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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떻게 만들까?
이야기는 존재하는 대상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수필은 나와 관계있는 모든 대상을 글로 표현함으로 수필은 곧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는 것일까? 이야기 만들기는 구성(플롯)을 잘 해야 한다. 구성을 하는 것은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골격을 짜는 일이다.
내가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건을 목격했다. 충돌 사건은 단지 존재만 할 뿐이다. 사건 스스로는 왜 일어났으며, 누가 더 잘못 했으며,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입었는가를 말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직장에서 동료에게 아침에 목격했던 사건을 말로 전해줄 때라야 이야기가 된다. 동료에게 이야기를 할 때라야 사건이 왜 일어났으며, 피해 정도는 어느 정도이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의 줄거리가 만들어진다. 줄거리를 만들 때는 내가 보고, 느끼고, 판단한 내용이 사건보다 더 비중을 갖는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줄거리는 말하는 사람의 욕망이 고스란히 들어간다. 욕망이란 말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심리적 요소들이 반영되므로 객관적으로, 또는 진실이라는 면에서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말하는 사람이 지난날에 뒤의 자동차로부터 추돌당한 경험이 있다면, 추돌한 차가 무조건 나쁘다는 판단을 지레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앞 차가 급정거를 하여서 추돌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 차를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야기에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감으로 말하는 사람의 욕망이 바로 의도가 된다고 한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렌즈로 하여 사건을 바라보면 사실 그대로가 아니고 렌즈를 통하여 비치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럴 때는 사건의 실체가 아닌 이미지가 된다. 우리는 세상을 이미지를 통하여 바라본다. 사건의 목격자가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할 때는 이미지를 이야기를 만들어서 전달한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이가 자기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든다. 사건의 전개가 줄거리가 된다. 사건의 전개가 듣는 이에게 소통되게 하려면 사건을 논리적으로 배치하여 줄거리를 만든다. 이처럼 소통이 잘 되도록 줄거리를 만드는 일을 플롯이라고 한다. 플롯을 짤 때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들어간다.
따라서 이야기로 만들어서 표현하는 것은 사건 자체 또는 삶 자체가 아니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작가)의 의도에 의하여 변형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이야기에 필수로 관여하는 요소는 시간이다. 행위는 시간 따라 바뀌어서 앞부분과 뒷부분이 차이가 난다. 이 차이를 변환이라고 한다. 행위가 시간을 따라서 변환하면서 이어질 때가 사건이 된다. 사건의 변환은 급전, 반전, 발견, 감성이 일어났다가 소멸하는 변화 등등을 말한다. 사건에는 행위가 있고, 행위에는 행위를 하는 인물이 있다. 여기서 보면 이야기에 관여하는 필수 요소는 사건, 시간 그리고 인물이다. 어떤 인물이 행위를 할 때는 어떤 가치를 얻거나 얻으려고 하는 목표를 가질 때이다. 이 목표가 의미가 된다. 수필이라면 주제가 된다.
다시, 출근길에서 경험하였던 교통 사고를 보면, 달리고 있는 두 대의 자동차가(앞) 추돌을 일으키면서 차의 앞과 뒤 부분에 파손이 왔다. 변환이 온 것이다. 사건에는 운전을 한 인물이 관여한다. 왜냐면 목격자가 이야기를 할 때는 앞차와 뒷차라고 했더라도 앞차를 운전한 사람, 뒷차를 운전한 사람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왜냐면 자동차는 자기 힘만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이다. 과거는 기억으로, 미래는 기대로 이루어진다. 기억과 기대에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이 배경이다. 시간의 배경이 개인의 행위에 문맥상으로 관여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전하고 싶어 하는(욕망하는) 내용이나. 또는 이야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야기에는 ‘욕망’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욕망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심층 심리학에서 라캉은 욕망을 ‘결핍’이라고 했다. 결핍은 나에게 없는 것이다. 우리는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갖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더 가지고 싶어 한다. 이것이 욕망이다.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의 원인에는 없는 것 즉 결여이기 때문에 욕망은 결핍이다. 라고 말한다.
다시 추돌 사고를 예로 들어보자. 말하는 사람이 일어난 사건을 전할 때 자신의 의도는 전혀 없이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했다면 이야기는 역사가 된다. 그러나 문학적 진술은 역사와는 다르다.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들어간다.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는 집이다. 사건은 작가의 의도를 담는 집을 만드는 자료이다. 그렇다면 문학적 진술은 사건 자체보다도 작가의 의도가 더 중요하다. 역사적 진술과 문학적 진술의 차이점이다.
추돌하는 차가 건널목에서 기다리지 않고 가기 위해서 노란불이 켜질려고 하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내달렸다. 작가는 평소에 차가 신호를 엄격하게 지키지 않은 데에 불만을 가졌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하였을까? 그는 추돌 사고를 이야기 하면서, ‘신호가 바뀌려는 데 급히 내달리는 차를 보고 사고가 날 줄 알았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의견은 작가의 의도이다. 평소에 차들이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데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것을 사건을 빌미로 표현하였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자가 의미이고, 수필이라면 주제가 된다. 작가가 수필을 쓸 때는 이야기 자체보다는 ‘교통신호를 잘 지키자’는 주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앞 차의 여자 운전수가 말이야, 차를 빨리 몰아야 거리의 소통이 원활하게 일어나는데 말이야. 느릿느릿 몰다가 급 정거를 해버리니까 뒷차가 들이박을 수밖에 없지. 더군다나 출근길이면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조급한데,’라고 했다 하자.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다르고, 이야기가 진행하는 방향도 달라진다. 더군다나 ‘운전 숨씨가 서툰 여자 운전사가 문제야!’ 라며 여자 운전수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하였다면 주제는 달라진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작가의 의도는 이야기의 진행에 영향을 준다. 문학적 진술에는 작가의 욕망 즉 의도가 없으면 주제가 생성되지 않는다.
사건을 이야기로 만들었을 때는 사건과 이야기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사건이 존재하는 방법과 이야기가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필은 이야기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므로 수필쓰기를 위해서는 이야기의 속성이나 이야기의 구조도 알아야 한다. 이야기는 만드는 성분들이 있다. 성분을 배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소재가 되는 사건과 만들어진 이야기 사이에는 차이가 생긴다. 이야기는 소재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고 성분들로 이야기 양식에 맞게 조립하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조리사이다. 추돌 사고는 이야기의 재료이고, 즉 음식물의 재료이고, 이 재료로 음식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조리자의 재량이다.
작가가 체험하였던 사건은 사건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단지 이야기의 성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을 체험한 작가가 통찰력을 가지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서술 방법이 달라진다. 서술 방식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이야기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로 바꾸어져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곧 의미가 된다. 정리를 하면 이야기는 어떤 행위가 시간을 따라서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의 의도에 의하여 성분들을 다양하게 배치함으로 만들어진다. 독자가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성분들을 논리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이것이 구성이다. 구성 과정에는 작가가 개입한다. 논리적이라는 말은 이야기가 만들어 질 때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사건의 진행 과정이 현실적으로 자연스럽게 느끼지도록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독자가 호응한다. 수필을 읽는 독자가 의아하게 생각한다면 거의가 현실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수필은 허구를 배제하므로 현실을 떠난 수필의 세계는 있을 수 없다. 수필쓰기에서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표현하느냐는 작가의 과제이다. 작가와 독자는 작품을 매개로 만나게 된다. 작가가 생각하는 현실 세계와 독자가 생각하는 현실 세계는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 두 세계가 만나서 관계를 맺는 기능을 어떻게 작동할까? 작가가 표현한 현실은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을 펼쳐서 만들어내는 환상일 수가 많다. 허구일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독자가 수필을 읽을 때는 작가가 표현한 세계를 현실 세계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한다. 작가가 표현한 세계를 현실 세계로 인식하고, 현실 세계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한다. 일반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학문적 지식에 의존한다. 학문적 지식은 문학작품에 접근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작가의 현실 세계와 독자의 현실 세계가 엄청나게 많이 벌어져 있을 때는,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독자는 비판의 눈으로 작품 세계를 읽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가 - 작품 - 독자는 관계를 맺는 기능을 나타낸다.
이제 구체적으로 이야기 만들기를 검토해보자.
이야기의 기본 성분은 사건, 시간, 인물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많은 성분이 있다. 인물은 사건을 만드는 행위자인 수가 많다. 수필에서는 작가가 일인칭 화자로 그 역할을 한다. 사건을 만드는 행위가 일어날 때는 행위자가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한다. 따라서 행위는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시간 따라 진행한다. 욕망이 해소되었을 때는 평상성을 가진다고 한다. 이야기도 이 밥법으로 진행한다. 결국 이야기는 긴장(욕망)과 긴장 해소(해결)이라는 방향성을 가진다. 문제가 일어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약기가 진행한다.
이야기가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왜’라는 질문에 대하여 해답을 내놓는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이 진행한다. 질문과 해답 사이에서 이야기는 역동성을 가진다. 해답을 풀어갈 때 논리성이 없으면 우리는 해답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긴장도 해소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진행이 논리적으로 이루어져아 하는 이유이다.
다시 추돌 사고를 예를 들어보자. 화자는 여자 운전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편견은 과거에 체험했던 자신의 경험이 만들어 주었다. 이야기 속에서 여자 운전수를 폄하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여 평상성을 얻으려는 것이 목적이다. 여자 운전수는 운전을 잘못 한다는 자기의 진술에 논리성이 없으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다. 청자가 ‘아냐, 요즘은 여자 운전수도 운전을 아주 잘해, 자네가 잘못 생각한거야.’라고 했다면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다.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화자는 다시 자기의 믿음을 전달하려 여자 운전수가 운전을 못하는 이유로 여러 논거를 제시한다. 이 과정이 이야기의 역동성을 일으킨다. 역동성은 이야기에 재미를 준다. 이야기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하면서 긴장 해소의 방향으로 진행한다.
우리에게 무엇이 욕망을 만들고, 심리적으로 긴장하게 할까?
욕망 즉 긴장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다. 생존 본능, 모성애, 호기심, 방어본능, 등등이 관여한다. 본능은 우리를 끊임없이 욕망하게 하고, 긴장하도록 한다. 내가 체험한 사건이 원초적 본능과 연결되면 그 사건을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심리적으로 갈등을 겪는다. 소설에서는 몸의 플롯이라고 하여 몸의 행위로 나타나는 사건이 많이 관여한다. 수필은 마음의 플롯이라고 하여 심리적 갈등이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의 진행에도 법칙성이 있다. 법칙성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소통을 쉽게 일어나게 하는 규칙이다. 작가도, 독자도 규칙을 인정해야 소통이 일어날 수 있다. 흔히 코드(code)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법칙성을 다시 말하면 이야기의 구조이다. 이야기는 누군가(독자)를 위한 누군가(작가-화자)에 의하여 언어로 진술하는 것으로서 소통이 일어나야 존재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예술이란 타인을 위해서 타인을 통해서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그레마스는 이야기의 심층에 2항 대립의 구조가 있어서, 이 구조가 표층의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다. 토도로프는 그레마스처럼 이야기의 심층에는 문법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이야기의 의미도 문법에 따르므로 보편성을 가진다고 했다. 이제 이야기의 구조 내지 구성을 보자.
이야기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시작과 끝은 달라진 상태이다. 달라지게 되는 것은 시작과 끝 사이의 전개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을 특히 절정 내지 반전이라고 한다. 이야기의 재미는 대체로 절정 내지 반전의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진행 구조는 서두 - 전개 -절정(반전) - 결어의 양식으로 만들어진다. 중국문학에서는 기-승-전-결로 말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글을 계속하여 읽도록 쓴다. 자동차 추돌 사고를 다시 예를 들자. ‘출근 길에 자동차 추돌 사고를 보았어’라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와, ‘출근 길에 예쁜 여자가 운전하던 차가 추돌사고를 당하는 것을 보았어.’라고 하였다면 청자들은 어디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질까? 동일한 사건을 이야기로 만들 때는 작가의 언술 기법에 따라 청자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강도는 달라진다.
이야기는 시간을 따라서 선적으로 진행한다. 하나의 행위를 이어서 또 행위가 나타난다. 청자가 ‘그래서?’ 하고 관심을 보이면 다음에 일어났던 일을 듣고 싶다는 신호이다. 호기심이 생겼다는 뜻이다. 추돌 사고를 이야기로 전하는 화자는 다음 사건을 말한다. 이처럼 이야기가 시간 따라 흘러가는 것이 전개이다. 화자가 전개를 펼쳐나갈 때도 청자가 계속하여 귀를 기울이도록 말한다. 청자나 독자를 이야기에 붙잡아 두는 방법은 전개에 대립과 갈등을 표현하고, 반전과 발견을 넣는다. 대립과 갈등이 전개되는 과정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이다. 체홉이 한 말을 인용해 보자. 벽에 총이 걸려 있다는 진술이 있었다면 다음에는 총의 발사가 나와야 한다. 독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총이 질문이라면 발사는 대답이다. 이렇게 만들므로 이야기는 역동성을 가지면서 청자나 독자의 시선을 끌게 된다.
화자가 또는 작가가 만든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재료로 하여 만들지만 만들어진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지시하지 못한다. 자동차 추돌 사고를 이야기로 통해서 알게 된 청자나 독자는 실제 사건을 이해할 수 없다. 독자는 화자가 구성해낸 사건을 만났을 뿐 실제 사건을 만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자는 이야기 문법에 따라서 실제 사건 중에 버릴 것은 버리고, 과장할 것은 과장하여 자기의 욕망에 맞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는 실재의 사건은 굴절되어진다. 그렇다고 하여 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이 이야기인 이상 사실을 요구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요즘 수필에서 자주 만나는 이야기가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가 베풀어 준 사랑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알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는 내용이 많다. 수필이 구성된 이야기라는 전제를 하고 읽으면 작가가 쓴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거짓은 아니다. 왜냐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진실이 의미(효)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이야기를 계속하여 읽어보면, 효도를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 어머니의 사랑과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 사이의 대립구도는 후회를 함으로 화해한다. 결핍이 해소되어 안정을 찾는다. 이야기는 결말이 있기 마련이다. 전개 과정 내내 펼쳐지는 질문에 대한 최종적으로 찾아낸 대답이라든지, 기대의 실현을 구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종결한다. 이렇게 종결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관계있다. 종결은 욕망의 만족감을, 서스펜스에 안도감을, 혼란에는 명확함을 준다. 이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종결이 오기까지 독자는 전개의 과정에 던져지는 많은 질문을 즐긴다. 물론 즐기지 못하는 독자도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자동차 추돌사고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실재 사건이 아니고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수필을 읽었는데도 독자마다 얻는 느낌은 다르다. 독자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종결에 대한 기분도 독자마다 다르다.
또 하나는 이야기의 심연에는 도덕적 가치가 깔려 있어야 한다. 민담을 위시하여 이야기의 구조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도덕성도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고 보았다. 그러나 독자들이 미리부터 알 수 있도록 선과 악을 분명히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독자가 미리 예측해버리면 글읽기의 흥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기-승-전-결이라는 이야기 자신의 문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한 번 더 말하면서 이 글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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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덕적 가치가 깔려 있어야 한다.
융의 주장입니다. 우리는 수 천 년의 인류 역사 속을 지내오면서 선험적으로 옳고, 그르다의 가치가 내재되어(기계로 치면 내장되어 지는)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선이 악을 이겨야 재미있어 한답니다. 인간의 마음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을까를 공부하는 독서 모임을 (약 4회 정도 만나서 공부하는 한시적 모임으로) 만들까 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