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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5>27번 버스타고 영주 둘러보기 부석사·소수서원·선비촌 관광 "버스 노선 하나면 OK∼" | ||||||||||||||||
봉화군 물야면에서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꼭 한 달 만이다. 오전 9시 물야면 오록리 물야 면사무소 앞에서 '봉화-부석' 버스를 타면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까지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길을 건너 영주시내에서 풍기를 거쳐 부석사를 오가는 27번 버스나 진우를 들러 부석사로 가는 55번 버스를 타면 부석사로 갈 수 있다. 특히 27번 버스는 부석사와 소수서원, 선비촌, 풍기역, 인삼시장 등 영주의 주요 관광지들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소백산 줄기를 바라보다 영주 부석사는 설명이 필요없는 장소다. 봄`가을의 경치가 더 아름답겠지만 눈 쌓인 산사의 겨울 풍경도 나름대로 정취가 있다.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부석사에는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을 비롯해 조사당(祖師堂`국보 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 벽화(국보 46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등의 국보가 즐비하다. 3층 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당간지주 등의 보물과 원융국사비, 불사리탑 등 온갖 문화재가 즐비하다.
평일 오전인데도 20대 청년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방학을 이용해 코레일의 '내일로' 티켓으로 여행을 다니는 이들이다. 근래 며칠간 기온이 푸근했던 덕분에 산 위의 눈은 거의 녹았다. 이따금 경내를 휘감는 바람에 흙먼지가 날렸다 잠잠하게 내려 앉았다. 무량수전 앞 석등 앞에 서니 멀리 흘러나가는 소백산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봉긋봉긋 솟은 봉우리와 차분히 내려앉는 산맥에 눈이 시리다. 부석사에서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길 곁으로 노점들이 자리를 펴고 있다. 더덕과 말린 토란`가지`뽕잎이 가판대 위에 자리를 틀었다.
◆"난 여기 있는 게 편해" 부석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매표소에 있는 송인기 할아버지다. 송 할아버지는 1919년 10월생. 올해로 무려 95세이다. 하지만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리가 곧다. 송 할아버지는 19년 전부터 부석사 매표소를 지켜왔다. 숙식을 매표소에 딸린 작은방에서 해결하는 그에게 매표소는 직장이자 집이다.
송 할아버지는 "원래 이렇게 오래 머무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냥 두세 달만 있다 가려다가 눌러앉게 됐지요." 그는 원래 건설업자였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건설업을 했다. 부모님은 가난했다. "결혼을 할 때도 좁쌀 2되와 쌀 한 됫박, 숟가락 2개로 세간을 났다"고 했다. 결국 그는 열아홉 살 때 고향을 떠났다.
송 할아버지는 오전 5시 5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눈 뜨자마자 빗자루를 들고 부석사 천왕문과 식당가까지 오르막길을 쓸어낸다. 부석사까지 눈 덮인 길에 마른 땅이 드러난 것도 송 할아버지의 비질 덕분이다. 비질을 끝내면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매표소를 지킨다. 그는 "부석사는 10월에서 11월 중순까지가 제일 좋다"고 했다. 1년 중 가장 단풍이 아름다운 시기다. "요즘은 하루에 몇 명이나 옵니까?" "겨울이라 평일에는 200~300명씩 오고 주말에는 1천 명 정도 오죠." 그에게 사람들은 "아흔이 넘은 사람이 비질이나 하고 매표소에 있으면 뭐가 좋냐고, 자식들하고 같이 살지 뭐하러 고생하냐"고들 한다. "난 이게 편해. 즐겁고. 내 손으로 돈을 버는 것도 좋아요."
그가 기분 좋게 자식 자랑을 한다. 아들 둘과 딸 둘 사남매를 두고 있다고 했다. "자식들이 다 잘됐어요. 큰아들도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큰며느리는 외국계 항공사 한국지점장을 하고, 맏손녀는 하버드대에 다니고 둘째 손녀도 유명 사립대 법대에 다녀요. 막내아들은 고교 교사를 하고 있고." 하루에도 1천 명씩 만나다 보니 별별 사람들이 있다. "내가 '몇 분이세요?'라고 묻지 않고 '몇 명이에요?'라고 물었다고 '왜 반말하냐'고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어요. 매표하시라고 하면 '매표해야 되냐?'라고 반말로 대꾸하는 사람도 있고." 기분 좋게 얘기하던 그가 아내 얘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내는 4년 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이제 고만 하자"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순흥면에서 길을 잃다 부석사에서 내려오니 오전 11시 20분. 풍기로 가는 버스가 5분 전에 떠난 뒤였다. 미리 버스 시간을 챙겨두지 않았던 탓 이었다. 소수서원과 선비촌, 순흥면을 둘러보려면 낮 12시 40분에 출발하는 27번 버스를 타야 한다. 꼼짝없이 1시간 20분을 길 위에서 떨어야 할 판이다.
점심 끼니도 놓친 터였다. 식당 간판을 쳐다보며 허기진 배를 문질렀다. 점심을 먹고 가도 충분한 시간이지만 순흥면에서 유명한 메밀묵집에 갈 요량이어서 꼼짝없이 군침만 흘렸다. 부석사에서 20여 분을 달리면 순흥면사무소다. 우선 가마솥에서 직접 굳혀냈다는 메밀묵밥을 먹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지도 서비스로 검색해 길을 따라갔다. 그런데 20분 넘게 걸어도 묵집이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 마을 안쪽까지 들어가도 묵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엉뚱한 마을로 지도 표시가 된 것. 인터넷 맹신은 금물이다. 다시 순흥면사무소 앞으로 돌아와 골목을 헤맨 끝에 간판을 발견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불과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순흥 전통묵집은 순흥면사무소에서 내려 우체국 앞길로 100m가량 걸어가다 간판을 보고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
이곳에는 메뉴가 메밀묵밥 한 가지밖에 없다. 묻지도 않고 사람 수에 맞춰 내준다. 음식을 나르는 아주머니에게 "여기 장소가 옮긴거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우리는 여기서 33년이나 했어요. 다른 집들이 옮기고 하니까 손님들이 와서 옮긴거냐고 자꾸 물어요." 나만 헤매는 게 아닌 모양이다. 곧 음식을 내주는데, 한 그릇이 아니라 두 그릇이다. "혼자 왔다"고 해도 음식만 상 위에 내려둔 채 쌩하니 가버린다. 다시 부르기도 뭣하고, 그리 비싼 값도 아니다 싶어 혼자 두 그릇을 해치웠다. 회색빛 묵 위에 고추와 파 다진 것, 고춧가루와 참깨가 섞인 고명, 참기름을 얹어준다. 조를 섞은 잡곡밥도 함께 나온다. 부드럽게 씹히는 묵과 고소한 냄새가 꽤 잘 어울린다.
순흥면 읍내리는 작은 면 소재지지만 들러볼 만한 곳들이 꽤 있다. 순흥면사무소 마당에는 경북도 기념물 제159호인 연리지송이 있다. 순흥의 연리지송은 한 나무에서 두 줄기가 자라다가 꽈배기처럼 꼬인 나무다. 두 번에 걸쳐 꼬이며 한 몸처럼 뻗어나간 연리지송은 하늘을 향해 뻗던 가지를 땅으로 축 늘어뜨렸다. 연리지송 주변에도 볼거리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 없는 석불입상과 흥선대원군이 세운 순흥척화비,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도 있다.
◆술과 욕설은 안 돼요 순흥 면사무소와 담장을 맞대고 있는 공원이 봉도각이다. 둥글게 돌벽을 쌓아 둥근 물길을 만들고 그 중간에는 인공섬을 만들어 정자를 세웠다. 사각형의 연못 가장자리에는 버드나무 고목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다. 봉도각은 둥근 연못과 그 안의 둥근 섬, 그리고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을 뜻한다. 이 공원은 순흥도호부 청사였던 조양각의 뒤뜰이다. 영조 때인 1754년 부사 조덕상이 관원들의 쉼터로 만들었다. 봉도각 오른쪽에는 '경로소'가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단지 내에 자리 잡은 경로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지막한 돌담이 둘러싸고 있는 너른 마당과 정자가 있고, 나무로 둘러싸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로당 일터다.
경로소 밖으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르신 중 가장 연장자는 홍진우(99) 할아버지다. "여기는 원래 약국 이었어. 보건소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고치고 약도 주던 곳이었지. 그 이후에 노인들을 위한 경로국이 됐어." 아직도 이곳의 좌장은 '국장'이라고 부른다. 경로국의 국장이 되려면 순흥면의 순흥향교 와 소수서원, 금성단 등 3곳의 장을 거쳐야 한다. 경로국은 해방 이후 경로소가 됐다. 이곳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욕설을 하지 않아야 한다.
오후 3시 30분에 순흥 면사무소에서 27번을 타고 소수서원 과 선비촌으로 향했다. 소수서원은 선비촌 입구 매표소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선비촌은 영주 지역의 고택 12채를 재현한 공간이다.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 가옥 등을 그대로 옮겼다. 각 가옥에서는 고택 민박도 가능하다. 이날 밤은 선비촌에서 묵기로 했다. |
첫댓글 "영주 봉화산 중턱에 자리잡은 부석사"
봉화산이 아니라 봉황산이 안인가요?