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의 최초창건은 남매탑 전설에 전해지는 상원조사로 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에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신라 33대 성덕왕 23)그곳에 그의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다.
제1중창
고려시대에 들어서 920년 경진 (고려태조 3)에 왕명을 받아 연기 도선국사가 중창하였다.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융창을 기원했다해서 태조의 원당이라 불리웠는데, 이 원당은 조선초에 소각 되었고, 태조 19년 병신 (936년)에 신라가 망하자 신라의 유신으로서 고려 태조 때 대승관 벼슬을 한 유차달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士)를 짓고절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지금의 동학사로 바뀌었다.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고 했으며, 고려의충신이자 동방이학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했으므로 동학사라는 설도 있다.
제2중창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394년(조선 태조 3)에 고려의 유신 길재가 동학사의승려 운선스님과 함께 단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충신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457년(세조 3)에 김시습이 조상치·이축·조려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다. 다음해 1458년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이곳을 들러 보고는 감동해서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안평대군·금성대군·김종서·황보인·정분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280여명의 이름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을 짓게 하고 동으로 만든 세조의 인신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한 다음 절의 스님과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그 뒤 1728년 무신(영조 4)에 신천영이 형화하여 절과 초혼각이 전부 불타 없어졌고, 또한 1785년(정조 9)에는 정후겸이 토지를 팔아버려 제사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제3중창
1814년 갑술(순조 14) 금봉 월인 스님이 예조에 상소하여 12차례의 소송 끝에 잃었던 토지를 되찾았으며, 옛 원당터에 실상암을 짓고 절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개칭하되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 하여「東」자를 따고 '사판국청학귀소형(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 「鶴」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다는 설이 있으며, 또한 그 밖의 전각과 혼록봉장각을 세우는 등 절을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827년 홍희익이 세조의 동인을 봉안하는 전각을 새로 지었으며, 충청좌도어사 유석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이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를 시주해 제사를 베풀었다.
제4중창
1857년(철종 8)에는 우운 아준 스님이 동학사에서 지장계를 주관하였고, 이어서 1864년 갑자(고종 원년) 봄에 금강산에 있던 만화 보선 스님이 이곳으로 와서 제자인 우운 아준·호봉스님 등과 함께 오래된 건물을 전부 헐어내고 전각 40칸과 초혼각 2칸을 새로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광무 8) 숙모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67년(고종 4)에는 포운응원(1807-1867)스님이 이곳에서 하안거 결제에 들어간 직후 입적했다. 그 뒤 만화 스님의 제자 경허성우(1849-1912)스님이 1871년(고종 8)에 이곳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제5중창
만화화상이 중흥주라면 만우상경(萬愚常經, 1855~1924년)은 한말과 일제 초의 격심한 사회혼란과 불안속에서 동학사를 잘 지켜나간 수성주라 할 수 있다. 1889년 주지직을 승계받은 만우스님은 1898년 대웅전에 탱화 4폭을 안치하여 봉안하고, 10년 뒤(1909년)에 기와중수 불사를 하였다. 근대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절의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다. 현재의 전각으로는 대웅전·삼성각을 비롯하여 조사전·육화원·강설전·화경헌 ·범종각·염화실·실상선원· 숙모전 등이 있다. 산내암자로는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석봉암·천장암·마쇄암·보현암·실상암·옥천암·극락암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관음암·길상암·문수암·미타암·귀명암·상원암 등이 있다.
겨울산에서
겨울산의 정상에서 만나는 바람과 나.
저 먼 하늘, 허공을 가르고 온 산을 흔들며 벌거벗은 나무들의 시간을 훑고 시린 모습으로 내 앞에 선 바람.
바람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듣고 또 듣는 사이 어느새 나도 또한 바람이 지나는 한 그루 겨울나무.
산 위를 오른 상념들은 한자욱 바람의 걸음되어 허공으로 나르고 나는 다시 잊었던 그 때의 나로 돌아간다.
현수스님
겨울나무
난 떨어지는 낙엽도 좋아 빈 가지에 앙상하지만 때가 되면 물이 오르고 생기가 올라 초록빛 잎이 나오고 꽃도 피겠지
저 겨울나무 가지 안에 “나”를 본다.
동섭스님
자연인
맑은 산 하늘아래 계곡물 흐름소리
물물이 깊어가네 동학사의 대 자연인
산하에 울려 퍼지는 불경소리 더 하여라
지형스님
행복한 풍경
하이-얀 겨울 옷 갈아입고 쪽빛하늘 배경으로 나의 발걸음 잠재우는 멋스런 삼불봉.
피어오르는 운무 드리우고 소담스런 눈 닮은 겨울비로 나의 시선 잡아끄는 순백의 문필봉.
큰방을 벗어나지 않고파~ 정랑 가는 길이 만리 같지만, 서릿발 같은 수행자의 향기 묻어나는 차디-찬 밤바람 쏟아질 듯 눈부신 반짝반짝 별님 만나는 보너스가 있기에 겨울 밤 공기가 춥지만은 않아요.
눈길 닿는 곳곳마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소리 없는 미소 머금은 동학의 겨울 풍경 내 안에 따스함 한~아름 안겨줍니다.
지송스님
그대가 나의
그대가 나의 하늘이 되어 주신다면 나 구름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의 바람이 되어 주신다면 나 한 마리 새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의 바다가 되어 주신다면 나 작은 배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김선효 스님
산
후두둑 밤새 내린 비
날 샐 무렵 댓돌 위에는 가지런한 흰 고무신 - 信心
고개 들어 바라본 그 곳은 운무 짙은 산 그림자 - 妄心
해가 뜨고 조금씩 드러낸 푸른 형체 산 봉우리 - 歡喜心
언제나 그곳 그 자리에...
아진스님
설래임
긴 기다림이었다.
이제 새 날을 준비하며 차갑게 언 땅위에 마지막 잎새를 내린다.
그 잎새의 온기로 언 땅을 녹이며 멀지 않은 새 날을 준비한다.
경오스님
여정(旅程)
계룡산이 내게로 왔다. 하늘이... 바람이... 그리고 동학사가...
그 속에 있는 모든 스승이 내게로 왔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서럽고... 아픔까지 절제하는...
내가 계룡산이 되어갔다. 허공을 가르듯... 물빛에 스치듯... 바람에 몰리듯... 구름을 그리는 행자로...
이제 모두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바랑 하나 걸머지고... 연기 되어... 낙엽 되어... 또 다른 여정으로 떠나야 하는 시간이니까.
현조스님
인연
저 앞산 문필봉 산새가 모두 깊이 잠들고 실상료 뒷산 우뚝 선 소나무 달빛아래 곱게 비추네
옛 인연 간곳도 없고 올 일도 없지만 다시 만날 날 기다리며 세월은 또 간다 가고 또 가면 언젠간 또 인연이 되어 만날 날이 있겠지...
혜공스님
산에서 산다
산이 나를 좋아할리 없지만 내가 좋아 산에서 산다.
그윽한 골짝 맑은 물 속에 밝은 달 맑은 바람 서로 출렁이네
혀끝에 와서 닿는 구름 안개 시원한 맛 그 맛이 좋아서 산에서 산다.
아득한 계룡산 삼불봉에 짙은 안개 서렸는데 떠나는 뒷모습이 외로운 학이랄까?
보덕스님
사랑이란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남녀 사이는 아니니까요. 기대하지 않습니다. 연인 사이는 아니니까요. 의무를 지워 구속하지 않습니다. 부부사이는 아니니까요. 책임으로 무거워하지 않습니다. 부모자식 사이는 아니니까요.
그러그러한 사랑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에겐 사려 깊은 배려만이, 양보만이, 온전한 나눔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린 도반이니까요!
사랑해도 될까요?
아영스님
마음
어릴적 새벽마다 머리맡에서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마음.
임종을 앞두시고도 열심히 수행 안한다고 나무라시던 아버지의 마음.
중노릇 잘 하라고 건강하라고 기도하시는 은사스님의 마음.
대자유인 되길, 모두를 위한 삶이되길 발원하시는 나의 선지식이신 스승님의 마음.
힘들 때 서로의 짐을 들어주는 도반의 마음.
성불하시라며 고개 숙여 인사하시는 모든 이들의 마음.
이 모든 정성들이 헛되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는 나의 마음이 모여서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함에 감사합 니다.
현진스님
새벽 달 그리고 흰눈
처마 끝에 살포시 내려 앉은
하얀 달빛
졸리운 눈 비비며
신발을 툭툭 터니
눈인가 했더니
하얀 달빛이었네
살포시 내려 앉은 하얀 눈
졸리운 눈 비비며
신발 신으니 발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
달빛인가 했더니
밤새 하얀눈 곱게 내리었네
달빛이 날 속이고
흰눈이 날 속여도
입가엔 빙그레 미소 짓는다
덕경스님
마음
형상도 없는 마음 항상 무상함이거늘 내가 나임을 알 수도 없다.
누워 혼침에 빠져있는 육신 누구인가 살을 꼬집어본들 허영심에 지쳐 있느니라
버려라 버려라 놓아버려라 두 다리 탐욕심 묶여 있는 쇠사슬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가벼이 하늘을 날을 것을.
하나 얼굴 둘이 얼굴 마주보아 분별하랴 사대육신 흙에 덮여 누가 반기리요.
윤성스님
어머니
첫 눈으로 눈덩이 만들어 던지며 마냥 즐거워하던 제게 소녀 같다고 하시던 어머니
죄송함에 발걸음이 무겁던 늦은 밤 용서의 마음 담긴 새 이불을 꿰매시며 밤늦도록 기다려 주신 어머니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단 한사람 어머니의 평소 바램대로 저는 스님이 되었습니다
두 번이나 새 삶을 주시느라 힘겨웠을 어머니의 産苦가 헛되지 않도록 올바른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원영스님
추연(秋然)
울고 싶다 어제가 환희롭도록 울어도 울어도 울어도 눈물 없이 울고 싶다
오늘을 어기지 않고 땅을 치는 낙엽소리를 가슴에 담기가 안쓰러워 진다
시리도록 푸르른 가슴 안고 홀로이면서도 혼자일 수는 없다 혼자일 수 없으면서도 홀로이다
웃고 싶다 내일이 서럽도록 웃어도 웃어도 웃어도 소리 없이 웃고 싶다
일진 스님
낙엽을 쓸다가
마음의 번뇌를 날려 버리며 길가의 낙엽도 날려 보냅니다.
어디서 왔을꼬
낙엽과 나는 침묵 속에 잠겼습니다 쓱싹거리는 빗질 소리 뿐
비를 내려놓고 가만히 서면 바람이 나를 실어 보냅니다.
어디로 갔을꼬
낙엽과 나는 찰나 간에 잠겼습니다. 덩그러니 비 한 자루 있을 뿐
이제는 낙엽도 나도 하이얀 눈꽃 속에 고요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우스님
지금 이자리에서
지금, 어느 곳으로 향해 걷고 있는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또 다시 묻고 있다. 무엇을 얻고자 하염없이... 끊임없이... 잡힐듯이... 반복되고 아는 것처럼 보여지는 세계.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 無明의 이치를 깨닫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리어 본다. 智慧의 밝음을 살며시 나의 세상으로...
보은 스님
겨울 밤
초겨울밤 서럽게 울어대는 나뭇가지에 걸린 달빛이 너무도 시려서 눈물이 납니다.
어둠이 그늘이 되는 문필봉 자락에 내려놓은 달빛이 기다리는 님의 미소같아 아릿한 그리움이 되어 다가섭니다.
모두가 잠든 밤 문풍지 우는 틈으로 살며시 보이는 달빛이 얼어붙은 내 가슴 한 자락을 놓여놓고 어루만져 줍니다.
님을 향해 날마다 날마다 그리운 맘 납의를 걸치고 밤길을 걷는 수행의 길목.
한 모서리에 내 고독의 벗이 되어주는 달빛에 취하여 이렇게 취정을 해봅니다.
해인스님
행복
少欲知足 少病少惱’ 비우고 또 비우고... 텅 비어서 가득하다. 순간 순간 나를 바라보노라면 순간의 행복이 밀려온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동원스님
길
산이 좋아 산에 오르다보니 그 곳에 한 길이 보였습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절이 있었습니다. 절이 좋아 그 산에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길에 있는 절 모퉁이에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한 발자욱씩 한 발자욱씩 부처님께 마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몇 백 생. 몇 수 억겁이 걸릴지 모르는 이 길에 부처님의 제자로 다시 새 걸음을 내딛습니다.
영원히 세세생생 함께 가겠다고 그 길에 새기고 새기고 새기고 또 새기어 봅니다.
정해스님
그대에게 가는 길
발길마다 보내오는 미소에 날 드리우고 찬 공기 속에서도 그대의 미소만큼은 훈훈합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 비가 오면 비와 함께 하고 눈이 오면 눈과 함께 합니다.
드높은 창공도 구름 낀 하늘도 그대에게 가는 길엔 모두 나의 이정표가 되어 그대의 목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도유 스님
님을 만나고자
그리운 님을 만나고자 여러 날 풀었다 쌌다 설레임으로 비행기에 올라 열 두 시간의 긴 여정 도착한 님의 나라
팔대성지 그리고 설산 그곳에는 님을 닮은 해맑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 꾸밈없는 삶의 사성계급으로 한가로움과 가난 뽀얀 먼지를 흠뻑 머금은 길거리 나뭇잎들 뒤엉켜 돌아가는 자동차, 오토릭샤, 사람을 태운 릭샤, 소, 말, 개, 양,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자연을 이루고
갠지스 강가 생과 사를 초연하게 지켜보며 성수를 만드는 힌두인들의 목욕풍경 보는 것 자체가 마음으로 느껴가는 그 곳
돌아 돌아 붓다가야의 마하보디 대탑 오체투지하며 열심히 수행정진하는 거룩한 티베트 스님들 진지한 구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무엇인가?”
다시 영축산의 뉘엿뉘엿 석양 한자락 함께 예불을 올릴 때 도반들의 간절한 한 음절 한 음절 속에서 아! 님을 보았습니다. 님을 만났습니다. 영원한 나의 그리운 님이시여!
지공스님 글
마음을 비우라 합니다
해월스님
마음을 비우라 합니다 마음이 그릇이 아닐텐데
마음을 닦으라 합니다 마음이 거울이 아닐텐데
마음을 접으라 합니다 마음이 종이는 아닐텐데
마음이 답답하다 합니다 마음에 문이 없는데
마음을 읽는다 합니다 마음이 글줄이 아님에도
마음을 갈아서 부처되라 합니다 마음이 숫돌이 아닌데
마음이 아프다 합니다 마음에 상처가 없는데
마음을 밝히라 합니다 마음이 어둔것도 아닌데
마음에 담아 두라 합니다 마음이 항아리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다 보니 마음이란 것은 바로 마음 아닌 것들로 위장된 거짓 마음인 것이 드러납니다.
마음 아닌 것들이 모여서 마음이라고 여기고 있을 뿐 마음은 그 무엇도 아니며 마음은 마음조차도 아닙니다.
기다림은
은은한 茶香속에 幸福 머금은 날 창문 밖 까치가 道伴이 온다는 소식을 전한다.
행여 올까봐 찻물 끓이며 설렘이 부산한데 기다리는 道伴은 오지 않고 찻잔엔 이슬만 피어오르네.
동학사의 최초창건은 남매탑 전설에 전해지는 상원조사로 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에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신라 33대 성덕왕 23)그곳에 그의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다.
제1중창
고려시대에 들어서 920년 경진 (고려태조 3)에 왕명을 받아 연기 도선국사가 중창하였다.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융창을 기원했다해서 태조의 원당이라 불리웠는데, 이 원당은 조선초에 소각 되었고, 태조 19년 병신 (936년)에 신라가 망하자 신라의 유신으로서 고려 태조 때 대승관 벼슬을 한 유차달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士)를 짓고절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지금의 동학사로 바뀌었다.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고 했으며, 고려의충신이자 동방이학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했으므로 동학사라는 설도 있다.
제2중창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394년(조선 태조 3)에 고려의 유신 길재가 동학사의승려 운선스님과 함께 단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충신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457년(세조 3)에 김시습이 조상치·이축·조려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다. 다음해 1458년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이곳을 들러 보고는 감동해서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안평대군·금성대군·김종서·황보인·정분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280여명의 이름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을 짓게 하고 동으로 만든 세조의 인신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한 다음 절의 스님과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그 뒤 1728년 무신(영조 4)에 신천영이 형화하여 절과 초혼각이 전부 불타 없어졌고, 또한 1785년(정조 9)에는 정후겸이 토지를 팔아버려 제사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제3중창
1814년 갑술(순조 14) 금봉 월인 스님이 예조에 상소하여 12차례의 소송 끝에 잃었던 토지를 되찾았으며, 옛 원당터에 실상암을 짓고 절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개칭하되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 하여「東」자를 따고 '사판국청학귀소형(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 「鶴」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다는 설이 있으며, 또한 그 밖의 전각과 혼록봉장각을 세우는 등 절을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827년 홍희익이 세조의 동인을 봉안하는 전각을 새로 지었으며, 충청좌도어사 유석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이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를 시주해 제사를 베풀었다.
제4중창
1857년(철종 8)에는 우운 아준 스님이 동학사에서 지장계를 주관하였고, 이어서 1864년 갑자(고종 원년) 봄에 금강산에 있던 만화 보선 스님이 이곳으로 와서 제자인 우운 아준·호봉스님 등과 함께 오래된 건물을 전부 헐어내고 전각 40칸과 초혼각 2칸을 새로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광무 8) 숙모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67년(고종 4)에는 포운응원(1807-1867)스님이 이곳에서 하안거 결제에 들어간 직후 입적했다. 그 뒤 만화 스님의 제자 경허성우(1849-1912)스님이 1871년(고종 8)에 이곳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제5중창
만화화상이 중흥주라면 만우상경(萬愚常經, 1855~1924년)은 한말과 일제 초의 격심한 사회혼란과 불안속에서 동학사를 잘 지켜나간 수성주라 할 수 있다. 1889년 주지직을 승계받은 만우스님은 1898년 대웅전에 탱화 4폭을 안치하여 봉안하고, 10년 뒤(1909년)에 기와중수 불사를 하였다. 근대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절의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다. 현재의 전각으로는 대웅전·삼성각을 비롯하여 조사전·육화원·강설전·화경헌 ·범종각·염화실·실상선원· 숙모전 등이 있다. 산내암자로는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석봉암·천장암·마쇄암·보현암·실상암·옥천암·극락암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관음암·길상암·문수암·미타암·귀명암·상원암 등이 있다.
겨울산에서
겨울산의 정상에서 만나는 바람과 나.
저 먼 하늘, 허공을 가르고 온 산을 흔들며 벌거벗은 나무들의 시간을 훑고 시린 모습으로 내 앞에 선 바람.
바람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듣고 또 듣는 사이 어느새 나도 또한 바람이 지나는 한 그루 겨울나무.
산 위를 오른 상념들은 한자욱 바람의 걸음되어 허공으로 나르고 나는 다시 잊었던 그 때의 나로 돌아간다.
현수스님
겨울나무
난 떨어지는 낙엽도 좋아 빈 가지에 앙상하지만 때가 되면 물이 오르고 생기가 올라 초록빛 잎이 나오고 꽃도 피겠지
저 겨울나무 가지 안에 “나”를 본다.
동섭스님
자연인
맑은 산 하늘아래 계곡물 흐름소리
물물이 깊어가네 동학사의 대 자연인
산하에 울려 퍼지는 불경소리 더 하여라
지형스님
행복한 풍경
하이-얀 겨울 옷 갈아입고 쪽빛하늘 배경으로 나의 발걸음 잠재우는 멋스런 삼불봉.
피어오르는 운무 드리우고 소담스런 눈 닮은 겨울비로 나의 시선 잡아끄는 순백의 문필봉.
큰방을 벗어나지 않고파~ 정랑 가는 길이 만리 같지만, 서릿발 같은 수행자의 향기 묻어나는 차디-찬 밤바람 쏟아질 듯 눈부신 반짝반짝 별님 만나는 보너스가 있기에 겨울 밤 공기가 춥지만은 않아요.
눈길 닿는 곳곳마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소리 없는 미소 머금은 동학의 겨울 풍경 내 안에 따스함 한~아름 안겨줍니다.
지송스님
그대가 나의
그대가 나의 하늘이 되어 주신다면 나 구름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의 바람이 되어 주신다면 나 한 마리 새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의 바다가 되어 주신다면 나 작은 배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김선효 스님
산
후두둑 밤새 내린 비
날 샐 무렵 댓돌 위에는 가지런한 흰 고무신 - 信心
고개 들어 바라본 그 곳은 운무 짙은 산 그림자 - 妄心
해가 뜨고 조금씩 드러낸 푸른 형체 산 봉우리 - 歡喜心
언제나 그곳 그 자리에...
아진스님
설래임
긴 기다림이었다.
이제 새 날을 준비하며 차갑게 언 땅위에 마지막 잎새를 내린다.
그 잎새의 온기로 언 땅을 녹이며 멀지 않은 새 날을 준비한다.
경오스님
여정(旅程)
계룡산이 내게로 왔다. 하늘이... 바람이... 그리고 동학사가...
그 속에 있는 모든 스승이 내게로 왔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서럽고... 아픔까지 절제하는...
내가 계룡산이 되어갔다. 허공을 가르듯... 물빛에 스치듯... 바람에 몰리듯... 구름을 그리는 행자로...
이제 모두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바랑 하나 걸머지고... 연기 되어... 낙엽 되어... 또 다른 여정으로 떠나야 하는 시간이니까.
현조스님
인연
저 앞산 문필봉 산새가 모두 깊이 잠들고 실상료 뒷산 우뚝 선 소나무 달빛아래 곱게 비추네
옛 인연 간곳도 없고 올 일도 없지만 다시 만날 날 기다리며 세월은 또 간다 가고 또 가면 언젠간 또 인연이 되어 만날 날이 있겠지...
혜공스님
산에서 산다
산이 나를 좋아할리 없지만 내가 좋아 산에서 산다.
그윽한 골짝 맑은 물 속에 밝은 달 맑은 바람 서로 출렁이네
혀끝에 와서 닿는 구름 안개 시원한 맛 그 맛이 좋아서 산에서 산다.
아득한 계룡산 삼불봉에 짙은 안개 서렸는데 떠나는 뒷모습이 외로운 학이랄까?
보덕스님
사랑이란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남녀 사이는 아니니까요. 기대하지 않습니다. 연인 사이는 아니니까요. 의무를 지워 구속하지 않습니다. 부부사이는 아니니까요. 책임으로 무거워하지 않습니다. 부모자식 사이는 아니니까요.
그러그러한 사랑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에겐 사려 깊은 배려만이, 양보만이, 온전한 나눔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린 도반이니까요!
사랑해도 될까요?
아영스님
마음
어릴적 새벽마다 머리맡에서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마음.
임종을 앞두시고도 열심히 수행 안한다고 나무라시던 아버지의 마음.
중노릇 잘 하라고 건강하라고 기도하시는 은사스님의 마음.
대자유인 되길, 모두를 위한 삶이되길 발원하시는 나의 선지식이신 스승님의 마음.
힘들 때 서로의 짐을 들어주는 도반의 마음.
성불하시라며 고개 숙여 인사하시는 모든 이들의 마음.
이 모든 정성들이 헛되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는 나의 마음이 모여서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함에 감사합 니다.
현진스님
새벽 달 그리고 흰눈
처마 끝에 살포시 내려 앉은
하얀 달빛
졸리운 눈 비비며
신발을 툭툭 터니
눈인가 했더니
하얀 달빛이었네
살포시 내려 앉은 하얀 눈
졸리운 눈 비비며
신발 신으니 발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
달빛인가 했더니
밤새 하얀눈 곱게 내리었네
달빛이 날 속이고
흰눈이 날 속여도
입가엔 빙그레 미소 짓는다
덕경스님
마음
형상도 없는 마음 항상 무상함이거늘 내가 나임을 알 수도 없다.
누워 혼침에 빠져있는 육신 누구인가 살을 꼬집어본들 허영심에 지쳐 있느니라
버려라 버려라 놓아버려라 두 다리 탐욕심 묶여 있는 쇠사슬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가벼이 하늘을 날을 것을.
하나 얼굴 둘이 얼굴 마주보아 분별하랴 사대육신 흙에 덮여 누가 반기리요.
윤성스님
어머니
첫 눈으로 눈덩이 만들어 던지며 마냥 즐거워하던 제게 소녀 같다고 하시던 어머니
죄송함에 발걸음이 무겁던 늦은 밤 용서의 마음 담긴 새 이불을 꿰매시며 밤늦도록 기다려 주신 어머니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단 한사람 어머니의 평소 바램대로 저는 스님이 되었습니다
두 번이나 새 삶을 주시느라 힘겨웠을 어머니의 産苦가 헛되지 않도록 올바른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원영스님
추연(秋然)
울고 싶다 어제가 환희롭도록 울어도 울어도 울어도 눈물 없이 울고 싶다
오늘을 어기지 않고 땅을 치는 낙엽소리를 가슴에 담기가 안쓰러워 진다
시리도록 푸르른 가슴 안고 홀로이면서도 혼자일 수는 없다 혼자일 수 없으면서도 홀로이다
웃고 싶다 내일이 서럽도록 웃어도 웃어도 웃어도 소리 없이 웃고 싶다
일진 스님
낙엽을 쓸다가
마음의 번뇌를 날려 버리며 길가의 낙엽도 날려 보냅니다.
어디서 왔을꼬
낙엽과 나는 침묵 속에 잠겼습니다 쓱싹거리는 빗질 소리 뿐
비를 내려놓고 가만히 서면 바람이 나를 실어 보냅니다.
어디로 갔을꼬
낙엽과 나는 찰나 간에 잠겼습니다. 덩그러니 비 한 자루 있을 뿐
이제는 낙엽도 나도 하이얀 눈꽃 속에 고요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우스님
지금 이자리에서
지금, 어느 곳으로 향해 걷고 있는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또 다시 묻고 있다. 무엇을 얻고자 하염없이... 끊임없이... 잡힐듯이... 반복되고 아는 것처럼 보여지는 세계.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 無明의 이치를 깨닫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리어 본다. 智慧의 밝음을 살며시 나의 세상으로...
보은 스님
겨울 밤
초겨울밤 서럽게 울어대는 나뭇가지에 걸린 달빛이 너무도 시려서 눈물이 납니다.
어둠이 그늘이 되는 문필봉 자락에 내려놓은 달빛이 기다리는 님의 미소같아 아릿한 그리움이 되어 다가섭니다.
모두가 잠든 밤 문풍지 우는 틈으로 살며시 보이는 달빛이 얼어붙은 내 가슴 한 자락을 놓여놓고 어루만져 줍니다.
님을 향해 날마다 날마다 그리운 맘 납의를 걸치고 밤길을 걷는 수행의 길목.
한 모서리에 내 고독의 벗이 되어주는 달빛에 취하여 이렇게 취정을 해봅니다.
해인스님
행복
少欲知足 少病少惱’ 비우고 또 비우고... 텅 비어서 가득하다. 순간 순간 나를 바라보노라면 순간의 행복이 밀려온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동원스님
길
산이 좋아 산에 오르다보니 그 곳에 한 길이 보였습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절이 있었습니다. 절이 좋아 그 산에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길에 있는 절 모퉁이에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한 발자욱씩 한 발자욱씩 부처님께 마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몇 백 생. 몇 수 억겁이 걸릴지 모르는 이 길에 부처님의 제자로 다시 새 걸음을 내딛습니다.
영원히 세세생생 함께 가겠다고 그 길에 새기고 새기고 새기고 또 새기어 봅니다.
정해스님
그대에게 가는 길
발길마다 보내오는 미소에 날 드리우고 찬 공기 속에서도 그대의 미소만큼은 훈훈합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 비가 오면 비와 함께 하고 눈이 오면 눈과 함께 합니다.
드높은 창공도 구름 낀 하늘도 그대에게 가는 길엔 모두 나의 이정표가 되어 그대의 목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도유 스님
님을 만나고자
그리운 님을 만나고자 여러 날 풀었다 쌌다 설레임으로 비행기에 올라 열 두 시간의 긴 여정 도착한 님의 나라
팔대성지 그리고 설산 그곳에는 님을 닮은 해맑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 꾸밈없는 삶의 사성계급으로 한가로움과 가난 뽀얀 먼지를 흠뻑 머금은 길거리 나뭇잎들 뒤엉켜 돌아가는 자동차, 오토릭샤, 사람을 태운 릭샤, 소, 말, 개, 양,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자연을 이루고
갠지스 강가 생과 사를 초연하게 지켜보며 성수를 만드는 힌두인들의 목욕풍경 보는 것 자체가 마음으로 느껴가는 그 곳
돌아 돌아 붓다가야의 마하보디 대탑 오체투지하며 열심히 수행정진하는 거룩한 티베트 스님들 진지한 구도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무엇인가?”
다시 영축산의 뉘엿뉘엿 석양 한자락 함께 예불을 올릴 때 도반들의 간절한 한 음절 한 음절 속에서 아! 님을 보았습니다. 님을 만났습니다. 영원한 나의 그리운 님이시여!
지공스님 글
마음을 비우라 합니다
해월스님
마음을 비우라 합니다 마음이 그릇이 아닐텐데
마음을 닦으라 합니다 마음이 거울이 아닐텐데
마음을 접으라 합니다 마음이 종이는 아닐텐데
마음이 답답하다 합니다 마음에 문이 없는데
마음을 읽는다 합니다 마음이 글줄이 아님에도
마음을 갈아서 부처되라 합니다 마음이 숫돌이 아닌데
마음이 아프다 합니다 마음에 상처가 없는데
마음을 밝히라 합니다 마음이 어둔것도 아닌데
마음에 담아 두라 합니다 마음이 항아리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다 보니 마음이란 것은 바로 마음 아닌 것들로 위장된 거짓 마음인 것이 드러납니다.
마음 아닌 것들이 모여서 마음이라고 여기고 있을 뿐 마음은 그 무엇도 아니며 마음은 마음조차도 아닙니다.
기다림은
은은한 茶香속에 幸福 머금은 날 창문 밖 까치가 道伴이 온다는 소식을 전한다.
행여 올까봐 찻물 끓이며 설렘이 부산한데 기다리는 道伴은 오지 않고 찻잔엔 이슬만 피어오르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