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저/최세희 역 | 다산책방 | 2012년 03월 26일 | 원제 : The Sense of an Ending
****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여 추후에 올리는 감상문입니다. ****
[크로]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소설 중에서도 추리나 미스터리, 혹은 숨겨진 이야기가 들어 있는 서사를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다. 다만 단순히 추리를 위한 추리 소설보다는 문학적 깊이가 있고, 작품 자체의 명성도 있으며, 문장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는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런 책을 찾던 중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알게 되었다. 정확한 결말은 알지 못했지만, 작품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정도는 인터넷을 통해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 역시 명성이 있고 작품의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이번에 선정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내부적으로 반전이 있고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결말을 알고 읽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어떤 미스터리가 있을지 계속 생각하면서 읽어나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곳곳에 복선과 장치가 상당히 많이 깔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구나 대사에서도 사건의 전개를 암시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정작 책을 읽는 동안에는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스스로 참 눈치가 없고 센스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인공 토니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토니는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으며, 딸이 결혼하고 출산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그러던 중 과거 여자친구의 어머니로부터 뜻하지 않은 유산 상속과 관련된 소식을 접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를 계기로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가면서 토니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충격적인 과거의 반전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소설이라기보다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상황이나 자신의 행동을 실제보다 미화하거나 각색해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는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갔던 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부끄럽거나 불편했던 행동은 희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거의 자신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과거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고, 당시에는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마치 모든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였던 사람처럼 기억한다. 자신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으며,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잊어버린 채 자신의 기억에 맞춰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제는 주인공 토니의 과거 연애에서도 잘 드러난다. 토니는 과거 여자친구와 사귀다가 헤어졌으며, 이후 그 여자친구가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된다. 토니는 당시 자신이 헤어진 여자친구를 쿨하게 보내주었다고 생각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악담에 가까운 저주의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쏟아낸 것이다.
토니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 편지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자신을 비교적 쿨하게 행동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가 보낸 편지에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을 넘어 이후 벌어지는 사건의 실마리가 담겨 있었다. 특히 에이드리언에게 베로니카의 어머니를 만나보라는 취지의 문구는 나중에 밝혀지는 사건과 연결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결국 토니가 과거에 무심코 했던 행동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가 기억하는 과거와 실제 과거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은 과거의 행동이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준다. 당사자는 이미 잊어버렸거나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다. 자신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대응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사람은 과거를 실제보다 훨씬 가볍게 받아들이게 된다. 토니의 이야기는 우리가 자신의 기억을 얼마나 쉽게 믿으며, 그 기억을 근거로 과거의 자신을 얼마나 관대하게 평가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뒤늦게 깨달은 복선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작품의 첫 부분에는 동급생 중 한 명이 여자 동급생을 임신시키고, 그로 인한 부담감과 죄책감 때문에 자살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당시 에이드리언은 이 사건을 두고 여러 철학적인 이야기와 생각을 펼친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인물의 성격과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말을 알고 나서 돌이켜보면, 이 이야기는 작품 전체의 전개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중요한 복선이었다.
당시에는 이 부분이 이후의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에이드리언이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인물이라는 점에만 주목했을 뿐,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어떻게 암시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처음부터 상당히 중요한 단서가 제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자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등장하는 인물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여자친구의 오빠와 아버지는 토니에게 상당히 쌀쌀하게 대했지만, 유독 여자친구의 어머니만은 묘하게 친근하게 대했다. 특히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계란을 프라이하다가 모양이 흐트러지자 거의 버리고 다시 만들어주는 장면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상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이러한 세부 묘사 역시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작가는 사건의 실마리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일상적인 장면과 인물의 태도, 사소한 대화 속에 숨겨놓는다. 독자는 그 장면들을 별다른 의심 없이 읽어나가지만, 나중에 결말을 알고 나면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이 작품은 복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세밀한 묘사 속에 감추어두기 때문에, 결말을 알고 나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유산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도 중요한 암시가 반복된다. 여자친구는 토니에게 자신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며, 토니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취지의 말을 계속한다. 이러한 대화는 토니가 과거의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토니는 장애아가 베로니카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자친구는 그가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으며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거듭 드러낸다.
작품의 문장과 표현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이 적지 않았다.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과 시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에 관한 여러 생각을 담고 있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토니의 모습은 단순히 한 인물의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과거를 돌아보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지에 따라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아주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읽는 재미가 없는 작품도 아니었다. 숨겨진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결말에 이르러 앞서 등장한 장면들이 새롭게 해석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 목적을 둔 추리 소설과 달리, 그 과정에서 인간의 기억과 감정, 과거에 대한 자기합리화라는 주제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 좋았다.
문체나 문장력도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품 곳곳에는 기억과 나이 듦에 관해 생각해볼 만한 문구들이 담겨 있었으며, 사건을 따라가는 재미와 별개로 문장 자체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으로 재미있거나 특별히 감탄할 정도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학적 깊이가 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찾고 있었던 나에게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