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환자들의 자립을 위한 마을에서 양돈, 양계 마을로 발전한 마을. 지금은 건강한 사람들이 찾아와 자리를 잡고 함께 살아 이 마을 노인들은 이들을 '건강인'이라고 부른다.
여수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창밖으로 여수가 보인다. 바다와 맞닿아 해안의 곡선이 그대로 보인다. 여수는 광양, 순천과 함께 전라남도의 남동부 중심도시. 근현대사에서 여수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항일운동의 유적들이 시내에 그대로 남아있고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도 남아있다. 또한 독특한 근현대문화유산인 100년 된 병원 '애양원'이 있다.
'100주년' 맞은 애양병원
애양원교회 10년전 핸드폰 벨소리 같은 멜로디가 스피커에서 나온다. 교회 입구를 알리는 소리다. 앞 못 보는 신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애양원교회는 1928년 현재의 위치로 광주에서 이주했고 당시 환자들의 공모를 통해 '애양원'이라는 이름이 채택돼 '애양원교회'로 불리기 시작했다. 1982년 성산교회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32호로 지정돼 있다. (이다일기자)
'애양원'이 있는 여수시 율촌면 신풍반도는 여수공항 바로 옆이다. 여수시내에서 차로 30분정도 떨어졌다. 지형이 특이하다. 육지의 끄트머리에 붙어있는데 뽈록한 혹처럼 튀어나왔다. 마치 길만 연결된 섬처럼 보인다. 공항 활주로를 돌아 4km를 들어가니 마을이 나온다. 근현대사가 가득한 '애양원'이 왼편에 큼직하게 자리 잡았고 오른편은 약간의 농지와 몇 안 되는 가게가 동네의 전부다.
애양원의 역사는 많이 알려져 있다. 100년 전 1909년, 목포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오웬목사를 치료하기 위해 광주에서 길을 떠났던 의사 '포사이트'가 길에 쓰러진 한센병 여자 환자를 치료한데서 시작됐다. 1911년 광주나병원으로 발전했고 1925년 현재의 여수 율촌면으로 이전되어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곳 애양교회 건물과 초기 병원으로 쓰였던 지금의 애양박물관 건물이 '등록문화제'로 지정돼 있다.
도성마을이 생긴 이유
애양교회 앞에서니 '도성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육지 끄트머리에서 또다시 작은 산을 넘어야 하는 곳. 게다가 한센병을 치료하던 병원 너머로 마을이라니, 궁금한 생각에 마을을 내려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독특한 광경 두 가지가 눈길을 끈다. 골목골목마다 축사가 있다. 마을 전체가 축사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돼지, 닭이 가득하다. 또 하나, 시골마을에 노인이 많은 것은 익히 봐서 알고 있지만 이건 좀 특이하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바퀴가 넷 달린 전동스쿠터로 이동한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전동스쿠터가 달리는 길은 '피득1길', '피득앞길', '따윗촌' 등 생소한 표지판이 서 있으니 눈 씻고 봐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다.
따윗촌 한센병 환자촌을 성경에 나오는 '다윗'으로 지었다. (이다일기자)
잠시 후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통해 이 모든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1955년에 이 마을로 왔다는 82세의 박동환 할아버지는 이 마을이 한센병 치료와 재활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 설명했다. 여수 '애양병원'이 한센병 치료를 한다는 말에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었고 병원에서 수용할 수 없자 바로 옆 이곳에 집을 지어 살게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독신병사, 여자병사로 구분해 방 4개짜리 집을 짓고 한 방에 7~8명의 환자들이 같이 생활했다고 한다. 이것이 도성마을의 시작이었다.
1975년부터 자활을 위해 마을에서 직접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우기 시작했다. 손발이 불편한 한센병 환자들이니 일반인들에 비해 몇 배는 힘들게 해온 생계가 닭과 돼지를 키우는 축산업이다. 박 할아버지는 "지금은 일반 마을과 이곳이 다를 게 없지. 예전엔 창살 없는 감옥이었어, 일반인은 사무실에서 면회신청을 해야 들어올 수 있고…. 그대로 누가 들어오려고 하나, 그냥 우리끼리 이러고 살았지 뭐."라며 예전 모습을 설명했다.
'피득촌', '따윗촌' 그리고 '건강인'
박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생소한 단어가 나왔다. 박 할아버지는 "예전에 여기는 다 한센병 환자들이었지. 지금이야 우리같은 사람들하고 '건강인'하고 반반쯤 되나봐"라고 했다. 인터뷰 내용은 뒷전이고 '건강인'이란 단어가 궁금했다. "자네같은 사람 말이야. 팔다리 건강한 일반사람 말이지"라며 건강인의 뜻을 설명해주는데 사람을 건강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 말씀하시는 모습이 그간 질병과 질병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고생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 듯 해 안타까웠다.
애양병원의 주인 애양병원에서 치료받은 사람들. 지금도 100여명이 도성마을에 살고 있다. (이다일기자)
'피득촌', '따윗촌'이라 써있는 표지판도 궁금했는데 옆에 있던 젊은 사무장이 말을 보탠다. "영어로 피터가 피득촌이 됐고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 따윗촌이 된 거에요". 이 마을이 외국 선교사들의 치료 활동 중에 생겨나다 보니 마을 이름도 거기서 따 왔다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피터마을', '다윗마을' 정도가 되나보다.
그렇게 외부와 단절되어 수십년을 살다보니 이곳 사람들은 서로 형제보다 친하다고 한다. 이제 남아있는 한센병 환자들은 100여명, 대부분 80을 넘긴 노인들이다. "우리같은 사람이 이제 마지막이지, 지금이야 병도 치료할 수 있고 건강인들도 같이 살려고 이렇게 들어오잖아. 우리가 죽으면 이런 마을은 역사에나 남을게야"라며 박 할아버지는 편치 않은 얼굴로 껄껄 웃으셨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가는길/ 여수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3.4km 들어가면 마을 입구가 나온다. 여수와 순천에서 수시로 버스가 운행된다. 순천에서 96번, 여수에서 35번, 35-1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여수시내에서는 승용차로 30분정도 소요된다. 마을이 축산업을 하므로 모든 출입구에 방역, 소독시설이 돼 있다.
전동스쿠터 지금 남아있는 한센병 환자들은 대부분 80을 넘긴 노인들이다. 게다가 병으로 인해 장애인으로 등록돼있다. 이 때문에 마을에는 전동스쿠터가 주된 교통수단처럼 보인다. 마을회관 앞에는 전동스쿠터를 탄 노인들이 지나다니고 버스정류장 앞 가게에는 들쑥날쑥 주차된 스쿠터가 늘어서 있다. 몸이 불편해 축산업을 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정부보조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다일기자)
도성마을 돼지 도성마을은 자립을 위해 닭, 돼지를 키우는 축산업을 시작했다. 조류독감 등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지금도 마을의 주 수입원이다. 마을에는 지금도 축사가 가득하다. 심지어 우리에서 탈출한 돼지가 길을 걸어 다니기도 한다. 가축이 많다보니 폐수로 인한 냄새가 나고 파리가 많지만 손발이 불편했던 도성마을 사람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이다일기자)
애양병원 1909년 시작된 한센병 진료가 발단이 되어 광주나병원을 거쳐 이곳으로 옮겨오게 됐다. 예전 병원건물은 애양원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지금의 병원건물 옆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 초기에는 한센병 진료를 위한 병원으로 시작됐지만 점차 이들을 위한 재활치료, 정형외과 수술, 안과치료 등 다양한 분야로 치료 범위를 늘려갔다. (이다일기자)
신풍반도 애양원 역사박물관 배병심관장이 애양원이 위치한 신풍반도의 모양을 설명하고 있다. 신풍반도는 입구가 좁고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되기 좋은 지형이었다. 때문에 처음 애양원을 설립할 때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선교사와 지역유지들의 도움으로 병원과 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다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