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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의 술 이야기
삼척 전통주 명인을 찾아서
정연휘 시인
차례
01, 100가지 꽃술|최남옥(92) 삼척시 원덕읍 기곡리
02, 불술1| 이화자(73) 삼척시 노곡면 중마읍리
03, 불술2|박병준(62) 삼척시 삼척전통주연구회
04, 좁쌀술|이정희(77)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05, 보리술1|권옥순(70)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
06, 보리술2|진금연(83)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07, 보리술3|심영옥(78)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08, 옥수수술|최승화(74) 삼척시 도계읍 점리
09, 입쌀술|김순란(88) 삼척시 가곡면 탕곡리
10, 호도술|최분옥(84) 삼척시 원덕읍 기곡리
11, 호박술|이학수(74) 삼척시 정상동[봉황천]
12, 귀리술|박병준(62) 삼척시 박병준전통술이야기
13, 장뇌주|정연주(66)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14, 전통소주|이경희(62) 삼척시 삼척전통주연구회
15, 끌로너와 와인|김덕태(52) 대표 삼척시 도계읍 신리 너와머루와인공장
16, 임원생막걸리|박경태(51) 대표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임원양조장
17, 삼척양조장|이원훈(75) 대표 삼척시 당저동
18, 신주神酒|박병준(62)삼척시 삼척전통주연구회
19, 블랙마니 와인|정상윤[40]대표 삼척시 도계읍 도상로 육백산포도영농조합
01) 100가지 꽃술|삼척시 원덕읍 기곡리 최남옥(92)님 집
01) 100가지 꽃술|원덕읍 기곡리 최남옥(92)님
▒▒ 삼척의 술 이야기|전통주 명인을 찾아서·01
100가지 꽃술, 최남옥(92)님
삼척시 원덕읍 기곡리
"100가지 꽃술은 우리 어머니의 전매특허예요. 내가 시집 오기 전까지 살던 질골에서 아버지를 위해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100가지 꽃술을 담갔사요" 할머니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 어릴 때니 80여 년 전의 참 좋은 기억이야요. 시집와서 줄곳 살은 곳은 기곡리이지만, 내가 태어난 친정은 시집 오기 전까지 살던 곳이 질골이예요."
최남옥[92세] 할머니는 부모님과 살던 친정 질골에 대한 향수가 깊었다. 질골은 어디일까? 할머니가 사는 기곡리에서 그 옛날 친정 가는 길은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 무렵에 도착하는 하루 걸이의 거리였다. 삼척시 원덕읍 옥원沃原3리다. 최남옥 할머니는 연세에 비하여 기억력도 초롱초롱하고, 목소리는 맑고, 체격은 군살이 없는 가벼운 걸음의 날씬 체질이다. 머리카락도 흰머리 보다 검은 머리가 더 많다.
최남옥 할머니가 태어나고 살았던 질골, 옥원리는 옛부터 역사와 문화가 있는 지역으로 조선시대는 마역馬驛인 옥원역과 객사客舍인 옥원관이 있던 소재지였다.『동국여지승람』권44 삼척조에 옥원역은 삼척부에서 남쪽으로 100리라 하였다. 옛날에는 큰길이였다. 조선조 세종 때 영동지방에 극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죽어갈 때 황희 정승이 구제하여 쉬고 간 소공대가 인근에 있다. 질골은 황희 정승의 소공대비가 있는 옛길 관동대로 가는 길의 왼쪽 골이다. 골이 깊어 같은 질골에서도 할머니가 살적에 셋 집이 사는 음달말은 옥원리로, 아홉 집이 사는 양지말은 노실 쪽으로 다녔다. 질골에서 태어나고 질골에서 자랐고, 질골에서 이곳 기곡리로 시집 올 때까지 어머니가 담그는 100가지 꽃술과 부모형제와 오손 도손 살았던 가족애는 꿈에도 그리운 고향이다.
세상은 세월 따라 변해 간다. 변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고향과 부모형제 애愛이다. 그리고 100가지 꽃술, 백화주百花酒 하면 어머니,아버지이고, 어머니 아버지 하면 100가지 꽃술이 연상된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각별했다. 필자는 100가지 꽃술, 백화주는 처음 들어보는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100가지 꽃으로 빚은 꽃막걸리가 세상에 있다니... 입안이 스멸스멸 군침이 돈다. 그 술 맛은? 그 술 빛깔은? 그 술 제조 과정은? 모두가 궁금했다.
최남옥 할머니의 100가지 꽃술 빚는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우선 찹쌀 한 되와 누룩 한 되 분량으로 밑술을 만든다. 밑술은 발효균을 집중적으로 배양한 액체이다. 발효되는 데는 5~7일이 걸린다. 밑술을 빚는 것은 다음에 대량으로 투입되는 재료를 망치지 않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밑술에 덧술이 들어간다. 덧술에 들어갈 찹쌀 고두밥을 찔 때에 미리 만들어 둔 100가지 꽃가루를 위에 골고루 뿌리고 고두밥을 찐다. 찐 고두밥을 완전히 식혀서 한 말과 잘 빻은 누룩 반 말을 밑술에 덧술이 들어가 골고루 치대여서 술독에 넣는다. 100가지 꽃술을 담그는 방법이다.
최남옥 할머니 이야기에 의하면 할머니의 어머님이 빚은 100가지 꽃술, 꽃막걸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술독을 열으면 그 향기가 그윽하여 더 진하게 향기를 맞으려고 술독 가까히로 발걸음이 간다 하였다. 할머니는 처녀 때나 지금이나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만 아버지가 술을 좋아했고, 어머니가 막걸리를 담궜기에 자연히 술향기는 좋아했다 한다. 여느 술과는 확연히 향기가 좋으니 술맛이야 더 좋겠다. 언제 어느 때에 100가지 꽃술,꽃막걸리를 맛 볼 수 있을 까?
옛 문헌을 사료에서 찾아 보았다. 1700년대 조리서『온주법』에 따르면 백화주를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자식 못낳는 사람이 자식을 생산한다 했다. 그 만큼 100가지 꽃술의 효능이 좋다는 것인데, 그 술향과 술맛이 어떠한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일반 막걸리도 석 잔을 마시면 알콜 기운이 몸을 감싸고, 다시 한 잔을 더 들이키면 전신에 퍼지는 짜릿한 촉감에 기분이 좋은데. 몸에 좋다는 100가지 꽃술의 100가지 약성이 들어 있는 백화주는 보약이고, 그 집안에 내려오는 가양주家釀酒가 아닌가. 할머니 말씀이 "백화주 술빛은 갈색인데 탁하지 않다. 13도 쯤 도수에 비해 진하다. 술맛이 자극적이지는 않은데, 뒷맛이 쌉싸름하고 누룩내는 전혀 나지 않는다. 그것이 백초주인가? 백화주인가?" 라고 말 했다.
최남옥 할머니 이야기에 의하면, 100가지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한창 보기 좋을 때, 때 맞춰 따야한다. 한 봉지에 10가지씩 꽃을 넣어 그늘인 처마밑에 달아서 잘 말린다. 계절별 꽃을 열거하면 봄꽃은 벚꽃, 산철쭉, 개나리, 목련, 민들레,모란, 자목련, 진달래, 유채, 제비꽃, 할미꽃, 찔레꽃, 수선화, 산수유, 복수초, 영산홍, 패랭이꽃, 산달래, 자운영, 삼지구엽초, 고깔제비꽃, 노랑무늬붓꽃, 족도리풀, 은난초,각시붓꽃, 꽃다지, 개쑥갓,공조팝나무,금낭화, 갯버들,금란초, 꽃마리, 개불알풀, 광대수염,살구꽃, 분꽃나무, 현호색, 병꽃나무, 난초, 물망초, 배추장다리, 사과꽃, 아네모네, 은방울꽃 등이다.
여름꽃은 나팔꽃, 장미, 백합, 해바라기,무궁화, 메꽃, 맨드라미, 봉선화, 카네이션,수련, 양귀비, 에델바이스, 연꽃, 도라지,석류, 노루발, 담쟁이덩굴, 옥잠화, 애기기린초, 수레국화, 해란초, 양지꽃, 쇠무릎, 엉겅퀴,만병초, 자주괭이밥,말발도리, 쑥부쟁이, 이질풀, 물양지꽃, 인동덩굴,갈퀴나물, 갯까치수염, 까마중, 꽃창포, 해당화,국수나물, 고추나물, 고마리, 고삼,달맞이꽃, 닭의장풀, 담쟁이덩굴, 나비나물, 벌노랑이, 부들, 가시여뀌, 꽃창포, 꽈리, 미모사, 동자꽃, 자귀, 황매화, 치자,싱아, 초롱꽃, 등 이다.
가을꽃은 국화, 분꽃, 채송화, 칸나,백일홍, 과꽃, 달맞이꽃, 방울꽃, 각시취,구절초, 부용, 산비장이, 조밥나물, 오이풀, 강활, 독활, 참싸리, 눈괴불주머니, 솔체꽃, 꽃향유, 개여뀌, 산국, 털머위, 각시취, 쑥부쟁이,월계수 등 이다. 겨울꽃은 동백, 매화 등 이다.
이러한 100가지 꽃, 백화를 따서 그늘에 잘 말린다. 잘 말린 100가지 꽃은 필요시 디딜방아에 찧어 채로 처서 고두밥 위에 골고루 뿌려서 함께 찧다. 이런 온갖 꽃을 따기 위해 어린시절부터 처녀시절 시집 가기 전까지 어머니와 함께 이 산 저 산을 찾아 다녔다. 바소쿠리를 얹은 지게에 채취한 꽃들은 보자기에 싸서 지고 오곤 했다.
100가지 꽃술은 가양주이다. 한 집안에서 유전학적으로 부족한 요소는 자손대대로 이어진다. 술은 기혈 순환이 잘 되게 하는 것이 본래의 기능이다. 그러니 가양주는 유전학적으로 그 집안의 부족한 요소를 보충해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본다. 고승들이 고산병을 치유하기 위해 술을 빚어 곡차로 마셨던 것과 같은 이치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병약하거나, 가문에 유전적인 질환이 있었는지를, 그랫더니 유전학적으로는 모르는 일이고, 아버지는 키도 크고 힘도 잘 쓰는 건강한 분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100가지 꽃술을 담그어서 아버지에게 장복하게 한 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라 봐야겠다. 한 여인의 지아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100가지 꽃술로 표현했다니 감동이다.
100가지 꽃술이 궁금하여 옛 문헌을 찾아 봤다. 백화주는 대별하여 2가지 종류로, 술이 완성되여 쌀이 삭아 밑으로 가라앉고 위에 남아있는 쌀알이 마치 흰꽃이 핀 것 같다 하여 백화주라 부르는 것과 100가지 꽃을 넣어 빚어 백화주라고 부르는 술이 있다 하였다.
100가지 꽃술은『동의보감』,『음식디미방』등 고서적에 등장한다.『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백화주 빚는 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겨울에 매화·동백으로부터 이듬해 가을 국화까지 꽃을 모으되 송이째 꽃술 없이 하지 말고 그늘에 말려 각각 봉지를 지었다가 중양(음력 9월9일)에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기에 이르러 술을 빚으라. 다른 꽃은 비록 향기 많다가도 마르면 향내가 가시나, 국화는 마른 후 더욱 향기로우니 주장을 삼고 복사·살구·매화·연꽃 등과 초화草花에는 구기·냉이꽃 등 성미가 유익한 것은 돈수를 넉넉히 하고 다른 꽃은 각 한 돈씩 하되 철쭉·옥잠화·싸리꽃은 지독하니 넣지 말라"고 했다.
"술하는 법은 찹쌀 두되를 가루로 하여 구멍떡을 만들어 삶아라. 혹 되거든 삶은 물을 쳐서 치켜들어 떨어질 만큼 개어, 이슬 맞힌 좋은 누룩가루 한 되를 바로 섞어 날물 들이지 말고 항아리에 넣어 쐐기 받쳐 덥지 않되, 바람기 없는 곳에 우는 덮지 말고 두어라. (중략) 백화를 다 각각 등분하여 달아 한데 섞고 국화는 말리지 말고 한되 남짓 꽃잎만 따서 한켜씩 백화와 밥을 떡 안치듯 하되, 국화는 위에 뿌리고 밀가루 서홉 밥에 섞고, 누룩 한줌만 위에 뿌려 늘려 고르게 하고 위를 김나지 않게 봉하여 익히면 국화는 개미와 한가지로 뜨고 향내와 맛이 다른 술보다 뛰어날 뿐더러 원기를 보하고 공효가 특별하다." 라고 되어있다.
1760년대 편찬된『증보산림경제』에는 "여러가지 꽃을 따서 여름에 응달에 펴서 말리는데 이것이 어려우면 햇볕에 말려도 된다. 쌀 1말을 빚을 경우, 꽃 반근을 쓰는데 혹 서너냥을 써도 좋다. 꽃이 많이 들어가면 술맛이 좋지 않다. 꽃에 술밥과 누룩을 섞고 밑술에 부어 익으면 마신다. 사람 몸에 좋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남옥 할머니와 어머니의 100가지 꽃술, 처녀공출을 피해서 조혼 등 일제강점기의 한편의 역사와 지난했던 한 사람의 생애를 단편으로 만나는 인터뷰이다. 꽃술과 부모형제와 남편과 자식과의 혈연애血緣愛 이야기다.
"할머니 연세가 92세라고요? 정정하셔서 일흔도 안돼 보이게 젊으시네요,"
"구십 둘이요, 뭘 젊게 보이쇼" 밝은 미소에 홍조,소녀 때의 기억이 피였는지 얼굴에 화사한 봄꽃이 피었다.
"근데 할머니 100가지 꽃술 이야기를 옆에 앉은 아내 강복순에게서 들었을 때, 그 꽃술이 놀라웠고요,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찾아뵙고 살아오신 얘기도 듣고, 꽃술을 만든 어머니의 모습도 그려보고,... 그래서 생각이 나는대로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래 부터는 할머니와 주고 받은 이야기를 " " , " " 대화 부호 없이 기재한다.
삼척에서 오셨는가요? 아까, 재말랑 올라갔다 했는데 거기 어딘가요? 거기가 소공대 가는 길이에요. 아 거기 읍내에서 들어 가가지고 소공대로 올라가다가 그 골, 왼쪽 골로 들어가요. 그 골 이름이 없었어요? 얘, 질골이래. 아 질골, 질골이네요. 그 질골에는 할머니가 계실적에 집이 몇채 있었어요? 그 떄 이 건네에 위로 음달마실에 우리 집까지 셋 집, 양달마실은 넷 집에 꼭대기에 큰 밭이 있는데 셋 집, 그리고 더 살았지. 음달마실 사람들은 옥원으로 다니고, 양지마실 사람들은 노실로 다녔지. 옥원과 노실 사이 마실이네요? 얘, 친정집은 음달에 살다가 나중에 양달로 건네 왔잖아요. 양지마실로 이사를 했지요. 그러면 할머니는 태어 나가지고 시집 갈 때 까지 질골에 산거에요? 얘, 거기서 나가지고 음달에서 시집가서도 친정집 우리 아버지가 상사 나고 어무이도 음달에 살았어. 질골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시집을 갔네요? 거기서 커가지고 일로 기곡으로 시집왔지.아, 질골에서 나고,자라고,시집은 기곡리로 오셨네요? 요로 왔어요, 와가지고 이집에 살아왔어. 그 때 시집 올 때 몇 살이예요? 내가 열여덟 때 시집 왔어, 열여덟? 좋은 나이에 시집 가셨네요, 하하하. 호호호~~
그런데 공출 한대서, 딸애들 공출 한대서 시집 미리 왔게야, 공출이라니요? 쌀이나,콩, 송진,그런 공출이 아니고, 딸애들 공출이 무슨 뜻 입니까? 일제 강점기에 처녀공출이라는게 있었사요, 한반도 각지에서 특히 시골에서 면장 군수들에게 할당량을 줘서 차출하는 처녀공출이란게 있었었사요. 공출에 안끌려 가려고, 처녀공출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처녀들이 급하게 시집을 가야했아요. 처녀공출 대상에만 오르면 급히 부모들이 결혼을 시켰는데, 거기에 내가 해당 돼, 처녀공출, 그 뭐냐? 정,정, 정신대,...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일찍 시집 왔잖애요. 아, 그때 1945년 일본 강점기에서 해방되기 훨씬 전 부터 시작된 처녀공출 아픈 역사시대를 사신 할머니는 부모님 순발력으로 시집 가면서 정신대를 앗찔하게 모면했다. 그 시대 동년배 처녀들이 정신대에 끌려가 모진 세월의 치욕, 그 치욕의 역사를 왜곡하는 역사의 감옥에 갗힌 일본은 언제 그 할머니들께 사죄 할 것인가?
지금도 그 아픔이 연장선에 있지 않는가. 아, 최남옥 할머니가 처녀 공출에 안 끌려 가려고 조혼을 했구나, 부모님의 애씀이 역사의 행간에서 보였다. 나라 뺏긴 백성의 치욕, 치욕의 처녀 공출, 그 공출을 피한 역사가 여기 살아 있었다. 18살 최남옥 처녀는 질골에서 기곡리로 시집 와 90평생을 보내고 있다.
그래가지고 내가 18살에 처녀공출을 피하느라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 시집 갔잖아요, 혼인하고 시댁에서 첫 진정에 갔다가 어무이가 해준 떡을 아부지가 지고 신랑집으로 갈적예 오두꾸재를 넘어 갔다이가, 그 기억이 엇그제처럼 생생하니... 아부지 어무이 생각이 많이 난다요.할머니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물기 젖은 눈망울과 상기된 얼굴 표정에서 잠시 그리움의 파고가 출렁이였다.
일제강점기는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 식민통치 35년은 한국민족의 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과 백성들의 치욕의 시기에 최남옥 할머니는 거기에 있었다. 그 치욕의 35년 안에서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내고,처녀공출을 피해 일찍 시집을 갔다. 할머니? 그러면 그 때가 일제강점기 왜정 때인데, 시집 가서 몇 년후에 해방이 되었어요? 그럼요 왜정 때, 내가 시집와서 그 이듬해 해방되고 그랬어요.
혼인[婚姻]은 장가 들고 시집 가는 것을 말한다. 신랑이 장가든다는 것은 장인[丈人]의 집에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랑은 신부 집에서 혼례와 첫날밤을 지내고 처가 어른께 예[禮]를 갖추며 머무는 동안이 ‘장가든’ 상태이다. 그 후 신부가 신랑과 함께 시댁에 가는 것이 ‘시집가는' 것이 신행[新行]이다. 이런 혼례의 절차로 할머니는 시집가 진정에서 떡을 해가지고 아버지와 시댁으로 가는 길의 추억이 아부지 어무이가 뼈속까지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할머니에게 처녀 때 추억을 더 불러 봐야 겠다. 그 때 할아버지는 몇 살이었어요? 아바이는 열일곱이고 나는 열여덟이고 그랬어요, 한 살 더 많았네요? 내가 한 살 더 많아, 할아버지 성함은요? 성함이, 민문기 민문기. 아 민씨이네요? 원래 원덕 민씨 가문이 좋고 머리도 좋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열여덜살에 열일곱살 총각한테 시집왔어, 그래가지고 나와 이십 육년 살다가 사십 넷에 상사나서 갔어. 사십 넷에 일찍 가셨네요, 어디가 아팟나요? 어디 아프기도하고 뭐 술도 좀 많이 자시고, 방아간 하느라 토지를 팔아가지고, 그러니까 기계 방앗간 하면서 탈이 난게지요. 아이들이 7남매로, 막내가 4월달에 나고, 애들 아바이는 동짓달에 돌아갔어요. 그래 살아온 일 생각하면 아바이 죽은게 많이 아깝지요. 새끼들 먹여 살린 생각을 하니 아깝지요.그래서 농사지으면서 힘들었지만 새끼들 먹여 살리려고 아착같이 살았지요. 기계방앗간은 요 밖에 나가면 집이 하나 빈 집이 있는데, 고 밑에다가 방아갓을 내서 했어요. 방앗간 하면서 농사를 지었어요.
그럼 칠남맨데 몇 남 몇 녀입니까? 딸은 너이고 아들 서이래요. 기래 우리 막내가 태어나고, 동짓달에 아바이 가고, 기래 그 막내가 커서 저 끼리 만나 결혼하고, 남매를 낳았는 데, 그 애기가 군대에 갔고, 딸이 고3,올해 대학교 들어가는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막내 아들이 태어났어요? 막내가 사월에 나고, 아바이는 동짓달에 돌아갔어.사월달에 막내 아들이 나고 동짓달이면 7개월 사시고 돌아가셨네요? 기래 그 때 병원에 아바이가 입원해 있었는데, 장성병원에 갔는데 막내가 돼지띠인데, 아 이름 안짓고 가서 아바이가 아기를 보자 "돼지 왔나" 이레면서 손을 내뻧이니 어린 아가 아바이 손을 넝큼 잡아서 아기하고 아바이하고 악수 하고 그랬잖소. 그래가지고 거기서 못 고치고 거기서 상사났아요.
그래가지고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큰 아들이 천안에서 고등학교 다녔는데 아바이가 돌아가려고 그려는지 아들을 오라고 해, 왔다 가라고 편지를 보냈더니만 아가 왔더라고. 그 때 애가 스무살이지. 나도 오라고 연락이 와서 막내를 업고 병원에 가서 돌아가기 전에 얼굴을 봤지요.
그러면 할아버지가 44세에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45센데 애들 칠남매를 키우려면 고생도 많이 하셨겠어요?
그 때, 빚은 져서 태산 같지요 사는게 매련도 없지요. 축천[산양리]에 큰집들이 있어 거기 와 같이 살자고 했지만, 거기가서 집 마련도 어려워 여기서 살았지요,그러면 어떻게 돈 벌어서 애들 공부시켰어요?
아이고 그래가지고 공부를 제대로 못시켰지요. 딸들은 국민학교만 시키고 막내딸은 형편이 좀 풀려 중하교 시켜 내놓고, 아들들은 고등학교만 시켰어, 큰거는 아바이가 고등학교 시켰고, 작은 아들들은 또 내가 고등학교 시켰어요. 둘째 아들은 호산에 고등학교 있는데,삼척 가서 삼일고등하교 3년동안 하숙하며 자취 했어요.
그러면 올해 큰아들이 몇 살에 이름은요? 첫째 민경준[67세], 둘째 민순영[62세], 셋째 민숙자[60세], 넷째 민순옥[57세], 다섯째 민경장[55세], 여섯째 민경희[51], 막내 민승옥[41세], 오~우~,할머니 되게 기억력이 좋으셔요!! 하하하
할머니? 질골에 계실적에 어머니가 막걸리를 담갔아요? 예, 어머니 성함은 요? 김씨, 김순이야, 그러면은 할머니 형제는 몇이었어요? 6남매. 딸이 서이, 아들 서이. 딸 셋 아들 셋, 모두다 질골에서 같이 살았네요? 내가 맏이래요, 그러면은 어머니가 그 꽃술, 100가지 꽃술을 담그는 건 몇 살 때까지 하는걸 봤어요? 어릴 대부터 시집 올 때 까지요, 우리가 일을 할 때, 어무이가 술을 해가지고 아부지한테 드리면 술을 드시다가, 어느 때이던가 우리 동생이 네살을 먹었는데 뭐, 아부지가 잡수면서 야가 자꾸 아버지 술을 먹더니만 온몸이 빨개지고 술에 취해 별일도 다 있었사요, 또 나는 그 술을 어릴때에는 한 잔도 못먹어 봤어. 커서 시집 올 무렵에 몇 번 맛을 봤아요. 꽃술이 이제 뭐냐, 꽃을 열가지씩 채취해가지고 한군데 모두고, 한군데 모두어서 처마 밑에다 달아놨다가 말려요. 지붕 아래 추녀끝에 달아놓고 말리지요. 그걸 꽃 열개씩 갖다 모두면, 100가지 꽃이 모이는 게야요. 100가지 꽃을 봄부터 채취해가지고 가을 까지 꽃을 계속 모닸서요.
할머니, 그 꽃술은 일년내내 먹는건 아니겠네요? 야, 가을 때 해가지고 잡숩죠. 또 우리가 이제 바소쿠리를 하나씩 지게에 달아가지고 어무이 아부지 일하러가면 노란 꽃이 피잖아, 그걸 따서 모아서 말려가지고, 빻아서 채로 걸러서 꼬두밥 위에 고루 펴는데, 완전 향기가 진한 노란꽃은 생화 꽃잎을 같이 넣어요. 네, 그게 국화, 향기가 진한 산국[山菊]이에요. 지금 마당가 여기도 노란꽃, 산국이 피었잖아요.
할머니 아버지가 꽃술을 장복하였는데 할머니도 마시거나 맞보는거 없었어요? 아 약술이니까 아버지 혼자 잡쉈지만 얼나나 맛이 있으면 저리 맛있게 잡숩는가 하여 이따금 맛을 봤아요. 할머니의 어머니가 김순희씨고 아버지는요? 최가, 아이 때는 최학구. 부르는 이름은 최상학이였아요. 거기서 아버지 어머니는 농사만 지었나요? 네 농사만 짓었는데, 농사를 많이 지었사요. 논이 여덜마지기 짖고, 밭 농사도 많이 지었사요.
아버지 어머니는 몇 살 때 돌아가셨나요? 오래 사셨어요, 어무이는 환갑 지냈고, 아부지도 환갑지내고 칠순 가까히서 상샤사 났사요. 그해 가을에 추수를 하고 저녁을 잡숩고, 며느리가 보니 아부지가 옥수수를 까더래요, 술상을 올렸더니 "웃묵에 갖다놔라, 내가 먹고 싶으면 한 잔씩 먹을께" 이튼날 아침 며느리가 아침밥을 하고 뭐 좀 끓여드릴까 물으니, 대답이 없었대요. 화로를 마루에 내 놓는데, 안 내 놨드래요. 이상해 며느리가 방에 들어가니까예 아부지가 엎드렸는데 상사 났어요. 아프지도 않고 그렇게 쉽게 돌아가셨어요. 그시절 치고는 오래 살았어, 그거 다 100가지 꽃술을 잡수신 효력으로 건강하게 7순 가까히 사시다가 아프지도 않고 그렇게 돌아가셨네요. 할머니 어머니의 100가지 꽃술 공덕 같은데요.
지금 사는 기곡리 집에서 친정 질골로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뭘, 좀 멀아요. 얼라[아기]들 업고, 보따리를 들고 친정에 걸어 댕겼지요. 아침에 밥 먹고 늦게 갈적에는 거기가면 해가지고, 일찍 갈적에는 저녁쯤 가고 그래요. 아 친정 가는 길이 그럼 하루 걸렸네요? 요새는 차가 들어가니 고대[금방]가지요.거기 산비얄에 집들이 엄청 많이 들어서서 놀라웠지요. lng단지와 발전소가 들어와서 호산이 천지개벽 했사요.
할머니는 장사 같은건 안 했어요? 농사만 지었어요? 예 농사, 논 여섯마지기와 밭농사 짖고, 방아를 해서 애들 학교 보냈지요. 가을에는 감 따 가지고 새겨서 석포에 감 팔려 댕겼어. 그럼 기곡에서 석포 가는거 굉장히 멀 잖아요? 여기서 올라갈 때 감을 이고 석포재 산빼이재를 올라가면 석포 가는 차가 있어요. 감을 팔고 저무면 자고오고, 일쯕이면 돌아 오곤 했어요.
100가지 꽃 중에 할머니가 기억하는 노란꽃 산국 같은거, 봄에는 진달래도 땄겠죠? 예 진달래 뭐 개꽃 많이 넣었죠. 꽃 이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른 봄 밭에 잎이 3개짜리 꽃이 참 많았사요.산에도 꽃들이 많았사. 어머이 따라 꽃따기 다녔지만 여간 힘든게 아냐, 그러니까 어머니가 남편 꽃술 해줄려고 아주 열성을 다하셨네요 그렇죠? 허허 어뚜[어덯게] 그렇게 어머이가 열심히 했는지 몰라, 나는 지금 아부지가 살아있다고 하면 그렇게 못해, 100가지 꽃술, 꽃 따는 일, 꽃은 예쁜데 꽃 따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야요. 아, 많이 힘 들었겠어요, 꽃은 이쁘지만 이쁜 꽃을 따는 일은 이쁜 일이 아니였네요.
할머니? 어머니가 아버지 꽃술을 해 줄적에 아버지가 지병이 있었어요? 아니면 몸에 좋으니까 해 드렸어요? 몸에 좋다 하니까 어머이가 그렇게 했지. 아부지는 원력도 좋고, 키 크고, 몸이 좋아요. 몸살도 뭐 앓지도 안하고 농사를 열심히 짖고 살았지요.
어려웠던 시절, 보릿고개 때 굶진 않았네요? 굶지 않았지요, 논밭을 많이 농사지어, 보리농사는 잘 안짖으니 밥은 입쌀밥을 삼시 먹었어요, 그 시절에 입쌀밥 먹었으면 잘 살았네요. 뭐, 시집와서 밥 지을 때 입쌀 쬐끔,보리쌀,좁쌀 안치고 했지요, 친정에서는 보리쌀 그거 안먹어봤어요, 안 지으니까예. 거기 논을 붙였는데 아버지가 논 여덟마지기 우리 동생이 또 다섯마지기 논 농사를 했어요.
그럼 친정 어머니가 술 담그는 술쌀은 어떤 쌀로 담갔어요? 보리쌀? 좁쌀이에요? 보리쌀, 좁쌀이 아니고, 입쌀, 입쌀로만 술을 만들었어요, 친정에서는 보리쌀은 여름에나 먹지, 요와서는 삼시를 입쌀 안치고 보리쌀 안치고 좁쌀 안치고 그래 했사요. 그러면 보리쌀은 여름에만 먹었어요? 아버지가 애들 배를 안 곯리고, 어려운 시절에 농사를 잘 지어 잘 먹였네요. 예 그래요, 할머니도 술을 담가 봤다매요? 나는 그 술, 꽃술은 안 담궜어, 그 꽃술 말고 추지[호도]술은 담갔아요. 여 와가지고, 친정에서는 추지술을 안해요,
추지[호도]술은 어떻게 담갔어요? 추지술은 추지를 까가지고 마늘을 찧듯이 찧어서 쌀밥이 잦을 때에 추지가루를 펴서 넣어요. 추지술은 술밥이 잦을 때에 추지가루를 펴서 넣으면 되네요. 그러면 그런 술을 할아버지 계실 때부터 술을 담근거에요? 우리 아바이 술을 잘 먹어요. 그러니까 시집 와가지고 술을 담궜네요? 시집와서는 우리 시아버지가 술을 안잡숩더라고, 술을 안잡수니 안담갔지요.집안에 제사나, 설 때, 추석 때, 그리고 옛날이니까 이웃에 결혼하거나 누가 상사 지내면 그럴 때에만 술을 하지요. 또 일한다 하면 하고요. 그럼 술을 담글적에 한 달에 몇 번씩 담궜겠네요? 그랬지요. 추지술 만들 때도 입쌀로 한거에요? 보리쌀 들어간거에요? 농사 짓고 할 때는 보리쌀 삶아가지고 삶은 보리쌀하고 입쌀하고 섞어서 술을 담궜아요.
어렵잖아요? 보리쌀하고 입쌀하고 썪어서 술을 담그려면은? 보리쌀을 슬슬 끓이다가 입쌀을 앉쳐서 되게하면 고두밥,밥이 되게해서, 보리쌀과 입쌀을 같이 섞어서 술을 하지요. 보리쌀을 많이 할 때도,입쌀을 적게 할 때도 있아요. 삼동에는 입쌀로만 해요. 그러면 쌀과 누룩의 비중은요? 보리쌀이던 입살이던 쌀 2되에 누룩 1되가 들어가요. 보리쌀 1되, 쌀 1되 경우 쌀이 2되 누룩은 1되 이네요. 보통 몇 일만에 술 먹을 수 있어요? 그것은 사람에 따라 일찍 술 뜨는 사람이 있고, 또 늦게 술 뜨는사람이 있는데, 보통 3일만에 먹어요.
할머니 살아 오신 귀중한 이야기는 우리 한 시대의 편린의 역사입니다.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애·잡·삿·소ㅡ
첫댓글 다른 이의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참으로 관심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테마시리즈가 될 것 같아 기쁩니다. 막걸리 애호가가 지방향토주에 대한 마땅한 책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요. 삼척 투박한 어투가 막걸리 맛을 더욱 곰삭게 합니다. 향토주는 그 고장의 애환과 역사 자락이 숨쉬고 있지요. 좋은 기획에 박수를 보냅니다.
명작 *소설 이승휴* 저자 김익하 작가님,관심 고맙습니다.촌로의 가양주를 취재하면서 그 가양주와 집안의 내력, 한시대의 역사 앞에 숙연하기도 하고,눈물을 안보이려고 딴청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두타문학 50주년 행사 첫 단추를 꿰는 자문회의 자리를 서성옥 회장이 펼첬습니다. 두타문학 50주 자료전시회 이벤트는 삼척문예회관 초대전으로,1,2,3전시관에서 2019, 6/27~7/7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