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 텍사스의 어스틴에서...
그렇게 미국행 제2막, '텍사스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각본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자 식사는 뭘로 하겠느냐고 묻던 신부님,
아무 거나 신부님 하는대로 하자고 인야가 말하자...
그럼 간단하게 씨리얼로 하자기에,
그렇게 간단하게 때웠다. 그런데 이 신부님,
점심은 인야식으로 하자기에, 냄비밥과 숭늉을 지어 먹기로 했다.
그런데 점심이 되기 전에, 마침 그 전해에 한국에서 인야를 알게 됐던 '전라도 아줌마'가 점심 초대를 하는 바람에,
그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이제 저녁 메뉴를 정할 차례였다.
신부님은 인야가 오니 제일 좋은 게 그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거라며 좋아했는데, 소규모 성당이라 평소엔 신부님 혼자 밥을 챙겨 먹는다는데... 인야가 온 뒤로는 주방이 통째로 그에게 일임된 눈치였다.
어쨌거나 저녁은 스페인식으로 인야가 개발한 '쁠라또 리(Plato Lee)'를 하기로 했다. 뜻을 푼다면, '이 전골' 정도로... 소고기가 들어간 국물도 있는 음식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만났으니, 스페인 식의 음식으로 와인 한 잔 곁들여 하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차 운전을 못하는 신부님 때문에(운전하다 졸면 사고로 이어질 우려로) 신자 한 사람이 차를 태워다 준 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둘이서 저녁을 먹느니, 신자도 함께 하기로 하면서... 점심을 초대했던 전라도 아줌마 얘기가 나오고, 그 분의 딸도 부르자 하고, 어제 공항에서 픽업했던 젊은 커플도 부르자는 신부님의 전화가 이어지면서... 결국 그날 밤 인야의 요리를 먹을 사람은 총 아홉 명으로 부풀어 있었다.
인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이었지만, 상황이 그랬다.
저녁 때가 되었고, 정성껏 야채를 씻고 손질했지만 갑자기 불어난 양에 인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곱 시경 도착한 첫 손님들과의 1차 식사가 있었는데, 다들 말없이 먹기만 해... 인야는 속으로,
'맛이 없나?' 조마조마했는데, 한 사람이,
"맛있네요!" 하고 나서야, 다른 이들도 한마디씩 거드는 것이었다.
"음식이 참 담백하면서 맛있네요." "근데, 양념이 뭐지요?"하는 질문이 이어지며, 인야는 그제야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신부님과 먼저 온 손님들까지 나서서 도와준 덕에, 두 번째 상 차림까지 무사히 마쳤고... 설거지는 모두가 자연스레 나눠 맡아, 인야는 손 하나 대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너무 정신없던 나머지, 그 재밌던 광경을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렇지만 인야는 내심,
'이상하네? 아니, 여기 온 첫날부터 뭐... 내가 무슨 요리사라고, 더구나 사람들을 초대까지 하다니!' 하면서도,
'이게, 다... 이 '멍신부님'의 계략(?)일 수도 있어......' 하고 있었다.
어스틴에서의 날들은 어느새 인야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다.
오전엔 날이 우중충해 나갈 수도 없고 신부님도 성당 일로 자리를 비운 참이라, 혼자 놀면 뭐 하나 싶어... 어제 시도하다 만 드로잉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잠깐 밖에 나가 사제관 앞 나무 사진을 몇 컷 찍어와, 그걸 밑그림 삼아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했다.
오후 두 시, 성당에서 돌아온 신부님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데, 성모회에서 국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가 보니 열 명 안팎의 부인들이 국수를 삶고 김치전을 부치며 분주했다.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야기가 자연스레 다음 주말 특강 쪽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이야기 중간에 신부님이 불쑥 운을 뗐다.
"이 인야 선생님, 여기 그림에 관심 많은 부인들한테 지도를 좀 해주면 어떨까요?"
금시초문이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몇몇 신자들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며 인야는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시간도 많이 들고 하루 이틀에 될 일도 아니라고.
그런데 신부님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간단하게라도, 도움 될 만한 걸 몇 차례만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두어 신자가 관심을 보이고, 한 분은 아이가 미술을 하고 싶어 한다며 조언까지 구해오니... 인야로서도 그 분위기에서 딱 잘라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실기 지도 대신,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는 법' 정도의 이론 강좌 몇 차례를 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예고 없이 일을 벌이는 게 신부님의 오랜 버릇이었다.
가난한 화가인 인야가 미국까지 와서 그냥 지내다 가는 대신,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 여비에 보탤 수 있게 하려는 배려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인야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매번 안 놀라는 건 아니었지만.
'또 이렇게 신부님 꾐에 넘어가는구나......'
그날 밤엔 성서 공부를 나간 신부님을 위해, 인야는 남은 재료로 참치 또르띠야를 준비해두었다.
밤 열 시 넘어 돌아온 신부님은 상을 보자마자 입이 귀에 걸려, 술도 한 잔 마시면서 허겁지겁 접시를 비웠다.
"이렇게 훌륭한 주방장이 있으니 난 너무 행복해!" 하는 말에,
신자들 사이에 퍼진 소문(이 사제관에 손님으로 오면 누구든 결국 가정부가 된다는)이 새삼 실감 났다.
며칠 뒤, 신부님을 따라 텍사스 성당 식구들과 함께 '휴스턴(Houston)'으로 향했다.
잘은 몰라도(성당의 종교적인 기도 행사?) 신부님이 가는 데다 인야 역시 가봐도 된다는 곳이기에, 따라나섰던 것이다.
어차피 인야에겐 초행인데다, 가다 보면 그게 구경일 수도 있었기에... 차(밴형) 맨 뒷자리에 앉아 오른쪽 차창을 통해, 어스틴에서 휴스턴까지의 풍광을 보면서 갈 수 있었다.
어스틴에서 두 시간 반 남짓, 차창 밖으로는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초원과 봄꽃, 그리고 영화 '자이언트'에 나오던 것 같은 석유 시추기가 스쳐 지나갔다.
안에서 김밥으로 요기를 하며 도착한 휴스턴 초입에는 한국 간판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성당 사람들이 종종 쉬러 온다는 한 신자의 커다란 집이었다. 집의 규모에 비해 아무 장식이 없는, 더구나 아직은 사람이 살지 않는 덜렁 커다란 건물일 뿐이어서... 인야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주 출신이라는 집주인은 때깔 고운 김치를 내왔고, 인야의 책을 읽고 언젠가 그 길을 걷고 싶다던 한 청년은 세 시간을 달려 사 왔다는 민물가재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종교 모임이 끝난 뒤 다 함께 둘러앉아 가재를 먹었는데, 맛은 독특했지만 껍질이 살보다 훨씬 많았다.
어스틴 사람들은 그날 밤 다시 두 시간 반을 달려, 자정을 넘겨서야 돌아왔다.
그런데 굳이 이 집을 언급한 것은, 그 얼마 뒤(계속)... 인야와 이 집이 관계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일요일 미사에는 인야도 참석했다.
성당을 다니지 않는 그였지만, 신부님 숙소에 신세를 지면서 미사조차 외면하는 건 뻔뻔한 일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영성체만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해두었다. 물론 할 자격도 안 되지만.
그리고 인야가 그렇게나마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성당에 열심히 다니셨고... 지금도 누님과 형수님이 성당 신자이기 때문에, 극구 거부하는 심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 신부님이 다음 주 특강을 예고하며... 정식으로 인야를 소개했다. 그런데 첫마디부터,
"이 화가는 '냉담자'입니다."
그러자 신자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인야도 얼떨결에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앞으로 걸어 나가 마이크를 건네받았지만, 노래방도 안 가는 그는 마이크 대신 직접 목소리로 답하기를 원했는데...
"조금 전 신부님을 통해서 소개받은 '냉담자' 이 인얍니다."
성당 안이 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어 '야고보'가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라는 것, 자신의 세 번의 순례와 책 이야기를 간단히 전했다.
미사 후 짜장밥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렀을 때도, 특강에 기대를 건다는 신자들에게... 인야는,
"저요? 냉담잔 걸요?" 하며 다시 한번 웃음을 자아냈다.
먼저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길, 인야는 문득 생각했다.
한국에 있을 때 지난번 산사체험에서는 '열외자'였던 자신이, 여기서는 '냉담자'라니...
'어디를 가나, 난...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신부님에게는 남다른 식습관이 있었다.
자몽이든 키위든 삶은 달걀이든, 톱니 모양의 스푼으로 속만 쏙 파먹는 것이었다.
처음엔 신기해서 인야도 따라 해봤는데, 과즙이 손에 묻지 않아... 제법 괜찮은 방법 같았다.
인야는 몰래, 신부님이 그렇게 먹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두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신부님이 시장기에 식빵을 몰래 뜯어먹는 걸 목격했다. 그런데 저녁상에 앉고 보니, 그 빵의 속만 반절쯤 쏙 파여 있는 게 아닌가.
"신부님, 내가 정말 '파먹기의 달인'이라고 했다고, 빵까지도 속만 파 드십니까?"
신부님이 그제야 뜻을 알아채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멈출 인야가 아니었다.
"신부님도 TV 출연 교섭해보시죠. '개그 콘서트'. 16년간 음식을 파먹기만 한 달인, '파먹기' 신부님."
둘이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었다.
그러면서 인야가 다시 한 번,
"그럼 우리, 디저트로 둘이 마주보고 앉아... 수박까지 파먹을까요?" 하자,
신부님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잡고 주저앉을 지경으로 웃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의 상상만으로도 정말 배를 잡고 웃을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흘에 걸친 '산티아고 가는 길' 특강이 마무리되었다.
물론 여기 주임 신부님으로 계신 '멍 신부님'과의 친분으로 이루어진 일이긴 했다.
어차피 기독교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소개하는 강의였기 때문에 그 어떤 성당에서 했다 하드래도 이상할 것은 아닌 일이었다.
단 하루 하는 강의도 아니고 연거푸 3일을 하는 강의라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기에(특히 여긴 부부가 함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세번 다 나오기가 어려워... 어떤 사람은 이틀 또, 하루.. 그렇게 형편이 되는대로 참석해주어,
무난히 강의를 끝낼 수 있었다.
비록 청중은 매번 서른 명 안팎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파손된 채 겨우 도착한 '아마폴라의 유혹' 책도, 인터넷에서는 단 한 장 안 팔리던 엽서도... 이곳에서는 동이 났다.
뜻밖에도 책 속의 사진보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 인야의 그림 설명에 대한 요청이 많아... 인야는 이 강의가 산티아고 순례기인지 자신의 작가론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사인회까지 치렀고, 강의 뒤 다과회에서는 질문이 쏟아져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준비하느라 며칠간 그림 작업은 손도 대지 못했지만, 다 끝내고 나니... 보람도 느껴졌고, 홀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스틴에서 지낸 지 열흘. 어느 날 아침, 인야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신부님과 단둘이 지내는 사제관 생활은 서울에서와 다를 게 없이 편안했다. 그런데 그 편안함이 오히려 나른함이 되어가고 있었다. 뉴욕에서는 그래도 틈틈이 드로잉을 했는데, 여기서는 겨우 두 점뿐이었다.
신부님과 성당 사람들 사이에 수시로 어울리다 보니 자신만의 시간이 사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눌러앉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치는 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그런데 내가 그럴 사람인가.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다.'
다음 날은 휴스턴으로, 그리고 며칠 뒤엔 곧장 멕시코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애써준 것에 대한 보상이라며 신부님은 휴스턴의 그 큰 집에서 며칠 편히 쉬라 했지만, 정작 인야는 그림 작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미리부터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그 집엔 인터넷도 되지 않았고, 멕시코는 치안 때문에 노트북조차 가져갈 수 없는 실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