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일 오후 예배
제목 다시 전하는 예수
본문 고전 15:1-11
세상의 의복, 헤어스타일, 노래들은 유행을 따라 변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핸드폰 2~3년 이상 가지고 있으면 구식이 되어 새것으로 교체합니다. 사람은 늘 새것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더구나 고린도 교회는 새로운 진리에 호기심이 많은 자들입니다. 새로운 가르침이 있다고 하면 스승을 바꾸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고를 가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떤 편지를 썼을까요?
이미 했던 말을 다시 합니다
우리의 상상을 깨뜨리는 편지입니다.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전에 이미 전했던 말을 다시 합니다. 반복하여 가르치는 일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한 가지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게 없습니다. 유명한 과학자 토머스 쿤은 “과학이 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다. 내가 알고 믿고 있는 객관적인 진리도 이 시대에만 진리일 뿐이다. 오늘의 진리를 뒤엎을 새로운 진리가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미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먼저 전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항상 들어야 할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2천 년 전에도 들어야 할 말이고 21세기에도 동일하게 들어야 말씀입니다. 처음 믿을 때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듣고 또 들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또 들어야 할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반복하여 말하고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은 멈출 수 없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진리는 한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늘 새로운 진리에 호기심이 많은 고린도 형제에게 처음에 전한 복음을 다시금 또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헛되이 믿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줍니다. 이미 전한 것이고, 처음부터 들려주었던 가르침을 전해주며 이것을 굳게 붙잡고 믿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그동안 믿어왔던 예수님을 앞으로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음이 구원이다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소식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죄의 삯으로 인하여 멸망해야 할 운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엡2:1-3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었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모든 인생은 지옥으로 달려가는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이렇게 멸망 가운데 있던 비참한 존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로부터 해방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이던 관계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죄에 빠진 인류가 죄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은 천지창조 이후 가장 놀라운 소식이고 기쁜 소식입니다. 하늘과 땅을 뒤집을만한 엄청난 소식입니다. 온 인류가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이고, 듣고 또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려고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구원 주이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고, 그분의 인격을 믿고, 그의 가르치심과 사역을 믿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님 믿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예수님 믿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날마다 믿어야 하고, 계속해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 사실이 끝까지 믿으려면 이미 들었던 가르침을 다시 듣고 배워야 합니다.
다시 듣고 굳게 믿어야 한다
세상 이야기는 몇 차례 반복하면 식상해집니다. 땅 위에 있는 일들은 반복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해준 복음 곧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은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이미 들었던 가르침도 다시 듣지 않으면 잊게 됩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한 번 듣고 계속 유지되는 속성이 아닙니다. 믿음의 유지를 위하여 들었던 말씀 다시 들어야 합니다. 지속하여 가르침을 반복하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지고 맙니다. 구원의 확신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창하던 모국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반복하여 듣는 것을 지루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익히 들은 말씀 또 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훌륭한 선생님이지만 가는 곳마다 색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전해왔던 것을 전하고 또 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증거될 때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듣지 않고는 생명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전하고 또 전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에 대하여 이미 들은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나의 죄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듣고 또 들어야 하며 믿고 또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반복하여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혀가 굳어질 때까지 “주 예수님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라는 믿음 고백이 쉬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함이 고루한 일이 아닙니다.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일이며,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시고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주시는 유일한 길입니다.
믿음의 도중하차는 안 됩니다. 믿음의 포기는 최악의 일입니다. 나의 아까운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갑니다. 믿음에서 이탈은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례 받을 때 믿는 믿음의 고백을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매일 “주 예수님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이런 고백을 계속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고백을 멈추면 구원도 멈춥니다. 확신 있는 믿음 고백을 위해서 이미 들었던 말씀을 반복하여 들어야 합니다. 성찬식도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반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났음을 듣고 또 들으며, 믿고 또 믿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