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서 이렇게나 바쁜 나날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 무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그 놈을 잡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성공, 돈, 명예, 건강, 사랑... 이런 것들은 행복의 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가 행복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전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아보면, 부족함이 없이 아주 만족하고 편안한 상태를 행복이라 서술하고 있다.
설명 어디에도 돈이나 명예나 건강같은 단어들은 찾아볼 수 없다. 영어로 happiness를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오직 마음의 상태를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불교에서 궁극적인 목표로 지향하고 있는 '열반(涅槃 nirvana)'이라는 개념이 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열반의 개괄적인 의미가, 모든 마음의 동요가 소멸되고 아주 평온한 마음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깊고 오묘한 의미가 있지만 '만족함' '편안함'이라는 의미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불교를 '행복찾기'라고 정의하고 싶다.
흔히 말하기를 불교는 성불하기 위한 종교, 또는 참나를 찾기위한 종교라고들 말한다. 물론 지당한 말이지만 성불해서 무엇하려는가? 참나를 찾아 무엇하려는가? 결국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는 너 나 할 것 없이 한결같이 행복을 향해 존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이유만 보더라도 생로병사로 대변되는 괴로움을 해결해 보려고, 즉 '진짜행복'을 찾아보려고 출가하였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참나도 보고 부처도 된 것이다. 부처님의 초기 별칭이 '행복한 이'였던 것만 보아도 이 점은 분명하고, 초전법륜 이후 전도선언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천(人天)의 행복을 위해 전법의 길을 떠나라' 하셨으며, 대반열반경에 보면 부처님의 반열반을 만류하는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릴 때도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더 머물러 주십사하고 청하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 불교는 행복찾기이다. 그리고 행복의 요체는 만족함, 편안함, 평온함이고 이를 하나의 글자로 요약하면 '편안할 안(安)'자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엄밀히 말해서 '즐거움(樂)'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사실 우리가 행복이라고 쫓아다니는 것중에 대부분이 바로 이 즐거움(樂)인데, 오락 쾌락 향락 들이다. 이런 것들은 일종의 흥분상태로서 머지않아 허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을 행복인 줄 알고 쫓아다녀 가지고는 진짜 행복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맨날 속고 사는 거다.
그렇게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열반이요, 이것은 진짜행복이며, 한마디로 말해서 즐거울 樂자 보다는 편안할 安자의 개념이라면, 극락(極樂)은 어찌된 것인가? 모든 불자들이 왕생하고 싶어 하는 극락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극락은 '천당(天堂)중의 천당'이다. 천당이라는 말이 마치 이웃종교의 전유인 것처럼 돼 있지만. 원래 불교용어이다. 경전에도 여러 군데 등장하는 표현이다. 불교에는 하늘나라(天上界)가 무척이나 많다. 수평적으로 33개의 천상계가 있고 수직적으로는 28개의 천상계가 펼쳐져 있다. 그래서 조석으로 예불을 올릴 때 범종을 28번, 33번씩 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천상계, 즉 천당에서 좋은 장점만 가려 뽑아 만들어진 곳이 바로 극락이다. 그러니까 극락은 '천당중의 천당'이요, '낙원중의 낙원(paradise of paradise)' 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스케일이 이렇게 크다. 천당을 말해도 하나의 천당만을 말하지 않고, 낙원의 수준도 천당만 말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극락, 더 좋은 열반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이 참으로 불교의 매력이며, 나는 이런 점에 반했다.
그런데 극락을 다른 표현으로 안양(安養), 또는 안락국(安樂國) 등으로 부른다. 그래서 나는 강의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라고 말하곤 한다. 왜냐 하면 버스만 타도 안양에를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경기도 안양시의 안양과, 극락의 안양이 전혀 같은 글자이다. 이렇게 극락의 다른 명칭을 보면 역시나 '편안할 안(安)'자가 빠지지 않는다. 편안함이 결여된 상태를 행복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편안함, 평온함, 평화로움 이야말로 행복의 요체인 것이다. (安, 捨, 니르바나)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명예가 아무리 드높아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어찌 행복하다 하겠는가? 그러므로 행복을 얘기할 때 외부의 조건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행, 불행의 최종 결정요인은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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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金難買身閑(천금난매신한) '천금을 주고도 자기의 편안함과 한가함은 살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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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3선: 황홀감(禪悅) piti / 행복감 sukha
4선: 평온, 평정, 평등, 평화, 지극한 고요의 침묵, 우페카 upekkha <각산스님 강의 중에서 /bbs>
念生喜樂, 定生喜樂, 慧生喜樂 <틱낫한 스님>
그러므로 고(苦 dukkha)의 반대말은
락(樂 sukha)이 아니라, 우페카이상.. 니르바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