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가 새끼를 배더니, 더욱 과묵해진 듯 하다. 그 전에는 가족들 중 누구라도 문 밖을 나설라 치면, 궁둥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꼬리를 내저으며 반갑다는 인사를 했는데, 이즈음엔 그저 앉은 채로 꼬리를 살랑거릴 뿐, 냉큼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몸이 무거워졌다는 증거이리라.
그런데도 이 놈의 결벽증은 사라지지 않아서, 집 주변엔 절대 배설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 두 세 번은 배설을 위한 산책을 나서야 한다. 요즘 들어 진이의 산책 담당은 영환이가 되었다. 진이도 그것을 눈치 챘는지, 영환이만 보면 꼬리를 궁둥이에 찰싹 붙이고 종종걸음을 치며 산책 가자고 조르곤 한다.
진이에겐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 말했다시피 영환이는 산책을 같이 하고 먹을 것을 주는 친구, 고모는 몸을 쓰다듬어주고, 진드기나 벼룩을 잡아주는 친구, 수환이는 짓궂게 장난치는 친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맞먹는 친구이다.
고모가 진이를 쓰다듬을 때, 진이는 벌렁 누워서 온 몸에서 힘을 다 빼고 눈을 감는다. 다리를 이리저리 제치면서 진드기를 찾아도,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누워 있다. 머리를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고, 다리를 들어올려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놓아도, 그저 알아서 하십시오, 하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진이가 얼마나 고모의 손길을 신뢰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옆에서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전적인 신뢰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이는 말없이 사랑한다.
진이와 수환이가 어떻게 사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어쨌거나 진이는 내게 친절하다. 나는 진이에게 밥을 준다거나 산책을 시켜주지 못한다. 그래도 춥지 않은 날 아침, 마당에 나서서 댓돌 위에 앉으면, 진이는 꼭 내 옆에 나란히 앉는다. 진이가 댓돌 위에 올라앉기 때문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게 된다. 그렇게 마주보다가 그 입으로 대뜸 내게 기습적인 입맞춤을 하는 때도 있다.
내가 몸 안의 소리로 어매이징 그레이스나 아리랑 같은 노래를 부르면, 진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떠서 건너편 산을 바라보았다 하며 같이 명상을 한다.
진이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녀석과 내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녀석은 내 눈길에 자신의 눈길을 그윽하게 포개어 놓을 줄 안다. 그리고 “진이야, 너 나랑 똑같다.”하고 말하면, 당연하다는 눈빛으로 잠시 내 눈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렇게 앉아 있다가 같이 방귀를 뀌기도 한다. 진이도 태연하고 나도 태연하다. 다만 좀 더 재미있어진다. “진이야, 너도 방귀 뀌냐?”하고 놀리면, 진이는 “그래서 뭐?”하는 표정으로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거나, 콧방귀를 흥 하고 뀌어서 내게 콧물을 튕긴다.
우리의 시간은 그래도 역시 쓰다듬기로 마무리 지어진다. 진이는 내가 쓰다듬기 좋은 위치에 엉거주춤 서준다. 콧잔등에서 이마, 목덜미, 앞 목, 등, 배, 다리, 꼬리까지 쓸어준다. 다 끝나면 진이는 손을 핥아준다. 둘 다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알면, 나는 집 안으로, 진이는 적당한 나무 그늘로 각자 자기의 자리를 찾아 돌아간다.
마당에 어른거리는 진이의 하얀 그림자는 마음을 윤기 나게 한다. 녀석이 품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첫댓글 적당한 관계이지요. 같은 곳에 도달하는 그런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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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진이와 닮은 점이 참 많아요. 근데 우리 진이는 동정녀! ㅎ
아! 기자영님 거의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