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사태를 미가가 보았다면
이승봉 목사(한울림교회)
‘최근에 돈이 급히 필요해서 장모님의 집을 담보로해서 대출을 받으려고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다. 마침 집사람이 가입해 있는 기독교 연합회관 신협에서 대출을 해주겠다고 해서 서류를 준비해 갔는데 서류상의 하자가 있어서 원하던 액수를 받을 수 없었다. 오래전에 빌려썼던 국민은행의 근저당권 설정이 해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국민은행에 해제 신청을 했더니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보증을 서주었기 때문에 해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하도 3일이라는 품값이 들었다. 확실한 담보물이 있어도 서민들은 단돈 천만원도 빌리기 어려운 현실에 슬그머니 화가 솟는다.’
누구 이야기냐구요? 바로 제 얘기입니다. 며칠전 일어난 일이죠. 그런데 4조 9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쓰고도 ‘3천억원을 더 안대줘서 부도가 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입니다. 정말 대단한(대가리가 단단한?) 사람입니다. 위대한(위가 커서 아무거나 집어 삼키는)사람이지요. 그 사람이 어떤 기자의 망원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병실에서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아프다는 핑계로 소환에도 응하지 않고 병원으로 도망친 사람이 말입니다. 우리 같으면 남의돈 단돈 백만원을 못갚아 난리가 났다해도 그런 표정으로 있지는 못할 겁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배짱 때문일까요? 아니라면 어짜피 내돈도 아닌데 하는 심정일까요? 하지만 그가 “은행부채 보다는 자기 재산이 훨씬 많다.”며 몇몇 중요 기업은 법정관리 신청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절대로 재산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참으로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오늘(1. 30), 이 대단하고 위대한 분께서 검찰의 소환을 받고 검찰청에 들어서는 모습이 뉴스시간에 방영되었습니다. 고개를 뻣뻣이 치켜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기자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꽉다문 입술, 상기된 표정은 빛받으러 가는 사람 모냥, 위풍도 당당합니다. 이번 한보의 부도 사태로 관련업체의 도산이 잇따르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 몰리고 있는 판인데도 말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의 한보사태는 원
만히 수습된다 하여도 향후 수십년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될것이라 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지난해 말 정부 여당의 노동법, 안기부법의 날치기로 인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노동자를 우롱하는 정부와 재벌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지금, 한보 사태는 그런 국민 감정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삭히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번 사태는 철저히 진상이 규명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재도적 장치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조사 초기부터 수사당국의 태도는 의심스럽기 짝이없습니다. 중요서류를 한보측이빼돌릴 시간을 주고 난후 쓰레기에 불과한 서류를 압수한다던지, 수사에 핵이되는 한보 간부들이 피신할 기회를 준다던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한보 대출건에 이 땅의 황태자김현철씨가 개입되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떠돌고 있습니다.
한보사태와 같은 경제 사고의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둘러싸고 여러견해가 있겠습니다 마는 대략 모아지는 견해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의 소유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지적입니다. 아울러 정부의 개입주의 정책의 포기와 금융산업의 개혁도 촉구되고 있습니다.
엊그제 성경을 읽다가 미가서의 한구절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우 낯익은 말씀인데 오랜동안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구절입니다.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가는 화있을 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2:1-2)” 오래전 3공시절, 5-6공시절에 너무도 많이 회자되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했다해서 옥고를 치룬 목사님(목민선교회 고영근 목사님)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민정부니, 개혁이니 하며 그 말씀은 우리의 뇌리에서 점차로 잊혀져 갔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지 4년이 지난 지금 영원히 잊혀졌으면 좋았을 이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와 저의 가슴을 후벼대는 것은 왠일일까요? 갑자기 두손이 불끈 쥐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요?
갑자기 큰소리로 울부짖고 싶어집니다. ‘하나님 이 패역한 시대를 어찌하시렵니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피끓는 목숨을 제물로 바친 일백 수십명의 열사들의 외침이 채 사라지지 않은 이 땅위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