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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인터뷰] 이동걸 前 金融硏究院長 "강만수 重用, 한탕하고 脫出하자?"
기사입력 2011-03-23 오전 9:27:45
돈 앞에서 체면 따지는 사람은 없다. 利子를 0.1%라도 더 쳐주는 銀行에 돈을 맡기려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마음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게 世上의 原理라고, 지극히 自然스러운 마음이라고 認定한다. 이처럼 벌거벗은 慾望들이 알알이 모이고 부딪혀 거품 일으키며 흐르는 바다가 바로 '金融'이다. 아무런 假飾없는, 實用의 世界다.
'金融'과 '선비'의 組合이 영 어색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벌거벗은 慾望을 그대로 認定하는 선비라니,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慾望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곳일수록 '선비'처럼 올곧은 審判이 必要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큰돈이 오가는 去來일수록 規則이 嚴해야 하는 法. 그렇지 않으면, 타짜들이 날뛰고, 結局 판 自體가 깨진다.
무턱대고 '實用'만 쫓는 論理가, '實用' 그 自體를 爲해서도 害로운 理由다. 한마디로, 金融에도 선비가 必要하다. 그리고 여기, 선비 같은 金融人이 있다.
"硏究의 自律性과 獨立性을 한갓 쓸데없는 奢侈品 程度로 생각하는 歪曲된 '實用' 精神, 그러한 巨大한 公權力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以上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金融硏究院을 떠나기로 決定하였습니다. 硏究院을 政府의 Think Tank(頭腦)가 아니라 Mouth Tank(입) 程度로 생각하는 現 政府에게 硏究의 自律性과 獨立性은 한갓 奢侈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걸 翰林大 財務金融學科 敎授가
2009년 1월에 쓴 글이다. 當時 이 敎授는 韓國金融硏究院 院長이었고, 任期를 1년6개월 남긴 狀態에서 갑작스레 사표를 냈다. 이 글은 當時 이 敎授가 金融硏究院 職員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一部다. 金産分離 緩和, 資本市場統合法 施行 等 現 政府의 金融政策에 대해 反對 立場을 分明하게 밝혀왔던 그는 政府로부터 다양한 압력을 받았고, 結局 자기 발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 野人生活을 했다.當時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이 '선비'를 떠올렸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모습이 딱 '선비'라는 게다. 그런데 그에겐 이런 일이 이게 처음이 아니다. 盧武鉉 政府 時節인 2004년 8월에도 그는 金融監督委員會(現 金融委員會) 副委員長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었다. 亦是 자신의 所信 때문이다. 實用만 쫓는 이들에겐 '물 좋은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는 그의 모습이 그저 어리석게만 비칠 게다. 하지만, 이런 不合理한 行動이 우리 經濟를 조금 더 合理的으로 돌아가게끔 해 왔다.
妙한 것은 두 차례의 갑작스런 辭退가 모두 三星問題와 關聯이 있다는 점이다. 金融硏究院長에서 물러나는 契機가 됐던 '金産分離 緩和' 問題는 三星 支配構造 問題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李健熙 三星電子 會長이 1%대의 持分으로 三星그룹을 支配할 수 있는 것은, '三星에버랜드 → 三星生命 → 三星電子 → 三星카드 → 三星에버랜드'로 이어지는 循環出資構造 때문이다. 그런데 金産分離 關聯 規定은 이런 循環고리를 끊는 役割을 한다.
2004년 金融監督委員會 副委員長 자리를 떠난 것도 三星問題 때문이다. 當時 金監委는 生命保險社 上場基準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當時 副委員長이던 이 敎授는 生命保險社 上場 利益에서 保險契約者 몫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生命保險社가 '相互會社(고객에게 所有權과 利益이 分配되는 會社)'라는 屬性을 갖고 있는 점을 考慮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當時 金監委 안에서 少數派가 아니었다. 오히려 多數派였다. 金監委 안에서는 契約者 對 株主 몫이 7 對 1 또는 8 對 1까지 거론됐었다.
그런데 이 敎授는 當時 三星生命의 變則的인 會計處理 事實을 밝혀냈다. 三星生命이 수년간 保險監督 規定을 어기고 巨額의 投資有價證券 評價利益을 株主 몫으로 計上한 事實을 把握해 公開한 것이다. 保險契約者에게 돌아가야 할 利益이 李健熙 會長 等 故 李炳哲 三星 創業主의 後孫 몇몇에게 돌아갔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反轉이 생겼다. 이 敎授가 三星生命의 變則的인 會計處理를 公論化하자, 周邊 官僚들 大部分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 敎授는 "그 瞬間, 모든 사람이 내 敵이 됐다"고 말했다. 結局, 그는 자리를 떠났다. 生命保險社 上場 差益에서 保險契約者의 몫을 전혀 認定하지 않는 쪽으로 決定됐다. '7 對 1 또는 8 對 1'이 아니라 '0 對 10'이 된 것이다.
이를 놓고, 이 敎授는 "盧武鉉 政府의 最大 失敗作"이라고 評價했다. 1990년대 말까지 生命保險社 商品은 모두 配當保險이었는데, 配當保險은 生命保險社가 損害를 보면 保險契約者가 配當을 덜 받게끔 돼 있다. 保險契約者가 會社의 損失을 메워주는 構造다. 일종의 '相互會社' 方式이다. 그런데 막상 上場利益이 생길 것 같으니 '會社는 株主의 것'이라는 論理를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이 敎授의 立場이다.
이런 立場과 正反對 便에 서서, 生命保險社 上場差益을 모두 株主에게 돌리는 쪽으로 方向을 튼 것은 尹增鉉 當時 金監委院長이었다. 李明博 政府에서 企劃財政部 長官을 맡고 있는, 바로 그 尹增鉉이다. 윤 長官 德分에, 李健熙 會長은 약 4조6,000억 원의 上場差益을 얻게 됐다.
윤 長官은 盧武鉉 政府와 李明博 政府에서 繼續 高位職을 맡았고, 이 敎授는 두 政府에서 모두 中途辭退 履歷을 남겼다. 윤 長官과 이 敎授의 이런 對照的인 履歷은, 적어도 財閥問題만큼은 盧武鉉 政府와 現 政府가 別 差異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14일, 이 敎授를 만났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프레시안> 編輯局에서 만난 그는, 金融 懸案에 대해 거침없는 意見을 쏟아냈다. 또 過去 金監委 副委員長 時節의 經驗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날 나눈 이야기를 整理했다. <編輯者>
"측근부터 시작된 MB레임덕…'한탕'하고 탈출하려는 이들만 많다"
▲ 이동걸 翰林大 敎授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李明博 大統領과 所望敎會에서 인연을 맺었던 강만수 씨가 産銀金融持株 會長에 任命됐다. 現 政府 들어 이런 일이 잦았다. 이보다 앞서 李 大統領의 高麗大 經營학과 동문인 어윤대 씨가 KB金融持株 會長이 된 일도 있다. 現 政府의 政策基調에 대해 批判的 입장을 취하다 자리에서 물러난 입장에선 할 말이 많을 듯하다.
持株회사
이동걸: 강만수 씨가 産銀金融持株 會長에 내정됐다는 보도를 報告 '레임덕이 側近부터 시작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大統領 周邊 사람들 사이에서 '大統領 任期 끝나기 전에 한탕하고 탈출하자'라는 심리가 번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점점 不吉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現 政府는 經濟정책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側近부터 탈출할 窮理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강만수 씨는 金融 專門家가 아니다. 稅制 專門家일 뿐이다. 오로지 忠誠心을 基準으로 해당 분야에 專門性이 없는 인사를 任命하는 일이 現 政府에서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김중수 韓國銀行 總裁도 通貨政策 專門家는 아니다. 그는 노동정책 專門家에 가깝다.
勿論 어느 政府나 다 이런 면이 있다. 내가 金大中 政府에서 1년, 盧武鉉 政府에서 1년 반 동안 大統領을 지켜봤다. 結局 인사는 忠誠心을 考慮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李明博 大統領은 그게 너무 甚하다.
"산은 民營化, 結局 낙하산 자리 여럿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産業銀行과 關聯해서는 爭點이 많다. 대표적인 게 '民營化' 論難이다.이동걸: 産銀 民營化, 나는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 萬若 政府가 政策金融의 必要性을 부인한다면 産銀 전체를 民營化하면 된다. 그런데 정책金融의 必要性은 認定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政策金融公社를 새로 만든 것 아닌가?
政府는 競爭力 있는 綜合金融社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한다. 萬若 政府가 종합金融그룹을 제대로 만들 자신이 있다면, 굳이 민간에 넘기지 말고 자기들이 繼續 끌고 가면 된다. 왜 民營化를 하겠다는 건가. 政府의 방침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結局 낙하산 자리 여러 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政府가 억지로 綜合金融그룹을 만들려 하니, 無理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産銀은 自生力이 없다. 지금까지는 産業金融債權(産金債)로 資金調達을 했지만, 民營化 以後엔 産金債 發行을 못한다. 그럼 어떻게 資金을 調達할 건가?
銀行이 資金을 구하는 通路는 全國에 깔려 있는 支店網이다. 그런데 産銀은 支店網이 없다. 그래서 自生力이 없다는 게다. 그러니까 郵遞局金融이나 우리銀行, 企業銀行 등을 집어삼킬 窮理만 한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自生力 없는 機關을 民營化한다는 發想 自體가 이미 矛盾이다. 이게 萬若 成功한다면, 結局 政府가 特惠를 줬기 때문일 게다. 이런 民營化가 무슨 意味가 있겠나?
▲ 이동걸 翰林大 敎授ⓒ프레시안(김윤나영)
"메가뱅크 있어야 原電受注?…60~70년대 發想일 뿐"
프레시안: 이른바 '메가뱅크(Mega Bank. 超大型 銀行)'도 爭點이다. 이번에 産銀金融持株 會長이 된 강만수 씨가 대표적인 메가뱅크 禮讚論者다.
이동걸: 메가뱅크는 한마디로 1960~70년대식 발상이다. 과거에는 國內 銀行들의 規模가 너무 작아서 '어느 정도 커야 規模의 經濟가 實現되고,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구성할 수 있다'라는 식의 主張이 먹혔다. 그러나 지금은 國內 銀行들이 充分히 크다. 우리, 국민, 신한, 하나가 200조 원(약 1800억 달러)이 넘는 規模다. 이 정도면 美國에서도 7, 8위권이다. 美國에서도 1조 달러가 넘는 곳은 제이피모건(JP), 씨티, 웰스파고 等 네 곳에 不過하다. 나머지는 다 3,000억~2,000억 달러 水準이다. 規模가 작기 때문에 國際競爭力 없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되다.
經濟規模도 考慮해야 한다. 美國은 國內總生産(GDP)이 韓國의 10배가 넘는다. 韓國에서 250兆 원 銀行이면, 美國에선 2,500兆 원 銀行과 같은 役割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美國에도 2,500조 원이 넘는 銀行은 없다. 어떤 基準으로 보건, 規模가 작아서 競爭力이 없다는 論理는 成立하기 힘들다.
'메가뱅크' 主張이 나와서는 안 되는 根本的인 理由가 있다. 大型 銀行이 얼마나 危險에 脆弱한지는 2008년 金融危機를 거치면서 確認된 事實이다. 重要한 것은 規模가 아니라 內實이다. 危險管理를 제대로 하고 진짜 實力을 키우는 게 重要하다.
大統領 側近인 강만수 씨가 産銀金融持株 會長으로 가는 것도 問題지만, 그가 가진 힘을 利用해 메가뱅크를 無理하게 推進할까봐 더 걱정스럽다.
李明博 政府가 하는 일을 보면, 모든 게 宏壯히 果敢하다. 지금까지 제대로 해놓은 게 없기 때문인지, 눈에 보이는 成果를 내야한다는 조바심이 대단해 보인다. 産銀 民營化도 그래서 하는 것 아니겠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李 大統領에게 '成功한 大統領에 대한 執着을 버려라'고 했던데 그 말이 맞다고 본다.
프레시안: 李明博 政府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原電受注를 契機로 메가뱅크의 必要性을 强調했다. 當時 李 大統領은 原電受注와 關聯된 資金調達에 어려움을 겪자 그 解法으로 國內銀行間 引受合倂을 指示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世界的으로 資産順位 50위 안에 들어가는 銀行이라고 해서 혼자서 國際資金調達을 하는 곳은 없다. 신디케이트(共同販賣會社)로 하거나 債券을 發行해서 投資者 모은 후 들어간다.
原電受注 等 大型事業에 必要한 資金受注는 銀行의 規模問題가 아니다. 國際金融의 바닥에서 人脈과 노하우를 쌓는 게 必要하다. 그게 없는 狀態에서 덩치만 키우자는 主張은 전혀 現實性이 없다.
"리먼브라더스, 萬若 引受했다면 結局 빈 冊床만 남겼을 것"
▲ 이동걸 翰林大 敎授ⓒ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政府 當局者들 亦是 國際金融界에서 人脈과 노하우를 쌓을 必要는 認識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破産하면서 中斷됐지만, 現 政府 初期 産業銀行이 리먼브라더스를 引受하려 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大型 投資銀行을 引受하면, 韓國 金融界에 不足한 人脈과 노하우를 짧은 時間 안에 吸收할 수 있다는 게다.
이동걸: 그래서 내가 그런 소리하는 사람들을 金融 非專門家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假定을 해보자. 리먼브라더스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걸 우리가 引受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리먼브라더스가 갖고 있는 人脈과 노하우가 우리의 것이 됐을까? 그래서 우리는 단숨에 國際金融界의 重要한 플레이어가 됐을까? 절대로 그럴 리 없다.
投資銀行(Investment Bank)의 人材들은 엄청나게 빨리 턴오버(Turnover, 人事交替) 된다. 우리가 리먼브라더스를 引受한 뒤에, 世界經濟가 조금만 살아나는 기미가 보였다면, 리먼브라더스의 人材들은 다른 곳으로 다 스카우트 돼 갔을 게다. 그러면 巨額에 引受한 리먼브라더스에는 冊床과 電話機만 남는다.
投資銀行이라는 게 元來 그렇다. 거기서 일하는 이들은 履歷書에 얼마나 職場을 여러 번 옮겼는지를 적는 게 자랑거리다. 實力 있는 사람은 한 곳에 일 년 반 以上 머물지 않는다. 이런 人材들을 끌고 갈 리더십이 있어야만, 投資銀行을 經營할 수 있다.
내가 弄談 삼아 하는 말이 있다. "商業(一般, 市中)銀行(Commercial Bank)은 裝置産業"이라는 말이다. 銀行은 支店이라는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運營이 된다. 그런데 그 支店이라는 건 제3자가 銀行을 引受하더라도 撤收시키기 어렵다. 營業基盤이 그대로 維持되고, 따라서 사람들도 그 基盤을 따라 움직인다. 商業(一般, 市中)銀行(Commercial Bank)이 投資銀行(Investment Bank)과 달리 스카우트가 적은 理由다. 씨티銀行을 引受한다면 그곳의 支店網과 人材 大部分이 維持될 것이다. 하지만 投資銀行은 다르다. 投資銀行은 全部 팀 單位로 움직인다. 그 팀이 가진 네트워크에 따라 業務가 돌아간다. 이런 팀들을 제대로 이끌 能力이 없다면, 投資銀行 引受는 헛일이다. 그리고 지금 水準에서 韓國이 投資銀行을 引受해서 世界金融의 中心部로 進出하는 것은 不可能하다.
그 明白한 證據가 日本이다. 日本이 돈이 없어서 投資銀行을 못하나? 아니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안 되는 것이다. 20~30년을 投資하고도 美國系 猶太人이 中心인 國際金融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會社 하나 引受한다고 되겠나? 그렇게 생각한 것 自體가 이 政府가 아마추어라는 事實을 보여준다.
萬若, 國內金融을 굳이 海外로 進出시키고 싶다면, 우선 銀行을 引受하는 게 낫다. 그 다음이 保險이다. 그 뒤에나 考慮해 볼만한 게 投資銀行이다. 그나마 KB金融은 카자흐스탄 銀行 引受했다가도 손들고 나오지 않았나? 國內金融界의 實力이 그렇다. 그런데 投資銀行 引受라니? 말도 안 된다.{繼續]
"'론스타 問題', 公的資金 投入 못한 게 原罪다"
프레시안: 金融이 제대로 成長하려면, 結局 監督當局의 役割이 重要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韓國은 弱點이 많다. 特히 '론스타' 問題는 韓國의 金融監督體系가 가진 問題點을 赤裸裸게 보여준다.
이동걸: 론스타가 外換銀行을 引受하도록 認可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론스타 問題에 對해선 대단히 複雜한 感情이 있다.
外換銀行 問題에는 原罪가 있다. 바로 公的資金(Public Fund) 投入을 못한 게 原罪다. 2003년에 公的資金 2조 원만 있었어도 外換銀行과 LG카드를 사서 正常化 시킨 後 政府가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投入할 公的資金이 없었다.
當時 實務陣한테서 '外換銀行을 론스타에 賣却하는 諒解覺書(MOU)를 作成한다.'는 報告를 받았을 때 내가 한 첫 마디가 '이건 이정재 金監委院長이 政策的 判斷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두 번째로 한 말은 '産業銀行이나 企業銀行이 引受하는 方法을 檢討해보라'였다.
둘 중 하나, 特히 産銀은 外換과 結合하면 完璧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當時 實務陣의 檢討意見이 '적어도 政府가 5000억 원 以上은 財政擴充을 해줘야 하는데, 調達方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抛棄했다. 다른 方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론스타에 줬다.
왜 굳이 私募펀드에 넘겼느냐고 批判하겠지. 當時 생각은 이랬다. 長期的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메이저 銀行을 外國銀行이 너무 많이 掌握하는 게 큰 問題가 되리라고 봤다. 안 그래도 스탠다드차티드(SC), 씨티(Citibank) 이런 銀行들이 속속 들어왔지 않은가. 그러니 '차라리 돈 왕창 벌고 나가더라도 펀드에 넘겼다가 國內에서 되사는 게 낫겠다.'라고 判斷했다. 우리의 能力이 不足해서 남이 돈 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勿論, 이건 二次的인 이야기다. 가장 좋은 代案은 公的資金을 投入해서 國家에 利得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이게 두고두고 아쉽다. 하지만 公的資金을 못 쓴 데는 理由가 있다. 時間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外換銀行 問題, 한나라당도 責任 있다"
2002년 末에 한나라당이 워낙 거세게 攻擊해서 진 념 當時 財政經濟部(現 企劃財政部) 長官이 公的資金을 終了했다. 償還基金을 만들고 完全히 門을 닫았다. 當時 公的資金 償還方案을 만든 게 나다. 金融硏究院 史上 最大 規模의 作業이었다. 博士만 9名이 投入됐고, 會計法人 여러 곳이 動員됐다.
當時 財經部에서 公的資金 償還對策을 만들어 달라며 硏究院에 왔었다. 當時 硏究院 측은 '公的資金을 完全히 닫으면 안 된다. 돈이 더 必要하다. 外換銀行, 現代投資證券 等 몇 곳에 넣을 돈 2~3조 원이 더 必要하다'고 했다. 나는 내 일도 아닌데 財經部 쫓아다니고 企劃豫算處 찾아다니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對答이 한결같았다. 政治的으로 안 된다는 거다. 野黨과 公的資金을 닫기로 合意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내가 2003년1월에 盧武鉉 政權 引受委에 들어가서 하나 '빵' 터뜨렸다. 當時 <京鄕新聞>이 1面 톱에 쓴 "公的資金 8兆 원 必要해"라는 記事가 그렇게 나왔다. 그걸 報告 盧 當選者가 '必要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結局 못했다. 政治的 負擔이 너무 컸던 게다. 그 뒤, 2003년4월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정재 當時 金監委院長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記者室에 가서 爆彈 하나 터뜨리겠습니다. 公的資金 8兆 원이 必要하다고 얘기하고 辭表 쓰겠습니다. 그러면 4兆 원은 안 만들어주겠습니까?"
公的資金 4兆 원만 調達하면 金大中 政府 때 解決 못한 外換銀行 問題, 새로 터진 카드問題 싹 다 處理할 수 있었다. 公的資金이 들어가는 게 最善이었다.
그런데 結局 못했다. 온 四方이 敵이었다. 當場 韓國銀行이 "通貨政策의 根幹이 무너진다."며 決死反對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李明博 政府 들어서는 公的資金을 非正常的으로 빌려주는 걸 보니 宏壯히 씁쓸했다. 2003년에 公的資金이 있었으면, 지금 이런 問題가 안 생겼을 텐데….
그래서 나는 外換銀行 問題에 대해서 한나라당도 自由롭진 않다고 본다. 自信들을 마치 責任 없는 양 行勢하는데, 無責任하다. 1997년 外換危機를 깨끗이 마무리 짓지 못한 狀態에서 억지로 (公的資金 投入을) 닫아버려서 할 수 없이 생긴 部分이 있는데 말이다.
론스타와 關聯해서, 株價造作 等 그 以後에 터진 事件들은 잘 모른다. 다만 내 意見을 말하라면 適格性 審査는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안다. 一旦 金融監督當局이 認可해줬는데, 나중에 '안 된다'고 하기가 宏壯히 어렵다.
外換銀行 問題는 조금 '쿨 하게' 봤으면 좋겠다. 勿論,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그 동안 론스타가 잘못한 걸 바로 잡는 건 옳다. 그런데 그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 배 아프다? 이건 아니다. 우리가 아쉽지만 깨끗이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金融이라는 게 元來 그렇다. 弱者는 損害보고 强者가 돈 벌게 돼 있다.
法的으로 봐도, 론스타 關係者들을 監獄에 넣는 것은 無理라고 본다. 이런 狀況에서 時間만 끌면, 結局 론스타에게만 좋은 일이다. 그들이 3年 前에 나갔다면, 3兆 원만 벌어서 나갔을 텐데, 時間 끌어서 5兆 원을 벌게 됐다.
돈은 아깝지만, 國內銀行이 빨리 引受하는 것 外에는 解決方案이 없다고 본다. 勿論, 내가 이 事件 關聯者이므로 어느 정도 '偏向'이 있다는 것, 分明히 認定한다. 그러나 結局 우리가 實力이 없어서 外換銀行을 론스타에 준 것이라는 생각도 分明하다.
안타깝기는 LG카드도 마찬가지다. 金監委 副委員長 時節, 이 問題 處理할 때 '改革的 學者라더니 結局 官治 하느냐?'라는 辱을 참 많이도 들었다. LG카드 亦是 資金만 投入하면, 回生可能한 會社였다. 하지만 當時에는 이런 綜合的인 判斷을 實現할 수 있는 與件이 안 됐다. 宏壯히 아쉽다.
"'貯蓄銀行 不實, 地獄에 가서라도 물어내게 한다.'더니, 그 約束 어디로…"
▲ 이동걸 翰林大 敎授ⓒ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貯蓄銀行 不實이 深刻하다. 結局 事實上의 公的資金이 投入될 豫定이다.
이동걸: 그 동안 貯蓄銀行들이 한 일이 後順位債(發行機關이 破産했을 境遇 가장 마지막에 投資金을 償還 받을 權利를 가진 債券. BIS 自己資本比率 算定 時 資本計定으로 計上되기 때문에 財務諸表를 歪曲시킨다.)를 높은 金利로 發行해서 돈을 끌어온 후 더 높은 金利로 빌려주는 짓이었다. 不實이 오래 前부터 생겼는데 오래 끌다가 더 커진 것이다. 政府가 建設景氣를 浮揚하려고 貯蓄銀行에 問題가 없다고 宣傳하다 이렇게 됐다. 構造調整은 遲延한다고 좋은 게 아닌데 말이다.
政府가 對應策으로 銀行圈 共同計定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는 反對한다. 貯蓄銀行의 負擔을 다른 銀行에까지 轉嫁시키는 것으로, 銀行 預金者가 貯蓄銀行을 도와주는 꼴이다.
貯蓄銀行에 事實上의 公的資金이 投入되게 됐으니 公的資金 償還對策도 미리 만들 때가 됐다. 預金保險料만으로는 안 된다. IMF 救濟金融 事態 當時에도 같은 理由로 公的資金을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當時 財政經濟部 金融政策局長이 '貯蓄銀行 不實은 地獄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물어내게끔 하겠다.'고 豪言壯談했다. 그런데 政權이 바뀌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한다. 이래서야 되겠나?
지난해 末 貯蓄銀行 不實支援額이 7兆 원이다. 이 중 다른 金融圈에서 轉用한 게 벌써 3兆5,000억 원이나 된다. 이번에 共同計定을 만들어 貯蓄銀行 問題를 푼다는 것은, 이걸 償還할 생각 없이 더 가져다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式으로 덮고 가면 안 된다. 公的資金을 제대로 投入하고, 이를 透明하게 監視해야 한다.
"美國 財務長官 電話에 '예스, 서'라고만 한 강만수, 안타깝다"
프레시안: 基準金利가 2년3개월 만에 3%로 올랐다. 韓銀 金通委의 決定을 어떻게 보나?
이동걸: 너무 늦게 올렸다. 2009년 여름부터, 늦어도 가을에는 基準金利를 올려야 한다고 말해 왔다.
2008년 金融危機 當時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當時 우리는 危機의 震源地가 아니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말이 많지만 그래도 金大中, 盧武鉉 政府 10년 동안 公的資金을 投入한 德分에 金融機關 健全性이 相當히 좋아졌다. 우리 企業體도 不實하지 않았다. 이게 미처 나빠지기 前에 글로벌 金融危機를 맞았다.
뜯어보면 우리가 받은 衝擊은 글로벌 景氣沈滯 影響뿐이었다. 그래서 相對的으로 버티기가 쉬웠다. 流動性을 늘리고 財政資金을 投入해서 景氣를 浮揚했다.
問題는 國內問題가 아니었다. 外國의 問題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問題가 생겼다. 金融硏究院長을 지낼 때는 강만수 當時 企劃財政部 長官과 얘기할 位置가 아니었지만, 周邊에 내가 한 얘기가 딱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金融危機에 對應해서 할 일은 딱 한 가지뿐이다. 달러와 通貨스왑하면 된다.'는 거였다.
우리나라가 國際 基軸通貨라면 外換問題 自體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달러가 빠져나가서 생기는 問題는 基軸通貨가 아니라서 겪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니 危機 때 원화를 一時的으로 달러처럼 쓰면 問題가 解決된다. 우리의 外換保有高, 外換流動性에 問題가 안 생긴다.
그런데 강만수 長官이 어떻게 했나. 2008년 페니메이(Fannie Mae, 美國의 國策 모기지 業體, 이게 무너진 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事態가 터졌다)가 망했을 때, 헨리 폴슨 美國 財務部 長官이 世界 各國 經濟長官에게 電話를 걸었다. 美國 國債(T-Bond)를 팔지 말아달라는 電話였다. 강 長官도 받았다. 그런데 그가 곧장 한 말이 '예스, 서(Yes, Sir)'였다고 한다.
잘못된 對應이다. 當時 우리가 保有한 外換保有高가 2,000億 달러가 넘었다. 이 가운데 半만 풀어도 國際金融市場이 뒤집어진다. 이런 힘을 背景으로 美國에 當場 通貨스왑을 하자고 했어야 했다. 當時 美國으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狀況이었다. 페니메이가 亡하자마자 그렇게 했으면, 2009년부터 韓國은 問題가 생길 게 없었다.
그런데 當時 韓國은 機會를 놓치고 한참 期間을 끈 뒤에야 간신히 通貨스왑을 했다. 그것도 求乞하다시被害서 말이다. 그때는 이미 美國이 유럽과 無制限的인 스왑을 締結한 狀態였다. 韓國을 비롯한 4個國만 맨 마지막에, 고작 400億 달러 水準으로 스왑을 맺었다. 때를 놓치는 바람에 外換危機가 길어졌다.
"때를 놓친 出口戰略(Exit Strategy)" … "韓銀 金通委員 3분의 1, 野黨이 뽑자"
그걸로 끝이었나. 아니다. 그 후 流動性을 엄청나게 늘리느라 財政健全性이 惡化됐다. 出口戰略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됐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結局 時期를 놓쳤다.
2009년 3分期가 景氣 바닥이었다. 景氣上昇期에 先行해서, 基準金利를 끌어올렸어야 한다. 經濟學의 基礎公式(MV=PQ)만 봐도 알 수 있다. 當時는 政府의 流動性 供給으로 通貨量(M)이 늘어나는데도 景氣가 나빠 貨幣 流通速度(V)가 떨어지니까 景氣가 나쁜 狀況이었다. 總通貨量(MV)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經濟가 좋아지면 V가 宏壯히 빨리 늘어난다. 그럼, 바로 인플레이션이 된다.(價格(P)이 오른다는 뜻)
한마디로, 너무 풀린 流動性이 爆彈이었다. 그런데 이 問題를 미리 遮斷하지 못한 탓에, 經濟成長率이 마이너스 水準에서 7% 水準으로 튀어 올랐다. 이렇게 過熱되는 게 經濟運用을 잘한 건가? 빵점이다. 진작 通貨量만 제대로 吸收했어도 景氣過熱도 없었고 物價大亂도 없었고, 當然히 景氣運用이 훨씬 쉬웠다.
그렇다면 韓國銀行이 왜 때를 놓쳤을까. 實力이 없어서? 아니라고 본다. 靑瓦臺의 눈치를 보느라 못한 거다. 通貨金融當局이 政治的으로 變할 때, 獨立性을 잃을 때 생기는 弊害를 우리가 지금 生生히 지켜보고 있다.
韓國銀行을 改革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람들이 靑瓦臺 指示대로 움직이느라 金利 낮춰야 할 때 오히려 올려버리고, 올려야 할 때 낮추는 荒唐한 짓을 하도록 해선 안 된다. 韓銀 職員이면 대단한 엘리트 아닌가? 그들의 自尊心을 생각해서라도 改革할 때가 됐다. 그리고 지금 벌어진 일에 對한 責任은 김중수 總裁가 져야 한다.
▲ 이동걸 翰林大 敎授ⓒ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韓銀 改革이라면, 具體的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이동걸: 勿論, 制度的 改革이라는 게 正答은 없다. 다만 지금의 金融監督機構가 政府 눈치만 보고, 할 일은 안 하고 있으니, 金融監督機構를 韓銀 밑에 넣자는 게 내 생각이다. 金融部門에 대한 모든 監督權限을 韓銀에 集中시키고, 韓銀을 集中的으로 監督하자는 것이다. 韓銀이 지금도 事實上 流動性을 調節하면서 銀行뿐 아니라 非銀行部門까지 制御하고 있지 않은가? 안될 것도 없다고 본다.
이렇게 通貨金融 및 監督權限을 韓銀에 주고, 金通委員의 3분의 1은 野黨이 任命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野黨 몫 金通委員도 있어야 한다. 憲法裁判所 裁判官도 一部를 野黨이 指名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들 金通委員들이 國會에 定期的으로 報告를 하도록 하는 게 좋다. 어차피 韓銀이 政治的으로 論難을 낳고 있으니 政治的으로 解決해서 集中 監視하는 게 옳다.{繼續]
"마지막 堡壘는 結局 財政健全性 … 減稅 後遺症이 두렵다"
프레시안: 基準金利와 맞물린 問題가 家計負債다. 지금처럼 늘어난 家計負債는, 設令 現 政府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다.
이동걸: 家計負債가 아직 國家 經濟를 威脅할 水準은 아니라고 본다. 潛在的으로 相當數 不實이 생길 수 있고, 이로 因해 小型金融機關의 不實化가 이어질 可能性은 있다. 그러나 韓國經濟가 貯蓄銀行 한두 곳이 넘어간다고 亡할 水準은 아니다. 家計負債 問題를 短期的으로 改善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게끔 하는 措置는 必要하다.
그리고 問題가 더 커지기 前에 段階的으로 解決해야 한다. 家計負債 自體만으로는 致命的이지 않지만, 이게 財政健全性 問題와 겹치면 相當히 危險할 수 있다.
언제나 마지막 堡壘는 財政健全性이다. 1998년, 김태동 當時 靑瓦臺 經濟首席과 함께 일할 때다. 當時는 IMF 救濟金融 事態 直後라서 一週日에 한두 번씩은 外國 投資者들이 靑瓦臺로 왔다. 當時 그들에게 投資誘致를 할 때마다 우리가 한 얘기가 '우리나라의 財政健全性을 보시오. 公的資金 집어넣어서라도 당신들이 損害 안 보도록 하겠습니다.'였다. 그 말 한마디면 다들 '오케이' 했다. 財政健全性이란 게 이렇게 重要하다.
極端的인 例를 들어보자. 萬若 지금, 財政健全性이 아주 좋다면 家計負債 問題가 深刻하게 터져도 解決이 可能하다. 公的資金을 넣거나, 稅金을 投入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事情이 점차 안 좋아지고 있다. 外換危機 當時는 企業不實이 問題였고, 이게 解決되고 나니 家計負債로 轉移됐다. 여기에 다음 政府는 過剩 負債問題까지 짊어지게 된 形局이다.
基準金利를 제때 올리지 않아서 家計負債가 너무 늘어난 것, 또 現 政府의 富者減稅政策으로 財政健全性이 나빠진 것 等이 서로 結合하면, 分明히 危險해진다.
▲ 이동걸 翰林大 敎授ⓒ프레시안(김윤나영)
'젊은 大企業'이 繼續 생기는 美國 vs '젊은 企業'은 클 수 없는 韓國
프레시안: 現 政府가 固執한 '低金利' 基調와 짝을 이루는 게 '高換率' 基調다. 이런 基調가 物價에 負擔을 준다는 指摘이 많다. 또 外換市場 關係者들은 政府가 高換率을 維持하기 爲해 市場介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동걸: 美國 內部 問題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換率이 오르는 건 不可避하다. 그런데 中長期的으로 보면, 韓國이 繼續 엄청난 貿易黑字를 내면서 外換保有高가 늘어나는 狀態인데도 高換率이 維持된다는 것은 너무 人爲的이다. 이 狀態를 繼續 維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高換率로 輸出競爭力이 維持되나. 이것도 따져봐야 한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政府의 高換率政策으로 大企業만 배불리고, 中小企業과 庶民은 被害를 입는 것은 결코 正常이 아니다. 大企業은 이제 스스로 競爭力을 높일 때가 됐다. 어차피 지금도 政府의 硏究開發支援은 大部分 大企業이 惠澤을 누리게끔 돼 있지 않은가? 여기에 價格競爭力까지 政府가 챙겨줄 必要는 없다. <포춘>이 選定한 500대 企業目錄을 보면, 創業主 當代에 이 리스트에 들어온 美國企業이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等 5~60곳이 넘는다. 이게 美國의 競爭力이다. 反面, 韓國은 새로 創業한 企業이 아무리 實力이 있어도 어느 水準 以上은 크질 못한다. 全部 財閥이 쌓아놓은 旣得權의 壁을 넘을 수 없다.
또 원貨 平價切上을 해야 海外投資도 좋다. 이 部分까지 念頭에 두면 無酌定 高換率을 固執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아' 했던 政府가 이제 와서 '어' 한다. 이게 '法治國家'인가?"
▲ 이동걸 翰林大 敎授ⓒ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 公職에 있을 때 金産分離 緩和, 生命保險社 上場 等 三星과 關聯된 爭點에 많이 介入했다. 그러다가 結局 任期를 못 채우고 자리를 떠났다.
이동걸: 金産分離 原則이 왜 重要한지에 對해선 워낙 말을 많이 했다. 이젠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財閥이 金融機關을 거느리면, 市場經濟가 歪曲된다. 評價받는 쪽, 즉 財閥이 評價하는 쪽, 즉 金融機關을 引受하는 게 選手가 審判을 買收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렇게 되면, 中小企業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國家競爭力을 爲해서도 몹시 害롭다.
盧武鉉 政府 時節, 金監委 副委員長 職을 辭退한 것은 具體的으로 三星生命의 變則的인 會計處理 때문이었다. 三星生命이 保險監督 規定을 어기고 投資有價證券 評價利益을 株主 몫으로 計上한 事實을 밝혀냈다. 이 問題를 提起하자, 周邊 사람 大部分이 내 敵이 됐다. 그래서 結局 자리를 떠났다.
三星生命 上場 問題를 놓고도 對立이 있었다. 나는 生命保險社 上場基準 問題가 盧武鉉 政府의 最大 失敗作이라고 본다. 이는 結局 生命保險社가 相互會社냐 株式會社냐의 問題다. 그런데 韓國은 生命保險社를 株式會社로 始作했음에도 金泳三 政府 때까지 事實上 相互會社처럼 運用해 왔다. 金泳三 政府는 保險 契約者가 負擔을 지는 代身 그들의 몫도 認定받는다고 이야기했었다. 生命保險社가 上場하면, 契約者에게 上場差益을 돌려줘야 한다는 主張은 그래서 나왔다. 契約者들이 實際로 負擔을 짊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生命保險社는 株式會社이므로 上場差益은 오로지 株主에게만 나눠져야 한다고 한다.
이런 論理대로라면, 마치 相互會社처럼 保險 契約者가 負擔을 짊어져야 한다던 金泳三 政府나, 株式會社이므로 保險 契約者에게 돌아갈 上場差益은 없다던 盧武鉉 政府 가운데 하나는 國民에게 詐欺를 친 셈이 된다. 政府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保險 契約者들만 억울하게 됐다.
이런 歷史를 經濟部處에서 오래 일했던 官僚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헌재 前 長官이 生命保險社 上場差益을 契約者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이런 歷史를 알기 때문이었다. 윤증현 長官이라고 해서 金泳三 政府 時節 保險 契約者들에게 했던 約束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윤 長官은 過去 일은 全혀 모른다는 듯, 上場差益에서 保險契約者 몫을 싹 無視했다. 그리고 그 結果, 李健熙 三星電子 會長을 包含한 三星生命 株主들은 橫財를 했고 保險契約者들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盧武鉉 前 大統領이 왜 윤증현 長官을 當時 金融監督委員長에 任命했는지, 그리고 윤 長官은 大體 왜 그런 決定을 내렸는지 말이다.
法治가 제대로 作動하려면, 設令 政權이 바뀌더라도 政策에 一貫性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國民이 法과 制度를 信賴할 리가 없다.
그런데 三星生命 上場 問題나 貯蓄銀行 共同計定 問題를 보면, 예전에는 '아' 했던 政府가 이제 와서 '어'하는 形局이다. 이게 果然 法治國家인가 싶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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