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차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를 읽으며
문학 작품의 순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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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천안시에 5월이면 큰 행사가 인근 독립기념관에서 열린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K라는 브랜드에 발맞추어 'K-컬쳐 박람회'라는 행사인데, 화장품, 음식산업, 웹툰 분야를 부각시켜 알리려고 한다. 난 아내와 집 근처로 오는 행사용 셔틀버스를 타고 행사가 열리는 첫 날 독립기념관에 가서 주행사장과 주변의 각종 부가적 행사를 돌아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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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내가 오늘 내가 사는 고장의 행사에서 뭔가 먹고 살만한 일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알리려는 긍정적 의도를 보았다면,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남미 콜롬비아의 ‘메데인’이라는 곳이 마약과 폭력살인이 만연하여 죽음의 도시로 전락한 채 절망뿐임을 고발하는 부정적 외침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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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말미에 다다르고 있지만 작품 속에서는 어떤 희망조차 찾을 수가 없다. 마치 작중 화자가 자주 찾는 카톨릭 성당과 그들의 경전에 나오는 세기말적 ‘고돔과 소모라’처럼 ‘메데인’이라는 도시는 곧 재앙의 불길인 마약과 폭력에 의한 살인으로, 그리고 마약조직과 정부 간의 전쟁으로 조만간 사람이 살지 못할 폐허로 변할 것 같다.
어제까지 작중 화자인 나의 연인이었던 알렉시스가 모터 사이클을 탄 다른 청부 살인자에게 목숨을 빼앗겼는데, 오늘 내가 작품 속에서 만나는 화자는 그 사이 다른 애인을 만들게 된다(하지만 그 또한 청부 살인이 직업인 어린 소년이다).
새로운 애인 ‘윌마르’는 이전의 애인이었던 알렉시스보다 더욱 폭력적이다. 하지만 반면에 애인이 된 화자에게서 받은 많은 선물-거의 유명상표가 붙은 옷과 테니스화-로 당장 거리로 뛰쳐나가 환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고픈 앳된 사춘기 소년에 불과하다. 그 선물들은 화자가 ‘이번 삶에서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적은 그의 다분히 소년스럽고 유치한 소원이었다. 작품 속 남미의 콜롬비아는 그 당시 그렇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황폐한 나라였던 모양이다.
화자는 그 배경 속에 정부와 카톨릭이라는 종교와 사제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까지 소환하며 이렇듯 황폐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에 대해 죽음이라는 판정을 내린 채, 곧 자신 앞으로 다가올 운명으로 방황하듯 그전 애인과도 그랬고, 새 애인과도 거리와 성당을 닥치는 대로 순례하듯 방문하며 방황한다. 마지막 부분에 돌입하여 그나마 희망이라도 부여잡으려는 듯 새 애인 ‘윌마르’와 다른 도시로,도망가자고 설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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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천안시에서 열리는 K-컬처 박람회 행사는 이번 일요일까지 열린다. 넓은 독립기념관 전체 부지를 활용해 많은 방문객을 유도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
나는 내리자마자 어느 적십자사 봉사요원의 친절한 안내에 이끌려 위급환자를 살리는 ‘심폐박동’ 실습을 현장에서 받기도 했는데, 가르치는 여성 강사분의 열정에 마치 어린 학생처럼 귀를 쫑긋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오기 불과 며칠 전에 자신이 어느 자살자를 이 ‘심폐박동술’로 살렸다면서 열강을 하시니.
집으로 오려고 할 즈음에는 역시 예견한대로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천안 시장님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수행원들과 올려오는 모습을 멀리서 미소진 채 바라보기도 했다.
혼란과 절망으로 가득찬 작품 속 콜롬비아의 현재는 어떨까 싶은 호기심과 아울러 그 작품 속 ‘메데인’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방문객들이 다채로운 행사를 보기 위해 독립기념관 본관 쪽으로 올라오는 평화로운 일상을 취한 듯 바라보며 귀가를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