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황녀, 그 비참한 삶을 엿보다
왜 ‘덕혜공주’ 가
아니고 ‘덕혜옹주’일까?
왕후로부터 태어난 아들은 대군, 딸은 공주라
칭하고
후궁(첩)으로부터 태어난 아들은 군, 딸은
옹주라고 부른다는 사실......
덕혜옹주는 고종과 후궁 양 귀인에게서 태어난
딸이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대프리카
대구의
폭염!
영화관엔 피서 겸 영화감상을 위해서
시끌벅적......
영화 ‘덕혜옹주(감도 허진호)’는 구한말
조선
고종의 딸인 비운의 황녀에 대한 삶을 그렸다.
덕혜옹주(손예진)와
어릴 적 친구 김장한(박해일)을 주인공으로 해
덕혜옹주의
시종 복순(라미란). 영친왕(박수영), 김장한의 후배 복동(정상훈),
일본인
앞잡이 한택수(윤제문) 등이 조연으로 가세해 이야기가 전개 된다.
고종(1852~1919)은 환갑 때 얻은 ‘덕혜옹주(德惠翁主)’를
금과옥조로
생각하며 매일 함께 지낸다.
하지만
고종이 독살되면서 그의 비운의 역사가 시작된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그가 만 13살의 나이에
영친왕이
있던 일본으로 끌려갔고,
오빠
순조와 어머니 귀인 양씨의 죽음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매일같이
고국을 그리워하지만 일본의 강압으로
조선으로
들어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어린
시절 친구인 장한이 나타나고
영친왕과
부인
이방자 여사의 상하이
망명을 계획하는데 덕혜옹주도 합세를 한다.
망명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덕혜옹주는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해 딸을 뒀는데도
실의에
빠지면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
특히
영친왕의 아들 이우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이곳에서 생을 마감 한다.
허진호 감독의 개봉 영화인
'덕혜옹주'는
허호진
감독의 '봄날은 간다' 영화로 알려지게 되었고
'덕혜옹주'
는 영화보다 소설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마지막
황녀의 이야기로 실화를 다룬 영화.
덕혜옹주는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나서 고종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덕혜옹주가
태어났을때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로 일본의 감시 속에서
주권
회복을 할 수 없던 상황이였다고.....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야 입적이 가능했기에 호적에 오르는거 까지도 어려워
고종은
총독을 초청해서 딸이라고
밝히며 황적에 입적이 되었다고 한다.
덕혜옹주가 여덟살이 되었을 때에 고종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그때
소문은 일본에 의해 독살이 당했다고 하는데
덕혜옹주가
일본학교를 강제로 가게되면서
'내목숨을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온병을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물을 자기가 챙겨 마셨다고 한다.
또한
일본유학을 가고 나서 어머미랑 오빠가 죽게 되고
덕혜옹주는
어머니의 장례를 가고 싶었지만
황녀보다
생모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참석할수도
없게 되고 덕혜옹주는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20살때 일본 대마도 백작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훤칠한키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일본인 백작이었단다
결혼
1년 후에는 딸 정혜를 나아서 행복하게 사는줄 알았지만
정신병으로
인해 병원으로 가게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을 당하고
딸마져
유서를 남기고 산에서 실종되었다고 한다.
광복이 되었을때도 덕혜옹주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가
1962년
입국장이 열리면서 간신히 입국할수 있게 되었고
긴
투병을 하면서 딸의 이름이나 아리랑을 부르다가 결국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덕혜옹주는
낙선제에서 지냈을 때에 전남편인 소 타케유키가 찾아왔는데
소
타케유키도 대마도주 백작 가문의 양자로 입양되어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었고
덕혜옹주가
정신병으로 앓고 있을 때에 옆에서
간호도 해줬다고 한다.
영화 '덕혜옹주'의 장면들
제작진이
섭외한 이 저택은 1920년대 일본식 서양 건축물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2층으로
이뤄진 건물에 미술팀의 노력으로 각종 소품들을 더해
덕혜옹주(손예진)가
가진 감정을 로케이션에 충분히 적셔낼 수 있었다.
영친왕의
저택을 비롯해 타케유키의 집도 일본에서 섭외해
제작진이
영화속 배경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덕혜옹주(손예진)와
김장한(박해일)은 추격을 피해 숲 속에 마련된 비밀 거처로 몸을 숨긴다.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는 몽환적인 느낌의 숲이 안정감보단 오히려 긴장감을 더했다.
이
곳은 전남 신안에 위치한 증도 해송 숲으로 실제로도 바다와 이어져 있는 숲이다.
관람 전 영화 ‘덕혜옹주’가 애국심을 강조할것이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관람 후
애국심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미움이 더 싹텄다는 사실이다.
타이틀롤
손예진을 비롯해 박해일· 윤제문· 라미란 등이 펼쳐 내는 명품 연기는
영화를 더욱 빛냈으며 특히 이번 영화로 노역 분장에 도전한 손예진은
인생
연기를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치하의 이야기,
언제나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나라 잃은 분노와 슬픔이 몸 속 여기저기를 마구 찔러댄다.
「덕혜옹주」 조선의 마지막 황녀,
그녀의 비참한 삶이 주권을 빼앗긴 자들의 삶을 대변해 주는것 같았다.
후반부에
구부정한 자세, 촛점 잃은 시선으로 공항 게이트를 나오는장면은
손예진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과거 흑백사진 그대로 '덕혜옹주' 관련 사진들이 이어진다.
특성상
픽션이 많이 가미된 영화가 실제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몇 번의 눈시울을 적신
영화관람......
지난 달 대마도 여행에서 보았던 이즈하라 가네이시성(金石城) 뜨락에는
대마도
번주의 아들 다케유키와 덕혜옹주 두 사람의 결혼을 기념하는
‘이왕가종가백작어결혼봉축개념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가
세워져 있었다.
대한제국
시절,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는 정략결혼을 통해 대마도로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다케유키로부터 정신병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당한다.
외동딸을
잃는 아픔 끝에 덕혜옹주는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고
1989년
창경궁 낙선재에서 외로이 세상을 떠난다.
첫댓글 늘푸른 솔(汗松)님 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의 마지막 삶을 영화한 '덕혜옹주'를 잘 보고갑니다.
한송님! 잘 읽어봤어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 '옹주' 뜻은 [왕 아버지] + [후궁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엄마가 왕비면 공주가 되고, 후궁이면 옹주가 되는 뜻으로 오늘 영화를 보았습니다. 잔인한 일본놈들! 그보다 더 나쁜 친일파 조선인 말로 표현 못할 정도의 분노와 옹주의 가여움을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답니다. 그냥 영화가 아닌 역사자체를 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고 대마도에 크나큰 비석조차 보기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 안 가보고 싶은 곳이 대마도를 다녀온 후 생각이었어요. 내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이렇게 크기에 일본놈들의 잔인함을 만천하에 이 영화로 알리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