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자와의 이별로 고통받는 상우(유지태)는 마루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할머니가 넌지시 다가와 손자에게 이말을 건넵니다.
전 이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할머니가 말하는 대사는 사실 우리가 한두번은 들어본 말입니다. 만약 이대사를 택시운전하는 친구가 했다면 상우가 그토록 할머니를 붙잡고 운겄처럼 친구를 붙잡고 울수 있었을까요?
똑같은 말이라 해도 어느상황에서 누가 해주느냐는 분명이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더군다나 상우의 할머니처럼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평생의 업보처럼 가지고 가는 분이라면 더욱 더....
영화 <봄날은 간다>은 여러모로 허진호 감독의 전작<8월의 크리스마스>와많이 닮았습니다.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자 또한 한계처럼 느껴지더군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어쩔수 없는 이별이야기...라는 큰줄거리가 우선 그러하구요, 남자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소시민적삶과 지극히 평범한 그의 가족들(8월의 크리스마스의 아버지와 시집간 여동생,봄날은 간다의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고모..)이 역시 비슷합니다.
무던한 남자주인공의 성격중에서도 어쩔수 없이 성인군자는 아니란걸 (한석규가 파출소에서 술먹고 소란피운일, 유지태가 일을 그만둔다며 선배한테 욕하며 대드는 일) 딱 한번씩 보여줍니다.
남자주인공보다 여자주인공의 성격이 좀더 적극적인거 또한 비슷합니다.
복잡한 대도시가 아닌 조금은 한적한 도시인점도 비슷하며 결코 요란하지 않고 배경이 차분하게 나오는 카메라의 시선도 여전합니다.
여기까지는 두 영화를 보신분이라면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저와 마찬가지로 느꼈을줄로 압니다.
결정적으로 가장 비슷한 점이 하나 더 있던데요..그것은 감독 특유의 불친절한 연출기술 입니다.
두 영화 모두 결국은 사랑의 결실을 못보는 결정적 이유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관객의 상상에 그냥 맡겨버립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왜 한석규가 불치병에 걸렸는지,도대체 무슨 병인지 아무런 힌트도 주지않습니다.그의 평소 행동과 표정으로 그저 유추할 뿐이죠.어쩔수 없이 심은하와 헤어지게 만든 계기임에도 불구하고...
봄날은 간다는 이영애가 왜 먼저 헤어지자고 하는지 결정적 이유를 들여 밀지 않습니다. 이혼녀에 연상인 그녀가 집에 가자는 유지태의 말에 부담을 느껴서?...아님 애초부터 친한 애인으로만 사귀었는데 너무 다가오는 남자가 부담스러워서?...아니면?... 그냥 철저하게 관객의 상상에만 맡겨버리고 있습니다.앞으로 잘하겠다는 남자의 말도 무시한체 그녀의 심경변화는 헤어짐의 주된 이유가 되죠...
데뷰작의 호평속에 내놓은 다음작품이 이렇듯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한것은 일종의 감독의 도전정신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작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작품이나 흥행결과가 나오면 바로 비교될수 있다는 건 인지상정이련만 허진호 감독은 고집스럽게 마치,<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더하고픈듯 똑같은 장르속에서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다시 보여줍니다.
비슷한 예로 홍상수 감독을 들수 있겠는데요...데뷔작<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새로운 작가주의 감독의 전형을 보여준 홍상수 감독은 이후 불륜을 소재로한 남녀간의 사랑으로, 다큐멘타리를 보는듯한... 섬세하면서도 물끄러미 쳐다보는듯한 카메라연출력으로 이후 계속해서<강원도의 힘><오 수정>을 선보입니다.
오히려 세번째 작품 <오 수정>은 흑백으로 만드는 오기(?)까지 부립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남녀간의 불륜을 이렇게 적절히 잘 묘사하는 감독은 홍상수감독이 최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잠시 얘기가 다른데로 빠졌는데요...음..그러니까 <봄날은 간다>는 허진호 감독의 사랑을 소재로한 자기만의 연출세계에서 이번이 두번째라는 겁니다.홍상수 감독처럼 집요하게 자기의 전공분야(?)를 살릴겄인지...아니면 장윤현 감독처럼<접속>에서 스릴러<텔미 썸씽>으로 갈것인지...
그의 3번째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사족하나: 이영애와 유지태가 처음 만나는 역 대합실에서 유지태가 핸드폰을 거니 이영애가 바로 옆에서 핸드폰을 받는데...이영애의 벨소리는 '사랑의 인사' 더군요. 아주 잠시 울리는데요....고지식한 히트앤드런이 핸드폰 사고나서 3년동안 한번도 안바꾼 벨소리라 순간 영화보며 깜짝놀랬습니다^^
사족 둘: 이영애의 스튜디오에 초대손님으로 나온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썬글라스를 벗자 쫌 의외였습니다. 바로 <강원도의 힘>의 남자주인공 백종학이죠...지금은 아나운서 허수경의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