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의 기쁨
휴천동 본당 김영모 그레고리오
저는 시골의 조그만한 소수중학교 국어 교사를 마지막으로, 퇴임하여 지금은 순흥의 선비촌 앞 청다리라는 마을에서 열 평 남직한 서각 공방을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공방을 운영한다고 돈이 되는 것은 아니고 제가 개인적으로 쓰는 공방을 이웃과 함께 하는 모여, 작업을 같이 하는 정도입니다. 일 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우리 공방에 모여 서각을 합니다. 영주시에서 오시는 분, 이웃 풍기서 오시는 분, 가까운 순흥 이웃 마을에서 오시는 분들입니다. 또 한 분은 봉화에서 오십니다. 회원은 여덟 분입니다. 외교인이 다섯 분이고 우리 천주교 자매님은 두 분입니다. 한 분은 쉬는 교우입니다. 개신교 신자이면서 하망동 만남의 집에 봉사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돈도 되지 않는데 무엇을 바라고 공방을 운영하느냐?’고 어떤 분은 말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돈만 가지고 삽니까? 아니지요. 퇴임을 하면 돈보다도 사람의 정이 더 그리운 법이지요. 우리 공방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음을 나누는 집이 되었습니다. 공방에 오실 때 어떤 분은 집에서 농사지은 사과도 가져오시고 풍기를 거쳐 오시는 분은 정 도너츠도 사 오시고 순흥 술떡도 사 오시고 과자며 커피며 각종 차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쩌다 지각을 하면 오늘은 몇 명이냐고 전화가 걸려옵니다. 잠시 후면은 사람 수보다 넉넉하게 시원한 빙과류가 배달됩니다. 지난 여름에는 유난히도 더웠던 해였지요. 그래서 얼음과자도 넘쳐났지요. 요즈음 겨울철, 난로 가에는 고구마를 호일에 싸 구워먹기도 하고 가래떡을 구워 먹기도 합니다. 먹고 마실 것들이 항상 넘쳐나고 마음까지도 모두 따뜻합니다. 환갑을 전후로 모인 분들이니 세상의 사는 법도 어느 정도 터득하시고 남에 대한 배려도 넉넉하고 유우머로 공방을 한바탕 웃음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제가 늘그막에 사람복이 터졌나 봅니다. 가끔은 서각 수업도 땡땡이 치고 추어탕집에 묵집에 모여 식사를 하고 산속 찻집을 찾아 온갖 정담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가끔 회원집 방문을 하는 날은 더할 수 없이 좋은 날이지요. 날이 춥지 않은 날을 택하여 야외 원두막에서 삼겹살 파티는 늙어가는 우리들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오늘 못한 서각은 내일로 미루면 되는 것이 우리 공방의 후한 마음입니다. 오늘 못했다고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답니다. 우리에게는 정다운 이웃과 내일이 있으니까요.
지난 가을 교구 ‘말씀 축제’ 때는 서각 작품을 출품하였습니다. 자매님과 제가 힘을 합하여 신부님 서품 성구를 모아 몇 작품 만들어 출품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교구의 많은 신부님들 서품 성구를 모아 전시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번 성탄 때 우리 본당에 새영세자 모두에게 아기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 상을 서각하여 깜짝 선물을 하기로 하고 지금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두어 작품만 완성하면 준비가 다 됩니다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몇 년 전에 제 혼자 이 일을 했는데 또 하자니 무어 생색내는 것 같기도 해서 망설이다가 자매님에게 제 뜻을 말씀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서각을 하고 있던 작품을 제쳐놓고 모자상을 서각하는 자매님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밝습니다. 깜짝 선물을 받고 기뻐할 새 영세자를 생각하니 제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핍니다. 자매님께서는 지난 추수 감사절 선물 나누기를 할 때도 서각 작품을 선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이번에는 제 혼자가 아니라 자매님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인 재주와 취미가 이웃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