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역사탐방] 양화나루에 얽힌 역사를 찾아서
제21회 역사탐방은 조선의 해상물류 중심지 양화나루와 천주교 선교에 얽힌 역사지를 탐방합니다.
전문 해설사와 함께하는 사색의향기 역사탐방은 회원님들께 특별한 인문학 체험이 되실 것입니다.
+ 탐방일시 :
+ 만남시간 및 장소 :
+ 운영진 :
+ 회비 :
+ 탐방일정
- 13:50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 70m 전방 정자 (편의점 앞)
- 14:00 ~17:00
양화진 선교사 묘원, 양화진(군진), 절두산 성지, 양화나루, 망원정 탐방
+ 참가 인원 : 20명
+ 복장 : 편한옷, 운동화
+ 탐방해설 :
+ 진행 :
+ 탐방지 소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1890년 7월 제중원의 의사로 일했던 J.W. 헤론이 최초로 묻히면서 조성되었다. 조선 후기와 일제 때 들어와 복음의 빛을 전하려 했던 외국인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으로, 베델, 헐버트,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의 묘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이름을 기리는 것은 작은 비석 하나가 전부이지만, 비석 글귀에는 이방인이었지만 조선 사람 이상으로 조선과 조선 민족을 사랑했던 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양화진 홀은 이곳의 유래와 더불어 기독교 전래 과정과 노력을 알려주는 전시관으로 선교사들이 왜 조선을 찾았는지, 조선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절두산 순교성지]
절두산 순교성지는 구교의 성지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신교의 성지로 한강변을 따라 이웃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절두산과 양화진 일대, 양화나루터는 조세곡물을 실은 수송선이 드나들던 곳으로 한강나루, 삼전도나루와 더불어 조선의 3대 나루 중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한강변을 곁에 두고 있는 낮은 언덕인 절두산의 원래 이름은 누에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잠두봉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대원군이 1만여 명의 천주교도들을 잡아다 처형하면서 이후 절두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천주교회는 1967년 이 자리에 순교성지를 조성해 그리스도의 박애정신과 목숨을 걸고 지킨 천주교도들의 신앙심을 기리고 있다. 기념관에는 천주교회사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기념성당 지하에는 순교자 28위의 유해를 모시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야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과 절두산에서 처형된 첫 순교자 가족이었던 이의송과 그의 처 김옛분, 아들 봉익을 형상화한 기념상, 순교자 기념탑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양화나루]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의 한강 북안에 있었던 나루터이다. 「양화도(楊花渡)」라고도 하였으며 서울에서 양천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 초기 바닷물이 용산까지 밀려와 한때는 용산이 으뜸가는 나루였으나 염창의 모래언덕이 조수의 침입을 받아 허물어지고 점차 한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큰 배가 용산까지 직접 못 들어오자 양화진이 요충이 되어 크게 번창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나루는 경상·전라·충청·경기도에서 올라오는 곡물을 서강 광흥창까지 운반하는 조운(漕運) 항구로서 농산물의 재분배를 담당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고려 이래로 양천·강화를 가려면 반드시 이곳 양화나루를 건너야 했으며, 조선 영조 이후에는 송파진(松坡鎭)·한강진(漢江鎭)과 함께 한강의 삼대 관방으로 요충을 이루었다. 따라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일찍이 어영청에 소속되어 10척의 배를 가지고 순시하였으며, 진을 구축하여 관리들이 파견되어 있었던 곳이다.
이 지역은 한강 가운데서도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정자가 많았던 곳인 반면, 개화기 때 개화사상의 선각자로 널리 알려진 김옥균(金玉均)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고, 천주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유입될 때 많은 신자들이 처형된 장소로서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양화진 순교자기념관이 절두산에 세워져 있어 그 영령들을 기리고 있다.
[망원정]
망원정은 현 마포구 망원동의 일제강점기 1936년 이후 명칭이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망원리가 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에 의해 경성부 행정구역이 확장될 때 경성부 망원정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 163호에 의해 구제도(區制度)가 실시됨에 따라 서대문구 망원정이 되었다가, 1944년 10월 23일 조선총독부령 제350호에 의해 마포구가 신설되어 마포구 망원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마포구 망원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역사탐방 규정]
(1) 역사탐방 중 안전 책임은 회원 본인에게 있습니다.
(2) 참가 자격은 12세 이상으로 제한합니다.
(3) 회비는 투명하게 집행하고 운영위원회에 공지합니다.
(4) 잉여금은 동호회 기금으로 적립합니다.
(5) 사회공헌금(5%이상)을 통하여 행복한 문화 나눔을 실천합니다.
(6) 규정에 의거하여 운영진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7) 우천 시에도 행사는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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