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자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기도와 묵상의 장소
새미 은총의 동산 조성은 천주교 제주교구 제3대 교구장이셨던 김창렬(金昌烈) 바오로 주교께서 ‘삼위일체이신 천주 성삼께 대한 우리 신자들의 공경과 심신을 고취시키는 방법이 무엇일까? 제주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 이시돌 목장의 금악 본당 임피제(McGlinch) 신부와 이곳이 이상적인 장소라는 의견 일치를 보아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곳을 기도와 묵상의 장소로 개발하고 1991년 10월 28일에 축성식을 거행함으로써 ‘새미 은총의 동산’이 이루어졌다.
'새미 은총의 동산'은 '구 삼뫼소 은총의 동산'인데 '삼뫼소' 라는 단어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불려진 사료에 의거하여 이번 축복식을 계기로 이름을 바로잡고 지역사회와의 융화를 위하여 '새미'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이다.
'새미소'는 샘+이+소(沼:늪, 연못), 이를 한자로 천미악(泉味岳)이라 한다. 오름 정상부에 샘(새미*새미소)이 있음에 연유하여 샘 자체가 흐름으로 전이 되어진 경우이다. 5개의 봉우리가 샘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이어져 있다. 새미(SAEMI)의 영문표기는 [Sanctus: 거룩한] [Anima:영혼] [Evangelium:복음] [Mediator:중개자] [Imago Dei:하느님의 모상]의 머리 글자를 딴 것이다.
예술작품으로 재현된 그리스도의 일생을 통해 하느님의 거룩한 복음을 전하고자 조성된 공원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영혼을 중재하는 성스러운 곳을 뜻한다. 즉 '새미 은총의 동산'은 주님의 은총과 순례객들의 기도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산이 되는 것을 말한다.
'새미 은총의 동산'의 범위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수난 전의 행적이 표현되어 있는 예수님 생애공원과 수난이 표현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는 묵주기도의 호수, 야외미사를 할 수 있는 성모동굴,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십자가의 길 체험장, 하느님을 만나는 순례의 길 라비린스, 그리고 삼위일체 대성당까지이다.
가장 최근에 조성된 '예수 생애 공원'은 삼위일체 대성당 서쪽에 위치하여 있으며 예수님의 탄생에서 부터 성찬례 제정까지 12점으로 그 규모와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성지가 될 것이라 참석자들이 평했다.
▒ 이시돌 목장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16만 5000㎡에 자리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1954년 4월 성 골룸반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제주도에 온 뒤 가난한 제주도민들에게 자립의 기틀을 마련해 주고자 1961년 11월 성 이시돌 중앙 실습 목장으로 개장하였다.
이시돌은 중세 에스파냐의 농부로 하느님의 영토인 땅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 일에 열성을 다하였다 하여 후에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농민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목장 외에 성 이시돌 양로원, 피정 센터, 젊음의 집, 삼뫼소 은총의 동산, 천주교 금악교회, 성 이시돌 어린이집, 글라라 관상 수녀원, 농촌산업협회 등이 함께 있고 삼위일체대성당이 건축되는 등, 목장보다는 천주교성지로 더 알려져 있다.
■ ‘제주의 아버지’ 임피제 신부, 하느님 곁으로
2018년 4월 23일 선종…
성 이시돌 목장 설립 등 제주 양돈산업 일으킨 주인공, 65년간 제주 위해 헌신
60여 년 전 가난밖에 남은 것이 없는 섬 제주에 도착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궈낸 선교사 임피제(Patrick J. McGlinchey) 신부가 2018년 4월 23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 임 신부에게 제주도와 성 이시돌 목장은 삶의 전부였다. “주님이 가라는 곳은 어디든 가고, 시키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약속하고 25살 나이에 들어간 제주에는 4ㆍ3 사건과 6ㆍ25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난에 허덕였다.
복음과 더불어 주민 자립 위해
복음을 전하러 갔지만, 성경보다 삽을 먼저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새끼를 밴 돼지 한 마리를 인천에서 사다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그 목장을 기반으로 여성 1300여 명을 고용하는 한림수직을 세우고, 그 수익금으로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주민들을 위해 병원을 지었다.
특히 양돈사업은 오늘날 제주의 축산 기반이 됐기에 제주 사람들은 그를 ‘푸른 눈의 돼지 신부’라고 부른다. 교육사업을 포함해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벌인 모든 사업의 저력은 주님에 대한 신뢰와 서양인 특유의 개척 정신에서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던 청와대 관료들은 우연히 성 이시돌 목장을 둘러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만 마리 돼지와 수천 마리 소, 수천 마리 양을 기르는 한라산 중턱의 수백만 평 목장 풍경은 충격이었다. 이 때문에 임 신부는 박 대통령 앞에서 성공사례 브리핑까지 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신부님,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호스피스 병원 사업도 시작
그가 정작 고심한 것은 주민들의 자립이었다. 젊은이들이 앞장서는 농촌개발 운동 4-H 클럽을 제주에 확산하고, 가축은행을 만들어 종자를 퍼뜨렸다. 종잣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신협도 조직했다. 그는 애초부터 주민들에게 “동냥하기 위해서만 허리를 굽히지 말고 일하기 위해, 기도하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았다. 제주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자 인간다운 삶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손댄 것이 2002년 무료 호스피스 병원 사업(성 이시돌 복지의원)이다.
그의 수상 이력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열거하기가 어렵다. 2014년 제주 MBC가 주관하는 제1회 ‘자랑스러운 제주인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그는 은퇴했다는 이유로 수상을 사양했다. 하지만 “상금이 1000만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시상식에 갔다. 무료 호스피스 병원 운영비가 쪼들릴 때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구는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시편 118,23)이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27일 성 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유해는 그의 꿈과 땀, 기도가 배어 있는 성 이시돌 목장 묘역에 안장됐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 04. 29 1462호]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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