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1-20
▣ 마지막 때-야고보서 5장-
본 마지막 장에는 몇 가지 잡다한 문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핵심 사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인 것 같다(7-9절).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진심으로, 고대할 때에는 그의 매일의 삶에서 그 증거들을 보게 될 것이다.
1. 부당한 때에 인내함(5:1-11)
그 당시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에 큰 격차가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중류 계층“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가 아니었다. 복음은 가난한 대중에게 호소한 듯하며,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부자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고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억압했던 것 같다.
부자들의 죄(1-6절)-야고보는 몇 가지 죄를 열거하면서 부자들이 앞으로 닥칠 심판을 위해 준비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첫째로, 그는 재물 쌓음을 지적하고(1-3절), 부자가 재물을 쌓는 것은 쇠잔해질 것을 위함일 뿐이라고 한다. 그들의 금과 은과 옷(마 6:19-20)은 단지 녹슬고 삼킨 바될 것이다. 그 부유함이 쇠잔해짐으로써 오늘날 자기 본위적인 부자들에게 증거가 되며, 심판날에 다시 그들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것이다. 이들이 재물을 쌓았지만 그들은 “마지막 때“임과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야고보는 아마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로마의 침략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야고보가 열거하는 두번째 죄는 삯을 훔치고 있다는 것이다(4절). 왜냐하면 이러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정직한 삯을 보류해 두었기 때문이다(레 19:13). 이들은 사기수법으로 삯을 훔치고 있었으나, 그들의 죄가 그들을 들추어 낼 것이었다. “돈이 말해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는, 훔친 삯이 공의 때문에 하나님께 소리질렀으며 또한 가난한 일꾼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만군의 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전투하시는 면“에서의 칭호이다(사 1:9/롬 3:29). 하나님은 자기 군대와 함께 오시어 이런 도적들을 심판하신다!
세번째로 언급된 죄는 낭비하는 생활이다(5절).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생활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딤전 6:17).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궁핍한 자들에게서 훔치면서 낭비하고 사치스럽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이러한 사람들은 낭비스럽게 사치하고 제멋대로 소비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정당하지 못하게 돈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고보는 이들을 단지 도살당하기 위해 살찌우고 있으면서도 무감각하게 한정없이 먹어 대는 가축에 비유하였다!
마지막의 죄는 부당함이다(6절). 부자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대항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경우를 의로우신 재판장의 손에 맡겼다(롬 12:17-21).
가난한 자들의 인내(7-11절)-야고보는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약속에서 선을 고정시키라고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한다. “인내“라는 말은 신자들이 게으르게 앉아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견디다, 즉 짐을 지며 주께서 오시기까지 전투를 한다는 개념을 수반한다. 야고보는 이런 인내의 교훈으로 경종을 울리는 몇 가지 예화를 사용한다.
● 농부(7-8절): 농부가 씨를 뿌리고 그 땅을 가꾸지만 즉시로 곡식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 비를 내려 물을 대시면 그 때에야 비로소 추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이른 비는 10-11월에, 늦은 비는 4-5월에 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낙심하지 말찌니 때가 되면 거두리라“는 것을 알고서 인내해야만 한다.
● 심판자(9절): 그들이 당한 시련들은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분명히 비판적이 되게 했고, 교회 내에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게 하였음에 분명하다. 야고보는 그들이 심판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심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문 밖에서 계신다! 주님은 호소하는 말을 듣고 속히 오셔서 일들을 바로 잡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투덜대며 원망하는 것은 심각한 죄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임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원망이나 비판을 그처럼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 선지자들(10-11절): 야고보는 죄인들의 수중에서 고난을 당했으나 그들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승리를 거둔 구약 신자들에 대해서 말한다. 욥은 그 전형적인 표본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시련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을 때, 비록 욥은 하나님이 행하고 계신 일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심중에 놀라운 목적(목표)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의 삶에 어떤 시련들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시며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약 5:12
2. 말에 순전함(5:12)
야고보는 법적인 맹세는 금하지 않았는데, 이는 예수님이시라도 심문받으실 때 맹세하셨기 때문이다(마 26:63-64). 야고보는 모두가 정직한 말, 곧 맹세로 약속은 “뒷받침“할 필요가 없는 그런 말을 하라는 뜻이다. 부자들은 그들의약속들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손해가 나는 일이라 해도 자기의 말을 언제나 지켜야 한다."
약 5:13-18
3. 시련 중에 기도함(5:13-18)
성경의 그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인이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없다. 다만 성경은 시련이 올 때에 어떻게 하라는 말을 해준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하는데, 즉 하나님이 특별히 계획하신 시련을 통과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기도하라!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옮기실 것이라고 약속하지는 않으나 그 시련을 견디는 데에 필요한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제시한다. 바울을 기억하라(고후 12장).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병이 들 것인데 15절에 나와 있는 바로는 이 병이 죄의 결과로 되어 있다(고전 11:30 참조). 이들은 어떻게 행해야 마땅한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 기도를 요청하라. 로마 카톨릭은 이 제안을 그들의 “종부성사“(일종시에 성유를 바름)의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사제가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를 한다. 이것은 그의 영혼이 영원에 임할 준비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장로들이 그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것으로 이 사역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죄를 사하는 데에는 제사장과 관련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더우기, “기름을 바르다“는 단어는 “안마“(massage)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말로서, 마가복음 16장 1절에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장사하기 위해 준비하는 데에서 사용되었다. 기름은 당시 보편적인 약품이었고, 의사들은 흔히 기름을 바르고 환자를 맛사지했다(눅 10:34). 우리는 전신을 문지르는 카톨릭사제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 여기서의 모습은 성도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건강을 위하여 공급하신 수단들을 사용한다는 묘사이다.
야고보는 16절에서 교훈을 요약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범죄하였을 때 그들의 죄를 고백해야 했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는 신자들이 그들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경미한 암시조차도 나와 있지 않다(요일 1:9 참조).
야고보는 기도를 믿었다. 사실상, 전승에 의하면 그가 너무도 기도에 시간을 많이 보내어 그의 무릎은 딱딱해지고 못이 박혔다고 한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역사하시지만, 그 기도는 깨끗하고 헌신된 마음으로부터 나와야만 한다. 야고보는 기도의 능력에 대한 모범으로서 엘리야를 든다(왕상 17장이하 참조).
“성정이 같은“이란 말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본성을 지닌“이란 뜻이다(행 14:15 참조)엘리야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된 것은 그의 타고난 은사가 아니라 그의 헌신과 믿음이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시간으로 삼기만 하면 그들을 위하여 오늘날도 경이로운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4. 끈기있게 구령(救靈)함(5:19-20)
우리는 자기 자신의 시련에 둘러싸인 나머지 잃어버린 사람들과 곁길로 나간 형제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잊어 버릴 수가 있다. 이 구절들의 근본적인 의미는 성도들이 방황하는 형제들을 주께로 돌이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심하다“는 말은 “다시 되돌린다“는 뜻이다. 성도가 진리로부터 미혹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다.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심각한 징계와 죽음을 맞기까지 할 위험에 처할수 있다(고전 11:30). 사랑으로 우리는 그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힘써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그를 죽음(하나님의 징계)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며, 사랑으로 그의 죄가 가리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벧전 4:8 참조).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또한 잃어버린 자들에게 적용시킬 수도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임할 그리스도의 재림을 볼 때, 우리는 증거하는 일에 헌신해야 할 필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진실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구령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