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 2014 - 11]
63번째 내 생일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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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월 11일은 내가 맞는 63번째 생일입니다.
그래서 어제 나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위해 미역국을 끓일까? 지금 당장 내가 먹고 싶은 콩나물국을 끓일까? 곰곰이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내 생일 국을 끓이신다면 틀림없이 미역국일 테니까 나는 어머니를 위해 시원한 콩나물국을 끓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은 먹고 싶은 콩나물국을 생일날도 못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리 했습니다. *^0^* 그래서 어제 나는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러 읍내에 나간 길에 어머니가 마실 우유와 카스테라, 콩나물과 연두부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서툰 솜씨로 콩나물국을 끓이는 번거로움보다 밤에 끓여 놓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늦은 밤에 황태도 작게 잘라 믹서에 갈고, 다시마도 갈았습니다. 이번엔 비릿한 맛을 남기는 멸치는 안 넣기로 했지요. 다 끓인 뒤에 파를 듬뿍 넣어 아침에 살짝 끓여 먹으면 되니까 그럼 여기까지 하다가 혹시 더들어갈 것이 있는지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응, 그렇게 하면 됐고요. 먹을 때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세요.”
생일인 오늘 아침 새로 한 뜨거운 밥과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콩나물국은 환상이었습니다. 어머니께는 익은 콩나물도 믹서에 듬뿍 갈아 드렸습니다. 양파 잘게 썰어 달걀말이도 하고 이른 아침부터 주방에 온기와 고소한 냄새가 가득합니다. 어머니가 국이 시원하다시며 즐거워하십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설마 어머니 생신이겠어요? 누구 생일인지 맞춰보세요!”
“알았다. 네 생일이구나.”
“와우~! 그거 알기 어려운 문젠데 쉽게 맞추네요. 우리 어머니 대단하십니다.”
“*^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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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인 오늘은 내리교회 최 목사가 6년 목회를 뒤로 하고 서울에 있는 큰 교회 부담임목사로 부임하기 위해 이사를 가는 날이기도 합니다. 나는 3년전 이곳에 이사 오던 날 찾아와 준 최 목사가 생각나서 따로 전별금도 주고 오늘 이사하는 그곳에 함께 할 후배들과 최 목사 가족들과 영월에서 먹을 마지막 식사를 대접하려고 내리교회로 갔습니다.
제천에서 이삿짐을 나르는 차를 구하지 못해서 서울에서 차를 불렀는데 아침 9시에 오기로 한 차가 7시에 와서 쉽게 이른 시간에 짐을 다 쌀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11시에 이삿짐을 보내고 영월 동강한우로 왔습니다. 우리끼리야 마지막 식탁이라고 했지만 내 마음으로는 내 생일 턱이니 잘 먹이자 싶어서 등심, 안심, 채끝살 등등 소고기를 먹었는데 옆에 있는 정육센터에서 각 부위의 고기를 사다가 상차림을 해주는 식탁에서 구워 먹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삿짐이 정오를 넘겨 출발할하리라 생각한 흥월교회 김 목사는 식당으로 직접 왔습니다. 그 김목사네 교회 집사님이 이곳 총 매니저인데 담임목사가 왔다고 한상에 한 접시씩 육회를 내오고 어린이 둘까지 열 명이 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최 목사와 한 목사는 소고기보신탕 한 그릇씩,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잘 먹고 배부르니 헤어지는 것이 딱히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모두가 흡족하고 푸근한 마음이 되니 신기하게도 이별조차 푸근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최 목사가 어제 이삿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저녁밥을 해 먹기가 그래서 영월에 나온 길에 저녁을 먹고 들어갔는데 아이들과 먹느라 분식집에서 떡볶기와 김밥을 먹었답니다. 그런데 이 밥이 영월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서글퍼지더랍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풍성한 점심이 영월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되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우리 모두는 더욱 즐거워졌습니다. 이전에 몇 명 떠난 것도 아니지만 동문 송별식을 한 뒤에 이사 떠나는 날 다시 모여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 후배들도 즐거워합니다. 나도 한마디 보탰습니다.
“이제 부터는 영월 떠나는 마지막 식사는 한우고기다. 어라, 떠나라는 얘기처럼 드리는데 이건 아니야!”
나는 서둘러 한우고기 먹는데까지 라며 말 정리를 했고 우리는 뒤집어지게 즐겁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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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월교회 김 목사는 긴장감이 많은지 입가에 벌겋게 부스럼이 났습니다. 나도 그 나이에 늘 나던 대상포진입니다. 20년 전 쯤에 조비락스라는 영국제 치료제가 나와 그걸 쓴 뒤에는 빈도수가 낮아지고 지금은 일 년에 한번쯤 약을 바를까 싶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는 그게 대상포진인 줄도 모르고 약을 알려주었는데 영월에서 살 수 없다면서 오늘도 여전히 입가가 벌개진 모습으로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 쓰던 것을 먼저 주면 되잖아요?”
내참, 나이 들고 볼 일입니다. 늘 모르겠다던 아내가 이렇게 한방에 명쾌해진 것을 보면 성숙해지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누구와 함께 나이 들어가느냐 도 중요한 요점일 것입니다. ㅋㅋㅋ *^0^*
나는 김 목사에게 전화를 하고 내가 쓰던 조비락스를 들고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김 목사 내외는 지난 12월 교회가 불타고 난 뒤에 영월군에서 마련해준 임대주택에서 교회를 건축하는 한 해동안 살다가 얼마 전에 새로 지은 교회 사택으로 이사한 뒤에 퇴거 신고를 하기위한 마지막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김 목사를 만나자마자 약을 주고 일단 백미러를 보고 약을 짜서 바르라고 했지요. 그리고 청소 마무리하는 것을 지켜보고 함께 헤어졌습니다.
헤어질 때 쯤 되어서 김 목사는 신기해하면서 입가에 가려움증이 사라지고 반대편에 다시 생기려는 증상이 사라졌다기에 삼일동안은 생각날 때마다 하루에 대여섯 차례 바르라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집에 두고 입가에 증상이 나타나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발라주면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몸에서 힘을 못쓸 거라 했습니다.
“이걸 저를 주시면 목사님은 어떻게 하시려 구요.”
“나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지. 걱정하지 말아 하나님께서 벌써 내 아내에게 무슨 조치를 하셨을 거야. 한두 해 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세상은 다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 그 세상 꽤 괜찮아. 사실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그 세상을 살고 있는 거잖아?”
오늘은 주님께서 함께 놀아주신 기쁘고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글을 쓰고 9시가 안됐지만 일찌감치 자리에 눕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행복의 샘터에서 물을 긷듯 기쁘고 풍성한 하루였습니다.
2014. 12. 11
덤 목사
첫댓글 기쁜날 잘 지내신 모습 글로 읽기만해도 흐뭇하네요^^ 축하드립니다~
*^0^* 고맙습니다. 기쁜 성탄과 복된 새해를 맞으시길 축원합니다! *^0^*
겨울인데 왜이리 따뜻한가요? 목사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조비락스 저도 하나 사 두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