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 제 3주일 강론 : 자선주일 >(12.17.일)
1. 요즘은 ‘자선냄비의 계절’입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금을 넣어보신 분들이 많을 텐데, 구세군 자선냄비의 유래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1891년 성탄이 가까워오던 미국 샌프란치스코에서 재난 당한 이재민을 돕기 위해 구세군 조세프 맥피가 자선냄비를 시작했습니다. 추운 겨울, 샌프란치스코 근교 해안에 배가 좌초되어 난민이 생겨났는데, 난민들과 도시빈민 등 1000여명을 위해 모금을 연구하다 자선냄비 운동을 고안해냈습니다.
우리나라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이 서울에서 처음 시작해, 지난 95년간 대표적 모금 및 나눔 운동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자선냄비도 있기 때문에 자선을 하더라도 잘 확인하고 해야겠습니다.
2. 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면서 자선주일입니다. 자선주일을 맞아, < 찐빵장사 부부의 눈물겹게 아름다운 이야기 >를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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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을 찌는 찜통의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뒤편으로 아이 둘이 찐빵을 쌓아놓은 진열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큰애가 누나인 듯하고, 작은 애가 남동생인 듯한데, 무슨 이유로 찐빵을 쳐다보고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 이후 그 애들이 가게 앞을 서성이다 가는 것이 자주 보였습니다.
저희 가게는 동네 어귀에서 찐빵, 어묵, 떡볶이, 만두 등을 파는 작은 분식점입니다. 남편과 같이 장사하며, 큰 욕심 내지 않고 아쉬움 없이 살아갈 정도는 되는 편입니다. 그날도 주방에서 음식재료를 다듬고 있는데, 그 남매가 찐빵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반드시 알아봐야겠다 싶어, 얼른 손을 씻고 주방을 나서니, 어느새 그 애들은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멀찌감치 떨어져 그 애들 뒤를 따라가 봤습니다. 그 애들은 산동네 골목길을 돌아, 낡은 슬레이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위에 알아보니, 부모 없이 할머니랑 살고 있는데, 애들 아빠는 작은애가 태어나자마자 사고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몇 년 전에 아주 고생하다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연을 들으니, 그 애들이 왜 우리 가게 앞을 서성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그 애들 사정을 얘기한 후, 도와줄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그 애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돕자는 것과, 그 애들이 오면 찐빵을 배불리 먹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다음날 동사무소에서 그 애들의 딱한 사정, 큰애 이름이 숙희란 것과,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그 애들 엄마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 식탁을 정리하는데, 그 애들이 찐빵을 쌓아놓은 진열장을 쳐다보고 있어서 얼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그 애들은 급히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애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예?” “너희 찐빵 사러 왔니? 왜 빵 안 사고 그냥 가니?” “아니요. 그냥 지나치는 길이었는데요.”
자존심 때문인지 돈이 없어 찐빵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너 숙희 아니니? 너희 엄마 이름이 영숙이 아니니?” “어? 아줌마가 우리 엄마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내 친구 영숙이 딸 숙희가 맞구나! 세상 정말 좁네. 숙희 너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네!” “엄마 친구라고요?” “응. 너희 엄마랑 둘도 없는 친구란다. 너 아주 꼬맹일 때 보고, 그동안 사정이 있어 연락이 안 되었는데, 오늘 이렇게 보는구나. 그래. 엄마는 어디 계시니?” “...”
큰 애는 엄마의 안부를 묻는 내 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엄마 아파서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뭐라고? 아니 어떡하다가! 이럴 게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어리둥절하며 미적거리는 애들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남편을 불렀습니다. “여보, 내 친구 영숙이 알지? 우리가 힘들 때 많은 도움을 줬던 친구! 얘들이 영숙이 애들이래.” “정말? 당신이 그렇게 찾아도 연락이 되지 않더니 어떻게 만났어. 세상 정말 좁네.” “뭐하고 있어요? 일단 찐빵 따끈하게 데워 한 접시 빨리 줘요.” “응. 알았어.”
남편이 준비해준 찐빵과 어묵, 튀김을 주며 사연을 들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정부보조금과 이웃 도움을 받으면서도 밝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한참 부모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고생하는 애들 모습에 코끝이 시려왔습니다.
“숙희야. 이제는 이 아줌마가 너희 엄마한테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이 아줌마한테 얘기해. 오늘부터 이모라 불러. 그리고 내일부터 동생이랑 매일 여기 들러서 밥 먹고 가. 너희 엄마한테 도움받은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야 나도 너희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꼭 들렀다 가야 한다. 알았지?” 그날 이후 매일 가게에 들렀다 갑니다. 밥도 먹고,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도 하고, 나를 스스럼없이 이모라 부릅니다. 예전부터 알지 못했지만 친조카 이상으로 그 애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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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애들을 도와주기 위해 연기했던 그 부부는 하느님이 보낸 수호천사였습니다. 정말로 고마운 사연이고,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불우이웃을 도와야겠습니다.
3. 1988년 미국 하버드 의대는 대가를 받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팀과, 아무 대가 없이 같은 일을 하는 팀의 연구에서, 대가 없이 이웃을 도와준 팀의 면역항체 수치가 월등히 높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선행을 직접 하거나 남들의 선행을 보기만 해도 몸의 면역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데레사 효과’라고 합니다.
우리는 갑제묘지 식사 준비와 김장을 할 때 데레사 효과를 경험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본당 행사를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 가지 사진을 수시로 찍어서 제 카카오스토리에 보관하는데, 그 이유는 고마운 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데레사 효과’를 자주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