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오늘 갈 곳은 역시 메콩강변의 작은 마을인 치앙칸이다. 그러나 치앙칸은 유명한 여행자 마을, 주중에는 조용하다가 주말에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오늘은 1월 2일 화요일, 태국 달력을 보면 오늘까지 신년 연휴다. 그렇다면 오늘까지는 관광객이 많더라도 밤부터는 한산해지지 않을까? 숙소는 워낙 많다고 하니 예약 없이 가보기로 했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쿨한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오후1시반에 치앙칸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 (그 차는 어제 우리가 타고 왔으니 당연히 아는 얘기고) 어제 농카이에서 본 시간표에는 아침 7시 반에 농카이를 출발해서 쌍콤을 거쳐 치앙칸으로 가는 버스가 있던데 그러면 10시쯤이면 여길 지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애매한 대답을 한다.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의치 않고 짐을 챙겨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 기다리는데, 10시가 넘어 11시가 되어가는 데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아침 버스는 시간표에만 있고 실제로는 없는 걸까? 분명 매일 운행이라 써 있었는데, 허어 참. 혹시 버스가 이미 지나간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 노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봤지만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버스가 온다면서 기다리라고 할 뿐 지나갔다는 말은 없다. 마침 여대생으로 보이는 태국 젊은이가 나타나서 우리 옆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길래 좀 늦더라도 버스가 오기는 올 모양이구나 조금 안심을 했지만 12시가 넘어가고 1시가 넘어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태평하게 버스를 기다리던 여학생은 우리에게 왓파딱쓰아를 가봤냐고 묻는다.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오전에 거기나 갔다올 걸 그랬다. 결국 2시가 다 되어서야 버스가 왔다. 어제의 그 버스다. 첫차가 오늘만 쉰 건지 혹은 빨리 달려서 미리 지나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중국의 만만디보다 더 태평한 것 같다. 태연히 정류장 벤치에서 3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는 여대생이라니, 참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시골 할머니가 그랬다면 모를까.
버스 안에는 이미 자리가 다 찼다. 옆지기는 겨우 좁은 자리 하나 얻어서 앉았지만 내 자리는 운전석 옆 엔진 덮개. 좌석에 앉은 사람들고 전혀 편하지 않겠지만 엔진 덮개에 걸친 엉덩이에 전해지는 진동이 장난이 아니다. 멈춰서 공회전을 할 때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세로 덜덜거린다.
차비를 50밧만 받길래 치앙칸까지 꽤 멀텐데 50밧밖에 안 받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시간을 달달거린 끝에 빡촘 터미널에 도착하니 다 내리란다. 우린 치앙칸까지 간다구요. 그러나 차장은 옆에 대기중인 썽태우(태국에서 본 가장 큰 썯태우다. 짜익띠요를 올라갈 때 탓던 트럭 정도 되려나?)로 옮겨 타라고 손짓한다.
썽태우를 타고 달린 시간이 무려 2시간인데 그것도 빡촘과 치앙칸을 잇는 강변 도로가 아니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리다가 뒤늦게 서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러이에서 치앙칸으로 가는 도로와 만나는 3거리에서 승객들을 내려 놓는다. 이 3거리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농카이에서 본 버스 노선표에는 분명 치앙칸을 들러서 가는 것으로 되어 있길래 새로 생긴(?) 강변 도로를 따라 치앙칸을 먼저 가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결국 옛날 코스대로 가는 거였다. 농카이에서는 농카이-쌍콤-빡촘-치앙칸-러이로 가는 버스 노선이 있는 것처럼 표를 팔더니, 실제로 507번 버스는 농카이 빡촘 구간만 운행할 뿐이고 빡촘에서는 버스도 아닌 썽태우로 갈아타고 러이까지 가는 시스템이다. 더구나 치앙칸을 가려면 이 3거리에서 다른 썽태우로 갈아타야 한다. 교통 인프라가 안 좋은 건 그렇다고 쳐도, 정보는 제대로 제공해야 되는 거 아니야? (큰 썽태우는 차비가 50밧)
(매일 3차례 운행한다고 적어 놓고서, 아침 버스는 왜 안 온 거야?)
(노선도 사기, 버스 그림도 사기?)
하여튼 하루종일 걸려서 6시 20분 경에는 치앙칸에 도착했다. (지금 상태라면 농카이에서 치앙칸으로 직접 가려면 차라리 우돈타니를 경유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버스 터미널이 시내에서 멀어 뚝뚝을 타야 한다고 들었는데 썽태우는 버스터미널에 서지 않고 치앙칸 시내 가까운 곳까지 간다. 20밧. 씩씩하게 배낭을 메고 강변의 씨치앙칸 거리까지 걸어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연휴가 끝나서 웬만큼 돌아갔을 줄 알았던 관광객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우와, 큰일이다. 숙소부터 찾아보는데 작은 숙소들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방이 없다고 헝땜(만실) 팻말을 걸어 놓았다. 연휴 마지막 날이니 웬만큼 빠져나갔겠거니 했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어쩌다 빈방이 있다는 숙소가 있어서 들어가 보니 간신히 합격을 줄 만한 방인데 무려 1500밧을 달란다. 다른 동네 같으면 500밧도 안되는 방이라 생각하며 돌아나오는데 주인 아줌마가 생글거리며 비싸요? 하고 묻는다. 네, 비싸요.안 비싸요, 어제는 그 방을 2500밧 받았는 걸요. 웃어가면서 아주 대놓고 바가지를 씌우는구려.
씨치앙칸 거리를 거의 다 내려와서 결국 1500밧짜리 방을 구했는데 같은 1500밧이지만 무료 조식도 제공하는 제법 커다란 호텔이다. 쳥소에도 1000밧은 받을 듯, 이름은 웡싸이씨리 씨치앙칸 호텔.
유명 관광지라는데 접근하기도 힘들고, 고생 끝에 겨우 왔더니 방 구하기도 힘들고, 치앙칸의 첫인상은 이렇게 이지러졌다. 목조 건물들로 이루어진 옛 마을과 메콩강이 최대의 자산인 모양인데 메콩강이라면 우리는 벌써 콩찌암부터 쌈판복 묵다한 탓파놈 나콘파놈 븡깐 농카이 쌍콤을 거치며 질릴 만큼 보지 않았나? 내일 아침에 푸턱 일출이나 구경해야지. 호텔에 물어보니 썽태우를 타고 왕복하는 비용이 인당 150밧이라고 하며. 돈도 안 받고 예약을 해 주었다.
1월 3일
븡깐의 푸턱과 이름이 같은 이 야트막한 산에서 보는 일출은 꽤 유명하다고 한다. 연휴 끝난 오늘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걸보면 새해 맞이 연휴였던 어제와 그저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을까?
비록 태양이 정면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낯선 곳 어둑어둑한 산 위에서 외국 사람들과 함께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내려다 보는?) 운해가 아름답다고들 하더니 소박하나마 운해도 볼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아고다를 검색하다 보니 어제 지나가며 보았던 숙소가 700밧이라는데 호평 일색이다. 새 건물에 괜찮아 보이던데? 걸어가도 2-3분이면 될 거리인데 뭐가 급해서 예약을 눌러버린 것일까? 싸고 좋은 방을 구했다면서 짐을 꾸려서 찾아 가보니, 아뿔싸! 어제 보았던 그 집이 아니라 길 건너 집이네? 목조 건물인데 1층엔 공예품 판매점 겸 까페고 2층에 방이 5개쯤 있다. (후기에 따르면 재활용품 따위로 만든 예쁜 공예품들이 집안 곳곳에 있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올라가보니 역시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작은방인데 결정적으로 방안에 화장실이 없다. 이럴수가? 예약을 안 했으면 당연히 돌아 내려갔겠지만 돈을 냈으니 어쩔 수 없이 짐을 풀었는데 다행히 공용 화장실은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투숙객들도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라서 큰 불편은 없었다. 매남미캉.
(조각 작품인 줄 알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조각 작품이 움직였다! 이 동네에서 유행하는)
(오늘도 씨치앙칸 거리는 북적거리는데)
(2층 발코니에서 책을 읽는 여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