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가 처단한 일본군 대장과 동성동명으로 창씨개명 논란[편집]
만주군에 복무하였기 때문에, 창씨개명을 하였을 것은 거의 확실하나 문서 상으로 확인되는 정확한 이름이 알려진 바는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백선엽도 이를 굳이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도 창씨명은 나와있지 않지만 뒤늦게 2014년 출간된 『간도특설대』[58]를 통해 알려졌다. 만주군 옌지 헌병분단장 소네하라 미노루(曽根原実)[59]가 남긴 회고록에 백선엽의 일본식 이름이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라고 언급되어 있다고 인용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백선엽이 헌병 중위로 복무한 사실도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창씨개명을 할 때 백(白)씨 성을 가진 조선인은 주로 시라카와(白川)나 시로하라(白原)로 개명했듯이 백선엽도 일본식 성으로는 일반적인 '시라카와(白川)'를 선택했고, [60] 이름으로 '요시노리(義則)'으로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개명하였다.
논란이 되는 이유는 동성동명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1932년 4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투척한 폭탄을 맞아 중상을 입고, 후유증으로 한 달 뒤 사망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의거 당시 그는 일본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으로 일본 제국 육군 현역 대장이었으며, 관동군 사령관, 육군대신[61], 군사참의관 등을 역임한 고위 장군이었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은 당시 도시락 폭탄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에 제공한 인물은 바로 6.25전쟁 초기 백선엽의 제1사단을 포함하여 서부전선에서 후퇴하는 병력들을 수습한 시흥지구전투사령관 김홍일[62] 장군이다.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대장을 처단할 때 폭탄을 전해준 인물과 그 일본군 대장과 동성동명으로 창씨개명하고 이이제이가 모토로 독립투사를 잡는 집단인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이가 6.25 전장에서 함께 싸웠던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백선엽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한 것이 맞다면, 당시에는 우선 한국 성과 비슷한 일본 성(이 경우는 시라카와)을 따고 그 성을 가진 일본의 유명한 인물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백선엽도 단순히 이런 패턴을 답습했을 것으로 본다. 혹은 소네하라 미노루의 회고 자체가 부정확할 가능성, 즉 실제 일본식 이름은 달랐으나 소네하라 미노루가 육군 내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던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혼동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의혹은 백선엽의 정확한 일본식 이름을 교차 검증할 만주군 복무 당시의 공식 문건들이 추가로 발굴되어야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백선엽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비판하는 측에서는, 이야말로 백선엽이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흠모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백선엽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을뿐 아니라, 윤봉길 의사가 처단한 일본 육군 대장의 이름까지 따라할 정도로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는 이야기이다.
첫댓글 내가 일본에서 田中弘久(다나카 히사히로)박사로부터 입수한 내용과 일치.
거기에는 백선엽 자신의 창씨 개명이 영광스럽다고 술회하고 있다.
위 글 오자 정정
田中弘久를 田中久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