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여성의 날, 2000년에 이어 두 번째 세계적인 여성들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2004년 12월에 작성된 헌장에 기초하여, 지역별, 국가별에서 각각의 요구를 담은 선언들과 이를 상징하는 퀼트(일종의 조각보)가 이어지는 행사이다. 각 국가별로 행진을 준비하면서 여성의 요구를 작성하기 위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운동’과 ‘운동’들이 만나는 상징의식으로 퀼트가 전달된다. 세계사회포럼의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의 구호처럼, 이 퀼트의 완성은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여성들의 요구를 담은 ‘새로운 세계지도’인 셈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운동을 지지하며, 일본을 거쳐 7월 3일 한국에 도착하는 행진을 이어가기 위해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하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여성행진)’이 조직되었다.
2000년 이 행진을 한국에서 조직했던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이번 두 번째 행진에서 한국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다. 코디네이터 역할은 어떤 권한이 아니며, 이러한 세계여성행진의 의의를 담아 여성들의 행진을 조직하고, 조력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여연은 이 행사에 크게 의의를 두지 않았고,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다만 퀼트가 도착하는 당일 간단한 기자회견 정도의 계획이었다. 여성행진측은 공동으로 퀼트를 제작하자고 제안했고, 실무자 차원에서 이런 제안이 오고갔다.
처음에 여연은 공동 기자회견을 제안했는데, 조건을 달았다. 기자회견 때, ‘성노동자’를 언급하는 피켓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할 것이었다. 그런식으로 어떤 입장과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막는 기자회견은 진행할 수 없다고 여성행진 준비팀은 결정했다.
6월 29일 전국성노동자 연대 한여연이 출범하고 나서 여연은 강경한 태도로 변했다. 그런식으로 성노동자 운운하는 조직엔 퀼트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행진에 참가하고 있는 한 조직의 사무총장에게 전화해서 ‘그 여성행진이 포주가 지원하고 사주하는 성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는 단위인걸 알고 하는 거냐?’라고 전화했고, 여성행진 전국순례단과 함께 간담회를 하기로 했던 대구지역에선 여연 소속단위들이 간담회 불참을 선언했다.
여성행진은 현재 한국에서 쟁점이 되는 주제와 운동에 대한 ‘쟁점토론회’를 준비했다. 토론은 상호소통이고, 교육이며, ‘차이’를 확인할 지라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이다. 그 중 하나가 성노동자 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주류화 전략에 관한 평가였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는 여성운동의 두 개의 뿌리를 만들었다. 하나는 북경여성대회를 통해 채택된 ‘성주류화 전략’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고, 하나는 이 북경여성대회 한편에서 여성운동 단위들이 캐나다에서 진행한 ‘빵과 장미’ 행진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진행하자는 세계여성행진의 결성과 그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여성대중운동이었다.
여연은 성주류화 전략의 수혜를 받아왔고, 이것이 각종 여성관련 법안을 제정, 개정하는데 힘을 실었다. 그러나 여연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직장과 가정의 양립 지원정책’이라는 여성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정치, 경제적 배경을 무시한 채, “여성의 이름으로”에만 현혹된 것이 아니었는가. 여연은 북경여성대회 10년이 되는 2005년, 그에 대한 평가와 의의에는 주력하면서도, 이 세계여성행진엔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87년 보수적인 여협을 비판하며, 민주화운동과 함께 ‘진보적 여성운동’의 기치로 출발한 여연은 현재 민중운동과 ‘따로 또 함께’하고, 여협과도 ‘함께 또 따로’하고 있다. 87년은 운동들이 대중적으로 출현하고, 등장했던 해이며, 여연도 이중 하나였다. 여연 뿐만 아니라, 많은 운동단체들이 제도화되거나 합법화되었다. 그리고 15년이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여연은 어떤 단체보다 법을 제안하고, 제, 개정한 단체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여연은 이제 법의 수호자가 되기를 자청하는가?
운동의 성장은 ‘법의 보호’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논쟁과 투쟁을 통해서 성장해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을련지도 모른다. 성매매 여성들을 위해서 제정했다는 성매매방지법이 성매매여성들의 저항과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고 그녀들이 스스로 성노동자임을 선언하고, 조직을 만들었다. 여연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운동과 조직이 업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 성노동자(여연이 말하는 성매매 피해여성)의 목소리를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하나의’ 평가로서 들어야 한다. 성매매방지법이 간과한 중요한 진실은 여성들에게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이었다고 할지라도 성매매공간은 여성들의 일터이자, 숙소였다는 사실이다. 이 법이 성매매여성에게 제시한 ‘다른 인생’은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을 통해 들어가게 될 현재의 불안정하고 저임금의 노동현장이었을 따름이다. 따라서 반복해서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성매매의 폐지는 법과 경찰력으로 현실에서 존재하는 성매매를 도려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빈곤의 여성화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선 이루어질 수 없다.
현재 여성부에서 여성일자리 창출계획으로 제시된 ‘사회적 일자리’는 50-60만원의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일자리이다. 게다가 이 사회적 일자리는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비정규법안’에서 조차 적용이 제외되는 일자리들이다.
여연이 오늘 7월 4일 긴급히 기자회견과 행진을 조직하면서, 오마이뉴스, 참세상 등의 취재와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유는 성노동자연대와 관련된 보도를 함으로써, 언론이 왜곡보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묻겠다. 여성과 노동자에 대한 왜곡 비난 보도를 일삼는 조중동과 각 방송사에겐 취재와 인터뷰를 앞으로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다면, 나는 당신들의 진심 어린 열정과 절개만은 믿어주겠다.
여성행진에서 초청하고, 7월 1일 토론에 함께한 말레아 무네스(세계여성행진 아시아 코디네이터)는 필리핀에서 성매매, 탈성매매여성들과 함께하는 단체(WEDPRO)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 여성행진은 세계여성행진 내에서 ‘성매매팀’을 맡고 있다. 그녀는 자신들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반성매매법’이 제정될 때, 분명한 반대를 표명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아직 성매매 문제에 대해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를 거치지 않았으며, 법이 도울 수 있는 재정적 힘은 미약한데 반해, 이것이 오히려 여성들을 법과 경찰력으로 통제하는데 힘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도 두 개의 행진이 준비중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현재의 이러한 분열이 여성운동의 힘이자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화로운 정체는 오히려 운동을 후퇴시킬 수 있지만, 이런 부딪힘은 운동을 오히려 생명력있고, 다양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재미있는 운동이 아니라고...(나는 이런 말레아의 생각이 여성운동가가 가지는 긍정적인 힘이라고 생각하고 감동 받았다.)
그녀는 오늘 여연이 주체하는 기자회견에 갔다가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자신을 기자회견에 초청하고 소개하면서, 자신을 가브리엘라(상대편에 있는 여성운동단체) 활동가로 소개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행진의 퀼트 전달을 부탁하면서도 자신의 소속단체조차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어떤 입장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성매매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기를 당부했다.
운동의 힘은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데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 운동의 대표성은 자신의 권위를 실행하려는 데서 나오지도 않는다. 열린 자세로 다양한 입장들이 대화하는 소통이 이루어질 때, 운동과 운동이 만나 연대를 형성할 때, 운동은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여연이 이러한 운동의 원칙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걸 잊는다면, 스스로 ‘권력’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제기랄...마치 성명서처럼 돼 버렸다.)
첫댓글 성매매에 대한 문제는 사실 상당히 복잡한것 같습니다. 과연 어떤 범주까지 '당사자'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그리 쉬워보이지 않습니다. 가령, 성매매종사자의 목소리가 성매매 문제의 포괄 주체로만 봐야 하느냐/아니면 성매매를 '성의착취'라고 규정하는 여성단체들의 목소리를 주체로 봐야 하느냐/
문제는 하나의 주체의 목소리'만'이 반영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걸 우선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성매매 종사자의 목소리이니 더이상 다른 단체의 발언은 '권력'의 반영이라는 말은 상당부분 성과 관련한 '산업구조적'문제를 은폐시킬 수 있습니다. 이글에서 말했다싶이
분명 종사자의 말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종사자의 발언조차 '어디에서'왔는지 직시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종사자와 여성단체를 '적'으로 만드는 위험한 발상인것 같습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성을 파는 당사자인 여성들의 인권과 생존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연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성을 파는 여성들을 자신의 소부르주아계급적인 틀에서 바라보고 객체화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실 좀 다른데, 그 구체화된 생각에 대해서 다시 차후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