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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카일. 미국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의 '레전드' 저격수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9.11테러에 충격 받아 입대해 미군 역사상 최다 저격기록을 세운 인물로 반군들이 알-샤이탄(악마)라는 별명을 붙일만큼 공포의 대상이다.이라크전에 투입돼 공식 확인 기록 160명. 비공식 기록 255명의 반군을 사살했다. 크리스 카일이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을 소재로 쓴 논픽션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영화로 만들어져 최근 국내에도 개봉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명성에 혹해서 지난주말 이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우리사회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해도 내전상태인 이라크의 현실에 비해서는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터인 도시는 철저히 파괴되고 삶의 현장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일상적으로 드리워졌다. 영화는 매우 흥미롭고 스릴이 넘쳐 흘렀지만 미군 저격수가 10대 테러범을 사살하고 반군은 미군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를 전기드릴로 살해하는 비극을 보는것은 영 불편하다.
영화속 이라크 반군이 요즘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다. IS는 외신(외신)에 등장하는 먼나라 집단이 아니다. 최근 IS에 한국의 10대소년이 가담했다는 보도가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와 인접한 터키 소도시에서 실종된 18세 소년 김모군이 IS측과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흔적이 발견됐다. 김군이 시리아IS세력지역에 자발적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커진것이다.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을 장악한 IS는 최근 인터넷·SNS를 통해 세계 젊은이들을 포섭해 IS대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IS에 가담한 외국인들은 90개국 1만8000여 명으로 한 달 평균 1000여 명씩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20만 명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주로 이념적, 종교적, 또는 이유없는 불만 때문에 시리아로 가지만 경제적 이유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단순히 이념만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하기는 힘들것이다.
IS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테러조직'이라 불릴 정도로 돈이 많다. 수십 곳의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 판매 수입으로 월급을 지급하고 집도 줄 정도라고 한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IS는 대원들에게 1000달러(약 108만 원) 수준의 월급을 준다"며 "요르단 중산층 소득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풍부한 자금은 테러에 이용될 수 밖에 없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려면 '돈'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테러가 수시로 발생하는 것은 IS에서 교육받은 반서구 테러리스트들이 맹활약하기 때문이다. 자금줄만 꽁꽁 묶어 놓아도 테러범들이 활개치기는 힘들것이다.
이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9.11 사태이후 테러자금 차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133개국이 국경을 초월해 발생하고 있는 자금세탁및 테러자금을 막기위해 정보공유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미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은 북한을 이란과 함께 돈 세탁과 테러지원의 가장 위험한 국가로 지목했다. 이때문에 자국의 금융기관들에게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주의하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우리는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테러 지원 위험 집단과 마주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북한과 연계된 범죄자금이 국내에서 은밀히 오고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물론 지난 2001년 9월에 제정된 금융정보분석원 소관 FIU법(특정금융정보법)이 제정되긴 했다. 하지만 이 법은 형사사건 수사에는 금융정보 접근·이용을 허용하고 있으나 막상 국가의 안위와 존립에 관한 중대한 수사를 할 때는 정보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규정 자체가 없다. 당연히 국제범죄와 테러조직의 자금줄을 막기위해 CIA(미국), SIS(영국), MSS(중국)등 외국 정보기관의 국제공조시스템에 국정원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예를들어 해외정보기관으로 부터 국내에 수시 입국하는 외국 무역업자의 테러자금 조달 혐의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어도 FIU 정보에 접근하지 못해 국내 연계자간 금융거래내역을 추적할 수 없다는 얘기다. FIU법이 개정되지 않는한 이러한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물론 정보기관의 빅데이터 접근에 따른 지나친 정보집중현상이나 불순한 목적으로 임의사용이 우려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면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 크리스 카일 같은 총을 든 군인만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것은 아니다. 보이지않는곳에서 치열한 정보전을 통해 테러를 사전에 막을 수만 있다면 더 큰 인명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법이 정보기관의 손발을 묶어 테러집단을 도와주는 어처구니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jbnews 칼럼^네이버 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