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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값 하는 집
으리으리한 건물에 화려한 인테리어, 깔끔한 현대식 주방, 호텔식 서비스는 없어도 혀에 착착 감기는 음식 맛 하나로 원도심의 명성을 잇고 있는 원조 맛집이 있다. 과거 원도심에 사람들이 차고 넘쳤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원도심이 공동화되면서 이곳저곳에서 “장사가 안된다”며 아우성을 칠 때도 이름값을 제대로 하며 신도심 직장인들을 불러들이는 그 곳, 가히 명불허전(名不虛傳) 원도심 맛집들이 있다.
대전 전통시장의 맏형격인 인동시장하면 떠오르는 먹거리가 있다. 바로 인동왕만두(285-5060)이다. 1978년 문을 연 이곳은 왕만두와 고기만두로 유명하다. 예전 위치에서 옆 건물 1층으로 이전해 그 맛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전극장통에서 오징어칼국수 하나로 43년 째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집(256-1464)은 시큼하면서도 시원한 맛의 총각김치와 오징어가 들어간 찌개에 칼국수를 끓여먹는 별미집이다. 소금과 마늘, 고춧가루만으로 담가 소박하고 단출한 총각김치는 시원한 찌개 맛을 좌우하는 주요재료다. 소나무집의 오징어칼국수가 얼큰하고 진한 국물맛이 특징이라면 대흥동 칼국수 골목의 원조격인 대선칼국수(255-0316)와 들깨칼국수로 유명한 스마일분식(221-1846)은 깔끔하고 구수한 국물맛으로 원도심 칼국수 명가의 전통을 잇고 있다.
두부두루치기의 원조 하면 진로집을 꼽는다. 그런데 이 명성에 맞서는 곳이 있으니 바로 광천식당(226-4751)이다. 두부두루치기와 오징어두루치기, 수육, 칼국수가 주 메뉴로, 고춧가루만으로 얼큰한 맛을 낸 독특한 두부두루치기의 중독성에 남녀노소 발길이 이어진다. 선화우체국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80년대에는 칼국수 골목으로 불릴 만큼 두부두루치기와 칼국수를 주 메뉴로 하는 상당수의 음식점이 있었다. 그러나 둔산으로 도심이 이전되면서 대부분 없어지고 광천식당이 전통을 잇고 있다. 1970~80년대, 개강파티, 종강파티, 졸업사은회 등 각종 모임으로 이곳을 찾았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아이들 손을 잡고 이곳을 찾는다.
한영식당, 현대식당과 함께 대전의 닭볶음탕 명가로 통하는 정식당(257-5055)은 대전시청과 충남도청, 중구청이 모여 있을 때 주머니가 가벼운 공무원들의 단골 회식장소였다. 1호점에 이어 2호점이 성업 중으로, 오늘날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쫄깃한 닭고기와 포실포실하게 익은 감자를 건져먹은 후 남은 양념에 볶음밥까지 쓱쓱 비벼먹고 나면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닭볶음탕의 또 다른 맛집인 온유네닭매운탕(631-9585)은 콩나물을 넣는 것이 특징. 양념이 잘 밴 닭고기에 아삭하게 익은 콩나물을 곁들여 먹는다.
나룻터식당(253-5386)은 특별할 것도 없는 콩나물로 특별한 맛을 내는 맛집이다. 특별 주문해 공급받은 콩나물에 북어, 바지락, 청양고추, 마늘을 넣어 끓인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콩나물탕은 한끼 식사는 물론, 해장국으로도 손색없다. 또 대전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찌개 집으로 손꼽히는 학선식당(256-4057)도 원도심의 명성을 지켜내고 있다.
있어줘서 고마운 집
원도심을 찾는 이들의 마음 한 켠엔 누구에게나 어릴 적 추억의 풍경화가 하나쯤 걸려 있다. 유년시절 짜장면을 먹던 곳이 아직 그곳에 있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음 맞는 친구와 주머니돈 탈탈 털어 두부두루치기 한 접시에 소주 서너 병을 마시며 청춘을 이야기했던 선술집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함께하던 동무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고 원도심도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만, 문득 지나간 세월의 숨결이 그리워질 때 발길을 돌리게 되는 곳이 중앙로다. 그럴 때마다 세월의 더께를 곱게 이고 단골 아닌 단골을 반갑게 맞아주는 곳.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며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둥지 같은 집들이 있다.
무심히 걷다보면 지나치기 십상인 좁다랗고 허름한 골목 어귀에 ‘진로집’이라는 작은 간판 하나가 걸려 있다. 진로집(226-0914)은 친정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남임순 사장이 50년째 대를 이어가고 있는 원도심의 터주다. 대전의 대표음식인 두부두루치기의 원조답게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위키백과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위키백과엔 이렇게 적혀 있다. “대전의 두부두루치기 식당인 진로집의 남씨는 ‘두부를 맛있게 매 쳐라, 때려라, 매 때려라, 두루쳐 내와 봐라’하는 말에서 (두부두루치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창업 51년째를 맞이한 대전의 대표 칼국수집 신도칼국수(253-6799)는 사골, 멸치육수에 들깨가루와 양념장을 얹어 먹는 독특한 칼국수 문화를 일궈냈다. 1961년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 대전역 부근에 문을 열고 배고픈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칼국수를 담아냈다. 식당 벽면에 이 집에서 시대별로 칼국수를 담아냈던 그릇들이 걸려 있다. 거의 세숫대야에 버금가는 양푼이 배고팠던 60년대를 실감나게 하는 등 우리들의 어릴적 이야기가 아스라이 정겹게 다가온다.
50여년 전, 번듯한 건물하나 없이 논밭뿐이었던 곳에 건물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청요리집’이 생긴다며 눈여겨봤고 그곳엔 희락반점 간판이 걸렸다. 화교 2세가 2대째 운영하고 있는 희락반점(256-0273)이 문을 연 당시만 해도 중국요리는 ‘청요리’로 불렸다. 지역 유지나 고위관료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일반인들은 생일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 어쩌다 가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옛 추억을 함께 먹는 이곳은 그래서인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손님들이 많다. 희락반점과 함께 ‘짜장면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태화장(256-2407)이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지난 1954년 천화각으로 영업을 시작해 1971년 태화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시절, 내로라하는 이들의 모임장소로 인기를 모았다.
대전극장통이 한창 번화할 때 대전극장과 서라벌극장에서 젊은 남녀 한 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 또 한 무리가 줄지어 들어간다. 영화를 보고나와 삼삼오오 흩어지는 발길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향하던 식당이 있었다. 대전극장통이 번화할 때 그 명성을 함께했던 대전갈비집(226-9428)은 1977년 문을 열어 돼지갈비를 대중화시킨 원조격으로 통한다. 넉넉한 자본금 없이 식당을 열었던 주인은 갈비 세근을 사다가 팔기 시작했고 손님들의 입맛에 맞춰 양념을 조절해오면서 이 집만의 맛을 찾아냈다. 지금도 국산암퇘지 쪽갈비를 양념간장에 재운 뒤 숯불에 구워 내는데, 옛 명성을 들어온 젊은이들이 즐겨 찾고 있다.
대전에 냉면문화를 처음으로 뿌리내린 식당은 사리원면옥(256-6506)이다. 1950년 개업한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점으로 평양식 냉면을 전문으로 한다. 식당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관공서를 비롯한 단체손님들이 이 식당의 명성을 다졌다.
지난 1981년, 사리원면옥에서 가까운 곳에 ‘고급 밥집’이 문을 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돌솥에 밥을 지어주고, 상다리가 휠 정도로 반찬 가짓수가 많은 진수성찬이 도자기에 담겨 나온다는 것이었다. 귀빈회관이라는 간판으로 문을 연 귀빈돌솥밥(242-3355)은 돌솥밥 하나로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온 집이다. 돌솥에 쌀, 흑미, 콩, 호박, 당근 등으로 지은 밥에 각종 나물과 채소로 비벼먹는다. 개업 당시 백반 한 그릇이 1,500원 정도일 때 돌솥밥은 1,700원을 받았다.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오전 11시만 되면 집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찾는 이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통시장 맛집
동네마다 마트가 생기고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기 전, 사람들은 시장골목을 제집 드나들 듯 누비고 다녔다. 쌀과 찬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소쿠리 하나를 사야할 때도 시장을 찾았다. 특별한 유흥거리가 없던 당시, 볼거리와 참견할 거리가 넘쳐나던 시장은 놀이터 같은 곳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장을 보러 나온 이들과 상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식당들이 시장 안 여기저기를 비집고 들어서기 시작했다.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 상차림이지만, 저렴하고 맛이 좋은 시장통 맛집들은 후한 인심까지 얹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옛 대전백화점 뒷골목에 자리한 개천식당(256-5627)은 함경도식 만둣국으로 60여년 중앙시장 맛집을 이끄는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다. 북한 ‘개천’ 출신의 창업자 할머니가 한국전쟁 직후 판자촌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한 만두와 떡국이 6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아직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10시간을 고아 만든 육수에 하루 400개 정도의 직접 빚은 만두를 넣어 끓여내는데, 양념이 강하지 않고 깔끔하고 소박한 맛을 자랑한다. 어릴적 집에서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만둣국 맛이다.
예전 홍명상가 아래 먹자골목에 위치한 백천순대(226-0140)는 친정어머니로 물려받은 2대 윤미숙씨가 운영, 4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접 순대를 손질하고 만드는데, 냄새 없고 깔끔한 맛이 강점이다.
중앙시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자리한 은행나무집은 포장마차로 되어 있는 보리밥 전문점이다. 양푼에 담아 내어주는 넉넉한 보리밥에 콩나물과 상추, 생채나물, 열무김치 등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첨가해 쓱쓱 비벼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먹는다. 오고가다 들러 간편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전통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전통시장에서 보리밥과 함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갓 튀겨낸 닭튀김이다. 그루터기 같은 큼지막한 나무 도마에서 순식간에 도막낸 닭을 끓는 기름 속에 넣으면, 지글지글한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튀김냄새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퇴근길 아버지는 누런 종이에 담긴 뜨끈한 닭튀김의 기름이 배어나오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행여 튀김이 식을 새라 외투 안쪽에 꽁꽁 싸안고 집으로 발걸음을 잰다. 이러한 옛 풍경 그대로, 생닭을 토막 내 즉석에서 튀겨주는 서울치킨(221-5333)은 치킨 마니아들 사이에선 명성이 자자한 30년 중앙시장 맛집명소다. 고소한 닭튀김 맛에 푸짐한 양까지, 넉넉한 시장인심을 실감할 수 있다.
인동시장 내 인흥상가 뒤편에 있는 광천순대(283-8419)의 순대국밥과 순대국수 인기는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허름한 선술집 분위기이지만, 식사시간이면 앉을 자리가 없어 줄을 서야 한다.
아싸 같이 가실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