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자” 노사가 通했다
워크아웃 2년 뼈깎는 고통분담
원탁에서 회의하며 신뢰의 소통
6분기째 영업흑자 ‘기적의 재기’《파탄 위기에 한번 내몰린 기업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불경기’라고 한다. 세계적인 초우량기업들까지 휘청거리는 심각한 상황에 한번 부실 낙인이 찍힌 기업이 재기를 기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과거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내고 소비자와 주주, 채권자들 앞에 당당히 다시 서는 기업이 적지 않다. 이들 기업이 부르고 있는 ‘부활의 노래’와 ‘희망의 노래’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일요일인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DMC 내 팬택계열 사옥 로비.
최고경영자(CEO)인 박병엽 부회장(사진)과 우연히 마주쳤다. 캐주얼한 셔츠에 스웨터, 그리고 청바지. 그는 지난 2년간 휴일마다 이런 차림으로 회사에 나왔다. 명절도 없이 1년 365일 출근한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이 많아서다. 일요일 하루를 쉬면 다음 한 주 회사 운영을 못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 한순간 방심으로 몰락, 그리고 회생
이날 출근한 팬택계열 직원 50여 명은 박 부회장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인근 중국식당에서 시킨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전날 토요일엔 본사 직원 2000여 명 가운데 1200명이 자발적으로 출근했다.
한때 벼랑 끝까지 몰렸던 회사가 세계적인 불황에도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탈바꿈한 배경에는 이처럼 “어디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있었다.
1991년 3월 창립 이후 연평균 성장률 56%…. 팬택은 2005년 SK텔레텍을 인수할 때만 해도 당장 ‘세계 톱5’ 휴대전화업체가 될 듯했다. 그러나 2006년 모토로라 ‘레이저’가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외형적 확장에만 주력한 나머지 1000억 원대의 적자를 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권의 대출금 상환 압력이 가해지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시작됐다.
2007년 4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팬택은 30% 이상 인력을 줄였고 급여도 절반 가까이 삭감했다. 박 부회장도 보유지분을 모두 내놓고 백의종군했다.
그 결과 팬택은 2007년 3분기(7∼9월) 이후 6개 분기째 영업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도 매출액 2조 원에 영업이익 1200억 원 목표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이 원동력이었을까.
○ 비결은 ‘원스톱 소통’
박 부회장의 e메일 편지함엔 매일 아침 100여 통의 메일이 쌓인다.
박 부회장은 업무상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무조건 답신을 보낸다. 대부분 ‘전체답장’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도 어떤 일에 대해 경영진이 어떻게 답변했는지 볼 수 있다. 또 대부분 회의를 속기록 형식으로 정리해 전 직원에게 공유시킨다. 이 때문에 팬택에는 “그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없다.
분기마다 열리는 사원 대상 ‘경영설명회’와 매주 월요일의 판매전략회의 및 경영점검회의, 비정기적으로 전 임직원을 50여 명씩 나눠 실시된 ‘부회장과 임직원 간담회’ 등도 모두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박 부회장이 회의를 주재할 때는 탁자 없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다.
○ “내가 갑자기 죽으면 이렇게 하라”
박 부회장은 지난해 말 자신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을 때 어떤 대응시스템을 작동시킬 것인지 보고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담당자는 몇 차례나 머뭇거렸지만 거듭된 재촉에 올해 1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70쪽이 넘는 보고서에는 비상연락망을 어떻게 가동하고, 위기대응팀은 누구로 구성하는 등의 내용이 꼼꼼히 들어있다. 심지어 ‘발인 다음 날엔 무엇을 하라’고 적혀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