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고전 1:18
*제목; 종려주일, 보혈의 능력을 경험했습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1. 우리 안에 있는 우상
여러분, 우리 안에도 우상이 있습니까? 답은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이란 하나님 자리에 서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마땅히 우리 인생의 결정권은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것인데, 여전히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실 우상숭배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세상과 우리를 같이 대접하시고 다루실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예수를 알고 경험했기에 핑계 댈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달라야 합니까? ‘마 7:21’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증거인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심각하게 질문하십시오.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 이것이 여러 분의 믿음과 구원을 가르는 중요한 열쇠라고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쉽습니까? 네, 쉽습니다. “순종이 불순종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냥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 하시는 대로 이끄시는 대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사탄은 항상 순종이 어렵다고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순종만큼 쉬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이유는 아직까지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상은 결국 “나”입니다. 때문에 “갈 2:20”처럼 내가 죽고 예수가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내가 죽고, 예수가 생각하고 예수가 말하고 예수가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고 구원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2. 그리스도인(구원의 자녀)의 특징
그러면 구체적으로 구원받은 자녀들의 특징을 알아볼까요?
성경에 보면 구원의 자녀들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물론 이보다 더 많겠지요. 그러나 오늘은 세 가지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첫 사랑으로 신앙을 간직하는 자들입니다.(계 2:4~5)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4~5)
첫 사랑의 설램은 너무나 큽니다. 첫 사랑의 감격도 너무나 큽니다. 첫 사랑은 그래서 다들 가슴에 묻습니다. 평생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첫 사랑’이고 또 ‘끝 사랑’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앉아서 서도 주님 생각이 가득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백과 삶이 일치하는 자들입니다.(마 12: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 12:33)
믿음이 삶이고, 그의 삶이 바로 그의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습니다.
너무나 가짜가 판을 치고 다녀서 그렇지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디서나 ‘티’가 납니다.
세 번째는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갑니다.(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세상 사람들은 편한 문,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어렵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문”으로 갑니다. 그 곳이 바로 “생명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성경공부에서 죄란 “익숙하고 편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의란 “어색하고 힘들 것 같지만” 이를 택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이렇게 세 가지만 이야기해도 “와, 저게 가능한가? 굳이 저렇게 까지 믿어야 하나?”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자녀들은 첫 사랑으로 늘 설레며 행복해하며 살아갑니다. 구원의 자녀들은 고백과 삶이 일치합니다. 구원의 자녀들은 항상 좁고 어렵지만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알려주신 문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결과라고 하니 더 암담해지십니까?
3.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왜 안 됩니까? 이 모든 것은 내 의지와 고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보혈의 능력과 체험”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아무리 뒤져도 돈 될 만한 것이 나오지 않자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
“뭐 값나가는 것 없냐?”
“내게는 그리스도의 피(보혈)밖에 없소. 이것을 가져가시오.”
강도는 코웃음치면서 그냥 가버렸습니다.
3년 후, 웨슬리가 한 교회에서 집회를 마치고 나오는 데 말쑥한 중년신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랍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자기를 기억하느냐고 합니다. 자신은 3년 전 웨슬리에게 칼을 들이대었던 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웨슬리가 말한 “보혈! 보혈!”이 자신의 귀를 떠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보혈 때문에 예수 믿고 구원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보혈만이 우리를 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그 보혈의 능력을 경험해야 진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면 보혈의 능력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습니까?
<진홍 가슴 새>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이를 보면 어떻게 하면 보혈을 경험할 수 있는 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새를 만드시고, 그를 <진홍 가슴 새>라고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새는 몸 전체가 잿빛으로 되어 있어 어디를 봐도 <진홍 가슴 새>라고 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새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내 이름이 <진홍 가슴 새>예요?”
“응, 언젠가는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머리에는 가시관이 쓰여져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진홍 가슴 새>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 그에게 날아가 그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빼려고 합니다.
가시를 하나하나 빼는 순간 그 이마에서 피가 뛰어져 나와 <진홍 가슴 새>의 가슴을 붉게 물들입니다. 결국 그 청년은 죽어버립니다. 이후 집으로 간 <진홍 가슴 새>는 가슴에 묻은 그 피를 씻으려 해도 지워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새끼들도 태어나면서 진홍 가슴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보혈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박히신 가시를 뽑는 일을 해야 합니다. 즉, 주의 일을 해야, 주의 보혈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가 말한 것처럼 “Learning by doing”처럼 “Believing by doing”입니다. 절대로 행치 않고는 믿음의 참 진리와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기억하십시오. 행해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행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의 진리와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4. 오늘의 종려주일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오병이어와 죽은 사람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신 새로운 왕의 입성을 “호산나”하면서 환영합니다.
문제는 정작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금요일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 도망가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은 경험하고 좋아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치 않았기에 보혈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 말씀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알아가고,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는 고난주간이 되시길 권면합니다. 아멘.
(종려주일 카드 작성하고 기도하기-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를 통해서 고치길 원하는 것 쓰기/믿음,가정,삶)
첫댓글 이번 고난 주간은 주님의 마음과 이마에 박힌 나의 어리석음의 가시들을 빼는 시간으로 지킵니다. 믿음의 어리석은 가시들, 삶에서의 어리석은 가시들, 가정에서의 어리석음의 가시들. 그래서 부활의 놀라운 영광 가운데 섭시다. 이는 가시빼는 성도들에게 부어지는 보혈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