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 1995년 경부운하 검토 ● 이명박 측근, “1996년 YS 견제로 무산” ● 충주댐, 충주호, 국립공원 통과 안 해 ● 괴산 박달산-문경 조령산 쌍방향 터널 뚫는다 ● 임시 갱도공법으로 4년내 완공 ● 서울-부산 40시간, 고속 바지선의 비밀 ● 구포대교 등 17개 재가설, 달천교 등 13개 철거 ● 대구 갈산동·화원읍, 선착장·물류단지 유력 ● 총생산 파급효과 연 1조4229억원 ● ‘타당성 없다’ 정부 보고서 자문교수들 “연구 참여한 적 없다” ● 환경단체 “백두대간 두 동강…생태계 교란 불 보듯”
길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사라진다. 그것이 길의 운명이다. 길이 사라지면 그 길에 명운을 걸었던 사람들의 인생, 풍류도 잡풀 속에 묻힌다. 지역경제도 길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고속도로였던 ‘조선 팔대로(八大路)’는 신작로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일제가 러일전쟁을 앞두고 부설한 경부선 철도(1901∼1905)는 부산 동래에서 서울 양재까지 가장 빠른 도보 길이자 과거 보러 가던 길이던 ‘영남대로(嶺南大路)’ 위에 놓여졌다. 낙동강 우안(友岸)을 따라, 또 남한강을 비껴 장호원 들판을 내달리던 영남대로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물길(水路)이다. 조선시대 부산, 경남지역의 조공(朝貢) 배와 소금 배는 낙동강을 거슬러 문경새재 코밑인 상주까지 올라갔다. 낙동강 지류를 따라 경북 내륙 골짜기인 안동으로도 들어갔다. 안동 양반이 바다 생선을 맛볼 수 있던 것도 이 물길 덕분이었다. 서울에서 충주까지는 한강과 남한강 물길을 이용했다. 서울로 가는 조공 배는 달구지로 문경새재를 넘어온 짐을 싣고 남한강의 유속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한강 마포나루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나루에는 주막과 시장이 번성했다.
강의 물길은 바다로도 연결됐다. 충북 충주의 달천강 지류에서 시작한 남한강은 경기도 양평의 팔당 지역에서 북한강과 만난 후 비로소 한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서울을 관통해 경기도 파주까지 한달음에 내뻗은 한강은 임진강과 합쳐지면서 서해와 몸을 섞는다. 강원도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문경, 상주, 구미, 물금을 거쳐 부산지역에서 남해로 연결된다.
러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일제는 경부선 철도 인근의 한강, 남한강, 낙동강 주변 나무를 집중적으로 베어내기 시작한다. 수목 남벌로 토사는 강으로 흘러내렸고, 이후 급속한 산업화로 강변이 파괴되면서 강의 바닥(하상)이 높아져 큰 배가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국도와 지방도가 늘어나면서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한강과 낙동강은 물류이동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다. 사람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도 신식 다리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제1부〉 정치 입김에 좌초된 경부운하
이명박 경부운하 노선도
사라진 내륙의 물길을 우리의 기억에서 되살려낸 주인공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성공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이 후보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마무리되어가던 해에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즉 경부운하에 대한 계획을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 사이에 우뚝 솟아 한강과 낙동강을 가로막고 있는 조령 인근 지역에 수로 터널을 뚫어 서울과 부산을 운하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낙동강 상류의 부족한 수량은 충주호에서 받거나 보를 만들어 확보하고, 높아진 하상은 준설해 수심을 확보한다는 안(案)이다. 공사비의 상당 부분은 준설을 통해 얻은 골재를 팔아 충당한다는 것.
이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가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1996년 7월, 15대 국회 본회의에서 제안한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그 한 해 전인 1995년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 내놓은 내륙주운(舟運) 건설론을 원용하는 수준이었다. 이 후보는 서울시장 퇴임 1년 전부터 대선을 향한 정책적 승부수를 띄운 셈. 하지만 이 후보의 주장은 크게 이슈화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운하 자체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후 청계천 복원에 대한 칭찬 여론이 빗발치자 이 후보는 자신의 대통령선거 제1 공약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내륙운하 건설로 확정했다. 지난해 8월17일부터는 3박4일간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가는 정책탐사를 벌이며 지역민과 언론을 대상으로 내륙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계천의 성공(환경단체들은 ‘일부의 성공’ 또는 ‘실패’로 보지만)’은 그에게 10여 년 전 국회의원직 상실과 함께 묻힌 ‘운하의 꿈’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을 불어넣었다.
세종연구원의 제안
9월을 넘어서면서 이 후보의 경부운하는 명칭이 ‘한반도운하’로 바뀐다. 서울-부산뿐 아니라 호남지역과 신의주, 원산 등 북한 전역에 운하를 만들고, 이 모든 운하를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거대 구상을 세운 것이다. 이는 다분히 지역 정서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것으로 현재는 계획으로만 존재할 뿐, 바로 실행하기에는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이 후보측도 “금강과 영산강을 연결하는 호남운하는 몰라도 북한지역 운하에 대해서는 아직 경제적 타당성 조사나 기술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반도운하 중 경부구간(이하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곳은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이다. 1995년 4월 이 연구원은 경부운하뿐 아니라 경인, 경안(서울-안양-시화호), 호남운하(한강-금강-영산강)를 비롯, 전국 5대강을 운하로 연결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세종연구원은 ‘물류혁명과 국토개조전략’이라는 테마로 1996년까지 관련 논문과 책을 쏟아냈는데, 여러 운하 중 특히 경부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서울에서 충주댐까지의 한강운하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여 “타당성이 충분하다”는 결과 보고서를 낸 적이 있으나,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내기는 세종연구원이 처음이었다. 당시 세종연구원 주명건 이사장과 연구진이 제시한 경부운하의 얼개는 이렇다.
“운하는 한강 하류인 김포 신곡수중보를 시점으로 한강 본류를 따라 남한강의 팔당댐, 충주댐(충주호)을 경유한 뒤, 조령지역 해발 125m 지점에 뚫릴 길이 20.5km의 터널을 통해 낙동강 상류지점과 연결된다. 충주호에서 터널을 통해 엄청난 물을 공급받은 낙동강은 본류를 따라 하류지점인 낙동강 하구둑까지 총 거리 500.5km 구간을 흘러간다. 운하 가운데 준설공사 구간은 총 237.5km, 절개공사 구간은 166.9km이다. 전체 운하구간에 용수 보조용 댐 7개소와 주운용 댐(수량 확보용) 8개소 등 모두 15개 댐을 건설해야 한다. 터널은 배의 일방통행만 가능하도록 폭 14m, 높이 16m로 뚫는다. 해발고도차 극복과 댐 통과를 위한 갑문은 13개소에 설치한다.
운하의 규모는 바다와 강을 모두 다닐 수 있는 2400t급 바지선이 왕복 통행할 수 있도록 평균 폭 50m와 깊이 5m로 하되 신곡수중보에서 팔당댐까지 54km는 5000t급 바지선이 다닐 수 있도록 폭 50m, 깊이 6m, 구미에서 부산항까지 139.7km는 1만6200t급 바지선이 교행할 수 있도록 폭 100m 깊이 6.5m로 한다. 총 공사비는 8조6700억원.”
경부고속철도(서울-동대구)를 만드는 데 13조원(동대구-부산 구간에는 향후 5조원 이상 투입 예정)을 퍼부은 요즘에는 ‘뭐 그쯤이야’ 하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9조원이면 ‘천문학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세종연구원은 “하상 준설을 통해 나오는 골재와 부지 판매 비용 등으로 공사비보다 더 많은 8조7300억원을 얻을 수 있으므로 재정부담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4분의 3이 경부축에 위치하고, 물류비가 국내 총생산의 15.7%인 59조원을 차지하므로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은 교통 혼잡과 환적(換積)시간이라 할 수 있다”며 “경부운하를 만들면 총 물동량의 25%를 운하로 운송할 수 있고, 운하의 운임은 고속도로와 철도에 비해 30% 수준 밖에 되지 않아 엄청난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연구원이 추정한 경부운하의 수송비 절감액은 연간 3조8000억원, 교통혼잡 비용 절감액은 연간 9000억원에 달한다. 세종연구원은 이 밖에도 경기부양과 고용창출, 영남과 경기 남부의 용수 부족난 해소, 통근용 여객선과 관광유람선 도입으로 인한 소득증가, 전쟁 억지력 증가, 대기오염, 수질오염 및 산림골재 채취로 인한 자연훼손 감소 등을 대표적 편익 또는 효과로 꼽았다.
삼성 구상도 수면 아래로
그러나 세종연구원의 경부운하 프로젝트는 이슈화에 실패한다. 그러다 1995년 8월 삼성그룹이 삼성상용차의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부운하 건설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빛을 본다. 당시 삼성그룹은 대구시 성서공단에 삼성상용차 공장을 건설 중이었고, 그에 따른 부품단지를 건립키로 확정한 상태였다.
대구지역 일간지 ‘영남일보’는 1995년 8월30일자 1면 톱 기사에서 “삼성그룹은 수출 물량과 원료의 용이한 수송과 물류비용 절약을 위해선 기존 고속도로로는 곤란하다는 판단하에 과거 수상 수송로로 쓰였던 낙동강에 수로를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사의 제목은 ‘대구를 부산과 연결되는 항구도시로 만든다’였다. 기자는 당시 영남일보 기자로 이 기사를 취재했는데, 삼성그룹이 운하 공사의 타당성 조사 용역을 각 대학 교수팀에 의뢰한 사실을 공개하며 “삼성이 성서공단 삼성상용차 공장과 부품단지 건립을 계기로 성서공단과 쌍용자동차 공장이 들어서는 달성군 구지공단, 위천공단 등 낙동강 공업벨트의 물동량 수송과 최단거리 수출부두의 확보를 위해 순수 민간자본으로 대구와 부산을 직접 연결하는 운하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삼성측은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경부운하 공사계획이 확정될 경우 달성군 구지공단의 쌍용자동차 등 참여희망기업들과 컨소시엄 구성을 구상하는 한편, 공사에 필요한 재원은 민간자본으로 충당한다는 전제 아래 준설작업을 통해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모래 판매 수익금을 운하 공사의 재원으로 삼는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삼성상용차는 김영삼 정부 당시 부산 삼성자동차의 경우처럼 입지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구지역에 자리잡았으나 물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때마침 쌍용자동차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일대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자 삼성은 아예 자신들이 운하를 만들어 돈을 벌 궁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삼성의 이런 계획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시기를 거치며 2000년 삼성상용차가 문을 닫고, 쌍용자동차 구지공장과 위천공단 건립이 연이어 무산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김혁규 경남도지사(현 열린우리당 의원)는 평소 세종연구원의 경부운하론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영남일보 기사를 읽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안 된다면 한강과 낙동강이 지나가는 광역 지자체가 힘을 합해서라도 경부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구시도 장기 국토개발계획안에 경부운하 건설을 넣을 것을 국토개발원에 다섯 차례나 요구한 바 있다.
이후 대구시와 경남도는 이 문제를 한동안 거론하지 않았다. 세종연구원의 연구원으로 경부운하 논문 작성에 참가한 세종대의 한 교수는 “운하와 관련해서 연구한 학자들은 대부분 삼성이 경부운하를 만들려 했다는 사실을 안다”며 “YS 정권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전한다.
건교부, 수자원공사의 경부운하 폄하
이 후보는 경부운하 건설을 국회 본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시점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96년 7월이다.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던 후보는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경부운하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경부운하건설추진위원회(이하 운하추진위)를 구성하려 했다. 당시 60여 명의 의원으로부터 서명을 받았지만 위원회는 구성되지 못했다. 이 후보측의 한 인사는 ‘신동아’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무려 60여 명의 의원이 운하추진위 결성에 동의했는데도 구성되지 못한 것은 청와대가 막았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YS측은 경부운하 구상이 이슈화하거나 그 구상이 행여 가시화되어 이 후보의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할 것을 우려했다. YS는 대선 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경쟁한 이후 불편한 사이였는데, 그 때문인지 당시 이명박 후보도 경계 대상에 포함됐다.
당시 정부 산하기관에서 뜬금없이 운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불거졌다. 반면 김대중씨는 경부운하를 지지했다. 실제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측에서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이 후보의 운하 구상을 우리가 대선공약으로 쓰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신한국당 소속인 이 후보의 구상을 상대당 후보가 사용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당시 신문을 찾아보면 이런 정황은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다. 1996년 9월2일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 신한국당은 당정 회의를 통해 “경부운하는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주운용 하천수량 확보난, 운하 이용 물동량 부족, 다단계 갑문설치에 따른 기존 제방 공사 필요, 사업비 조달 어려움 등이었다. 또 선박이 20km가 넘는 터널을 통과하는 데 따른 안전 문제와 하천 결빙시 대체 수송수단 확보 문제도 지적됐다.
문제는 건설교통부가 정확한 용역조사를 벌이지 않았고, 이 후보의 제안이 나온 지 한달 보름 만에 이런 결론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점. 건교부가 제시한 문제점에 대해 당시 이명박 의원과 위원회 관련 의원들이 “기술적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또한 신한국당은 경부운하에 대한 반대 당론을 정하면서 소속 의원들과 한 번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 후인 1996년 10월9일 추경석 건교부 장관은 대구·경북권 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경부운하 건설을 강력하게 주장하자 “경부운하 건설을 현재 수자원공사에서 수행 중인 수계연결 계획에 포함시켜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2부〉 수자원공사 조사보고서 왜곡·부실 의혹
1997년 외환위기가 엄습하면서 경부운하라는 말은 그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1998년 1월, 한국수자원공사는 한 권의 용역결과보고서를 ‘조용히’ 내놓았다. ‘지역간 용수수급 불균형 해소방안 조사연구 최종보고서(내륙주운부문)’. 1년여 전 추경석 건교부 장관이 약속한 경부운하에 대한 검토보고서가 그때서야 나온 것이다.
수자원공사가 국토연구원에 5억6000만원의 예산으로 용역을 맡겨 완성한 결과보고서는 하필이면 YS 정권이 DJ 정권으로 바뀌기 1개월 전에 나왔다. 최종 결론은 ‘사업 타당성 없음’이었다. 그러나 이 후보와 대구시처럼 경부운하 건설에 열을 올린 주체들은 이 보고서가 나온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는 어수선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수자원공사가 이 보고서를 국회도서관과 관련 부서에만 보냈을 뿐 이 후보와 운하추진위 결성 서명 의원들, 심지어 이 연구에 동참했다고 주장하는 토목공학자나 경제학자에게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가 경부운하를 지지해온 DJ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에 서둘러 조사보고서를 발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수자원공사 “사업 타당성 전혀 없다”
경기도 여주 신륵사 바로 아래 조포. 왼쪽에 있는 배가 옛 돛단배를 재현한 황포 돛배.
수자원공사는 경부운하와 관련된 용역연구를 진행하면서 세종연구원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충주댐과 충주호를 지나 월악산 국립공원을 터널(20.5km)로 관통하는 세종연구원 안을 버리고 월악산 국립공원과 문경새재 도립공원을 서쪽으로 멀찌감치 벗어난 지역에 수로 터널(5.3km)을 만들기로 한 것. 이렇게 되면 산을 관통하는 길이는 세종연구원 안보다 15km가 단축되지만 터널의 위치가 해발 120m에서 210m로 높아지고, 자연하천이 아닌 인공수로를 35km 이상 만들어야 한다.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세종연구원 안보다 당시 시세로 4500억원이 더 많았다.
댐도 하나 더 늘어나 16개의 댐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배가 드나드는 갑문도 13개에서 17개로 늘어났다. 갑문 1개당 배가 통과하는 시간은 45분으로, 이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바지선의 운항시간은 60.6시간으로 늘게 된다. 수자원공사는 보고서에서 “세종연구원 안은 구간이 길어 전 공정에 지연을 초래하고 이에 따라 수익감소와 금융비용이 증가한다. 터널 구간이 길면 환기문제와 비상시 대책이 어려워진다. 더욱이 높이 97.5m의 충주댐에 배가 들어가려면 댐 본체부에 8개의 갑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댐 안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수자원공사 안은 충주호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터널 인근 지역에 3개의 댐을 더 만들어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세종연구원 안대로 하면 충주호에서 터널수로를 통해 낙동강 상류로 물을 끌어당겨 쓰면 되지만 수자원공사 안은 그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댐을 더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 운하 건설시 따르는 수몰지역민의 민원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세종연구원과 수자원공사의 용역보고서는 기본 전제가 달라 공사시기, 규모, 총공사비,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비교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 수자원공사 안은 세종연구원 안보다 총공사비도 2000억원가량 늘었고, 경제성 분석에서도 편익 대 비용의 값을 가리키는 수익성 지수(B/C 비율)가 큰 차이를 보인다.
수익성 지수 1 이상일 때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데, 세종연구원 안은 분석기간 50년을 기준(할인율 10% 적용)으로 5.44가 나온 반면, 수자원공사는 0.244에 불과했다. 수자원공사는 “50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경부운하의 사업 타당성은 ‘전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수자원공사는 보고서에서 경부운하로 옮길 수 있는 화물이 제한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또 국내 기술로는 터널 공사와 갑문 공사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내륙운하보다 연안운하가 바람직”
“경부축의 화물은 대부분 단위당 가치가 높은 제품이어서 주운을 이용할 수 있는 화물의 규모와 종류는 매우 제한적이다. 외국의 사례를 고려할 때 운하는 단위당 가치가 높지 않은 대량화물 수송에만 적합하며 이에 걸맞은 화물은 경부축 총 화물의 3.3%에 불과하다. 또 운하는 고속도로, 철도 등에 비해 운항시간이 길어 비교 열위에 있는 수송수단이며, 수로 터널 등 인공 연결구간은 지나치게 길고 표고차가 매우 커 많은 갑문을 건설하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해외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등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된다. 더욱이 안개와 결빙 기간이 길어 선박운항 불가능일이 연 90일에 달한다. 내륙운하보다는 바닷가의 각 항구를 이용하는 연안운하를 개발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환경적으로는 비교적 객관적인 자세를 보이려 노력한 측면도 보인다. 수자원공사는 “경부운하로 인한 수질 오염, 일조량 감소, 생태계 교란 등 부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에너지 절약, 대기오염과 소음공해 감소, 교통사고 위험 감소 등 긍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또 “경부운하로 인해 연간 1억3816만갤런의 석유를 절감할 수 있으며 하루 5t 화물트럭 5165대가 배출하는 매연이 감소하고 2011년을 기준으로 매일 3944대의 화물트럭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개선 편익은 전체적인 경제적 타당성 분석에 반영되지 않았다. 반면 세종연구원은 올 초 만들어진 경부운하 타당성 분석 자료(비공개 문서)에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대기오염 감소로 매년 758억원(2011년 기준), 소음 감소로 367억원의 효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를 수익성 지수 분석에 반영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운하로 인해 일정 정도의 수질 악화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주운댐이 건설되면 운하는 댐과 댐을 연결하는 저수지로 봐야 한다. 즉 물의 흐름이 없는 호소로 간주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부영양화가 진행돼 투명도가 떨어지고 심수층의 용존산소가 감소하면서 수중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모든 생물은 유속이 느린 호소(湖沼) 생태계에 적합한 형태로 바뀐다. 또 터널이 생기면 생태계가 단절되고 교란 현상이 일어나며 외래어종의 급속한 증식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주운댐은 안개를 발생시켜 일조량과 일조시간의 감소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인접 농경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는 그 대안을 내놓았다. 운하를 생태공학적으로 만들면 수질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 즉,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환경오염은 막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더욱이 수자원공사는 보고서에서 “공로(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등) 화물이 주운으로 전가되어 수송되면 오염비용이 감소한다. 2011년부터는 매년 5300억원 이상의 오염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수질오염을 그대로 두더라도 운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상쇄하면 환경 차원에서도 운하를 만드는 게 이익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다양한 분석을 담은 이 보고서는 어떤 영문인지 8년이 지난 현재, 모든 조건이 변했지만 이 후보의 경부운하 안을 비판하는 최대의 무기이자 바이블로 이용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필우 의원 등은 9월27일 이 보고서를 근거로 “이 후보의 경부운하안이 경제성이 전혀 없다”는 자료를 냈다. 그 내용은 보고서에서 부정적인 내용만 따로 정리한 수준이었다.
“용역주체 의지 반영됐다”
그렇다면 수자원공사의 보고서는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일까. 이 보고서의 결론에는 수자원공사, 나아가 경부운하에 반대하는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토개발원이 작성해 수자원공사에 납품한 최종보고서의 앞머리를 보면 참여 연구진의 이름과 소속을 적시해놓았는데, 그 인원이 45명에 이른다. 이들 중 국토개발원의 자체 연구 인력과 그들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할 개연성이 있는 업체, 정부 산하 연구소 연구원, 공무원을 제외한 대학 교수는 16명. 자문위원으로 등록된 이들 교수진을 취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대부분의 교수는 최종보고서의 제목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이런 용역연구를 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 이들은 자문위원으로 등록만 됐을 뿐 용역연구에 참여한 사실은 없었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수자원공사와는 정 반대 의견을 개진했던 세종연구원 소속 연구원 4명도 들어 있었다. 세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국토연구원에서 불러 회의를 한 적은 있지만 그것으로 연구에 참여했다거나 자문에 응했다고 이름을 올리는 것은 곤란하다. 보고서에 이름이 오른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수자원공사에 항의했지만 삭제되지 않았다. 최종보고서 책자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토목공학과 이길성 교수는 “개인적으로 경부운하엔 반대하지만 그런 회의에 참가한 기억도 없고 책도 받아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조원철 교수는 “회의에 참가한 적도 없고, 보고서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보고서의 이러저러한 내용을 보니 이 사람들, 정말 큰일 낼 사람들이다. 특히 운하를 만들기 위해 해외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부분은 터무니없다. 분명 연구진 중에 외국 회사 관련자가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수자원공사 최종 보고서에는 네덜란드의 한 토목회사가 ‘국외자문단’이라는 명목으로 올라 있다.
“토목판에서 용역주체의 의지대로 용역연구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인가. 회의에 자신들과 친한 교수 몇 명 불러놓고 한두 번 대화를 나눈 뒤 연구위원이나 자문위원으로 슬쩍 이름을 집어넣는 것도 관행이다. 그 후에 자기네 입맛대로 용역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경부운하 용역연구 자문에 응하거나 참여한 적이 없다.”
최종보고서에 자문위원으로 오른 한 대학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용역에 연구원으로 참여한 국토연구원 박태선 책임연구원은 “그들은 분명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우리는 회의 참석을 ‘자문’에 응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의견을 가졌는가와 관계없이 용역 보고서에는 그것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에게 “발행된 지 8년 된 이 보고서가 현 시점에서 경부운하의 타당성을 논하는 데 유용한가”라고 물으니 그는 “변수가 변하면 결론도 바뀔 수 있다. 전제가 바뀌는데 어떻게 똑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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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부운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데 대해 이명박 후보측은 “나쁠 것 없다”는 반응이다. 운하 건설 세부 계획을 밝히는 것도 꺼린다. 이 후보측 한 인사는 “이 후보가 구상하는 경부운하는 1995년 세종연구원이 발표한 경부운하와는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수로의 통과지점, 터널의 위치, 길이, 바지선의 유형, 댐 설치 방식, 갑문의 위치, 형식 등 경부운하의 구체적 사안은 현재로선 밝힐 수 없다. 내부적으로는 검토가 거의 끝났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공개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11년 전 세종연구원 안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사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한편, 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운하가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