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 갈 때 주머니에 화장지를 좀 넣어가지고 갔다. 영화 밀크는 평범한 사람이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해서 무척 슬픈 분위기가 많으리라고 예상했다.
처음에는 시종 유쾌한 분위기였다. 40세의 증권맨이 동성애인과 행복한 생일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흐른다. 평범한 직장인인 주인공 하비 밀크는 애인인 스콧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카메라 가게를 차린다. 하지만 악수를 나눈 뒤 곧 손을 닦는 이웃들의 폭력과 고통을 느끼고 게인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하비 밀크는 실제인물이고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하비는 1930년부터 1978년 까지 48년을 살다 갔다.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뉴욕주립대학을 다닌 뒤 교사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논란 끝에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커밍 아웃 후 선출 직 공직자가 된 인물이다. 그러나 1978년 11월 27일 동료 시의원 댄 하이트에 의해 살해되었다.
영화 역시 실제와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함께 살해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 마지막 부분은 하비의 유언대로 수십만 명의 동성애자들이 저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들고 소수자의 인권 옹호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웅장하고 힘찬 행진이 이어진다.
그렇게 하비는 조용하지만 거대한 물결의 발판을 마련하고 떠나간 것이다.
자신의 세 명의 애인이 자살을 기도했다고 말하는 하비 밀크는 자신이 벌이는 운동이 성적 취향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서 삶을 얻기 위한 급박한 운동이라고 말한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네 번째에 당선된 그는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마이크 앞에 서는 순간 총이 머리를 뚫을 것이라는 경고편지를 받는다. 하비는, 홍보용으로는 그만이군 하고 한번 웃어 보인 뒤 연단에 오른다.
이때 저격수의 총에 맞아 머리가 구멍이 난 채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조마조마했다. 관객들은 그랬지만 하비는 모든 연설을 멋지게 펼쳐 보인 뒤 내려온다. 그 전에도 살해위협은 있었다. 처음 선거에 나설 때 경고 편지가 있었다. 하지만 하비는 크게 걱정하는 애인 스콧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여기 봐, 이곳 냉장고 문 앞에 크게 붙여놓으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잖아. 두려운 것도 밖으로 꺼내놓고 자꾸 들여다보면 두렵지 않게 되는 거야.
어떤 책에서 주인공이 했던 구절이 있다. ‘뭐든 처음은 있는 법이야.’
뭐든 처음은 있다. 흑인이 투표권을 얻은 것처럼, 여성이 정가에 진출한 것처럼 뭐든 처음은 있다. 하지만 그냥 저절로 되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험난한 노력이 있었다.
숀펜이 하비를 맡았다. 영화가 유쾌하고 즐거웠던 이유 중에 하나가 숀펜의 연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 이면서도 웃음과 손짓은 얼마나 귀엽고 다정한지 모른다.
실제인물 하비를 보니 무척 호탕하고 따뜻한 얼굴이다. 문득 신문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한 할머니가 떠올랐다. 넬사 쿠르벨로라는 67세 할머니.
한 달이면 살인사건이 100건 이상 난무한 에콰도르를 행복하고 살만한 도시로 바꿔놓은 대단한 할머니. 10년간 조직폭력배들과 대화로 단판을 벌여 범죄율을 절반 이하로 뚝 떨어뜨린 대변화를 이룬 아주머니다.
이 할머니의 웃음도 참 귀엽고 천진하다. 뭔가에 열중하면 순수한 마음이 되는 것 같다. 멋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하다.
첫댓글 저도 본 영화인데 한번 보면 좋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