육, 서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자연의 특성을 바라본다는 관점에서는 생태주의교육, 사람의 마음에, 자연의 시스템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진다는 관점에서는 영성교육의 형태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메니티 과학교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사는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말하지만,
과학교사는 백견이 불여일행(百見이 不如一行)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어메니티 과학교사는 백행이 불여일각(百行이 不如一覺)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E=mc2보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色 空卽是色) 문구를 더욱 좋아라 합니다.
아울러, 생활 속에서 어메니티 과학은 현대인의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라 소개하고 싶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사람의 건강은 밥 먹고 숨 쉬는 두 가지 입력과, 생각하고 행동하는 두 가지 출력에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과학의 발달로 먹 거리가 풍부하여 입력 량은 많아졌는데, 생각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탓에 출력양은 적습니다. 그래서 비대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비대해지는 불균형을 해결하려고 입력을 줄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보다 바람직한 방법은 출력을 늘이는 것입니다. 많이 생각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는 것입니다. 어메니티 과학은 생각하는 것이 기본이고, 행동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아이디어 없고 관찰․실험 없는 어메니티 과학은 없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을 사랑으로 충만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메니티 과학을 현대인들의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감히 주장하며 여러분들 앞에 소개합니다.
Ⅲ. `물, 불, 바람, 흙, 지렁이와 함께 하는 과학 활동
1. 어메니티(Amenity)란?
어메니티는 인간이 느끼는 쾌적하고 안락한 느낌을 말합니다. 어메니티 사상은 18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로 도시의 환경이 오염되고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도 더럽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나온 사상이 어메니티입니다. 즉 사람이 살기 좋고, 살고 싶은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어메니티 운동의 출발입니다.
오늘날의 어메니티 사상 또한 인간이 살기에 쾌적하고 기분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기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덧붙여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은 생태계의 모든 생물이 다 같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도 더해졌습니다. 결국 어메니티 사상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환경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어메니티 과학은 어메니티의 눈으로 과학을 바라보고자 하는 겁니다. 오늘날의 자연 파괴의 책임은 여러 부분이 과학이 책임이라고들 합니다. 반성 없는 과학, 인간 중심의 과학이 만들어 낸 비극이 오늘날의 자연파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참 과학은 자연을 사랑하고, 그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알고 서로간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메니티 과학은 과학교육 프로그램 속에 이러한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어메니티 과학의 어메니티 과학의 큰 뜻은 자연과의 사랑을 이끌어 내려는 것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이고, 그 관심의 시작은 내 곁에 그 대상이 있음을 알 때 생겨납니다. 어메니티 과학교육은 ‘자연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 첫째가 자연 속으로입니다.
자연 속으로 가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과정입니다. 현장학습과 체험학습, 생태기행을 강조합니다. 그 둘째가 이야기 속으로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 자연은 이 순간 싹튼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눈에 비치는 이 자연의 모습도 전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자연이 있기까지의 역사와 현재의 자연의 모습 뒤에 숨어있을 자연의 본 모습에 대해 앞서 살아 온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모으는 과정입니다. 마지막 그 셋째는 실험 속으로입니다. 앞서 관찰, 조사한 내용을 내 손끝에서 조작적인 방법으로 파헤쳐 보는 분석적인 과정입니다. 비록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지만 직접 품어보고 만져보는 확인 과정입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앞 선 세대로부터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직접 실험해 보는 과정이 어메니티 과학의 교육과정입니다.
실험대 위에 올려 진 비커 속의 물은 이미 물의 전체 모습이 아닌 물의 파편에 불과합니다. 이 한 조각의 물의 특성만으로도 우리는 물의 특별함에 놀랍니다. 하물며 생명력 있는 전체로서의 물의 본성은 얼마나 위대할까요? 이 위대한 자연이 바로 우리 인류의 본향임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어메니티 과학실험의 숨은 의지입니다.
2. 어메니티 과학의 내용은?
어메니티 과학은 자연을 탐구하여 자연을 닮고자 합니다. 자연은 상호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체계가 아니라 상호조화를 바탕으로 운행되는 체계입니다. “자연은 우리의 가장 뛰어난 스승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가려고 해야지, 그것을 정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인류가 파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석적이고 경쟁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오스트리아의 산림지기 빅터 샤우버거의 생각을 배워 실천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어메니티 과학이 하는 일은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즉 자연과의 사랑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의 시작은 그 대상에 대한 관심이고, 그 관심은 내 곁에 그 대상이 있음을 알 때 생겨납니다. 그래서 어메니티 과학의 내용은 자연이 우리 곁에 있음을 확인하는 실험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먼저 자연의 기본 소재를 크게 물질(입자)과 에너지(場)로 나눕니다. 그리고 물질은 기체 상태의 공기, 액체 상태의 물, 고체 상태의 흙의 3주제로 나누고, 에너지는 인간이 발견한 제 1의 힘인 중력을 힘으로, 제 2의 힘인 전자기에 소리, 빛, 불을 더해 5주제로 나눕니다. 여기에 생명이란 큰 주제로 관찰자인 사람과 이 모든 자연이 공존하는 상태의 상징으로 숲이라는 2주제를 더하여 총 10개 주제로 구분 짓습니다. 이 10가지 주제를 또 다시 ‘자연을 찾아서(확인 실험)’, ‘별난 친구 자연(특성을 아는 실험)’, ‘자연은 내 친구(이용하는 실험)’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이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험들로 꾸며 놓은 것이 어메니티 과학실험의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 마당에다 덧붙여 특별 마당으로, 과학에 흥미와 깊이를 더할 욕심으로 <도깨비>마당을, 또 자원의 재활용 등으로 환경문제에 더욱 관심 갖게 하며, 연장 다루기 등을 통하여 신변처리 능력을 기를 의지로 <대장간>마당을 보태었습니다.
3. 어메니티 과학실험에서 강조하는 것들
가. 존재의 확인
<실험> 토끼가 용궁의 거북이를 만나려면?
▣ 준비물 : 페트병, 페트병 깔때기, 이쑤시개, 밑 뚫린 페트병, 송곳, 수조, 풍선, 빨 대, 바가지, 컵 등.
▣ 실험 과정
-. 페트병에 풍선을 밀어 넣고 풍선 주둥이로
페트병 입구를 감싼다. 풍선을 불어 보자.
어떻게 하면 불 수 있을까?
-. 페트병 위에 깔때기를 꽂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꼭 막고, 물을 부어보자. 어떻게 하면 물이 내려갈까?
-. 송곳을 불에 달구어, 페트병 아래쪽 같은 높이에
이쑤시개로 막을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빙 돌아가며 여러 개 뚫는다. 위쪽 주둥이 가 까이에도 한 개의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이쑤시개를 꽂아 이 구멍들을 모두 막는다. 병에다 물을 담고 뚜껑을 꼭 막는다.
이제, 이 병을 수직으로 세우고 아래쪽 이쑤시개 1개를 뽑아 보자. 이번에는 뚫린 구멍의 반대쪽 이쑤시개 하나 를 뽑아 보자. 이쑤시개 모두를 뽑아보자. 어떻게 하면 물이 나올까?
-. 거북이 모형을 만들어 수조 바닥에 붙인다. 그리고 휴지로 토끼 모형을 만들어 페트 병뚜껑에 담는다. 수조에 물을 담고 그 물 위에 토끼 모형을 띄운다. 어떻게 하면 이 토끼를 물에 젖지 않고 용궁의 거북이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 나의 날숨을 컵에 모아보자.
-. 주스를 빨 수 없는 빨대를 만들어 보자.
▣ 왜 그럴까?
나. A=B이고, B=C이면, A=C이다
<실험 1> 늘어난 고무줄이 열을 받으면?
▣ 준비물 : 나무젓가락, 고무 밴드, 봉 달린 핀, 야쿠르트 빨대 조각, 전기 테이프, 가 위.
▣ 실험 과정
-. 나무젓가락(두 짝 붙어 있는 그대로)의 양끝과 가운데쯤에 전기 테이프로 두어 번 감 는다.
-. 빨대를 2cm 정도 잘라 가운데쯤에 핀을 꽂는다. 핀 끝이 반대편에 조금 빠져나오도록 꽂는다.
-. 고무 밴드를 나무젓가락에 길이로 걸쳐놓는다.
-. 빨대 꽂힌 핀을 나무젓가락의 가운데 전기테이프와 그 위를 지나는 고무 밴드 사이에 수평 되게 놓는다.
-.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서 빨대 양옆의 고무줄을 번갈아 가면서 당겨 보자. 빨대 는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는가? 고무줄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회전하는가, 줄어드는 방 향으로 회전하는가?
-. 정확하게 관찰하였으면, 이제 사진처럼 빨대의 한쪽 방향을 선택하여 그 쪽 고무줄에 입김을 불어보자.
-. 빨대는 어느 쪽으로 회전하는가? 고무줄이 늘어나는 쪽인가, 고무줄이 줄어드는 쪽인 가?
▣ 왜 그럴까?
<실험 2> 이산화탄소 속에 둔 풍선의 부피는?
▣ 준비물 : 작은 풍선, 투명한 비닐봉지, 드라이아이스.
▣ 실험 과정
-. 작은 풍선을 크게 불어 입구를 꼭 묶는다.
-. 투명한 비닐봉지에 드라이아이스 조각과 부풀린 작은 풍선을
함께 넣고 역시 입구를 꼭 묶는다.
-. 시간이 지나면 비닐봉지 속의 풍선은 어떻게 되겠는가?
-. 비슷한 크기의 이산화탄소 풍선과 공기 풍선을 만들어 두면 어느 풍선이 더 빨리 줄 어 들겠는가?
▣ 왜 그럴까?
다. 정성에서 정량으로
<실험 1> 소원을 들어주는 용액
▣ 준비물 : 투명한 페트병(마개 포함), 페놀레드, 아주 묽은 수산화나트륨 수용액, 물.
▣ 실험 과정
-. 페트병에 물을 반쯤 담는다.
-. 여기에 페놀레드용액 3~4 방울 떨어뜨린다.
-. 이 용액에 수산화나트륨수용액 2~3방울을 떨어뜨린
다. 용액의 색깔이 붉어지면 그친다. 페트병 뚜껑을
닫아둔다. 준비 완료!!
-. 이 용액은 소원을 들어주는 용액입니다. 누구든 이 용액에 소리 내어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경우라면 이 용액의 색깔이 노란색으로 바뀝니다. 페트병 입구에 입 을 대고 소리 내어 소원을 빌어 보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이루고 싶을 소원을 15번 정도 반복해서 말하세요. 그리고 페트병 뚜껑을 꽉 닫고, 페트병을 세차게 흔들면서 “얍!”하며 기합을 넣어 보세요. 용액은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 준다는 사인을 보낼 것입니다.
▣ 왜 그럴까?
<실험 2> 홍해의 기적 外
▣ 준비물 : 밑 뚫린 페트병(900mL, 뚜껑 포함), 페트병(900mL), 커피포트, 수조, 음료수 캔 두 종류(알루미늄, 주석), 빨대 꽂힌 페트병 뚜껑, 토치, 도가니 집게, 바가지, 풍선, 수건, 식용색소.
▣ 실험 과정
-. 커피포트로 물을 끓인다.
-. 수조에 2컵 정도 물을 붓고 푸른 색소를 풀어둔다.
-. 포트의 물이 끓으면, 밑 뚫린 페트병에 부어 흔들어서 페트병 안을 데워낸다.
-. 데운 페트병을 수조의 물에 세워 두고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
-. 같은 방법으로 페트병을 뜨겁게 데워내고, 재빨리 주둥이를 풍선으로 씌운다. 이 페 트병을 찬물 속에 담그고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
-. 역시 페트병을 뜨겁게 데워내고, 재빨리 빨대 꽂힌 뚜껑을 닫고 빨대 끝을 수조의 물 속에 담그고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
-. 수조의 물을 가득 채운다.
-. 주석 캔에 물을 조금 붓고
토치로 가열한다. 물이 팔팔 끓으면
남은 물을 수조의 물 위에 부어 버림과
동시에 캔 입구를 수면에 잠시 닫게
하였다가 곧바로 캔을 바로 세운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 이번에는 알루미늄캔으로 같은 실험을 해보자. 어떻게 되는가?
▣ 왜 그럴까?
<실험 3> 필름통 온도계
▣ 준비물 : 필름통, 투명 빨대, 송곳, 고무찰흙, 색소, 토치.
▣ 실험 과정
-. 송곳을 불에 달구어 필름통 뚜껑에 빨대가 꽂힐 정도의 구멍을 뚫는다.
-. 그 구멍에 빨대를, 뚜껑을 닫았을 때 빨대 끝이 필름통 바닥에 닿을 정도의 길이로 꽂는다.
-. 빨대 꽂힌 주위에 고무 찰흙을 붙여서 공기가 통하지 않게 밀폐시킨다.
-. 필름통에 색소 탄 물을 절반쯤 붓고, 뚜껑을 덮는다. 이러면 준비 완료!!
-. 이 필름통을 따뜻한 물속에 담가 보자. 찬 물 속에도 담가 보자.
-. 온도계를 사용하여 빨대에 대충이라도 눈금을 표시해 보자.
▣ 왜 그럴까?
라. 생활 속에서
<실험> 숨 쉬는 도자기
▣ 준비물 : 수조, 페트병 大, 가지 달린 삼각플라스크, 고무관, 고무마개, ㄱ자 유리관, 우드락, 초벌구이 도자기, 송곳, 버너, 알루미늄 테이프, 이쑤시개.
▣ 실험 과정
-. 도자기를 뒤집어씌울 수 있는 크기의 페트병 하나를 허리 부분을 자르고 자른 부분을 알루미늄 테이프로 붙여 간이 비커로 만든다.
-. 튼튼한 페트병(탄산음료 통이 아닌 주스 통) 하나의 아랫부분에 송곳을 불에 달구어 이쑤시개가 꽂힐 정도의 구멍을 뚫는다.
-. 페트병에 맞는 고무마개와 도자기에 맞는 고무마개 1개씩을 준비하여, <그림>과 같이 유리관(또는 볼펜 깍지)으로 연결한다.
-. 고무마개를 도자기에 꽂는다.
-. 페트병 아래쪽에 뚫린 구멍을
이쑤시개로 꽂아 막고,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도자기가 꽂힌 나머지 고무마개로 막는다.
-. 페트병을 안전하게 세워두고, 페트병 아래쪽 이쑤시개를 뽑는다.
-. 수상치환으로 페트병으로 만든 간이 비커에 수소 기체를 모은다.
-. 수소를 모은 페트병 비커를 도자기 바깥에 씌우고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하자.
-. 물줄기가 그치면 페트병을 벗기고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하자.
▣ 왜 그럴까?
마. 이완된 집중으로
<실험> 어두울수록 더 잘 보여요.
▣ 준비물 : 사연이 적힌 편지지가 넣어져 있는 편지 봉투, 검은색 마분지.
▣ 실험 과정
-. 마분지를 둥글게 말아 대롱을 만들고 왼 속 엄지와 검지로 허리를 잡고 나머지 세 손 가락은 가볍게 편 채, 대롱을 오른 쪽 눈에 갖다 대고서 두 눈에 들어오는 현상을 느 껴보자. 구멍은 어디에 뚫려 있는가?
-. 그 대롱 끝에 오른 손 바닥을 놓고 손금을 보자. 대롱 밖에서 보는 것과 어떻게 다른 가?
-. 편지 봉투 속의 편지 내용을 편지지를 꺼내지 않고 읽어보자.
-. 대롱을 이용하여 편지를 읽어보자.
▣ 왜 그럴까?
4. 어메니티 과학수업의 방법 : 의문(?)이 느낌(!)으로 바뀌는 수업
사람은 모두 자기 신념대로 경험합니다. 그래서 먼저 교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학습 내용을 정하고, 다음, 이 것을 학습자가 알고자하는 신념으로 바꾸게 한 후, 최종 적으로 학습자가 이 신념대로 경험하게 하는 수업입니 다. 즉 알고자 하는 의문(?)을 느낌(!)이란 경험으로 옮 겨주는 수업방식입니다.
가. 수업의 특성
먼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확인하고, 교사의 발문과 학생의 몸소 체험으로 이 신념을 수정 보완한 후, 의도적인 새로운 신념을 심는다.
나. 주안점
-. 학생의 신념을 학습의 씨앗으로 삼는다.
-. 과학개념이 들어 있는 현상을 주위에서 찾아 활용한다.
-. 머리로 푸는 것이 아닌, 손으로, 가슴으로 푸는 자투리 실험을 제공한다.
다. 수업의 진행 방법 및 예시
1) 진행방법
2) 수업의 예시
단원 : 지구과학
Ⅳ. 대기의 순환과 일기의 변화
1. 구름과 강수
2) 단열변화
수업의 진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