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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997년, 2002년 신화의 그늘 |
Writer : 김대호 Date : 07-12-17 18:14 Hit : 363 |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 곽병찬은 이렇게 말했다.
‘어째서 7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의 질을 악화시킬 사람을 더 지지하며, 400만 농민은 왜 완전한 시장개방을 추구하는 후보를 선호하며, 시장 상인들은 대형할인점이 지원하는 후보에게 열광하며, 중소기업인은 재벌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후보를 대변하고, 하층민들은 복지국가를 기피하는 후보를 선호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중산층•서민 대중은 자기 배반의 길을 선택하려는가.(중략) 단언컨대 그들은 부패•사기•거짓말을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무능하고 오만하며 저 혼자 잘난 척하는 집단을 거부할 뿐이다. 저희를 배반한 자를 용서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중략) 이들을 배반한 건 다름 아닌 현 정권이다. 권력을 시장과 재벌에 넘기고, 신자유주의와의 대연정을 추구했다. 균형 대신 불균형을, 중소기업 대신 재벌을, 공동체 대신 시장을, 공존 대신 경쟁을 선택했다. 그 결과 노동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졌으며, 빈익빈 부익부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됐다.(한겨레신문, 2007.12.17)
곽병찬류의 인식은 이른바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보편적인 인식일 것이다. 여기에 입각하여 문국현은 정동영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곽병찬의 솔루션을 일관되게 부르짖고 인지도도 충분한 민주노동당의 저조한 지지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론만 먼저 이야기 하면, 숱한 치명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대표하는 두 후보들의 높고 안정적인 지지율은 기본적으로 민주개혁진보가 1987년과 1997년과 2002년에 창조한 빛나는 성공 신화의 그늘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개혁진보 세력은 이 희한한 대선판을 만든 주범으로 노대통령의 말과 통치행태와 정책노선을 지목하며 노대통령을 증오하고 있다. 이래서는 이기든 지든 민주개혁진보의 미래는 없다.
1987년의 그늘
민주개혁진보는 자신들이 만든 그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자신들이 중시하는 가치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는지, 자신들의 좋은 의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배신당하는지 너무 모른다. 이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부위와 속살을 찍은 수천 장의 X선, CT, MRI 사진=통계 등을 통해 귀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아마 책 한 권 분량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연역적으로, 개념적으로 이 그늘을 설명하려 한다.
1987년 6월 항쟁과 7~8월 투쟁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민주화는 대중운동에 의한 아래로부터 민주화였다. 동시에 독재세력과 보수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에 의한 민주화였다. 민주화와 개혁 과정은 대중적 저변도 넓고 다방면에 걸친 중장기적 국가 개조 비전과 전략과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좋은 정당’에 의해 지도된 것도 아니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조직된 진보와 보수 이익집단과 공공부문이 민주화, 분권화, 자율화의 과실을 과점하면서 가치생산사슬(사회적 동기부여체계)을 왜곡하게 되어있다. 또한 독재의 도구였던 국가의 기강과 질서, 권력기관의 권위는 과도하게 훼손되게 되어있다. 또한 탈권위주의, 분권화, 대화와 타협은 필연적으로 국가적 추진력(발전드라이브 전략)의 약화를 초래하게 되어있다.
한편 사학법과 언론법 소동에서 보듯이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직능 조직 등에 지속적으로 대변자를 파견해 온 보수 이익집단의 물질적 기득권도 쉽게 해체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입법권은 오랫동안 한나라당 계열의 몫이었다. 탄핵 총선 이후 소수파로 전락했을지라도 시장지배적 언론의 엄호하에 법사위와 본회의장을 점거하면 웬만한 개혁입법은 다 막아낼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 정치세력은 진보 이익집단의 대변자 노릇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한 사회의 성장과 통합의 관건인 사회적 상벌체계=가치생산사슬을 왜곡하는데 한나라당 못지않게 힘을 보탰다고 할 수 있다.
평화민주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신당으로 내려오는 민주개혁 세력의 주류는 진보 이익집단과 보수이익집단과의 어정쩡한 관계가 숙명이었다. 대체로 호남향우회로 뭉친 몰락해가는 영세 자영업자들과 직장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는 네티즌들과 정의감이 살아있는 시민들(특히 386)이 대중적 기반의 주요 부분을 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가장 강력한 대중적 기반은 영,호남의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일 것이다.(최근에는 강남과 수도권의 신지역주의적 투표성향도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리나 예산 할당에서 편향성을 초래하긴 했지만, 사회적 가치생산 사슬을 크게 왜곡하지는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가치 생산 사슬을 왜곡했다면 과잉대표성을 행사하는 초당적 ‘농촌의원’들에 의한 주도된 3농 분야에 대한 과도한 재정 할당 때문일 것이다.
1997년의 그늘
1997년 하반기부터 외환위기와 김대중 정부의 구조개혁 의지가 결합하여 개방화, 탈규제화(자유화), 유연화, 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화(부채비율과 BIS비율)가 급격히 추진되었다. 동시에 정보통신(벤처)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투기가 이뤄졌고, 국가주도로 정보화 인프라를 깔면서 정보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다. 그럼으로써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급격하게 세계화, 자유화, 지식정보화, 수도권 집중의 물결이 밀려들게 되었다. 동시에 중국 경제의 급격한 성장(세계의 공장화)으로 인해 엄청난 경제,사회 구조조정의 압력이 밀려왔다. 문제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거대한 도전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가기에는 한국 정치와 관료와 지식사회가 너무나 무지하고 나태하고 이기주의적이라는데 있었다. 한마디로 도전은 강력하고 복합적인데 반해 응전 주체는 너무나 취약한 것이 지난 10년의 난항과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대기업과 수출기업은 세계화(개방화), 자유화, 지식정보화가 제공해 준 엄청난 기회를 움켜쥐었고,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은 금융기관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내수기업,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였다. 오히려 상당수가 구조적 위기에 봉착하였다.
5년 단임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인한 김대중 정부의 후반기 역부족과 참여정부를 포함한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혼미한 방향 감각으로 인해, 강력한 노조가 버티고 있는 민간부문, 학교(특히 대학), 자격증으로 보호되는 전문직, 공공부문 등에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너무 과소하고 온화한 시장을 제대로 혁파하지 못하였다. 이는 1997년을 계기로 갑자기 과도해지고 가혹해진 시장이 지배하는 영역(거대한 규모의 실업.반실업자,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 청년 인재 할당 문제, 사교육 열풍, 유학열풍, 공무원시험 열풍, 자격증 시험 열풍의 근원은 바로 이것이다.
한편 재벌, 금융기관, 관료(검찰,법원 등), 사학, 지방정부, 이익단체 등에 주어진 자유주의적 개혁(분권화 자율화)은 세련된 규제감독=민주적 통제를 동반하지 않아 신용카드 대란, 부동산 대란, 토건 관료/지방정부/검찰/법원/사학 등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였다. 사회안전망은 비약적으로 강화되었으나, 기본적으로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잠재적 복지수혜자가 너무나 커서 웬만한 예산은 언발에 오줌누기로 만들었다. 특히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이 높아서, 세금과 보험료의 대폭적인 증률이 곤란하여 사회안전망은 소득 수준에 비해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영세자영업자들과 지방중소도시들은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이들을 보호하려면 대형할인매장의 중소도시 확산 및 24시간 영업을 규제하고, 홈쇼핑과 인터넷유통을 규제하고, 해외 소비와 수도권 집중을 억제해야 하는데, 하나같이 실행하기 힘든 반시장적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는 소비자 이익에도 상충된다.
요컨대 참여정부와 주류 언론과 지식사회가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은 시장원리, 소비자 이익 중시,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 도덕적 신뢰에 입각한 통치는 너무 과소하고 온화한 시장을 제대로 혁파하지 못하고, 종종 사회적 강자의 합법적, 제도적 약탈, 전횡을 방치하기도 하고 연출하기도 하였다. 공정과 투명, 원칙과 신뢰는 여전히 절실한 가치지만 깊숙이 침투하지는 못하였다. 복지 강화 정책 역시 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 줄 사회적 저변 형성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1987년을 벗어나지 못한 민주개혁진보
평화민주당, 민주당, 열린 우리당 등에 수혈되거나 새로이 진출한 젊은 피, 개혁 피(?) 역시 사회주의, 사민주의, 제3의길(사회투자국가 등)를 뛰어넘는 한국의 독특한 체질에 부합되는 총체적인 국가개조 비전과 전략이 없었다. 물론 5.31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국민이 가려워하는 지점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하고, 열린우리당 해체-노대통령때리기-통합신당 창당이라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정략적 처방을 내놓은 이른바 당 중진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대통령과 민주개혁진보 세력은 한국 체질에 적합하고 우선순위와 강약이 정확한 가치,전략,정책 패키지=가치생산사슬의 합리화.선진화 전략이 없었으니, 한나라당이 육탄저지를 하지 않았어도 제대로 된 개혁입법을 입안, 통과 시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예컨대 국보법, 사학법, 언론법 등은 무난히 통과시켰겠지만, 불합리하기 이를데 없는 공무원연금법, 보건의료복지 관련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헌법 등은 통과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여성의원과 여성단체에 휘둘려 여성비례대표 할당제와 성매매방지법 같은 실효성과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법은 수두룩 통과시켰을 것이다. 비정규직 법처럼 기업주라는 이해관계자가 있는 법은 함부로 통과시키지 못해도, 이해관계자가 납세자 전체=재정이라면 이익집단이 작업만 잘하면 이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법은 수두록 통과시켰을 것이다. 물론 이는 국가 개조의 가치,비전,전략과 모럴이 더 취약한 한나라당과의 우호적 협조로 통과시켰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과 대통합신당의 어려움에는 돌파하기가 너무나 힘든 한계와 충분히 피할 수도 있는 오류가 중첩되어 있다. 이 오류의 핵심은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중진들이 1987년과 1997년의 그늘과 전면전을 벌여야 할 싯점에, 1987년의 잔존 과제(냉전적 질서=국보법, 권력기관에 대한 도덕적 신뢰 부재, 천박한 문화 등)와 전면전을 벌렸다는데 있다. 따지고 보면 열린우리당의 명칭에 있는 ‘열린’, 참여정부의 명칭에 붙은 ‘참여’, 대통합신당의 명칭에 붙은 ‘통합’(민주대연합의 다른 표현이다)은 기본적으로 1987년이 상징하는 정신과 가치에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1987년을 넘어서야 할 시점에 철저하게 1987년 안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동전의 양면의 문제
한국의 숱한 사회문제의 근원은 너무 과도하고 가혹한 시장과 너무 과소하고 온화한 시장의 병존 현상이다. 사람들은 1인당 GDP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한국의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전문직의 처우가 얼마나 높고, 안정적인지 모른다. 이들이 세계화, 지식정보화, 과학기술혁명, 중국 등으로부터 오는 구조조정 압력을 거부하면서, 이 압력이 오롯이 실업자,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또한 보수 이익집단과 공공부문과 지식사회 역시 얼마나 불합리하고 몰염치한 줄 모른다. 단적으로 대학은 실력이 전임교수에 비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시간강사에 대한 착취와 학생.학부모에 대한 착취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이 수혜자들인 전임교수와 대학직원들과 재단은 이에 대해 완전히 함구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 공장에서 왼쪽 바퀴를 끼우면서 연봉 5천만원을 받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끼우면서 연봉2천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의 관계와 완전히 동일하다. 선진국은 1인당 GDP를 감안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대충 연봉 2천5백~3천만원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성과와 직무에 기초한 임금 체계를 동일하게 적용받고 있고, 고용 유연성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할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정규직, 전임교수, 전문직, 공공부문, 대기업의 지나치게 높고 안정적인 고용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시간강사, 영세자영업, 중소기업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귀족 아닌 귀족을 없애지 않으면 노비 아닌 노비 문제를 해결 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사회적 동기부여 체계의 선진화 혹은 경제적 지대 혁파를 얘기하지 않는 모든 일자리 창출 대책은 사기라고 봐도 별로 틀리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무능하다면 사실 구부러진 동전의 한 쪽 면은 그대로 두고 다른 쪽 면만 피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 한 쪽 면을 피는 것이 너무나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좌절과 피눈물을 보고도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못 본다면 노무현 정부 보다 더 무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두 보수 후보들의 가공할 만큼 높고 안정적인 지지율은 ‘줄푸세’ 공약과 ‘강한 추진력’이미지에서 보듯이, 진보가 주도적으로 구부린 부분을 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보수가 주도적으로 구부린 부분을 필 의지가 없기에 나는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똑똑해도 국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무능한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유능한 정부를 원하는 국민들이 국회의원이 많은 정당을 선택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부러진 동전의 양면을 균형적으로 보고, 사회적 상벌체계를 정상화(불평등의 합리화=공평화)하기 위해, 20여 년에 걸쳐 너무나 강력해진 진보와 보수이익집단과 싸우고, 공공부문과 구조적 나태에 빠진 지식사회를 정상화 할 수 있는 진짜 미래세력이 나오기 전까지는 대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고, 쥘 수 밖에 없다. 찬찬히 따져보면 허경영의 다른 버전에 불과한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보다, 그래도 현실을 알고 의회에서도 상당한 힘을 가진 대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을 선호하는 국민적 표심은 유권자의 현명함의 발로라고 보아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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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감하는부분과 그렇지못한것도 있는글입니다. 그래도 현상황을 다시생각하고 정리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에구...읽긴 읽었는데 나중에 한번더 읽어봐야겠네요
진보(혹은 라고 불리는 집단)이 지향하는 바가 '현재 보수가 가지고 있는 것(혹은 것만큼)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수도 혹, 그렇게 보일수도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