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과 큰 평안 (시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라”하신 말씀에 의거하여 “큰 평안”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1. 지금 읽으신 말씀은 4 대지로 나누어 생각하셔야 합니다. 주의 법이 무엇인가?하는 것과 “주의 법을 어떻게 사랑하는가?하는 것과 큰 평안을 어떻게 누리는가? 또 장애물이 없다는 뜻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1) 간단히 설명 드리면 주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계명, 율례, 법도, 교훈, 명령, 규례, 증거, 판단, 도”로도 명칭하신 바가 있지만(시 19:7~9) 뜻은 하나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요 1:1, 14:23).
2) 주의 법을 사랑하는 뜻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사랑하므로 우선 신뢰하고 사모하며 즐거워하고 또 배우며 연구하고 간직하며(잊지 않는 뜻) 증거하고 찬양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야로 묵상도 합니다(시 1:2, 119:97, 148). 119:81에 보시면 “주의 말씀을 바란다” 하셨고, 83, 193절에서는 “주의 율례를 잊지 않는다” 하셨으며 87절에서는 “버리지 않는다”, 92절에서는 “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94절에서는 “주의 법을 찾았다”, 95절에서는 “주의 증거를 생각했다” 또 169~172절에서는 배우려 하였고, 노래하였으며 56, 100절에서는 “지켰다” 하였는데 시편 119편은 거의가 말씀을 찬양한 내용인즉 저희들도 그런 경지에 빠져들기를 사모하고 노력하셔야 할 것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는 말씀을 연구하고 지키는 자입니다.
3) 큰 평안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평안의 폭이 넓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14:27) 이 평안에는 하나님의 특별 섭리가 개입된 것이고, 영적으로 누리는 평안이며 고난도 극복할 수 있고, 영원한 안식과도 관련이 있는 평안이요, “장애물이 없으리라”하신 것처럼 현실에서도 능히 극복하고 누릴 수 있게 하시는 평안입니다.
4) “장애물이 없다”는 뜻은 현실적 고충을 없애 주시는 것으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또 시험에서 건져 주시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라” 하셨는데(마 26:41) 성도가 말씀 연구에 붙잡히면 기도로 부탁할 기회가 없어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받는 것이고, 기도는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비중의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의 법을 사랑하여 큰 평안 얻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일반적 차원에서 평안을 얻는 방법을 구상해 보려고 합니다. 성도는 성도로서의 고유 신분이 있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신분도 함께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직자는 교회적 생활로는 거룩을 지키기 쉽지만(구별된 세계 안에서 사니까) 성도들은 교회 생활은 짧고, 많은 날을 세속에 처하여 사회적 영향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짐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큰 평안을 누리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평안을 추구하셔야 하니까
1) 우선 생활 안정을 확보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하셨는데 공중의 나는 새가 둥지에서 새끼를 키울 때 순서대로 먹을 것을 먹여야 하니까 잠시도 놀 시간이 없습니다.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게으르지 않고 일할 때는 먹고 살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경제생활이 불안정하여 평안의 위협을 받으신다면 합당한 일감을 정하여 열심히 일하시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창 3:17~18) 생활 안정이 될 것입니다. 결코 사치를 꿈꾸시면 안 됩니다(롬 12:16, 딤전 6:8). 절약하고 검소하게 사셔야지요(요 6:12, 잠 30:8).
2) 정당성으로 평안을 확보하셔야 합니다. 정당성이란 것은 법이나 사리에 어긋남이 없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야 큰 평안을 주시는 것처럼 나라의 법도 그렇고 대인 관계로서의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법도 어기지 마시고,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약속을 지키며 불화의 관계를 조성하지 않아야 합니다. 깨끗한 위치에 서시고, 추궁 받을 입장에 처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정당성으로 누리는 평안입니다.
3) 사회적 안정으로 누리는 평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서 평안케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외교를 잘못하면 국방에 위험이 오고, 경제 정책을 잘못하면 국민 생계에 위험이 오지요. 또 노사 문제 해결이 안 되면 파업이 생겨서 국민들이 평안을 잃게 됩니다. 또 정부의 가장 큰 책임은 범죄 예방입니다. 하나님이 정치가에게 권세를 주신 것은 “악을 응징하고 선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라”(롬 13:4)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국민을 평안케 하기 위한 정치의 책임이 막중한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도 죄를 방지하는데 빛된 생활로 한 몫을 하지만 정치적 역할에 비하면 그 범위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딤전 2:2에서 “정치가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4)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영적으로 누리는 큰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직접 받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인간적 생활에 표준을 두지만(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고) 신앙적으로 누리는 평안은 그 표준을 하나님의 뜻에 둡니다. 예를 들면 내가 잘 누리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사랑 실천이나 사명 실천에 목적을 두니까 사랑하고 만족하며 전파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고 만족해야 하니까 그 생활이 고상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누릴 특권을 포기하고도 평안을 누릴 수 있으니 이것이 곧 영적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아무 환난으로도 불행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