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는 총인구 가운데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
이 7%를 넘는 ‘고령화 사회’다. 지난 5월 통계청은 ‘시도별 장래인
구 추계 결과’를 발표하며 오는 2020년에는 이 비율이 15%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노인 문제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
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노인 문제를 가족들의
몫으로 떠넘겨 두고 있다. 특히 노인 학대의 대부분은 가정 안에서 가
족·친지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특성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까리따스 노인학대 상담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는 최재향씨가
노인 학대의 실태를 짚어보았다.
이 말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인학대에 대한 일반인들
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런 생각을 ‘안일한 인식’이라
고 일축한다. 바로 이런 인식이 학대받는 노인들을 사회적 무관심 속
에서 어떤 도움을 받지도 못한 채 인생의 마지막을 ‘학대’라는 어두
움 속에 갇혀 지내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까리따스 노인학대 상담센터가 한햇동안 받은 총
상담 건수는 511건에 이른다. 이중 학대사례는 384건으로 총 상담건수
의 75%를 차지했다. 학대 유형으로는 언어·심리적 학대가 127건(33%)
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적 학대 89건(23%), 방치 75건(20%), 경제적 학
대 52건(14%) 등의 순이었다. 노인학대의 가해자는 주로 아들, 며느
리, 딸 등이었고 신고자는 이웃, 직계가족, 본인 등으로 나타났다. 특
히 지난 3월 한달 동안의 상담건수(71건)가 지난해 3월(46건)에 비해
30% 이상 증가하는 등 노인학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신고자들은 대부분 상담센터에 신고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
로 생각한다. 이들의 요구는 피해자가 학대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것부터 가해자에 대한 법적인 처벌, 재
산상속과 관련된 법적 도움 등으로 다양하다.
상담센터 권금주 상담원은 “현실적으로 상담센터에서 줄 수 있는 도
움은 신고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태부족”이라며 “ 이때문에 상
담이 중단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라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노인학대에 대응해 노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독
립된 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 미약하게나마 노인학대를 막을 수 있
는 장치는 1997년 11월 제정된 ‘가정폭력 방지법’이 유일하다. 그러
나 이 법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노인들에
게 가해지는 신체적·정신적 학대에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게
다가 대부분 가해자가 자식들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신고하기에
는 많은 심리적 갈등이 따르는 데다 피해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
를 남기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노인학대를 방지하려면 학대의 주된 원인인 가족들의 부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사회적인 차원의 지원과 상속 문제 등의 분쟁
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안란 까리따스 노인학대 상담센터 소장은 “학대받는 노인들이 잠시
라도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밝혔
다. 박 소장은 또 “일선 경찰공무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노인학대
를 가정의 문제로만 치부해 학대받는 노인들을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인학대 방지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말복(80·가명) 할머니는 지난 5월 말부터 청주에 사는 막내딸이 얻
어준 방에서 살고 있다. 그 전 할머니는 2년여를 큰아들과 함께 살았
다.
큰아들과 사는 동안 할머니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했다. 며느
리가 밥을 따로 차려주었기 때문이다. 물에 만 밥 한 공기와 김치 몇
조각, 멀건 장국이 상에 올라온 음식 전부였다. 노인성 관절염으로 거
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큰아들이 운영하는 여관의 어둡고 습기찬 골방
에서 지냈다. 며느리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의 귀를 말할 때마
다 잡아당겨 할머니는 지금도 누가 귀에 손만 대도 몸서리를 친다. 지
난 겨울, 할머니가 대변을 속옷에 묻히자 며느리는 그의 옷을 다 벗기
고 호스로 찬물을 뿌리고 욕을 하며 할머니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주었다.
할머니를 더욱 분하게 한 것은 며느리의 학대를 말리지 않는 아들의
태도였다. ‘내가 낳은 자식도 저러니 참아야지’ 하며 참아온 할머니
는 결국 올해 초 딸에게 사연을 털어 놓았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는 이유로 결혼 초부터 나
를 심하게 구박했다. 아무도 그의 괴팍한 성격을 당해내지 못할 것”
이라고 말했다.
사례 둘
“아들이 무섭고 소름끼쳐요.”
지난 5월 까리따스 노인학대 상담센터의 임시 쉼터에 들어온 김영자
(66·가명) 할머니는 남편의 외도와 구타 때문에 결혼 8년 만에 이혼
하고 홀로 외아들을 키웠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아들
김아무개(35)씨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초 결혼문제
로 할머니와 의견차가 생긴 김씨는 성격이 난폭해지기 시작했고 올해
초에는 할머니에게 주먹까지 휘둘렀다. 지난 5월 다툼끝에 집을 나간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할머니를 찾아와 돈을 요구하며 가재도구를
부수고 할머니를 때렸다. 지금도 할머니는 아들 목소리 듣는 것이 소
름끼치도록 겁이 난다.
할머니는 “이혼을 한 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살아온 인생
이 모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 같다”라며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