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 움부리아주라는 작은 산이 많이 있는 지방의 마을로써 스바지오산의 경사면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중세의 사람들이 나타날 것만 같은 좁은 골목, 올리브와 해바라기, 풍부한 색감의 밭, 삼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들녘의 중세 모습 그대로에 한적한 마을인 가톨릭의 성지로 유명한 아씨시가 성지로 추앙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성자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이며, 그가 신의 뜻에 따라 사랑의 삶을 구현한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씨시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씨시는 이탈리아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도시다. 그것은 바로 여기서 프란치스꼬 성인이 태어났고 또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꼬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자로 나서게 됨은 물론이고 자기 형제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생활의 가난을 구현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는 돈을 쓰레기로 간주했다. 이런 프란치스꼬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여 여러 분원을 마련했으며 여성으로서 청빈, 보속으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제2회 '글라라회'를 세웠고, 또한 세상에 살면서 그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위해 '프란치스꼬 제3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태양의 노래' '평화의 기도'로 유명한 성 프란치스꼬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지닌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발견하여 예찬한 안목도 놀랍지만, 대자연을 통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는 길을 찾아낸 것은 참으로 경탄 할 만한 발견임에 틀림없다.
※ 성프란치스코 성인(Francesco; 1181년(82년?)-1226년)
모든 신앙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년 이탈리아 아씨시의 큰 포목상을 경영하는 상인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의 말 뜻은 원래 ‘작은 프랑스인’으로 그는 젊은 날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하고 노는 일로 보내다가 기사가 될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지만 1202년에 투옥되었다.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 보이다가 중병을 앓았고, 병에서 회복한 뒤로는 딴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 곳의 십자가 상으로부터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말이 들려와 그는 그때부터 회개하기 시작 하였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성당 보수비를 마련하였다. 화가 난 그의 아버지는 소송을 하게 되어 그는 재판장 앞에 서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며 입고 있던 의복과 소지품 일체를 아버지에게 돌려준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이 후 홀로 청빈을 모토로 오로지 주님 말씀에만 관심을 쏟고 살았다.
프란치스코의 이러한 생활에 감화를 받은 제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12명이 되자 그는 교황에게 수도원 인가를 청원하여 「작은 형제회」라는 이름의 수도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그를 따르는 형제들의 수는 날로 증가하여 분원을 마련하게 되었고, 여성으로서 청빈, 보속으로 그를 따르는 여제자들을 위하여 제2회 글라라회를, 또한 세속에 그 분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위해 프란치스코 제 3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자주 고요한 곳을 찾아 기도하였고 엄격한 고행과 끊임없는 묵상을 하곤 하였다. 1224년 그가 라베르나 산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께로부터 주의 상처와 같은 오상을 받게 되어 그 후 2년간 예수님의 고통을 체험하며 죽을 무렵까지 설교를 계속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가난 속에서 주님의 뜻에 알맞은 생활을 하였다.
■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Francesco)
현재는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다운 이 성당은 스바지오산의 중턱으로 펼쳐지는 중세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 아씨시의 명물이다. 장미빛의 은은한 빛이 매우 아름다운 성프란치스코 성당은 엘리아 수사가 설계하여 건축하였는데 2층에 성당이 있는 것이 측징이고 청빈, 정결, 순명을 나타내는 지오또의 프레스코화가 아름답다. 이 프레스코화는 성인의 영성과 생애를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성당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와 유품인 떨어진 옷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본원이다.
■ 포르치운꼴라와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Santa Maria deglia Angeli Porziuncola)
현재는 최초의 공동체가 있었던 포르치운꼴라(가장 작은 곳)와 그 위에 세원진 대성당인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에는 성인께서 돌아가신 장소, 흰 비둘기, 가시없는 장미가 있는 정원 등이 위치하고 있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는 글라라 성녀가 성인에게 만들어준 신발과 수단 등이 보존되어 있다. 성인을 도와 글라라 수녀원을 이끈 글라라 성녀의 무구한 사랑 이야기가 이 수도원 전체의 분위기를 더욱 정감있게 해준다.
1569-1630년에 갈레아초 알레시의 설계로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 건축이다. 익랑과 성가대석은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1832년에 세웠으며, 정면은 1925-28년에 만들었다.
※ 성녀 글라라(Clare: 1194-1253년)
성녀 글라라는 아씨시의 공작 스띠피 집안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아씨시의 거리에서 우연히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는 감화되어 프란치스코 성인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1212년 성지주일 밤 그녀는 시종과 함께 집을 떠나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났던 안젤 성모 교회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그리스도께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프란치스코의 첫 여제자가 된 글라라는 아씨시 근교의 낡은 집에서 글라라회를 창설하여 침묵, 청빈, 단식을 통한 기도생활을 했다. 수녀원을 이끌어 가는 데는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하느님의 안배하심으로 궁핍할 때 기적도 일어났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된 후고리노가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일인데 추기경이 글라라에게 강복하기를 청하므로 겸손한 그는 곧 십자가를 그으며 식탁을 강복하자 돌연 그 위에 있는 빵마다 십자가의 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글라라는 ‘빛’이라는 뜻이다. 그의 성덕의 빛은 지금도 찬란하며 주의 길을 따라 천국으로 향하는 자들의 앞길을 비추어 준다. 글라라 성녀가 수도하고 선종하신 성 다미아노 지하 성당에는 실물 유해가 있고 그녀의 머리, 수도복, 유품 등이 전시 되어 있다.
■ 성 글라라 성당 (Basilica di S. Clare)
현재는 글라라 성당 구내에는 검정수건을 내려쓴 글라라회 수녀의 모습이 순례자를 더욱 경건하게 해 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날아다나는 새에게 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할 정도로 자연을 사랑했고, ‘형님이신 태양과 달님이신 자매'만물의 찬가'를 써서 이탈리아 문학사를 빛내기도 했다. 1228년 교황 그레고리오(Gregirius) 9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16년 가톨릭 액션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 성당에는 글라라 성녀의 유해와 다미아노 십자가의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수녀 성녀 글라라 사후 4년인 1257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그 3년 후에 글라라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프란치스꼬 성인에게 말씀하신 독특한 모습의 십자고상, 프란치스꼬와 글라라 두분 성인이 입던 옷, 그리고 글라라 성녀의 시신이라 할 것이다. 대리석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성녀 글라라의 무덤이 있는데, 창살 사이로 보이는 글라라 성녀의 얼굴은 새까맣게 화석이 되어 있다. 7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성다미아노 성당 (San Damiano)
현재는 글라라 관상 수도회가 자리하고 있으며, 회개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가서, 쓰러져가는 내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말씀하신 다미아노의 십자가가 유명하다. 십자가의 원본은 성녀 글라라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 (Santa Maria degli Angel)
1569-1630년에 갈레아초 알레시의 설계로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 건축이다. 익랑과 성가대석은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1832년에 세웠으며, 정면은 1925-28년에 만들었다.
■ 산토 다미아노 성당
프란치스코가 처음으로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곳이며 성 글라라가 숨을 거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라센인의 격퇴, 빵의 기적, 크리스마스의 환상 등 여러 기적의 무대로 아씨시에서도 귀중한 순례 성당이다. 몇 년전의 지진으로 인해 현재는 보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