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가루가 눈 속에 들어가 영채는 수건으로 눈을 씻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눈 윗시울에 붙어 있는 듯하더니, 몇 번이고 비비는 동안에는 도리어 그 자취를 알 수 없고 다만 따끔거리는 아픔만 남았다.
“에구, 아파.”
영채는 낮은 소리로 혼잣말을 하였다.
수건 끝을 접어 다시 눈을 비벼 보았으나, 도무지 씻겨 나오는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눈물만 자꾸 흘러내려 수건을 적실 뿐이었다.
영채는 마침내 손을 멈추었다.
차창에 손을 대고 그 위에 이마를 얹고 엎드렸다.
그러자 그동안 어딘가 깊이 잠겨 있던 슬픔이, 마치 부서진 둑을 넘어 나오듯 한꺼번에 밀려왔다.
영채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참았으나, 눈물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슬펐다.
가슴속이 텅 빈 듯하면서도 무엇인가 가득 차 올라 견딜 수 없었다.
지금껏 꿈속을 헤매던 듯하던 정신이 문득 또렷하여졌다.
지나온 모든 일이 한 가지도 빠짐없이 떠오르되, 하나같이 슬픔을 띠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던가.
무엇을 하러 지금껏 살아왔던가.
이 생각이 스스로에게 물어지자, 영채의 가슴은 더욱 저려왔다.
오늘 저녁이면 나는 죽는다.
대동강 물에 몸을 던지면, 이 모든 생각도 이 눈물도 다 사라질 것이다.
지금 눈에 들어간 이 석탄 가루도,
이 따끔거림도,
이 살아 있는 몸도.
이제 몇 시간 아니하여서,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 생각이 바늘 끝과 같이 온몸을 찔렀다.
영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였다.
차창 밖으로는 산과 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마을, 사람들, 들판의 빛 --- 모두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 생각이 들자, 눈물은 더욱 심하게 쏟아졌다.
영채는 눈에 무엇이 들어간 것도 잊어버리고, 다만 슬퍼서 울었다.
누가 와서 말을 걸어 주기를,
누가 이 마음을 붙들어 주기를,
잠깐이나마 바랐던 듯도 하였다.
그러나 곧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누가 있단 말인가.
나를 불러 줄 사람도, 붙잡아 줄 사람도,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다.
영채는 더욱 깊이 몸을 숙였다.
기차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소리는 마치,
영채를 어디엔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실어 가는 것처럼 들렸다.
ㆍㆍㆍ
강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동강 물가에 떠올랐다는 시체를 보기 위함이었다.
형식도 그 속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아니, 무슨 일이 났는지 확인하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젊은 여인이라 하오.”
누군가 옆에서 낮게 말하였다.
형식은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다.
이 세상에 젊은 여인이 죽는 일이야 드물지 아니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길을 조금씩 비켰다.
물가에 가까이 갈수록, 형식의 발걸음은 알 수 없이 더디어졌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슴 속이 공연히 답답하였다.
이윽고, 물가에 이르렀다.
강가에 눕혀 놓은 시체 위에는 젖은 천이 덮여 있었다.
물에 불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형식은 잠시 서 있었다.
가까이 가지 아니하고, 한 발짝 떨어진 채로 그 자리를 지켰다.
“얼굴을 좀 보시오.”
누군가 천을 들추었다.
그 순간,
형식의 눈이 그 얼굴 위에 머물렀다.
…영채였다.
형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사실을 이해하려 애쓸 뿐이었다.
저것이 영채라면,
영채는 죽은 것이고,
영채가 죽었다면—
그 다음 생각은 이어지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멀어졌다.
물소리도 들리지 아니하였다.
형식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나는 저 사람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저 사람은 나를 버리고 죽었는가.
이것이 나의 탓이 아니라 하면,
세상에 탓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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