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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21) 참아서 이기는 승리(2) 역대상 19:6-19
자, 지난 수요일 살펴보신 다윗은 어떤 다윗?
네, 정의와 공의로 행하는 다윗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내게 주신 은혜를 흘러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사람이요, 죄를 씻으며 빚을 탕감해주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사울의 집안 남은 자를 찾았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모든 재산과 지위를 회복시켜주지요. 평생을 역적으로 살아야했을 그를, 왕의 상에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높여줍니다.
또한 암몬의 나하스왕에게 입었던 호의와 은총을 기억하고, 오늘 그가 죽고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을 때, 그를 조상하고 그 아들에게 호의와 은총을 베풀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어땠지요? 다윗의 진심어린 호의를 곡해합니다. 다윗이 보낸 모든 축하와 사절을 나라를 엿보아 정복하려는 악의로 판단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수염을 깎아버리고, 옷을 잘라서 죽음보다 더한 수치와 망신을 주었던 것이지요? 말 그대로 은혜를 모를 뿐 아니라, 악을 행하는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했다고요? 당장에 군사를 일으켜 저 무례하고 미련한 하눈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에 축하사절단의 임무를 똑바로 못한 신하들을 소환해서 징계하고 처단하는 것이 아니지요? 저 사절단이 당한 일을 자신이 당한 일로 여기는 다윗은, 저들이 최선을 다해서 다윗의 명령을 수행했을 것을 아는 다윗은, 사절단을 위로하고 배려합니다. 수염이 잘린 적이 없는 것처럼, 그리고 옷을 잘린 일이 없는 것처럼 그저 사절단의 임무가 조금 길어진 것처럼 여리고에 머물며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해서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저 하눈에 대해서는 잠잠하고 참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내 감정 내 기분, 내 판단, 또한 신하들과 참모들의 판단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렸던 것이죠.
한 주간 어떠셨습니까? 오늘은요? 속터지게 하는 이들, 호의와 친절을 오해하고 당연한 것으로 아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들에게 잘 참아 기다리셨습니까? 아니, 오히려 내가 상대방의 호의와 친절을 의심하고 오해하고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서운하고 분노하게 만들지는 않으셨을까요? 공의와 정의로 행하는 사람, 용서하고 빚을 탕감해주시고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흘러보내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이 시대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는 더욱, 내가 진실하니 상대방의 진실함을 믿어주시는 분들, 그리고 늘 내게 주신 것들을 나누고 흘러보내어 더욱 영생의 꽃으로 피어나는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망신을 톡톡히 당한 신하들이 돌아갔는데 다윗쪽이 계속 조용합니다. 이상하다. 뭔가 소식이 있어야는데...
하눈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하눈에게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눈이 급해졌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이지요. 지난 수요일에도 잠시 말씀드렸지요? 내 안에 하나님께, 높일 자를 높이고 낮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 앞에 맡겨드릴 수 있는, 정직함과 진실함이 없으니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 손을 쓰고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정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편을 만들어둬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6-7절입니다.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삼하10:6)
자, 한번 잘못 판단하고 한번 잘못 행동하니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 지출이 되는 것이지요? 은 천 달란트, 600억입니다. 돈만 지출했나요? 암몬을 도우러 왔던 용병들 중 병거 7천대의 군사가 죽고, 보병 4만명이 죽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떻게 되요? 아람사람들이 다윗에게 항복하고, 아람사람이 암몬자손을 더 이상 돕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암몬은 자기가 잘못해놓고, 명분도 없는 싸움, 하나님도 편들어주시지 않을 싸움에 재산잃고 사람잃고 다 잃은 것이죠.
다윗을 향한 시기로, 경쟁심리로 다윗에게 실컨 모욕을 주었는데, 그게 지금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일인 것이 이제 슬슬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왜 저 목동출신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고, 은총을 베풀려 했는지 슬슬 알게 되는 것이지요? 아마 머리를 감싸쥐고 마구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아 내가 그 때 왜 그랬을까! 무슨 일을 저지른거지?”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그렇죠! 다윗에게 얼른 미안하다고 실수했다고 어린 놈이 갑자기 왕이 되는 바람에 신하들 앞에서 만용을 부렸다고 그릇된 판단을 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여기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옷감하고 제단사를 보내드리니 좋은 옷 지어 입히시라고 죄송하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600억을 쓸게 아니라 600만원만 써도 넉넉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요? 제 무덤을 파는 짓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이 행진을 멈출 수는 없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 이 여러 왕들과 그 군대를 고용해서 전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판단 하나로, 잘못된 행동 하나로, 얼른 냉큼 용서를 구하면 간단한 것을, 끝내 고집을 부리면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국고를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저지르고 있는 잘못은, 한 가지 잘못을 은폐하고 덮기 위하여 불필요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더 큰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또 다른 일들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저지른 일이 끼칠 파장을 생각하지 못한 채, 내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의 일들을 벌이고 마는 것이지요. 이것이 한 번이면 좋은데, 그렇게 혹독히 경험하면 다시는 안그러면 좋은데, 우리는 미련해서, 그런 일들이 한 번이 아니고 계속되기에, 재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그 인생이 점점 망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루라도 빨리 내가 한 판단과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닫지 못했던 것이 아니지요. 깨달았습니다. “다윗에게 미움이 되었구나” 깨달았다면, 싸울 준비를 할 것이 아니라, 잘못했다고 말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걸 자존심 때문에 하질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내가 가진 것으로 해결해보려고 하나, 결국 내 힘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마는 것, 사람도 잃고 재산도 잃고 이제는 건강도 잃고, 그래놓고는 결국 어떻게 해요? 이게 전부 다 하나님 탓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셨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욕하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고, 자꾸만 죽을 길로 접입가경인 것이지요. 이것이 참 위험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요. 깨달았을때입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수치스럽지만 딱 그때 무릎꿇고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야 제일 손해가 없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때 그걸 못하고 나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딤전6:11-12)
그래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우리 하일식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도 사람이요, 욕심이 있고, 죄가 있는 사람들이라서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죄도 짓습니다. 저 베드로를 뭐라고 할 수가 없는 존재들인 것이지요. 순간 나도 모르게 나 살겠다고 정말 추한 말과 책임회피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인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게 해주실 때, 주위에 좋은 사람을 보내주시어 나를 견책해주실 때, 그래요. 용기 내어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됩니다. 그 한 번의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고 계속 버티다가는 정말 큰일나는 것이지요. 순진하고 아무 것도 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들 돈으로 매수해서 싸움시킬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 알고 보면, 그렇게 자기들 끼리끼리 편먹고 돕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런 일에는 또 아주 품앗이, 두레가 잘 되어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인 것이지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한 번은 사람들 앞에 우쭐할 생각에 다윗의 부하들에게 수치를 주었다하더라도, 잘못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얼른 평화의 사절단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난번 제가 당신의 호의를 오해했습니다. 적대적인 행위를 했는데 참으로 잘못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러하고, 또한 정치외교적인 감각이 아버지같질 못하니 용서해주시고 많이 가르쳐주시면 좋겠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했으면 아마 다윗은 그의 패기와 솔직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그의 성품에 탄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암몬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말 한마디로 모든 비용을 절약하고 전쟁도 막고,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도 다 해결되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이 불쌍한 “poor president”는 이 한 번의 수치스러움을 견디질 못하고 끝까지 싸우자고, 자기 죽고 자기 망하는 길을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증언합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윗이 기다리던, 참고 기다리던 하나님의 때가 왔습니다. 다윗이 경험한 수치를 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들의 마음을 충동질 해주셨던 것이지요? 보십시오. 마귀는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일으키지만, 결국 하나님은 다윗을 죽이려는 마귀를 통해 오히려 다윗의 대적을 모조리 일망타진하시는 것입니다. 하눈이 고용한 용병연합군이 오늘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될까요? 결과만 보시지요! 18-19절.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19:18-19)
어떻게 되었습니까? 암몬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었던 아람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두 번의 전투를 치릅니다. 먼저는 요압과 아비새에게 무수한 보병들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 다윗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병거와 마병들이 전부 다 박살이 나는 것이지요? 오히려 저들은 외교감각이 있어서, 다 죽고 다 망하기 전에 이스라엘과 화친을 청합니다.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고 생명을 건지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암몬은 돈은 돈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명예는 명예대로 모든 것을 다 잃습니다. 자기편이 되어줄 모든 사람들이 다 다윗과 화친을 맺으므로 암몬은 이제 홀로 고립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본문이 빼놓지 않고 기록합니다. 저 암몬은 하눈은 자기가 저지른 일도 자기가 책임지지 못하고 남에게 떠넘기더니 언제인지 모르게 성읍으로 들어가 내빼고 말았습니다. 어느 새 아람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고립된 암몬은 언제든지 다윗이 마음만 먹으면 끝내버릴 수 있는 초라한 나라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니, 그냥 내버려두어도 하나님께서 사울의 집처럼 망하게 하실 그런 뿌리 뽑히고 줄기가 잘린 나라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일교회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를 생각해봅니다. 먼저는 여러분, 바르고 옳은 결정을 내리는 리더, 그리고 그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리더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 어떤 일이라도 인간적인 시기와 경쟁의식, 우쭐함으로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늘 놀라우신 조언자 우리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가장 기뻐하시는 결정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베드로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15:10-11)
이 부분을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두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더한 하나님(out-god God)이 되어서 우리 조상을 짓누르고 우리까지 짓누른 규정들을 새로 믿은 이 사람들에게 지우려는 것입니까?’”(행15:10-11, MSG)
오늘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성도들을 향해서 할례와 율법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더한 하나님이 되어서 성도들을 짐스럽게 하는 내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의 뜻을 여쭙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보다 더한 멍에와 짐을 지우는 악한 자가 되어 있다는 지적이었던 것입니다.
누가 그랬다구요? 성령충만함을 받고 신앙생활하던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그 중에도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이 말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이지요? 교회 안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은혜의 복음을 뒤엎고 짐지우고 정죄하는 악한 견해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고, 그 의견들이 오늘 교회 안에 심각한 분열과 고통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지도자가 바르게 이를 조율하고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때 그 순간에는 이 일을 제대로 못했더라도 이내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합당한 대가를 치르거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오늘 저 하눈을 통해서, 뉘우침과 돌이킴은 빠를수록 좋다고,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며 고집부리지 말라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저 암몬왕의 모습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다윗처럼, 오해와 적대적인 말과 행동, 수치와 분노를 일으키는 상대방에 대해, 참고 기다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명예, 우리의 수치를 함께 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해주신 약속,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12:3) 그 약속 그대로 말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들이 오늘 경험한 저 수치가 바로 내가 받을 수치인 것을 잊지 말 것을, 수치를 당한 부하들을 더욱 위로하고 격려하고 감쌀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결과를, 그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자신이 책임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도자요, 그것이 리더라고 말입니다. 네 하나님, 네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라고 말입니다.
링컨이 늘 묵상하였다고 알려드린 성경구절 기억하시지요?
시편 37편 7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잘못한 것이 없으면 기다리십시오. 도둑이 제 발 저리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심리를, 송사를 맡기시자구요. 사람 앞에 구구절절이 변명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그 변명마저 악하게 해석하여 우리를 모해하고 죽이는 일에 사용합니다. 잠잠하여 참아 기다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길,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대적을 멸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모두 경험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37편 1-10절 읽어드리고 기도하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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